파명, 노동자 살해, 공무원 노조 탄압, 비리, 자유무역협정 추진, 새만금 간척 사업 강행...

노무현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노무현은 10월 11일, 한나라당과 우파 신문들이 “대통령을 흔드니까 국정 혼란이 충분히 와 있”었다고 주장했다.

노무현의 우익 비판은 지지자들의 결속을 다지는 효과를 냈다. 노무현의 지지율이 형편없는데도 재신임 여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순전히 한나라당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 때문이었다.

그런 다음, 그 동안 지지 기반 이탈을 우려해 머뭇거렸던 껄끄러운 문제들을 일사천리로 처리하기 시작했다. 재신임 협박은 결국 진보진영 단속용이었다.

재신임 관련 기자회견을 했던 바로 그 날 노무현은 “계획보다 훨씬 많은 사업비를 투자해 새만금 간척 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일주일 뒤에는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파병 결정 발표 두 시간 뒤 공무원 노동자들의 집회를 원천봉쇄하고 노동자들을 연행해 갔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참석해 올해 안에 한-일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사장들에게는 스크린쿼터제 축소를 약속했다.

검찰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10월 23일 송두율 교수를 구속했다.

노무현의 재신임 선언이 우익과 싸우기 위한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쓰라린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이 무슨 말을 해도 곧이 듣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이 자인한 ‘신뢰성의 위기’는 더한층 심화할 것이다.

 

혐오감

 

노무현이 벌이는 일련의 공격들은 재신임 배경이 단지 측근 최도술의 비리 덮기용이 아님을 뜻한다.

참여연대처럼 “이번 사안이 재벌 기업의 비자금과 불법적인 정치 자금 수수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은 협소한 시각이다.

최도술 비리가 재신임 선언 시기를 결정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겠지만, 재신임의 배경은 훨씬 근본적이다.

〈조선일보〉(10월 13일치)는 노무현이 “이대로는 국정을 운영할 수 없고, 나아가 내년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식물 정권’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던” 8월에 이미 국민투표를 구상했다고 보도했다.

이전 두 정부들과 비교해 봐도 노무현 정부가 겪고 있는 위기의 속도는 매우 빠르다.

김영삼 정부는 집권 4년 만인 1997년 1월 파업의 여파로, 김대중 정부는 집권 3년 만인 2001년 초엽에 결정적 위기에 직면한 반면, 노무현은 집권 일곱 달 만에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그 동안 노무현은 우익의 등쌀과 아래로부터의 도전 사이에 끼여 좌충우돌했다.

노무현은 지난 5월에 화물연대 파업과 한총련 학생들의 광주 망월동 항의 시위를 겪은 뒤에 “대통령직 못 해먹겠”다고 했다.

우익이 불안해하자 8월에는 “진짜 국가가 위험하면 헌법 따라 권한 행사”하겠다고 했다.

마침내 이라크 파병을 놓고 좌우 대립(“국론 분열”)이 첨예해지자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다.

우파 신문들은 노무현의 교양 없음과 가벼운 처신을 영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러나 개인적 성향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은 실로 거대한 사회적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더구나 심각한 경제 상황이 노무현을 괴롭히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박용성은 “미국에서 훈풍이 불어도 우리 경제가 당장 살아난다는 보장이 없다”고 내다봤다.(〈한겨레〉 10월 8일치.)

기업주들은 노동자를 이윤 회복의 제단에 바치고 싶어한다. 노무현은 기업주의 이윤 회복이라는 역사적 소임에 충실했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개량을 가져다 줄 수 없었다(“개량 없는 개량주의”). 또, 대기업 노조가 “특혜”를 받고 있다고 비난했다(“개량을 도로 빼앗아 가는 개량주의”).

삼성전자 이사의 연봉은 52억 원이다. 한국가스공사 사장의 연봉은 3억 3천74만 원이다.(판공비를 포함하면 5억 원이다.) 그러나 노무현은 이들의 “특권”을 비난하지 않았다.

노무현의 이런 우파적 정책은 격렬한 반발을 샀다. 노무현 정부 들어 1백12명의 노동자가 구속됐다(9월 23일 현재)는 사실은 그 전투가 매우 치열했음을 보여 준다.

노무현이 노동계와만 불화를 빚은 게 아니다. 대선 때 자신을 전폭 지지했던 전북 주민들에게 새만금 간척과 부안 핵폐기장 건립을 밀어붙인 탓에 지역 기반까지 크게 허물어졌다.

파병 결정은 그의 마지막 지지 기반과 돌이킬 수 없는 마찰을 빚었다. 청와대는 분열했다. 국민참여수석 박주현은 전투병 파병이 결정되면 사퇴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재신임 카드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에서 던진 정치적 도박이었다. 노무현은 소수 지배자들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국민 다수의 요구를 철저하게 묵살하는 쪽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