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연쇄 자살 사태를 낳은 카이스트의 냉혹한 경쟁 시스템은 한국 대학 교육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서남표의 총장 취임 이래 카이스트 세계 대학 순위가 급상승하자 그의 ‘개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고등교육 기관의 미래를 보여 주는 성공 모델로 지배자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단지 보수파만이 아니라 자유주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서남표를 MB 경쟁교육의 상징으로 묘사하지만, 사실 막대한 연봉을 약속하며 미국에서 그를 모셔 온 것은 노무현 정부다. 

서울대도 “세계 수준의 대학 건설”에 뛰어들었다. 해외 언론과 평가기관 들이 매긴 대학 순위가 상승하는 동안 등록금 인상, 교수들에 대한 연구업적 평가 등 통제가 강화되는 일이 함께 일어났다. 마침내 ‘국가경쟁력 강화’를 내세우며 서울대 법인화 법이 통과됐다. 고려대와 연세대 같은 명문 사립대는 물론, 삼성과 두산 같은 대기업이 대학을 인수한 성균관대와 중앙대도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외치며 대학을 구조조정해 왔다. 돈벌이가 잘 되지 않는 인문사회 분야 학문이 기피되고, 대학은 학생 교육보다 연구에 더 중심을 두게 됐다. 

글로벌 경쟁의 일환으로 영어 강의도 확대됐다. 카이스트처럼 1백 퍼센트 전면 도입은 드물었지만 명문대를 중심으로 영어 강의가 부쩍 늘었다. 일부 대학들은 영어 강의 수준을 넘어 아예 영어 공용화를 추진한다. 포스텍(포항공대)은 지난해 2월 영어 강의는 물론, 논문과 교수회의, 세미나, 행정 문서에서 학내 게시물에 이르기까지 캠퍼스 내에서 전면 영어를 쓰겠다고 선언했다. 2009년 개교한 울산과기대나 광주과기원(GIST)도 영어 공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압도다수의 사람들이 영어를 일상어로 쓰지 않는 한국에서 고등교육기관들이 영어 전공이 아닌 과목에 영어 강의를 도입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다. 이것이 그저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 영어 소통 능력을 발전시키려는 것이라는 주장은 기만적이다. 

엘리트 대학들이 주도하는 영어 강의나 공용화 정책들은 대학의 명성을 높이거나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함으로써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려는 노력의 일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학의 국적 논란이 아니라 이런 정책이 은폐된 계급 차별이라는 것이다. 

계급 차별

영어 강의를 충실히 이해해 높은 학점을 받고, 능숙하게 영어 논문을 쓰고, 영어권 외국인들의 감탄을 자아낼 만큼 유창한 영어로 강의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미국인 뺨치게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모두 부자인 것은 아니지만, 조기유학이나 국내 외국인 학교 입학, 영어 가정교사 채용 따위로 자녀의 영어 학습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부유층에게 극도로 유리한 것은 자명하다. 

자본가들과 시장주의 관료들은 고등교육의 다양한 목적을 오로지 경제적 목적으로 환원하고 있는데, 이런 논리는 교육의 목적을 편협하게 만들면서 자본주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사회생활 곳곳에 깊숙이 침투시키고 있다. 

‘명문’ 고등학교·대학교 합격자를 축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등하교길  대학의 무한경쟁은 중고등학생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경쟁 논리를 퍼트린다. ⓒ이미진

그러나 경쟁과 지식의 상업화가 탁월한 학문적 성과를 낸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은 중요한 연구들이 모두 그런 방식을 통해 이뤄진 것은 전혀 아니다. 다윈도, 아인슈타인도 상업적 동기에서 연구를 한 게 아니며, 그 결과물도 상업화하지 않았다. 또, 그들은 1년에 해외 유명 등재 학술지에 쓴 논문 수로 연구업적을 평가받으며 그런 위대한 성취를 이룩하지도 않았다.  

자본주의 발전은 지적 성취 면에서도 여러 제약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적재산권이 단적인 예다. 새로운 지식 창출은 단지 개인의 천재적 능력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과거 인류의 물질적, 정신적 성취가 누적된 바탕 위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자본가들이 인류가 성취한 결과를 개인의 이익으로 전유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갈취 행위다. 미국의 명문대학들은 특허권 다툼에 깊이 연루돼 타락했는데, 한국의 대학들도 이런 길을 따라가고 있다.

고등교육 시장화는 고등교육 기관에 오래전부터 존재한 불평등과 소외를 심화시키고, 학문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더 후퇴시키고 있다. 이런 흐름은 결코 불가피하지 않다. 인간답고 평등하고, 진정으로 지적이고 창의적인 사회를 위해 학생과 지식인, 노동계급이 단결해 맞서야 한다. 

지식은 돈벌이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세계를 과학적으로 이해해 독립적이고 비판적인 사고 능력을 기르도록 돕는 데 이용돼야 한다. 개인의 다양한 잠재력을 계발하는 것과 사회의 발전이 모순되지 않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그러려면 경쟁이 아니라 협력, 이윤이 아니라 대중의 필요에 바탕을 두고 생산이 계획되는, 진정으로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죽을 때까지 사회주의자로 산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