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이 6월 9일 출범을 앞두고 있다. ‘공동행동’에는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뿐 아니라 진보정당들과 민주노총, 다함께 등 수십여 다양한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고 ‘신규 핵발전소 건설 중단’, ‘노후 핵발전소 폐쇄’, ‘핵 정책 전환’을 공동 목표로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환경운동연합 등 일부 환경단체들은 핵발전을 없애기 위한 ‘시민실천’ 캠페인을 공동행동의 주요 과제로 채택하자고 주장한다.

‘에너지 절약 운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무기력한 대안이 되기도 한다.  

공동행동이 그 이름에 걸맞게 행동을 조직하는 기구가 되려면 시민과 노동자 들을 참여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들이 특별히 ‘시민실천’을 강조하는 까닭은 대중적 항의행동이 아니라 집에서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도록 촉구하려는 것이다. 예컨대 ‘집집마다 전기를 1퍼센트 줄여 핵발전소 하나 폐쇄하기’ 같은 선언 운동을 하자는 것이다.

시민단체들 대부분이 이런 에너지 절약 운동을 지지한다. 그렇다고 이런 일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큰 것은 아니다. 이런 운동이 의미있는 성과를 거둔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정부와 기업에 무언가를 요구하려면 으레 뒤따라야 할 미사여구 정도로 여긴다.

이런 태도는 첫째, 환경 파괴의 원인을 사회 구조가 아니라 개인의 이기심 따위에서 찾는(보통은 둘 다 원인이라고 말하지만) 자본가들의 관점을 수용하는 데서 비롯한다. 둘째, 따라서 환경 파괴를 막는 것은 특정 집단이나 계급 사이의 투쟁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개인의 반성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성인군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현실에서는 선거 등으로 표현되는 사회적 합의를 유일한 대안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어떤 전기를 사용할지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다. 역대 정권 중에 어느 정권도 엄청난 규모의 재정을 핵발전에 투자할지 재생에너지에 투자할지 대중에게 물어본 적이 없다. 4년 혹은 5년에 한 번씩 투표할 때 주어지는 선택의 기회만으로는 실제로 결정을 내리는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의 우선 순위를 바꾸는 데 명백한 한계가 있다.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무기력하고 온건한 방식이 에너지 절약 선언 운동이라면, 오만하고 적대적인 버전은 전기 요금 인상론이다.

지난 5월 30일 〈프레시안〉에 쓴 칼럼에서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는 “전력 낭비에 대한 근원적인 대책은 무엇인가?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민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도록 … 일종의 기초공제 제도”를 도입하자고 했지만 “우리 국민은 전력을 물 쓰듯 하고 … 에어컨을 사느라 법석을 떨고 있다” 하며 평범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심지어 이명박의 ‘녹색성장’이 “전기요금을 올리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며 정부의 ‘결단’을 촉구한다.

시민 실천?

그러나 첫째, 이명박의 ‘녹색성장’은 핵발전 확대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이정전 교수는 자신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둘째, 전체 전기의 절반 이상(52.5퍼센트)을 사용하는 기업주들의 책임을 묻지 않고 평범한 노동자·농민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상식에 비춰 봐도 공정하지 않다. 〈조선일보〉조차 “가계가 아니라 산업부문의 전력 과소비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말이다. 게다가 “산업용 요금이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에 일반 국민이 내는 요금으로 제조 대기업을 지원하는 꼴이 되고 있다.”

셋째, 그래도 다른 나라보다 가정용 전기 요금이 싸기 때문에 낭비가 많다는 얘기는 하나마나한 얘기다. 

가정에서 소비되는 전기는 대체로 삶에 필수적인 것들이고, 낭비되는 전기가 있다고 해도 ‘무절제한 생활’이 아니라 가전제품의 전기 효율이 낮은 것이 문제다. 대기전력을 자동으로 차단하는 장치들이 개발돼 있지만 정부는 건축업자들에게 이를 의무화하지 않는다. 단열을 개선하는 건축 규제를 강화하지 않고 전열 기구를 사다 쓰라고 부추긴다. 그렇게 해도 한국의 주거부문 전력 소비 비중은 OECD 평균의 절반도 안 된다.

평범한 노동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가정용 전력 소비를 줄여서 핵발전소를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은 몽상에 가깝다. 이윤에 눈먼 기업주들과 그들의 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정부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이들의 결정을 바꿀 힘을 가진 강력한 대중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최근 독일 정부 등이 핵발전 중단을 말하는 것은 수십만 명이 참여한 운동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전기 절약을 촉구하거나 더 나아가 전기 요금을 인상하자는 주장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이런 대중 운동을 건설하는 데 치명적인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환경운동가들의 전기 절약 캠페인에 냉소를 보내거나 불만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능해 보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엉뚱한 데다 책임을 떠넘기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반감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설사 그들의 주장을 수용하더라도 그 결과는 정부와 자본가들의 억압적 정책과 고통을 감내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정부와 자본가들에 항의하는 행동에 나서는 것과는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일부 환경운동가들은 선거를 유일한 현실적 대안으로 여기다 보니 주로 정부의 정책 대응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것을 분석하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조정’ 과정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전문가적’ 활동을 ‘대중적’으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환경운동가들은 무기력하게 정부와 싸우고 노동자들은 자기 자신과 싸우는 웃지 못할 분리가 생긴다.

공동행동이 이런 모순에서 벗어나려면 평범한 노동자들과 함께 거리와 직장에서 정부와 기업주들에 맞서는 투쟁을 중심으로 행동 계획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