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노동자연대가 10월 20일 발표한 성명을 장호종 기자가 개정 증보한 글이다.


문재인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상 자신의 대선 공약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10월 20일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발표를 듣고 낙담한 밀양 할머니들 밀양은 신고리 5·6호기에서 전기를 보내는 송전탑이 건설되는 곳이다 ⓒ제공 <미디어오늘> 이치열

문재인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높아진 핵발전소 반대 여론을 신경 써 스스로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핵발전소 반대 운동의 상징적 표현인 ‘탈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 말고는 어떤 식으로도 구체적인 의지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미 집권 한 달 만에 이런 공약에서도 슬금슬금 물러서느라 바빴다.

문재인은 신고리 5·6호기 폐쇄 결정을 자신이 아니라 ‘공론화위원회’에 맡기겠다고 당시 발표했다. 이는 겉보기에 여론을 수용하는 듯한 형식을 취하면서도 사실상 책임을 회피하는 얄팍한 꼼수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1342만 명의 견해를 뒤집고 고작 수백 명의 의견을 물어 결정하겠다는 꼴이니 말이다.

심지어 이는 핵산업계와 핵발전 친화적인 인사들에게 기회를 줌으로써 사실상 탈핵 공약을 뒤집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핵발전을 미화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광고에만 매년 수백억 원을 쓰는 자들이 현실에서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또,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 1·2호기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없었다. 공사가 거의 완료됐지만 아직 가동되고 있지는 않은 이들 ‘신규’ 핵발전소 세 기의 용량은 폐쇄된 고리 1호기의 일곱 곱절이 넘는다.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에도 핵발전은 큰 폭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관련 기사 : 문재인의 ‘탈핵’, 너무 미흡하다)

사실 문재인이 정말로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중단하고자 했다면 ‘공론화’는 전혀 필요치 않은 절차였다. 그러나 우파와 타협하면서도 지지자들을 붙들어 두는 데는 효과적인 절차였다. ‘공론화’는 다른 신규 핵발전소 3기 가동을 기정사실화한 직후에 이뤄진 조처이므로, 탈핵·찬핵 진영이 공론화에 참여한다면 ‘탈핵’ 문제를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여부로 제한하는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러면 설사 공사 중단 결정이 나더라도 우파를 달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반대로 공사 재개 결정이 나더라도 ‘공론화’라는 형식에 환상을 가진 탈핵 운동 단체 리더들을 붙들어 두거나 하다 못해 마비시킬 수 있을 터였다. 따라서 공론화 자체를 거부하고 문재인에게 책임지라고 요구하며 싸웠어야 했다.

문재인의 핵발전소 공사 재개 결정은 사드 배치 강행에 이어 자신의 지지자들을 이반하게 만든 또 하나의 배신으로 기록될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공사는 중단돼야 한다.

추첨식 민주주의?

공사 재개 발표 뒤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일부 환경단체 리더들이 돌이켜 보듯 공론화위원회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꼴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무엇보다 시민배심원단 500명은 아무도 대표하지 않는다. 이들은 아무 대표성도 없는 일부 학회의 추천을 받아 임명된 공론화 위원들이 2만 명의 여론조사 대상자 중 찬반 비율에 따라 추첨한 사람들일 뿐이다. 

이에 따라 시민배심원단 500명은 시작할 때부터 공사 재개 입장이 다수였다.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지역주민’이나 ‘미래세대’가 더 포함된다고 해서 더 대표성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왜 최소 수백만 명에서 수천만 명의 안전이 걸린 문제를 제비뽑기에 맡겨야 할까?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존중”해야 할 이유가 없다 ⓒ출처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

일부 환경운동 리더들의 지적대로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4~5년마다 고작 1~2분씩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부르주아 의회 민주주의보다 더 나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의제가 다 쓸모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탄생한 소비에트는 공장 노동자들, 병사들, 지역 주민들, 농민들이 직접 선출한 대표로 이뤄졌다. 이들은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을 받고 아무런 특권도 누리지 않았다. 대표들은 언제든 자신을 선출한 사람들에 의해 소환될 수 있었다. 혁명 과정에서 의식이 고양된 노동자·병사들은 소비에트의 중요한 결정에 높은 관심을 기울였다. (관련 기사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9: 왜 ‘소비에트’가 중요한가?) 따라서 ‘어떤’ 대의제냐가 중요하다.

일각의 주장처럼 ‘추첨제’가 민주적인 것은 전혀 아니다.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더 능동적이고 헌신적인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고 지지받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들 중에서 운동의 리더를 선출하고 검증받는 과정도 불가피하다. 

국가나 기업처럼 잘 조직된 상대에 맞서 싸우려면 운동도 일정한 집중성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번 ‘공론화’처럼 추첨으로 대표를 선출하는 것은 완전히 무책임한 처사일 뿐이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것처럼 “어떤 시대에나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인 사상이다. 물질적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계급이 정신적 생산수단도 통제한다.”(《독일 이데올로기》)

따라서 대중이 지배계급의 사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질적 지배에서 벗어나는 과정과 분리될 수 없다. 계급 투쟁과 연결된 아래로부터의 탈핵 운동이 필요한 까닭이다. 이를 고작 몇 사람의 환경운동가들의 며칠간 합숙 교육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큰 착각이다. 

이 점에서 일부 환경운동 리더들이 아래로부터의 운동 건설보다 소수 활동가들의 활동, 그중에서도 정부 기구나 위원회 참여 등을 더 중요하게 여겨 온 것을 반성적으로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의 배신을 직시해야 

문재인 정부에 친화적인 일부 환경운동 리더들이 문재인의 후퇴와 배신을 못본 체하며 오히려 공론화위원회를 민주적이라고 치켜세운 것은 큰 문제였다. 공론화위원회라는 형식을 “존중”할수록 그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압력을 스스로 만드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는 일부 환경운동 리더들이 자본주의 사회를 날카롭게 가로지르는 계급 문제를 무시하고 ‘시민적’ 대안을 추구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관련 기사 : 노동(계급)인가 시민인가?) 계급 문제를 보지 못하면 국가가 국민(시민) 다수의 견해를 대변한다는 중립적 국가관이나, 자본주의 국가를 우회해 시민사회의 자치를 구현할 수 있다는 자율주의적 국가관을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국가는 계급으로 나뉜 사회에서 우회할수도 중립적일 수도 없는 지배계급의 핵심 기구다. 그 국가의 집행권자는 지배계급과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관련 기사 :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란 무엇인가?)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계급적 기반을 고려하면 이들에게 ‘탈핵’이 매우 희박한 선택지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예컨대 보수 언론들은 ‘핵발전소 포기는 군사적 핵 이용 기술 포기를 뜻한다’며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했는데 이는 문재인 ‘탈핵’ 공약의 모순을 날카롭게 파고든 것이었다. 특히, 점증하는 동북아 위기 상황에서 확실하게 미국 편을 들기로 선택한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 이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은 대선 당시에도 핵잠수함 배치 등 군사적 핵 이용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전임 민주당 정부들도 비밀리에 핵 개발을 추진하다가 IAEA의 특별 사찰을 받았다. 

기업의 이윤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수호자인 국가의 집행권자로서 ‘탈핵’ 과정에서 생길 경제적 부담을 기업들에게 지우기 부담스럽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탈핵 운동

한편, 공론화 결과 발표 이후 탈핵 운동 단체들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노동당 탈핵운동본부(준)나 원불교 환경연대를 비롯해 일부 단체들은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러나 주요 환경운동 단체들을 포함한 일부는 자신들이 참여한 ‘공론화’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다른 많은 단체들은 공론화 과정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도 공론화 위원회의 결정 사항인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결정을 분명히 거부하지는 않았다. 공론화 위원회의 권고(아무 효력도 없다!)를 들어 ‘원전 축소는 대세’라는 식으로 현실을 회피하려 한 단체들도 있다.

다행히 이런 입장을 취한 단체들 대부분이 며칠 지나지 않아 공론화위원회의 절차와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특히 문재인이 마지막 기대도 저버리고 24일 국무회의에서 공사 재개를 결정하자 실망과 분노가 커진 듯하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탈을 쓴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은 “존중”받을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라도 문재인 정부의 위선과 배신을 직시하고 아래로부터의 탈핵 운동을 건설해 나아가야 한다. 

또 이 운동이 진정한 사회적 힘을 발휘하려면 노동계급을 참여시키는 데에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탈핵 운동이 초계급적 대안에 이끌리는 것을 어느 정도 방지하는 효과도 낼 것이다. 예컨대 탈핵을 위해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는(혹은 불가피하다는) 식의 입장으로는 진정한 대중 운동을 조직할 수 없다. (관련 기사 : 과도한 주택용 전기요금은 친기업 정책의 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