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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노동조합이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이유

한샘과 현대카드 여성 노동자들의 폭로를 계기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이하 직장 내 성희롱으로 통칭)의 심각성과 해결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노동자들의 공감과 분노가 크다. LG생활건강, 코레일관광개발 노조에서는 관리자의 성희롱 문제 해결이 최근 파업의 주요 요구의 하나였다. 간호사들에게 섹시 댄스 연습을 강요한 성심병원의 성차별적 갑질도 노동자들의 분통을 터뜨리게 했다.

그러자 문재인 정부는 한샘 사건을 계기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을 내놓으며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 5년간(2012~2016년) 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성희롱 진정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여성단체들의 상담 통계에서도 마찬가지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정부가 3년마다 실시하는 ‘성희롱 실태조사’(2015년)를 보면, 여성 노동자의 9.6퍼센트가 성희롱을 겪는다.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고용 작업장”만 대상으로 한 조사인 데다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우려해 솔직한 답변을 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실제 성희롱 경험률은 더 높을 것이다. 가령 민주노총이 의뢰한 직장 내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2011년 8월)를 보면, 최근 2년간 여성 노동자의 성희롱 경험률은 39.4퍼센트나 됐다. 경력 3~5년차의 경우에는 49.2퍼센트나 됐다.

직장 내 성희롱은 뿌리 깊은 여성 차별의 한 단면인 동시에, 중요한 노동조건 문제다. 직장 내 성희롱은 여성 노동자의 근무 의욕을 현저히 떨어뜨릴 뿐 아니라, 자존감을 해치고, 심한 경우 견디다 못해 결국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 노동자들도 많다. 2014년 중소기업중앙회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는 성희롱 문제를 제기한 후 정규직 전환에서 탈락하자 비통하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따라서 이 문제를 그저 예민한 여성의 과민반응 취급을 하거나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직장 내 성희롱은 뿌리 깊은 여성 차별의 한 단면이자, 중요한 노동 조건 문제다 2015년 세계 여성의 날 전국 여성노동자대회 ⓒ조승진

하지만 여전히 성희롱 문제제기와 그 해결은 매우 어렵다. 위에서 언급한 ‘성희롱 실태조사’에서 성희롱 피해를 경험한 여성 중 78.5퍼센트가 ‘참고 넘어갔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가 가장 많았다(50.6퍼센트). ‘업무 및 인사고과 등의 불이익을 받을까 봐’, ‘소문 평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라고 답한 비율도 34퍼센트가량 됐다.

이처럼 여성 노동자들은 직장 내 해결 절차를 불신한다. 노동계급의 경험에서 비롯한 당연한 불신이다. 직장 내 성희롱 가해자 대부분이 사장이거나 고위 임원, 직장 상사이기 때문에 사측은 흔히 여성 노동자들에게 참고 넘어가라고 압박·회유하거나 가해자를 옹호한다. 또, 성희롱 사실이 알려지면 회사 이미지가 실추돼 이윤에 손실을 입을까 봐 사건을 축소·은폐하는 경우가 많다.

성희롱 문제 제기에 대한 불이익 조처

어렵사리 문제 제기해도 되레 ‘말썽 일으키는 여성’, ‘꽃뱀’ 따위로 손가락질을 받고 따돌림을 당하거나, 더 나아가 업무나 고용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특히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에게 성희롱 문제 제기는 해고를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한샘 사건에서도 피해호소 여성 노동자의 진술에 따르면, 회사측 담당자는 직장 상사가 성폭력을 했다고 호소한 노동자에게 고소 취하를 압박하면서 거짓 진술을 강요하고 비열하게도 성희롱을 하고 강간까지 하려 했다. 해고 협박이 뒤따른 것은 물론이다.

르노삼성 성희롱 사건은 성희롱 문제 제기를 불이익 조처로 짓누른 악덕 사용자의 전형이었다. 집단 따돌림, 업무 배제, 저성과자 유도, 직무정지, 대기발령 등의 보복이 가해졌다. 피해자를 도운 노동자에게도 불이익이 가해졌다. 광주시와 전라남도가 운영하는 공공시설인 남도학숙의 여성 노동자도 성희롱 문제 제기를 한 뒤 온갖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관련 기사: 본지 174호 ‘남도학숙 직장 내 성희롱 사건 ― 공공 기관 내 성희롱과 불이익 조치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있는 조처가 필요하다’)

성희롱 문제 제기에 대한 불이익 조처는 남녀고용평등법 14조 2항에 정면 위배되는데도, 해당 기업(주)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검찰과 노동부는 4년째 르노삼성 사측을 처벌하지 않아 피해 여성 노동자가 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광주시는 남도학숙 사측의 불이익 조처를 외면하고 있다.(관련 기사: 본지 177호 '남도학숙 직장 내 성희롱 사건 — 사측을 감싼다는 의혹만 남긴 광주시 감사 결과')

지난해 노동부에 접수된 성희롱 진정 건수 중 과태료가 부과된 것은 11퍼센트에 그쳤고, 실제 기소로 이어진 건수는 단 1건에 그쳤다(기소율 0.1퍼센트).

그래서 여성단체들은 실효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남녀고용평등법을 개정하라고 요구해 왔다. 다행히 최근에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번에 통과된 개정안의 골자는 성희롱에 대한 기업주 의무 강화와 위반 시 처벌 강화(벌금 인상)이다. 여성·노동단체들이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문제 제기하며 싸워 온 덕분이다.

하지만 기업주 의무를 강화한 법·제도가 여성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겪는 성적 차별을 실질적으로 해소해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녀고용평등법에 직장 내 성희롱 관련 규정이 생긴 지 18년이 됐고 법제도 개선도 있었지만, 많은 여성 노동자들은 여전히 직장 내에서 빈번하게 성희롱을 당하고 있다. 기업주들은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왔다.

기업주들이 여성 노동자의 고용과 노동조건을 좌우하는 한, 피해 여성의 문제 제기는 여전히 커다란 결단을 요구할 것이다.

관리·감독해야 할 국가기관들이 노동자들이 아니라 기업과 끈끈한 것도 높다란 현실적 장벽이다. 이들은 여성 노동자의 고통보다 기업의 이윤을 더 걱정하곤 한다. 관리감독 부실이 개선되기 어려운 까닭이다.

물론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에게는(특히 미조직 노동자) 법에 호소하는 것밖에 달리 기댈 수단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소송도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두루 알듯이 이는 정신적·경제적 부담이 크고 시간도 매우 오래 걸린다. 설사 성공한다 해도 일자리를 지킨다는 보장도 없다.

ⓒ조승진

직장 내 성희롱을 노동조합의 쟁점으로

기업주들을 확실히 압박하고 성희롱 피해 여성 노동자를 사측의 불이익 조처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노동조합이 성희롱 근절을 자신의 주된 쟁점 중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 노동자들이 동참하는 노동조합의 집단적 항의 행동은 기업주에게 실질적 압박을 줄 수 있다. 또한 여성 노동자가 고립되지 않고 지지와 연대 속에서 싸울 용기를 북돋을 수 있다.(관련 기사: 본지 166호, ‘직장 내 성희롱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

직장 내 성희롱과 같은 여성 노동자의 조건 문제를 잘 다루는 것은 노동조합의 역량 강화 면에서도 매우 중요해졌다.

여성 노동자들은 갈수록 노동계급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한국의 전체 임금노동자 중 여성의 비율은 현재 44퍼센트가량으로, 그 규모는 꾸준히 증가해 왔다. 여성 노동자들은 또한 자본주의 생산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여성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나 저임금 직종에 많이 종사한다 해서, 자본가들에게 여성 노동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여성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하고 싸울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늘어나면서 직장 내 성희롱은 참고 넘길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부당한 차별의 일부이자 중요한 노동조건 문제라는 인식이 노동계급 속에서 갈수록 커지고 있다.

따라서 남녀 불문하고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직장 내 성희롱에 노동조합이 적극 대처하도록 조직해야 하고, 남성과 여성 노동자들의 동참을 이끌어야 한다.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조직과 함께 직장 상사의 성희롱에 맞서 싸우는 사례가 늘고 있고, 이는 훌륭한 일이다. 2000년 롯데호텔 노조 파업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상사로부터 당한 성희롱 문제 해결에 노동조합원들이 함께 나선 경험이 있다. 또, 2011년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관리자에게 당한 성희롱에 맞서 민주노총 조직이 동참해 복직과 산재 인정을 쟁취해 낸 사례가 있다. 그밖에도 많은 이런 사례들은 직장 내 성희롱에 맞선 투쟁을 노동조합의 과제로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직장 내 성희롱에 맞서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덧붙이자면, 직급이 낮고 비정규직일수록 직장 내 성희롱을 더 많이 당하고 그것을 문제 제기하는 비율도 더 낮다. 따라서 이런 부문을 더 적극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그리고 미조직 여성 노동자들이 성희롱에 맞서 문제 제기할 때 민주노총이 이를 적극 지원하고 미조직 노동자들의 우산이 돼 주면 큰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