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들의 ‘관부 재판’을 모티브로 한 영화 〈허스토리〉가 상영 중이다.

민규동 감독, 121분

관부 재판은 1992~1998년 위안부·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하관)를 오가며 벌인 법정 투쟁이다. 6년간 23번 열린 이 재판에서 피해자들은 끈질기게 일본을 드나들며 싸웠다. 결국 1심 재판부는 일본 국가가 피해자 한 명당 보상금 30만 엔을 지불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관부 재판은 일본의 공적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사례였다. (그러나 이후 2심과 최종심에서 이 결과는 뒤집혔다.)

이 영화는 과거 회상 장면 대신 피해자들의 법정 진술로 얘기를 전개한다. 그래서 과거의 고통보다는 그 고통을 딛고서 싸우기 시작한 현재의 피해자들에게 초점이 가 있다.

배경이 1990년대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가의 공식 사과와 제대로 된 배상을 받기 위해 싸우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바로 지금의 일처럼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더는 남은 책임이 없다고 뻔뻔하게 나오는 일본 피고 측의 모습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근거로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뒤안길로 묻어 버리려는 지금 일본 정부의 모습과 똑같다. 현실성을 더하듯 영화에는 수요시위 장면도 나온다. 여행사 사장이었지만 점차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헌신하게 되는 주인공 문정숙도 현재 부산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는 실존 인물 김문숙 씨가 모델이다.

한편, 위안부 피해자들을 도우려고 만들어진 일본인 후원회가 일본 극우들과 충돌하는 장면에서는 단순한 ‘반일’ 정서를 넘어서려 한 감독의 뜻이 느껴졌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슬픔을 일으키는 장면은 최소화하려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실제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대사들은 그 어떤 창작물보다도 보는 사람의 가슴을 찢어지게 만든다. 영화가 끝난 뒤로도 배역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몇 개월간 우울증을 앓아야 했다는 주연 배우들의 진정성 있는 연기도 큰 몫을 더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이런 가사의 노래가 반복된다. “사라지지마. 흐려지지마. 영원히.” 7월 1일 돌아가신 김복득 할머니가 떠올랐다. 먹먹함에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감독은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이라는 임무를 잘 수행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주인공 문정숙의 이름을 문재인과 김정숙에서 따 왔다고 말했다. 문정숙은 “부채 의식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네 모습을 상징”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마땅히 느껴야 할 부채 의식을 잊어버린 것 같다. 2015년 박근혜 정부와 일본이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는 폐기되기는커녕 재협상도 없이 그대로다. 피해자들은 이 합의에 관해 한국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최근 패소했다.

그런데도 문재인은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해 위안부 문제는 “시간을 갖고 협의해 나가겠다”고 한다. 그 사이 올해만 다섯 분이 한을 간직한 채 돌아가셨다. 이제 스물 일곱 분만 남았다. 이렇게 하나둘 피해자들이 사라지기만 기다리는 건 일본 정부만이 아닌 걸까?

영화 속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과 투쟁이 단지 과거가 아닌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