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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 이후 동아시아와 한반도

중간선거 다음 날, 미국 상무부는 중국산 알루미늄 판재에 반덤핑·반보조금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10월 말 상무부는 미국 기업들이 중국 국유기업인 푸젠진화반도체에 소프트웨어와 기술 등을 수출하는 것을 제한하는 조처를 내렸다. 그러면서 해당 반도체 기업의 활동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반하는 심대한 위협이라고 했다.

이처럼 무역전쟁은 계속된다. 미국은 무역전쟁에서 일본·유럽연합·한국 같은 전통적 동맹국들도 겨냥하지만, 가장 중요한 표적은 중국이다.

중국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총체적 인식은 10월 4일 부통령 마이크 펜스가 허드슨연구소에서 한 연설에서 드러났다. 그는 중국이 “[불공정] 관세, 수입 제한, 환율 조작, 기술이전 강제, 지적재산권 절도” 같은 정책들을 동원해 미국의 이익을 훼손하고, ‘중국제조2025’ 같은 계획을 세워 미국의 첨단 기술을 훔쳐 간다고 비난했다. 펜스가 보기로 중국은 국제 질서를 자국에 유리하게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훔쳐간 기술을 이용해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

따라서 대중국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만이 무역전쟁의 목표가 아니다. 중국 첨단 제조업의 성장을 억제하고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목표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미국의 패권을 지키는 데서도 중요하다고 본다.

요컨대, 트럼프 정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중국 무릎 꿇리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역전쟁은 제국주의 간 경쟁의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11월 9일 〈파이낸셜 타임스〉는 사설에서 트럼프가 국내에서 좌절을 많이 겪을수록 보호무역주의와, 이란 같은 적과의 대결 강화를 배출구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중국과 타협하기보다 대중국 관세를 올릴 공산이 크다고도 진단했다. 관세를 높이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기반뿐 아니라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도 인기가 좋다고 했다.

트럼프 정부 말고도 많은 미국 지배자들이 무역전쟁 등에서 중국에 본때를 보여 줘야 한다고 벼른다. 11월 8일 〈로이터 통신〉은 민주당이 대중국 무역 전쟁을 지지할 뿐 아니라 트럼프를 부추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중국은 결코 호락호락한 도전자가 아니다. 미국의 공세와 중국의 대응이 맞물리면서, 전보다 훨씬 더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중국 지배자들은 지난 30년간 고속 성장을 통해 쌓아 온 중국 국가의 세계적 위상과 이익을 지키려고 사력을 다할 것이다. 최근 시진핑이 국유기업들한테 첨단 기술을 자체적으로 발전시키라고 독려하며 마오쩌둥 시절의 “자력갱생” 구호를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시사적이다.

트럼프 정부는 군사력에서도 도전자들을 압도하고 싶어 한다. 30년간 유지돼 온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탈퇴할 계획을 세웠다. 이 조약에서 탈퇴하면 미국은 자유롭게 중거리 지상발사 탄도미사일·순항미사일의 생산·실험·배치에 돌입할 수 있다.

중거리핵전력조약 탈퇴를 주도하는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이다. 볼턴은 이미 2011년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해, 이 조약에 얽매이지 않은 중국의 미사일 전력 향상이 서태평양에서 미국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조약 탈퇴를 주장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조약 탈퇴 후 “일본이나 필리핀 등 중국 인근에 [지상 발사] 순항 미사일을 배치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미국의 신형 핵무기가 서태평양 일대에 전진 배치된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아시아·태평양에서 핵군비 경쟁의 불씨를 댕길 위험한 시도를 하는 중이다.

무역전쟁을 비롯한 제국주의 경쟁의 악화는 미래에 벌어질 더 큰 충돌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그리고 양안 문제(중국-대만 간 분쟁) 같은 해묵은 갈등이 폭발할 개연성도 높아진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미·중 합의가 갈수록 흔들리자, 중국은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대만의 현상 변경 시도를 막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우발적 충돌은 미·중 갈등의 악화 속도를 급격히 높일 수 있다. 9월 30일 남중국해에서 중국 군함과 미국 군함이 41미터까지 접근한 사건은 그 위험성을 보여 준다.

트럼프가 처음 등장했을 때 우리는 세계가 (초)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불확실성이 자아내는 위험이 서서히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북·미 협상의 불확실한 전망

세계 제국주의 체제의 상황은 한반도의 중장기적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 트럼프와 김정은이 다시 손을 잡더라도, 그 전망이 근본에서 밝아진다고 보기 어려운 까닭이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내내 한반도에서 긴장을 높이다가, 올해 들어 방향을 바꿔 북한과 대화에 들어갔다.

그러나 냉전 해체 이래, 한반도에서 긴장 국면이 급격히 해빙 국면으로 바뀐 일은 여러 번 있었다.(그 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북한 ‘위협’을 부풀려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전략을 관철시키는 수단으로 삼아 왔지만, 상황을 관리하고 시간을 벌 필요가 있으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곤 했다.

또한 트럼프는 자신의 국내 정치적 필요 때문에도, 올해 정상회담까지 열어 김정은을 만났다. 그리고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까지 공언했다.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내 진보 일각에서는 민주당보다 트럼프의 공화당이 승리하는 게 한반도 평화에 이롭다는 얘기가 나왔었다. 트럼프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중간선거 전후로 벌어진 일들을 보면, 그 기대가 과연 타당한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상응 조치”를 둘러싼 북·미 협상에서 큰 진전이 없다. 예컨대, 미국은 북한에게 핵물질·무기·운반수단 목록을 신고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북한은 신뢰 회복 전에는 못 준다고 거절했다. 현 상태로는 미국에게 북한 내 폭격 지점만 알려 주는 꼴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트럼프 정부는 대북 제재는 지속된다고 강조했다. 국무부가 나서서, 문재인 정부와 기업들한테 대북 제재를 지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자 북한이 불만을 터뜨렸다. 이번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나섰다. “적대 세력들이 악랄한 제재 책동에만 광분한다.” 북한 외무성은 미국의 협상 태도에 변화가 없다면 핵무기 개발을 재개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11월 16일 북한 당국이 “새로 개발한 첨단전술무기 시험”을 김 위원장이 직접 지도했다고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일어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는 북·미 관계에서 “서두를 것 없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미국 재무부는 북한의 해외 자산 6300만 달러를 추가로 동결했다. 중간선거 날에 북·미 고위급회담이 갑자기 연기된 배경일 것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미국 권력자 다수가 여전히 기존의 대북 정책인 “전략적 인내”를 선호하는 것도 북·미 대화의 또 다른 변수다.

북·미 협상이 지지부진해지고 미국 민주당 등이 협상을 강하게 공격하자, 한국의 친여권 전문가와 언론 쪽에서는 북한이 먼저 양보해 트럼프의 미국 내 입지를 넓혀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 제국주의의 대북 압박에 사실상 편승하는 주장인 데다가, 북한 지도층의 처지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얘기다.

물론 트럼프가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 다시 “화염과 분노” 시절로 당장 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양측은 다시 정상회담 성사의 조건을 놓고 줄다리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협상의 진전을 가로막는 변수들이 협상장 안팎에 많다. 앞으로도 북·미 협상은 계속 가다 서다를 반복할 것이다.

중재?

문재인 정부가 올해 지지층 결집을 유지한 비결은 남북 관계의 해빙에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북·미 협상의 중재자 구실을 자임해 왔다.

그러나 중재의 성공 여부는 정부가 뛰어난 중재술을 발휘하느냐로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국제 정세의 불안정이 훨씬 더 결정적이다.

북·미 협상 상황이 여의치 않자, 11월 6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정의용은 종전선언도 정상이 아닌 실무급 선언으로 격을 낮출 수 있다고 했다. 평화협정에서 종전선언으로 후퇴한 데 이어, 또 후퇴하는 셈이다. 제국주의와의 타협으로 평화를 얻겠다는 논리의 귀결이다.

정부의 중재에 기대를 거는 것은 모두 국가 간 협상으로 항구적 평화가 가능하리라는 기대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에 항구적 평화는 없다. 자본주의의 장기화되는 구조적 위기 속에 강대국 간 전쟁 가능성을 배제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오늘날에는, 더더욱 이 문구를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오로지 노동계급 자신의 혁명적 투쟁만이 항구적 평화를 실현시킬 것이다.

앞으로도 올해 같은 분위기가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불확실성의 시대답게 상황이 급격히 달라질 수도 있다. 노동자 운동의 정치조직들은 이에 대응해 반제국주의적으로 행동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