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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이정미 대표의 민주노총 경사노위 참여 권고:
경사노위는 사회 개혁 수단이 아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1월 17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을 향해 경사노위 참가를 권고했다. “민주노총이 내셔널센터답게 작업장을 넘어 사회를 바꾸는 역할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대의원대회의 전향적 결정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이 대표의 바람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도 정의당은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적극 나서길 바란다고 여러 번 주장했다. 사회적 대화 테이블의 의제를 조세·경제정책·사회복지 전반으로 확대하고, 민주노총이 여기에 참가해 “복지국가 전환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서, 노동자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한편 정부와 노동조합의 타협을 통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본다. 우파 정부와는 달리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리라는 기대를 표해 왔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대한 인내심을 잃어간다는 증표도 동시에 표출한다.

이정미 대표는 “두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있는 것만 빼고는 이전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이 나온다면서 “정부·여당은 기득권 카르텔에게 역주행의 고속도로를 깔아주었”다고 비판했다. 예전보다는 비판의 강도가 세졌다.

이정미 대표의 말에서 보듯이,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대화 추진은 거듭 곡절을 겪어 왔다. 이 대표의 비판처럼 문재인 정부가 노골적인 친기업 행보를 보여 온 탓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노동자들의 의심과 환멸이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0월 경사노위 참가를 결정하려던 민주노총 정책 대의원대회는 성원 미달로 유회됐다. 이번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앞두고도 현장에서 반대 분위기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반응이 많다. 이런 압력 때문에 정의당에 친화적인 산별 지도자들도 어중간하게 ‘조건부 참여’를 주장하고 있다. 이정미 대표처럼 어정쩡한 태도다.

실로, 문재인 정부는 “재벌 민원”(이정미 대표의 표현)을 신속 처리하고 있다.(관련 기사 : “문재인의 신년 행보 — 비지니스 프렌들리 선언”을 비롯한 많은 관련 기사들을 읽어 보시오.)

그러니 정의당이 정부에게 노동자들을 들러리로 세우지 말라거나, 노동자들의 얘기도 경청하라고 당부하는 것은 많은 노동자들에게 공허하게 들릴 것이다.

진보 정당으로서 정의당은 개혁 쟁취의 진정한 동력인 대중 투쟁에 보탬이 되려 해야 한다. ⓒ출처 이정미 블로그

이정미 대표의 주장대로 복지 확대는 필요하다. 노동운동이 작업장 쟁점만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 건설에 나서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의 사회적 대화는 그런 수단이 될 수 없다. 사회적 대화의 모델로 꼽히는 유럽에서도 사회적 대타협은 노동계급에게 일방적 양보를 강요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강요하며 공격하는 정부에 맞서 싸우며 노동계급 자신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조직된 힘으로 정부와 사용자들의 공격 시도를 굴복시켜야 한다.

박근혜 퇴진 운동의 주역이었던 노동자들은 그럴 잠재력을 갖고 있다. 정의당이 계승하고자 하는 박근혜 퇴진 운동은 대중 투쟁이야말로 개혁을 성취할 힘이라는 것을 보여 주지 않았던가?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에 나서고, 이것이 사회적 세력 관계에 영향을 미칠 때 정치 의식이 더 왼쪽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커진다. 그럴 때 공식 정치에서도 민주당 왼쪽의 정치 세력이 떠오를 수 있다.

정의당이 거듭 강조한 내셔널센터로서의 민주노총의 구실은 정부의 공격을 유보 없이 비판하고 여러 부문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 투쟁을 대정부 투쟁으로 모아내는 것이다.

우경화로 치닫는 문재인과의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투쟁 의지 제고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것이다. 이것은 개혁 쟁취의 진정한 동력을 약화시키는 일이다. 노동자 운동을 배경으로 성장한 정의당은 노동운동의 정치적 독자성을 강조하고 정부에 맞선 노동자 투쟁 건설에 보탬이 돼야 한다.

민주당과의 개혁 블록 형성 주장의 문제점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의 개혁 후퇴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민주당을 향해 ‘한국당과의 협치를 끝내고 국회 내 개혁 블록을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민주당에게 “우리 사회 근본 개혁에 함께 할지 아니면 기득권 카르텔에 굴복할지 결단”하라고 한 것이다.

민주당이 한국당과 자주 노동개악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지만, 민주당이 개과천선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건 지지층에게 혼란만 준다.

민주당이 나쁘긴 하지만 손을 잡아야 한다는 걸까? 민주당이 개혁 세력이라는 건가, 아니면 개혁 세력이 돼야 한다는 건가? 등등. 만약에 민주당이 “사회 근본 개혁에 함께할” 수 있다면, 왜 민주당이 아니라 정의당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문재인 정부의 배신에 대해 불만을 품지만 아직 단호한 반대로까지 나아가지 못한 대중에게 정의당은 전진을 위한 정치적 메시지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

민주당은 개혁의 동반자이기는커녕 노동자 운동이 맞서 싸워야 할 상대다. 민주당은 스스로 신자유주의적 개악을 선택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추진, 규제 완화 정책 등이 그랬다.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의 반노동 정책을 계승한 것은 한국 경제의 수익성 높이기를 핵심 과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설마 이런 점을 정의당 지도부가 모를까? 아마 정의당 지도부 자신도 민주당이 진지하게 개혁을 추진할 거라고 믿지는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정의당 지도부가 선거적 고려를 중시하는 데서 비롯한 모호한 태도일 수도 있다. 총선에서 민주당과의 협상도 고려 사항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보 정당으로서 정의당은 정부의 배신에 분노하기 시작한 대중을 대변해야 한다. 그들의 처지에서 정부의 위선을 비판하고 투쟁을 고무하고 옹호해야 한다. 그게 정의당을 지지하는 대중에게 정의당이 해야 할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