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를 환영하는 집회 ⓒ제공 <노동과 세계>

지난주 헌재의 형법상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은 낙태죄 폐지를 염원했던 사람들에게 정말 기쁜 소식이었다. 

노동자연대 성명에서도 밝혔듯, 이는 지난 10년간 부쩍 성장한 낙태죄 폐지 여론과 그것을 추동한 낙태죄 폐지 운동의 성과다. 보수적 가톨릭 국가 아일랜드에서마저 낙태 금지 헌법이 폐지되는 등 세계 여성운동의 부상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낙태죄 폐지 여부와 낙태 합법화의 수준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될 것이다. 낙태권 운동이 중단돼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이미 논쟁은 시작됐다. 우선, 낙태 허용 범위를 최대한 좁히려는 보수 진영의 압박이 시작됐다. 헌재 판결 직후 천주교주교회의는 “태아의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선택하도록 도와줄 법과 제도의 도입을 입법부와 행정부에 강력히 촉구”했다. 낙태 고발 캠페인을 벌였던 프로라이프 의사회장 차희제 등은 “의사의 낙태 시술 거부권”을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비웨이브와 노동자연대는 처음부터 낙태 전면 합법화를 일관되게 요구해 왔고,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하 ‘모낙폐’)도 헌재 판결 전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의 권리를 요구했다. 

가톨릭교회와 보수·우파들은 이번 헌재 판결이 태아의 생명권을 부정했다며 격렬히 비난했다. 헌재 판결이 원칙상 낙태죄의 위헌성을 인정한 것은 맞다. 하지만 헌재가 낙태를 전면 허용하라는 구체적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헌재 결정의 의미

낙태권이 온전히 보장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잘 싸워나가기 위해서라도 이번 헌재 결정의 구체적 요소들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현행법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음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현행법이 다양한 사회경제적 사유를 전혀 포함하지 않고 있었고, 기간도 지나치게 제약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은 명백히 한계도 있다. 태아 생명권 보장을 전제하고 있어, 낙태에 대한 형사 처벌 자체는 적합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제약의 범위가 문제라는 것이다.

게다가 임신 22주 이후의 낙태와 관련해서는,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후기 낙태 허용 여부나 그 조건 문제에서는 모호하게 열려 있다.(따라서 이 부분은 낙태권 운동이 투쟁으로써 여성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견인해야 한다.) 현행 모자보건법이 낙태 전면 금지 기준으로 정한 24주보다 오히려 더 당긴 측면도 있다.

헌재가 단순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이유는 이런 결론을 보면 알 수 있다. “[낙태죄 조항에 대해] 단순위헌 결정을 할 경우 …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됨으로써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이 결정문에 따르더라도, 낙태 사유와 기간에 따른 제약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심지어 형법상 낙태죄를 폐지하지 않고 일부만 손보는 꼼수도 가능하다.

단순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낙태죄 즉각 폐지를 옹호했다. 그들은 임신 14주까지의 낙태는 사유 제한 없이 여성이 요청하면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이조차 기간에 따른 제약을 둔다는 점에서 온전한 자기결정권 보장이라고 볼 수는 없다.

결국 헌재 결정이 임신 전 기간에 걸쳐 여성의 낙태권을 옹호한 것(즉, 전면 합법화를 주문한 것)이라는 일각의 해석은 확대 해석이다. 헌재 결정의 한계와 공백, 또 이를 보수 우파들이 이용할 가능성을 정확히 직시하고 경계하는 것이 향후 대응을 준비하는 데서 더 도움될 것이다.

낙태 반대론자들과 자유한국당, 민주당 등은 헌재 판결의 허점을 이용해 낙태 허용 범위를 제한하려 들 수 있다. 여성단체연합 대표를 역임한 남윤인순 민주당 의원은 헌재 판결 직후 이렇게 밝혔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 둘을 조화롭게 충족하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모아 나가[겠다.]” 이런 절충적 시도는 결국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보장하기 어려운 안을 도출할 공산이 크다. 

정의당 안(案) 논쟁

헌재 판결 직후 정의당 안이 맨 먼저 발의됐다. 그러나 정의당 안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이 낙태권 운동 내에서 진행 중이다. 정의당 안이 헌재 판결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물론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은 낙태의 대부분을 금지한 현행법보다는 낫다. 이 안은 형법상 낙태죄를 폐지하고 “임산부의 자기 결정권은 원칙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모자보건법 개정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임신 14주 이내 임신중절은 사유 제한 없이 허용하고, 14~22주 임신중절의 경우 사회경제적 사유를 추가해 허용의 폭을 넓혔다. 

하지만 기간·사유 제한과 허용 사유 범위 밖의 낙태에 대한 처벌 조항(의사에게 과태료 500만 원 부과)을 남겨 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원칙으로 삼는다는 정의당 안의 기본 취지와 모순을 빚는 것이다.

낙태죄 폐지 여론이 최근 급성장했고, 보수적인 헌재조차도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점을 감안하면 진보 정당인 정의당은 더 나아가야 한다.

〈노동자 연대〉 신문은 이번 정의당 안의 골자가 낙태죄 폐지 국민청원 직후 거론됐을 때 이미 그 한계를 염려한 바 있다.(그러나 가톨릭 교회의 공격에 맞서 정의당의 낙태죄 폐지 추진을 옹호하면서 그렇게 했다.) 

특히, 기간과 사유의 제한을 두는 것은 결국 그 조건의 충족 여부를 국가가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므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게 아니라고 우리는 지적했다.

또한 형법상 낙태죄를 폐지하더라도 허용 범위 밖의 낙태에 대한 처벌 조항을 모자보건법에 두면 그것은 낙태죄를 실제로 폐지하는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징역형이 아닌 과태료, 여성이 아닌 의사에 대한 처벌이라 할지라도 낙태 시술을 위축시켜 여성을 위험과 고통에 빠뜨리기는 마찬가지라는 점도 지적했다.

낙태권 운동 내에서 이런 우려와 비판이 있었는데도 정의당이 결국 법안에서 여성의 낙태 결정권을 제약하고 의사 등에 대한 처벌 조항을 남긴 것은 크게 아쉽다. 낙태에 대한 의료보험 적용과 낙태약 합법화가 빠진 것도 아쉽다.

정의당은 사실상 이번 현재 결정이 가리키는 수준에 맞춰 개정안을 낸 듯하다. 개신교 우파와 가톨릭 교회의 반발을 무마하고, 바른미래당 의원들을 법안 발의에 동참시킬 만한 타협 수준 등도 고려한 나름의 고충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낙태 제한과 도로 처벌이라면 낙태권 운동 지지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위험이 있다. ‘모낙폐’와 민주노총 등의 정의당 안 반대 성명은 그런 우려의 표현일 것이다. 정의당은 낙태권 지지자들의 열망에 부합하도록 재고해야만 한다.

상류층이 아닌 보통의 여성에게는 이보다 훨씬 나은 대안이 필요하다. 임신 주수와 사유 제한 없이 낙태가 허용돼야 한다. 낙태죄 폐지는 물론, 의사에게 과태료 부과 등 여성의 선택을 좌절시키는 독소 조항들도 없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여성의 낙태를 보조해 줄 조처들이 도입돼야 한다. 경제적 부담 없이 낙태를 할 수 있도록 의료보험을 적용해, 낙태 수술과 낙태약을 무상 공급해야 한다.

앞으로 우파들은 물론 민주당도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약하는 개정안을 제출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낙태권 운동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옹호 입장을 확고히 견지해 나가야 한다. ‘모낙폐’가 밝힌 것처럼, “어떻게 임신중지를 제한하고 절차를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여성의 건강을 더욱 보장할 것인가”가 논의의 초점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국회 내 세력관계를 고려한다면 아래로부터의 낙태권 운동에 좀 더 강조점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여성과 남성 노동계급이 참여하는 운동으로 심화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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