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 빈곤, 인종차별, 식민주의, 절망에 맞선 전면전이 모두 동시에 벌어질 것입니다.”

저명한 반자본주의 활동가이자 저술가인 나오미 클라인의 새 책에 실린 그녀의 집회 연설 중 한 대목이다. 클라인은 2010년 석유 시추 시설 딥워터 호라이즌의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부터 기후 회의론자들인 억만장자들의 컨퍼런스까지 여러 주제를 다룬 에세이와 연설문들을 엮은 새 책 《불타는 지구 ─ 그린 뉴딜이 화급한 이유》[국내 미출간]를 출간했다. 

이 책의 핵심은 ‘그린 뉴딜’을 요구하는 데 있다. 오늘날 ‘그린 뉴딜’은 기후 활동가들의 핵심 요구가 됐다.

‘그린 뉴딜’은 기후 혼돈에 대처하고 이를 완화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국가 동원 10개년” 투자 계획을 요구하는 것이다.

녹색 일자리 창출, 재생 에너지로 100퍼센트 전환, 교통에서 탄소 배출 제로화(化), 정책 결정 과정에 지역사회 참여 보장, 농업 부문의 오염 감축 등이 ‘그린 뉴딜’의 주요 내용이다. 이런 일련의 급진적 요구 중에는 가족 임금을 지급하는 녹색 일자리, 양질의 공공의료, 저렴한 주택과 양질의 의무교육도 포함돼 있다.

클라인은 진정한 변화가 얼마나 절실한지, 누가 잘못했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거침없이 주장한다. “기후 변화에 대처하려면 자유 시장 질서의 규범을 모조리, 그것도 매우 시급하게 어겨야 한다.”

클라인이 보기에 자본주의는 사면초가에 놓였고, 이제 해체시키고 없애야 하는 것이다. 

클라인은 극도로 변덕스런 날씨, 해수면 상승, 기후 난민, 더 심각해진 전쟁·빈곤·인종차별을 타파할 사회를 쟁취하는 데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자본주의라고 주장한다. 

2019년 3월 영국 청소년들의 동맹 휴업 시위 “지구를 구할만한 나이는 먹었다” ⓒ출처 <소셜리스트워커>

어쩌다가 지구에 기후 재앙이 목전까지 닥치게 된 것일까? 클라인은 1980년대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클라인에 따르면 기후 변화에 대한 심각한 우려는 1980년대에 처음으로 대중 매체의 헤드라인을 수놓았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세계 신자유주의 혁명이 대폭발했다.”

클라인은 환경에 대한 점증하는 우려가 “엘리트들의 자유 시장 숭배 물결에 파묻혀 버렸다”고 말한다.

“역사적 흐름이 신자유주의로 수렴하면서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움직임은 기세를 잃었다.”

그러나 문제는 고삐 풀린 특정한 형태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체제 그 자체다. 

자본주의는 기업주들이 대다수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해 그들의 노동으로 이윤을 내는 체제다. 부자들에게 지구란 수탈할 수 있는 자원 더미에 불과하다. 

기후 혼돈의 충격이 대단히 극적이다 보니, 언뜻 보면 모든 사람이 기후 변화에 맞서 싸울 이해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비합리적인 체제다. 개별 기업주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끼칠 더 광범한 충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경쟁에서 자기 지분 지키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그래서 서로 경쟁하는 에너지 기업들은 확인매장량 이외의 새 유정(油井)을 찾으려고 막대한 돈을 쏟아 부어서 같은 자리를 제각기 탐사한다. 개별 기업 입장에서 이는 합리적이지만, 그들의 행동 전체는 지구적 재앙의 불씨를 당긴다.

그리고 사장들은 자기 회사 중역 회의실 밖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예컨대, 화석연료 자본가들을 대변하는 로비스트들은 기후 과학을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만들고 정부 정책에 입김을 넣기 위해 수십 년 동안 돈을 쏟아부어 왔다.

클라인은 화석연료 자본가들을 국가적 계획에 참여시키는 것이 “미국 정부가 금연 정책을 만들 때마다 담배회사 이사들을 초빙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말한다. 이런 지적은 ‘그린 뉴딜’의 몇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시사한다.

개정판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 조너선 닐 지음 | 김종환 옮김 | 책갈피 | 2019년 | 488쪽 | 20,000원

권력

물론 사회주의자들은 ‘그린 뉴딜’ 프로젝트가 제시하는 조처들을 모두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 상원이 초장부터 그런 법을 부결하고, 정부가 부패하고 대기업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면, 어떻게 그런 요구들을 쟁취할 수 있겠는가?

클라인은 인종차별, 성차별에 맞선 운동, 노동자 권리를 지키는 운동을 단결시킬 수 있다는 점이 ‘그린 뉴딜’의 가장 중요한 한가지 측면이라고 주장한다.

“일단 ‘그린 뉴딜’ 법이 제정되면 모든 권력자들은 일제히 저항할 테지만, 우리들 중 아주 많은 사람들도 자신들이 자신보다 더 큰 무엇인가를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지금 발 디딘 이 사회를 개선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클라인의 말은 옳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표는 현 시스템을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 타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윤 추구가 아니라 집단적 의사 결정과 합리적 생산을 토대로 운영되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가능하다. 

클라인도 그렇게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인류라는 종 전체의 시간으로 보면 찰나일 뿐이다.

“자본주의 경제 질서에 도전해, 자본주의를 인류와 지구의 안전을 기반으로 한 다른 체제로 대체해야 한다. 그런 사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 획득과 성장을 추구하는 지금과 같은 사회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1980년대에 신자유주의의 발흥이 기후·환경 재앙에 대한 각성을 억눌렀다는 클라인의 말은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980년대의 “대폭발”은 진공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것은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 위기, 즉 물가상승·경기둔화·이윤율 하락이 결합된 위기 후에 나타난 것이다.

이 위기는 그전까지 경제에 대한 당시 수준의 국가 개입을 용인해 온 기업주들에게 재앙을 안겨 줬다.

즉, 그로부터 10년 후 신자유주의가 발흥한 것은 위험한 사상을 가진 고약한 자들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 위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규제 완화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특정 형태만이 아니라 체제 자체에 도전함으로써 근본적 변화를 쟁취하려 한다.

그러려면 이 사회의 부자들에게서 권력을 빼앗기 위한 대중 운동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전 세계 수십억 명이 참여하는 혁명적 과정일 것이다.

기후 혼돈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관한 주장과 논쟁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사람들이 기존 질서에 도전할 만큼 조직되고 자신감이 있어야 할 것이다.

화석연료 기업들은 군말 없이 부와 이윤의 원천을 내놓지 않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저항 일체에 사력을 다해 반발할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에서는 국가의 무장한 부문, 즉 경찰이 부자들의 지배를 수호한다.

경찰이 항의 시위를 언제나 폭력으로 진압하는 것은 아니다. 세력 균형에 따라 전술을 달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운동이 지배자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경우, 경찰은 폭력을 휘두르고 시위대를 구금해고 온갖 법을 총동원해 탄압할 것이다.

환경운동가들이 프래킹* 현장의 출입문에 몸을 묶거나 영국 석유기업 쉘 본사 건물 벽에 기후 정의 슬로건을 스프레이 페인트로 휘갈길 때 벌어지는 일이 이를 잘 보여준다.

런던 경찰이 쉘 기업[거대 석유 기업]과 수상한 뒷거래를 하기 때문에 시위대를 탄압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경찰의 구실 자체가 부자들을 수호하고 현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요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경찰 같은 무장 폭력 집단의 비호 하에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는 지구의 자원을 공유하여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할 것이다.

기업주들에게 떨어질 이윤이 아니라 더 광범한 사회에 돌아갈 유용성과 그 사회의 지속가능성이 생산의 기준이 될 것이다.

선출되고 책임성 있고 언제든 소환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민주적 기구가 모든 정책을 결정할 것이다.

사회주의는 선출되지 않은 관료들, ‘특별 고문’들, 억만장자 땅부자들이 좌지우지하는 체제가 아닐 것이다.

사회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는 모습을 흘낏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배자를 타도하고 스스로 사회를 조직했다.

불행히도 부자와 권력자들은 결국 러시아 혁명과 다른 곳에서의 혁명 운동들을 분쇄했다.

그러나 당시의 역사적 경험들을 보면 평범한 사람들에게 사회를 운영할 잠재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후 파업, 프래킹 반대 캠프, 멸종 반란 점거는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조직한 것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많은 활동가들은 이전까지만 해도 스스로 석유 시추 기계에 자기 몸을 옭아매고, 바리케이드를 세워 도로를 봉쇄하고, 메가폰을 들고 구호를 선창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운동을 건설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쟁취할 수 있는 능력, 열의, 경험이 있다.

사회주의 사회는 기후 위기를 마땅히 비상 사태로 간주할 것이며, 노동자들의 집단 지성과 현존 기술을 모두 쏟아부어 기후 위기에 대처할 것이다.

클라인의 말처럼, “삶의 미래가 걸려 있을 때 달성하지 못할 것은 없다.”

9월 21일 기후위기 비상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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