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은 《자본론》 1권이 발행된 지 150년이 되는 해였다. 데이비드 하비는 이를 기념하며 마르크스가 쓴 정치경제학 저작들의 중요성과 그 글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통찰을 제공한다는 것을 재천명하고자 했고 이는 지당한 시도다. 하비가 쓴 이 책의 제목 《자본주의와 경제적 이성의 광기》(마르크스 자신이 쓴 표현)는 이 사회의 모순을 전면에 부각시키고 있다. 기아와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부는 돈 버는 데로만 향하고 지구 환경은 파괴되고 있는 모순 말이다.

《자본주의와 경제적 이성의 광기》 데이비드 하비 지음, 창비, 2019년, 380쪽, 28,000원

또한 하비는 자본의 “운동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옳게 주장한다. 반면에 현대 경제학은 2007~2008년 금융 위기를 설명하지 못했다. 노동 착취가 이윤의 원천이라고 하면서 하비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한다.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해방의 정치에 있어 관건은 거대한 생산력을 사회·정치적 제약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요컨대 자본 그리고 제왕적 사고방식에 젖어 점점 더 권위주의적이 돼 가는 유난히 유해한 형태의 국가 기구의 지배에서 생산력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 과제는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하다.”

그런데 마르크스 저작 해설서라면 이런 “해방의 정치”를 발전시키는 데 얼마나 잘 복무하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이 책은 이 점에서 약점이 있고 명확성이 부족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하비의 분석은 충분히 나아가지 못했다. 또 그는 노동과 자본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중요성은 과소평가하고 좌파가 다른 종류의 동맹들에 관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소 평가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하비가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듯 생산 지점에서의 투쟁에만 관심을 기울이거나 동맹 문제를 무시한 적이 없다. 1945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대중 운동만 보더라도 제국주의 전쟁, 인종 차별, 파시즘, 낙태권, 수도세, 주택, 셰일가스 시추 등을 놓고 생산지점 대신 거리 등에서 투쟁을 벌였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 일부였다. 하지만 이런 투쟁들에 노동자들의 집단 행동이 더해졌더라면 커다란 차이를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2010년 튀니지와 2011년 이집트 혁명이 초기 국면에서 성공을 거둔 데는 조직 노동자들의 구실이 분명하게 작용했다. 

하비는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생산 지점에서의 투쟁을 강조하는 것이 “총알을 한 발만 갖고 싸우려는 것”이며 이는 마르크스의 생각과도 맞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사회의 “일곱가지 계기(기술, 자연에 대한 관계, 사회적 관계, 물질적 생산양식, 일상생활, 정신적 관념, 제도적 틀)”를 설명하는데, 이 모두가 바뀌어야 성공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1917년 러시아혁명에 대해서도 하비는 “혁명을 구성하는 것은 정치적 운동이나 동궁 급습같은 교란 사건이 아니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혁명은 거대한 운동들의 분출로 이루어진다.(러시아혁명의 경우 빵, 토지, 평화를 요구하는 운동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진정으로 생산력이 해방되려면 생산 과정의 핵심에 위치한 노동계급이 지배계급에게서 생산력 통제권을 빼앗아 해방을 위한 투쟁의 최종 승리를 확실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