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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지배자들은 환자보다 자본주의를 살리고 싶어 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자 결국 세계보건기구가 3월 11일(현지 시간) 팬데믹을 선언했다. 팬데믹은 인류 대부분이 면역력을 갖지 않은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을 뜻한다. 미지의 위험이니만큼 전 세계 각국 정부에 최고 수준의 대응을 촉구하는 것으로, 세계보건기구 역사상 세 번째다. 1968년 홍콩 인플루엔자와 2009년 신종플루 당시 팬데믹 선언이 있었다.

비교적 최근의 일인 2009년 신종플루의 경우, 국내에서 첫 환자가 확인된 5월 이후 연말까지 74만여 명이 감염됐다. 집계를 중단할 때까지 사망자는 260명으로 알려졌다. 치사율이 높지는 않았지만 세계적으로 번져 첫해에만 전 세계에서 57만 9000여 명이 사망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코로나19는 신종플루보다 치사율이 훨씬 높다. 그러나 치사율은 단지 특정 바이러스의 물리적 특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인류가 감염병에 얼마나 잘 대응하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3월 18일 현재 전 세계 확진자 중 4퍼센트가량이 사망했다. 확진자 수가 가장 많은 10개 나라의 치사율은 0.3퍼센트(독일)에서 7.9퍼센트(이탈리아)까지 그 폭이 넓다.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면 치사율은 특정 지역이나 시기에 한정해서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중국 시진핑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성공했다며 의기양양하다. 중국 정부의 통계 발표를 믿는다면 확진자가 폭증하는 상황을 어느 정도 진정시킨 듯하기는 하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가혹한 이동 통제와 격리가 효과를 낸 듯하다. 수도 베이징에서조차 아파트에 택배 배달원이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 며칠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중국 인구 14억 명 중 단지 7만여 명(0.005퍼센트)만이 면역력을 얻었을 뿐이다(그조차 확실치 않다).지금 같은 통제를 계속 유지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이미 전 세계로 감염병이 퍼져 있으므로 언제든 다시 번질 가능성이 있다. 처음 환자가 늘어날 때처럼 속수무책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시진핑이 의기양양한 데에는 미국의 트럼프와 영국의 보리스 존슨 같은 주요 선진국 지배자들의 무능이 한몫하고 있다.

지배자들의 소름끼치는 이윤 우선적 대응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는 코로나19 확산의 위험을 애써 축소하다가 환자가 폭증하자 방향을 180도 바꿔야 했다. 덕분에 미국 증시는 1929년 대공황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폭락했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연구진은 아무 조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미국에서만 사망자가 220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사실 연구라고 할 것도 없는데 미국 인구가 3억 3000만 명인데 그중에 60퍼센트가량이 감염되고 1퍼센트 안팎이 사망한다고 계산하면 대략 이 정도 숫자가 나올 것이다.

인구 다수가 코로나19에 면역력을 얻게 되면 바이러스 확산은 크게 둔화한다. 인간 사회 곳곳에 전파를 막는 장벽이 있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집단 면역’이라고 한다. 이 용어는 감염병이 휩쓸고 간 뒤의 상황을 묘사하거나, 백신이 개발됐지만 공급량이 충분치 않을 때에라도 백신 접종을 해 나아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다.

그런데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은 백신도 없이 집단 면역 획득을 전략이랍시고 내세웠다. 따라서 휴교령 등의 조처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지배자들의 관점을 매우 솔직하게 드러낸 것이다.

인플루엔자 같은 호흡기 감염병 확산에 학교가 매우 큰 구실을 한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어떤 이유들 때문에 아이들은 이런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증상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바이러스를 많이 보유하고 전파한다. 그래서 사회 전체로 보면 바이러스가 학교에서 가정으로, 그다음 직장으로 확산하는 패턴을 보인다. 감염병에 취약한 노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휴교령이 꼭 필요한 이유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코로나19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자본주의 지배자들은 특히 노인들에게 냉혹하다. 이들이 현재와 미래의 이윤 창출에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주요 선진국들에서 연금 등 노인 복지가 가장 먼저 삭감된 이유다. 보리스 존슨은 이참에 노인들을 버리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결국 그도 어마어마한 대중의 반발을 사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방향을 급선회해야 했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이탈리아에서도 80세 이상의 환자들을 중환자실에 입원시키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졌다고 한다. 부족한 ‘의료자원을 비축’하라는 게 이유다.

이탈리아는 유난히 높은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감염이 상당히 확산될 때까지 이탈리아 정부가 방역을 강화하지 않은 것 때문으로 보인다.

‘페이션트 제로’(0번 환자라는 뜻)라고 불리는 이탈리아의 확진자는 몇 주 동안 동네 병원을 돌아다녔는데, 당시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검사 지침이 통일돼 있지 않아 검사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 사이에 감염이 일파만파 이뤄졌을 것이다. 일부 진화생물학자들이 우려하듯 유럽으로 건너간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에 돌연변이가 일어났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우한과 대구에서 벌어진 상황처럼 이탈리아에서도 갑자기 환자가 다수 발견되고 기존 병원들이 그 수를 감당하지 못해 환자들이 방치된 채 죽어간 듯하다. 동시에 경증 환자가 중증으로 악화하는 악순환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매일 수천 건씩 검사를 하는데 지금도 높은 비율로 확진자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실제 감염자는 확인된 사람의 수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긴축으로 공공병원이 낙후하거나 의료진이 부족해진 영향도 있을 것이다. 의료비 개인 부담률이 10여 년 사이에 크게 높아져 열이 나도 병원을 찾지 않은 노인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 우파 언론들이 이탈리아 사례를 거론하며 공공의료 자체가 문제라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되지도 않는 아전인수식 해석일 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병상이 가장 많은 한국에서는 정부가 통제하는 공공 병상이 부족해 확진자 수천 명이 여전히 병원도 아닌 시설과 집에 머무르고 있다.

이탈리아 베르가모 지역 성당에 장례를 치르지 못한 수십 개의 관이 놓여있다

일본 아베 정부도 최악의 사례다. 많은 과학자들이 일본 정부의 조용한 ‘무대응’이 사실상 보리스 존슨의 정책과 같은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일본의 확진자 추이는 정비례 직선을 그리고 있는데, 검사 수를 늘리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올림픽, 그것도 후쿠시마 핵 참사를 가리기 위해 개최하는 올림픽에 엄청난 판돈이 걸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올림픽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면 아베는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이다. 물론 그 때문에 아베가 물러날지는 불확실하다. 아베는 이미 여러차례 치명적인 위기를 겪었지만 안타깝게도 대안 부재 때문에 장기 집권에 성공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세계적 수준에서 계급 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다. 이윤에 타격을 입은 기업주들은 그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고 무급휴직, 해고 등 가차없는 공격을 시작했다. 일부 기업주들은 이참에 구조조정을 시도하는가 하면 일부는 손실을 만회하려고 노동시간 연장 등 노동강도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탄력근로제 등 노동 개악을 추진해 온 것에서 보듯이 문재인 정부는 이런 고통전가를 확실하게 실시해 ‘국가 경쟁력’을 지키려 할 것이다.

세계 각국 정부가 앞다퉈 소득 지원 등 경기 부양책도 쓰기 시작했지만 노동계급의 삶을 지키는 데에는 역부족이다. 문재인 정부도 2차 추경 등을 고려하지만 당장 생계가 곤란해진 노동자 대중 지원에는 미적대고 있다.

민주노총은 재난생계소득 등 노동자들의 삶을 지키기 위한 요구를 발표했다. 이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 지배자들은 팬데믹이 끝날 때까지 공격을 미루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