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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책임 공방 속에 악화되는 미·중 갈등

미국을 비롯한 몇몇 서방 정부들은 코로나19 확산의 책임이 중국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둘러싼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최근 중국 시진핑 정부는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했다고 자화자찬하며, 다른 국가들의 코로나19 대응을 지원해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높이려 한다.(물론 중국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끝나가는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그러자 미국과 다른 서방 강대국들이 ‘중국 책임론’ 카드를 든 것이다. 물론 이는 방역에 실패한 서구 정치인들이 국내에서 비난을 피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도 강하게 반발하며 전방위로 대응에 나섰다. 언사도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다.

코로나19는 제국주의 세계 질서의 기존 모순들이 더 심화되는 계기가 되는 듯하다. 코로나19와 경제 불황으로 지배자들은 위기감이 크다. 그러나 세계 패권국 미국은 코로나19 위기에서 예전처럼 다른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을 이끌어 위기를 해결할 주도력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그 틈에 미국의 가장 만만찮은 경쟁국인 중국은 운신의 폭을 넓히려 하고, 미국 트럼프 정부는 이를 경계하며 여러 수단을 동원해 중국을 누르려 하는 것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도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 중국을 확실히 눌러야 한다고 본다. 최근 〈한겨레〉도 대중국 정책 면에서 바이든의 공약이 트럼프 정부의 강경론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즉, 코로나19 위기 속에 강대국 간 제국주의적 경쟁이 더한층 악화되는 양상이다.

국제 조사

4월 17일 영국 외무장관 도미닉 라브는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어떻게 퍼졌는지 등을 중국 정부에 엄중히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호주 총리 스콧 모리슨도 코로나19의 기원에 관해 국제 조사를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다분히 중국을 겨냥한 제안이다. 그 후 호주 주재 중국 대사는 “호주 소고기와 와인의 중국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며 경제 보복을 경고했고, 중국 관영 언론 〈글로벌 타임스〉 편집장은 “신발 밑에 달라붙어 있는 껌”이라고 호주를 맹비난했다.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을 설파하는 선두 주자는 단연 트럼프 정부다. 미국에서 코로나19가 본격 확산되고 확진자·사망자 수가 치솟자, 트럼프 정부는 중국에 대한 공세를 본격적으로 강화했다. 예컨대, 4월 30일 트럼프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 우한 연구소에서 유래했다는 증거를 봤다고 했다. 그 증거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말이다.

4월 29일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코로나19 사태의 책임을 중국에 묻기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단, 이 “많은 일”에는 경제 보복 조처가 포함돼 있다. 트럼프는 “중국산 상품에 관세를 부과해 1조 달러를 거둬들이는 것”도 거론했다.

중국에게 막대한 손해배상을 받아내려는 시도도 있다. 미국 미주리주(洲) 주정부는 주 법원에서 중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중국 정부가 사태를 은폐해 미국인들이 피해를 입었으니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와 공화당 정치인들은 중국의 국가면제를 박탈하는 조처를 도입하려 한다. 국가면제는 한 국가의 법원이 타국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법 원칙인데, 이것이 박탈되면 미국인이 중국 정부를 상대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4월 27일 트럼프는 한 기자회견에서 제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물었던 배상금보다 더 많은 돈을 중국이 내게 하겠다고 을러댔다.

손해배상이 실제로 가능한지는 따져 볼 일이지만, 이런 일은 코로나19·경제 위기로 위기감이 커진 미국 지배자들이 중국에 더 강경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는 연일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을 들먹이며 서방 국가들에게 이번 기회에 중국 IT기업 화웨이와 거래를 완전히 끊으라고 촉구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화웨이와 5G 통신망 사업을 하던 일부 서방 정부들의 태도가 바뀌고 있다. 예컨대 영국 외무장관은 중국과 더는 “평소처럼” 거래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4월 29일 《포린 폴리시》는 매트 포팅어(백악관 국가안보 고문) 같은 자가 중국 문제를 다루는 미국 정부 최고위직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미국 정치권에서 대중국 강경론이 얼마나 우세한지를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포팅어는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중국이 사실을 은폐해 책임을 피하려 한다고 주장했고, 코로나바이러스를 “우한 바이러스”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이런 주장은 백악관 내에서 지지를 얻었다. 트럼프는 사태 초기부터 코로나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불렀고, 폼페이오는 G7 회의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우한 바이러스”라고 명시한 성명을 채택하게끔 밀어붙이기도 했다.(실패했지만 말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트럼프 정부는 세계보건기구(WHO)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WHO가 중국을 두둔한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그러나 정작 이때까지 WHO에 가장 많은 돈을 지원하고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국가는 바로 미국이었다.

“중국을 공격하라”

트럼프 정부는 대만의 WHO 옵서버(참관국)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동맹국들의 지지를 결집하겠다고 했다. 대만은 중국의 압력 때문에 WHO 가입이 막혀 있고 2017년에는 아예 옵서버 지위마저 잃었다. 트럼프 정부는 이 문제를 내세워 코로나19를 둘러싼 중국과의 대결에서 새로운 전선을 형성하려 한다.

미국 공화당 정치인들은 국내 정치적 필요 때문에도 중국 책임론을 들먹이고 있다. 얼마 전 언론에 폭로된 공화당 상원전국위원회의 2020년 선거 대응 메모를 보면, 공화당 지도부는 소속 정치인들에게 “트럼프를 옹호하지 말고 차라리 중국을 공격해” 코로나19 상황에 대처하라고 주문했다. 이런 행태는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공격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코로나19에 관해 얼마나 솔직한지는 지금도 불확실하다. 그리고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미국의 공세를 좌시하지 않는다.

중국 정부도 미국이 코로나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얘기를 퍼뜨린다. 그리고 중국은 미국 해군 함정들에 코로나19가 확산되는 틈에 남중국해에 대한 장악력을 키우려 애쓰고 있다. 앞서 태평양에 배치된 미군 항공모함 4척이 코로나19 환자 발생 때문에 항구에 정박돼 있자, 그 틈에 중국군은 항공모함인 랴오닝함을 대만해협을 거쳐 남중국해로 보냈다. 그러자 미군도 (사실상 경항공모함인) 강습상륙함을 남중국해로 파견했다.

4월 29일 중국군은 남중국해에 들어온 미군 구축함을 쫓아냈다면서, 자국 방역에나 집중하라고 미국을 힐난하기도 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양측의 갈등이 커지는 것이다.

코로나19와 경제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가 중병에 빠져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본주의 강대국들 사이에 점증하는 갈등은 중장기적으로 매우 위험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