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미국 마르크스주의 단체 ‘마르크스21’ 회원 숀 커밍밥 베이컨이 7월 29일에 포틀랜드에서 발표한 것이다. 포틀랜드는 도널드 트럼프가 연방 부대까지 동원해 인종차별 반대 운동(관련 특별 페이지)을 진압하려 했던 곳이다.

그러나 시위대가 격렬하게 저항했고 노동자들도 연대 행동에 나섰으며 다른 도시들로도 연대 시위가 번졌다(관련 기사). 결국 포틀랜드를 “본보기”로 삼겠다던 트럼프의 시도는 실패했고 7월 31일 연방 부대를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그 후로도 포틀랜드에서 투쟁은 계속돼, 시위대는 경찰 예산 대폭 삭감 약속을 받아내는 등 성과도 거두고 있다.

이 글은 연방 부대와의 대치가 아직 한창일 때 발표됐다. 현지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서 제기되는 쟁점들을 다루고, 운동에서 정치적 명확성을 높이고 사회주의 전략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 ] 안의 내용은 〈노동자 연대〉 편집부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삽입한 내용이다. 


전 세계가 위기다. 미국도 위기고, 포틀랜드도 위기다. 위기의 뿌리에는 경제적 재앙, 체계적 인종차별, 경찰이 자본주의 국가를 수호하려고 자행한 폭력과 살인이 있다. 자본가 계급은 노동계급이 단결할까 우려하고 이번 항쟁을 주저앉힐 최선의 방책이 무엇일지를 두고 분열해 있다. 거리 시위가 격화하고 포틀랜드의 젊은 노동자들이 정의를 요구하며 전투성을 키우자, 국가는 폭력으로 대응했다.

처음에는 포틀랜드 시장 테드 휠러가 이끄는 시 경찰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대에 최루가스를 쏘아댔다. 이들이 운동을 분쇄하지 못하자, 연방 부대가 투입돼 똑같은 일을 했고 폭력의 수위는 더 높아졌다. 이전까지 경찰은 시위대가 흩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최루탄을 쐈다. 그러나 연방 부대는 수천 명이 한창 시위할 때 최루탄을 쏘고, 젊은 시위 참가자들을 지키려 나선 — 예컨대 “엄마의 벽”으로 유명해진 — 사람들에게도 거리낌없이 폭력을 휘둘렀다.

최근 몇 년 새 포틀랜드에서는 극우에 맞선 시위가 많이 벌어졌다. 이 시위들은 ‘애국 기도회’ 같은 파시스트 깡패들 및 경찰과의 전투로 끝나기 일쑤였다. 

우파들은 포틀랜드가 진보의 텃밭이라 보고 오랫동안 포틀랜드에 집착해 왔다. 물론 이런 생각은 틀렸다. 포틀랜드는 인종과 계급으로 날카롭게 분단선이 그어진 곳이다. 연방 정부는 포틀랜드를 시험장으로 삼아 국토안보부와 [그 산하 특수부대인] 국경순찰전투부대의 개입 확대를 추진하려 한다. 이 깡패 같은 자들은 잔혹 행위, 납치, 협박으로 철저히 단련된 자들이다. 다수는 전직 군인이거나 용병 출신으로, 미국이 중동 등지에서 벌이는 끝없는 전쟁에서 훈련받았다.

국경순찰대와 이민세관단속국(ICE)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등록된 이주노동자들도) 가혹하게 단속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하지만 연방 부대는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조직되지 않은 이주민과 무슬림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익숙한 나머지 포틀랜드에서처럼 끈질기게 정의를 요구하며 밤마다 거리에 나오는 시위대에 당황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현재 국가는 진퇴양난의 처지고, 지배계급은 시위·전염병·경제 붕괴라는 삼중의 위기에 대처할 방법을 두고 분열해 있다.

지금 미국 경제의 이윤 대비 부채 비율은 역대 최대다. 자본가들은 ‘국면 정상화’가 절실하지만, 극도로 빈약한 개혁조차 제공할 수 없는 처지다. 수익성이 근 100년래 최저치로 떨어졌고 공공 부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주식을 매입하고 임금을 보전하는 데에 투입되는 정부 지원금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실질 투자는 정체 상태고, 실업은 날로 심해진다. 더 큰 위기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국가가 나서 계급 긴장을 달랠 역량은 약해지고 있다.

지배계급은 노동자들을 희생시켜 이윤을 회복하고자 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생계를 도둑질하고, 복지를 팔아치우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목숨을 빼앗는다. 인종·경제 문제에서 정의를 요구하는 노동계급의 전투성이 높아지는 것은 트럼프 정부에도 위협이 될 뿐 아니라 체제가 노동계급을 최대한 착취하는 [‘정상’] 상태로 돌아가는 데에도 장애가 된다.

트럼프 일당은 국가 폭력을 휘두를 더 많은 통제력을 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민주당 지역 정치인들이 ‘국면 정상화’를 도모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소속 시장] 테드 휠러 측은 연방 부대 투입을 방조한 것이 거의 확실하고, 자유주의적 환상을 벗겨내면 ‘국면 정상화’는 노동계급에 대한 더 많은 탄압·살해·비극일 뿐이다.

정치인들의 도박은 성공하지 못했고, 그래서 현재 민주당 지역 정치인들은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던 운동의 뒤꽁무니를 쫓으려 애쓰고 있다. 시장은 거리에서 시위대를 만나고 연방 부대의 최루가스 공격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올해는 테드 휠러를 비롯한 자유주의 정치인들이 선거를 치르는 해다. 연방 부대 철수를 요구하는 정치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기만의 악취가 풍긴다. 그 자들은 고작 며칠 전만 해도 경찰의 잔혹한 탄압에 저항하는 시위대를 비난했고, 막대한 포틀랜드 경찰 재정을 눈곱만큼 삭감하자는 요구가 과격하다고 떠들었다.

민주당 정치인들의 말대로 연방 부대가 철수하면 시장은 과연 자신의 직속 깡패[시 경찰]들이 시위대를 더는 잔혹하게 공격하지 못하도록 할까? 바로 그 깡패들이 연방 부대가 투입되기 전 몇 주 동안 그런 공격을 해 왔는데? 시 경찰 재정을 삭감하고 그 돈을 복지에 배정할까? 흑인, 갈색 인종, 빈민을 살해한 자들을 정의의 심판대에 올릴까? 이런 것이 빠져 있다면,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국면 정상화’란 사회 상층부의 이윤을 위해 사람들을 더한층 착취하고 가혹하게 대하는 것을 미화하는 것 말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처럼 자유주의자들은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체제를 구제하려고 책략을 부린다. 자본주의 체제가 헤게모니를 잃고 있는 지금, 민주당 정치인들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재확립하려 하는 것이다.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1920년대에 개괄한 헤게모니 개념이 지금 포틀랜드에 꼭 들어맞는다. 지배계급은 줄곧 사상과 폭력을 동원해 자신의 통치 정당성을 확립해 왔다. 사람들이 세계를 보는 관점을 통제하고 사람들이 그에 맞춰 행동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헤게모니다. 그람시는 지배계급이 권력을 유지하려면 헤게모니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계급 사회의 끔찍한 현실 때문에 사람들은 지배계급의 사상과 행동에 의문을 품게 된다. 사람들이 ‘상식’, 즉 지배계급의 사상에 맞서 투쟁에 나설수록 지배계급은 통제력을 유지하려고 노골적인 폭력에 더한층 기대게 된다.

투쟁 덕분에 ‘우리가 사회를 더 정의롭게 운영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고 노동계급이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 사람들이 체계적 가혹행위와 인종차별에 관해 이처럼 일반화해서 문제 제기하는 것을 자유주의자들은 한사코 막으려 한다. 그 대신 특정한 정체성이나 개개인의 편견 문제로 제한하고 [연방 정부에 맞서] ‘지역 공동체’를 지향하자며 사람들을 호도하려 한다. 그들은 우리가 차별의 근원을 찾지 못하고 국가 권력에 도전하지 않길 바란다.

7월 23일 시장은 시위대 앞에 당당히 선 모습을 연출하려 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다. 운동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몇몇[흑인들]이 시장을 연단에 세우고 그의 발언을 지지하는 내용의 연설로 그를 치켜세우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즉시 좌절됐다. 한 무리의 흑인 활동가들이 시장에게 야유를 퍼붓고, 시 경찰 재정 삭감과 시장 사임을 요구하는 문구를 연단 뒤편 건물 벽에 [레이저로] 쐈다. 이 활동가들은 [시장을 옹호하며] 운동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 자들을 이전에 본 적 있느냐고 시위대한테 물었다. “포틀랜드 시경이 밤마다 최루가스를 퍼부을 때 우리는 거리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저자들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활동가들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11월에 투표하기를 원하냐고요? 원하지 않습니다. 개혁을 원하냐고요?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연방 부대가, 포틀랜드 경찰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요구다” 7월 23일 집회에 참가한 민주당 시장(푸른 옷)이 연단에 오르자 시위대는 그를 비판하며 주요 요구를 레이저로 쏘았다. 경찰 재정 50퍼센트 삭감, 연행된 시위 참가자 전원 석방, 연방 부대 철수와 함께 시장 사임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 The Source Weekly (트위터)

이 사건은 흑인이 단일한 집단이라는, 즉 흑인은 모두 이해관계가 같고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것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신화에 지나지 않음을 들춰낸다. 이런 모순이 커질수록 계급 간 구분선은 뚜렷해질 것이다. 노동계급의 단결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우리 투쟁의 핵심인 정치 문제를 제거하려고 혈안이 돼 있다. 현재 거리 운동 안에서는 각종 분화, 논쟁, 정치적 이견을 쉽게 볼 수 있다. 시위 참가자 다수가 운동 초심자들이고, 특정 정치 경향을 지지하지 않거나 심지어 정치 경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을 수 있지만, 그런 사람들의 눈에도 모순은 명백히 드러나 있다.

의미심장하게도, 우리가 시위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 청년들은 경제 상황과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 사이의 연결성 때문에 자신들이 급진화했다고 말했다. 이번 주말에 노동자들이 ‘흑인 목숨을 지키는 투쟁’을 위해 거리로 나올 예정인데 투쟁이 일반화되고 있다는 고무적인 징후다. [이후 트럼프가 연방 부대 철군을 발표하며 한 발 물러섰고, 그럼에도 주말 집회에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많이 참가했다.] 교사, 요리사, 변호사, 의료 노동자, 실업자, 일용직 노동자 등 온갖 부문의 미국 노동자들이 운동을 지지하며 나서고 있다. 공식 노동조합 지부들과 기층 노동자들이 이런 행동에 나서는 것은, 7월 20일 ‘흑인 목숨을 위한 파업’ 행동 이후 노동계급이 운동의 핵심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비록 노조 지도부나 언론들이 아직 이를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인종차별 반대 운동과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은 초기부터 노동운동의 일부였지만, 지금 같은 변화는 인종차별 반대가 노동계급의 핵심 이슈가 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런 고무적인 조짐뿐 아니라 약점도 있다. 노동계급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고 요구하며 저항에 나서서 점차 심해지는 국가 폭력에 반격하는 지금, 좌파의 구실은 무엇일까? 자발성으로 자본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을까? 밤마다 거리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충분할까? 지배계급의 폭력이 끊임없이 부추기는 긴장과 공포 상태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운동이 빠질 수 있는 한 가지 함정은 지배계급의 사상인 ‘상식’을 재확립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서로 계몽하고 ‘흑인 목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즉 개인의 관점을 바꾸는 것으로 충분하다거나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최선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관점은 자본이 인종차별을 계급 분열과 계급 전쟁의 도구로 체계적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인종차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와 단단히 얽혀 있는 문제로 그 기원이 노예 무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종차별이 그저 개인들의 편견 문제라는] 이런 잘못된 생각은, 더 계몽된 사람을 자본주의 국가기구 내 권력층으로 선출하는 것을 ‘해법’으로 여기는 생각, 즉 인종차별과 착취를 개혁으로 없앨 수 있다는 생각과 연결돼 있다.

물론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국가가 흑인들에게 휘두르는 끔찍한 폭력을 제약하는 모든 개혁을 환영한다. 그러나 인종차별과 국가 폭력을 끝장낼 전략으로 그런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그런 폭력이 경제 체제 때문에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무시하는 것이다. 앞서 개괄했듯, 자본이 개혁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은 자본이 착취를 할 수 있는 능력과 연결돼 있다. 경제 위기 때문에 저들이 제시하는 개혁이란 보잘것없고 희생을 계속 요구할 것이다. 개혁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도 거리 시위를 이어 나가야만 한다.

운동 안에서 유행하는 또 다른 정치적 경향은, 국가에 맞서 계속 투쟁하면서 어떤 차별도 없는 ‘자치 구역’을 만들자는 전략을 추구한다. 이런 접근법은 만장일치와 자발성을 선호하는 맥락에서 대의제 민주주의를 거부한다. 그럼으로써 자본에 맞선 권력을 창출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주장은 운동에서 개인이 하는 구실, 개인이 받는 차별과 정체성에 주목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접근법의 문제점은 행동의 모든 측면에 동의하는 개인들의 소규모 집단(때로는 행진을 벌이는 수천 명)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발성’을 위한다는 이유로 이처럼 비밀 유지와 만장일치를 고집하는 것은 운동의 지도자들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결과를 낳는다. 때로 이런 지도자들은 가장 능동적이고, 조직적이고, 발언력이 강한 사람들이고 대개 투쟁의 전선에 가장 먼저 몸을 던진다. 하지만 [토론과 선출 없이] 이렇게 스스로 지도자를 자임한 사람들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고 그런 경우 운동을 개혁주의나 자유주의 정치로 빠뜨리고 마는 것을 우리는 여러 번 봤다. 궁극적으로 보면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나 소규모 집단으로 운동 전체를 대리하려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그들 개인의 기질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정치 전략의 귀결이다.

또, ‘자치 구역’을 만들어 사람들이 각자의 필요를 모두 충족하자는 생각은 자본이 착취 대상을 찾아 남김없이 쫓아온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국가를 내버려 둔 채] 섬처럼 진행되는 이런 시도는 모두 국가의 전면적 탄압에 직면할 것이다. 더욱이 나머지 세계와 분리되려는 이 전략은, 국가 탄압에 맞서 ‘자치 구역’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사회 세력, 즉 단결한 노동계급에게서도 고립을 자초한다.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하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자치 구역’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포틀랜드 거리에서는 위와 같은 경향·사상들이 뒤섞여 있다. 포틀랜드 사람들은 인종차별과 국가 탄압에 맞서 도시를 지키는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이런 생각들을 채택하고 검증하고 이리저리 조합해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운동을 이끄는 단일하고 확고한 정치적 입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히 말하자면, 인종차별과 미국 정부의 잔혹한 탄압에 목숨 걸고 맞서는 사람들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런 생각들에서 비판적으로 돌아볼 점들을 제기하려는 것이다. 함께 연대해 싸우면서도 그런 점들을 두고 논쟁하고 토론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우리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견을 밝혀 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변화를 쟁취하려면 운동의 중심에 노동계급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 지금 가장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인종차별, 성소수자 혐오, 트랜스젠더 혐오, 여성차별 같은 사상은 모두 자본주의 사회의 착취와 연결돼 있다. 인종차별은 지배계급이 수행하는 계급 전쟁이며, 반드시 격퇴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윤·착취보다 사람들의 필요를 우선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노동계급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노동계급이 유달리 고결해서가 아니라, 모든 부를 생산하는 유일한 주체라는 점 때문이다. 노동계급은 투쟁에 전력투구해서 자본주의 체제를 분쇄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다. 그런 투쟁의 과정에서 노동계급은 자본의 구조를 대체할 대안적인 조직을 만든 역사적 경험이 있다. 이는 자치라는 개념을 뛰어넘어 민주적 노동자 통제라는 다른 체제를 건설한다는 사상이다. 우리는 착취 일체에 반대하고 노동계급이 이처럼 더 나은 세상을 쟁취할 자신감을 키우도록 즉각 나서야 한다.

포틀랜드와 미국 전역의 운동에 조직과 민주적 지도력이 부족하다고 우리가 지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운동에서는 경찰 노조를 노동운동에서 축출하자거나 경찰 재정을 삭감해 사회 복지로 돌리자는 등 좋은 요구들이 제기됐다. 이런 요구들은 대개 ‘포틀랜드를 쏘지 마라’ 등 오랫동안 경찰 폭력 반대 운동을 해 온 훌륭한 단체들이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주의 좌파는 소수이고 분열해 있다. 소규모 좌파 단체들 몇몇이 조직돼 운동에 열심히 참가하고 있지만, 명부 상으로는 포틀랜드 최대 좌파인 미국 민주사회당(DSA)의 조직적 참가가 없다는 점이 눈에 띤다.(DSA 당원 개개인과 몇몇 계파 차원으로는 열심히 참가하지만 말이다.) 좌파들 사이에는 운동의 ‘순수성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강박이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좌파들은 대부분 운동에 용해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질문이 제기된다. 운동은 강력하고 계속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그럴 수 있을까? 투쟁을 어떻게 지속하고 심화시킬 수 있을까? 사회주의자들 앞에 놓인 첫째 과제는 투쟁 속에서 자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운동이 어떤 방식으로 왜 조직돼야 하는지 토론하고, 조직 노동자들이 모든 영역에서 반격에 나설 자신감을 북돋고, 자신의 정치를 드러내 놓고 논쟁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7월 20일에 있었던 것 같은 작업장 행동을 건설하고, 인종차별 반대를 국가의 실패, 전쟁, 제국주의, 착취 문제와 연결해야 한다. 그러려면 조직과 논쟁이 필요하고, 투쟁을 급진적으로 심화시키고 서로 연결시킬 정치가 필요하다. 지금 운동에서 사람들은 정치적 명확성과 대안을 찾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의 구실은 자유주의 정치라는 막다른 길도, 개별 정체성, 도덕주의, 선거주의도 넘어서는 전망으로 대중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노동계급 조직들이 해방을 위한 투쟁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더 크고 뿌리 깊은 파업을 건설하자고 선동하고, 노동계급의 개별 부문들을 투쟁으로 연결해야 한다. 운동이 승리하려면, 노동계급 투쟁에 깊이 뿌리 내린 지속적이고 단결한 인종차별 반대 연대체와, 당면 정세에 맞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고 운동에 영향을 미칠 만큼의 규모를 가진 정치 조직, 둘 다 있어야 한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전망, 흑인들을 위한 유보 없는 정의와 모두를 위한 해방을 요구하는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 조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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