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재벌 개혁론’ 비판:
초거대 IT기업들의 독점이 불평등과 저성장의 원인인가?
〈노동자 연대〉 구독
마이클 로버츠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다. 2008년 경제 위기와 1930년대 공황을 견주어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분석한 《대공황》(The Great Recession, 국내 미번역)과 2008년 이후 세계경제를 분석하는 《장기불황》(연암서가)을 썼다. 또한 그는 자신의 블로그(http://thenextrecession.wordpress.com)에 최근 경제 상황을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분석하고 논평하는 글을 꾸준히 게재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소수 재벌의 독점이 불평등과 경제 저성장의 원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독점이 아닌 노동자 착취가 불평등의 원인이고, 이윤율 저하를 낳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가 경제 위기를 낳는 핵심 문제라고 지적하는 이 글은 독자들이 오늘날 경제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다만 이 글에서 마이클 로버츠는 초거대 IT기업들이 기술 혁신을 통해 초과 이윤을 얻고, 특허 등을 통해 이를 유지하는 것을 ‘차액지대’의 일종인 ‘기술 지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는 지대의 일종이 아닌 특별잉여가치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7월 30일,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 기술 대기업들이 일제히 분기별 실적을 발표했다. 같은 날 미국 경제는 사상 최악의 GDP 역성장을 기록했다
반면에
기술 기업들은 전반적으로 매출액이 증가했고, 이들 공포 4인방의 시가총액은
이러한 결과가 나온 그 순간, 공포의 4인방은 미 의회 청문회에 불려가 ‘들들 볶였다’. 청문회는 그들이 경쟁자를 다루는 악랄한 관행과 미국 경제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부문에서 계속 ‘시장 지배력’을 키우고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문제를 다뤘다. 법사위원회는 이 기업들이 경쟁자를 짓뭉개거나 인수하거나 시장에서 내쫓으려 한 시도를 보여 준다며 1300건의 문서를 발표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의 최고 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인수를 잠재적 경쟁자를 무력화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긴다고 메일에 썼다. 페이스북의 인수 제안을 거부할 경우 페이스북 측의 “파괴 모드”에 직면할 것을 두려워하는 신생 기업들이 얼마나 많은지 폭로됐다. 구글 관계자들이 “울타리 쳐진 정원”
이들 ‘슈퍼스타’ 기업들을 억제하거나 해체하고 그들의 독점적 시장 지배력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새로운 일이 아니다. 자본이 새롭게 축적, 확장되는 부문에서 성공한 기업들은 규모가 크게 성장하고 결국에는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된다. 철도, 석유, 자동차, 금융, 통신 등이 그러했다. 1911년
1984년에는 주요 ‘독점’ 통신 사업자였던 AT&T가 지역 기업 7개로 분할됐다. 그러나 AT&T와 지역의 독점 후계자들은 계속해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시장 지배력’을 쪼갰지만 경쟁 구도나 생산성, 가장 중요하게는 노동 소득을 개선하는 데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독점적 ‘시장 지배력’을 없애더라도 미국 경제의 낮은 생산성과 경제가 갈수록 깊은 침체로 빠져드는 현재 상황을 호전시키지 못할 것이며, 미국에서 소득이나 재산의 불평등을 줄이지도 않을 것이다. IMF 경제학자들의 최근 연구를 보면, 1990년대 초 이래 세계 노동소득분배율이 점차 줄어든 추세를 보인 것은 노동 절약적 ‘기술 진보’ 때문으로 노동자들이 노동 절약적 기술에 의해 대체됐는데 소위 ‘단순 반복적 일자리’에서 특히 그랬다.
하지만 좌파 경제학에서는 ‘시장 지배력’으로 미국과 전 세계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떠오르는 스타 경제 저널리스트 그레이스 블레이클리가 최근에 《자코뱅》에 쓴 기사를 보자. “세계에서 가장 큰 기술 기업들 중 다수가 세계적으로는 과점, 국내에서는 독점 기업이 됐다. 물론 세계화도 여기에 일조했는데, 많은 국내 기업들이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들과 도저히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큰 규모를 이용해 임금을 낮추고 세금을 회피하고 납품 업체들을 후려치며, 특혜를 받기 위해 정부들에 로비하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블레이클리는 아마존이 ‘반경쟁적 관행들’을 통해 미국 최대 기업이 됐고 결국 유럽연합의 경쟁 규제 당국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마존 물류창고의 업무 관행은 끔찍하기로 악명 높다. 그리고 지난해 한 연구는 아마존이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조세 회피 기업” 중 하나라는 것을 보여 줬다. 아마존이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렇게 애쓰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존의 사업 모델이 일정 규모 이상에서만 얻을 수 있는 네트워크 효과에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블레이클리는 주장한다. 아마존과 같은 기술 기업들은 자신들의 사이트에서 이뤄진 거래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독점한 뒤 판매함으로써 돈을 번다.
그리고 소수 대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이 높아지면서 실제로 생산성이 떨어졌다.
블레이클리가 여기서 말하는 것 중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넷플릭스,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회사들이 올리는 엄청난 수익의 대부분은 그들이 특허권을 통제하고, 자본력이 좋으며
하지만 시장 지배력이나 독점으로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려 해서는 안 된다. 기술 혁신 또한 이들 대기업의 성공 원인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나타날 수 있는 지대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봤다. 첫째는 ‘절대 지대’로서, 상품 생산에 필요한 노동과 기계에 투자하지 않은 채 자산
자본주의의 역사는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증가하는 역사이지만, 경쟁은 계속해서 자본 간
더욱이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경쟁하는 ‘다수 자본’에 기반하고 어떠한 ‘영원한 독점’도 용납할 수 없다. 만약 ‘영원한 독점’이 있다면 전체 자본가 계급이 나눠 가져야 할 총이윤에서 일부를 그 기업에 초과이윤으로 ‘영원히’ 바쳐야 할 것이다. 이윤과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끊임없는 전투 탓에 독점 기업들이 새로운 경쟁 상대, 새로운 기술, 국제적 경쟁자들로부터 끊임없이 위협을 받는다.
자본의 축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증가하는 형태를 띤다는 것은 자명하다. 150년 전 마르크스가 《자본론》 1권에서 주장했듯 독점화 경향은
캐슬린 케일과 르네 스툴츠는 1975년에 100개가 약간 넘는 기업이 미국 상장 기업 전체가 벌어들인 총 수익의 약 절반을 벌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2015년이 되자 딱 30개 기업이 그러했다. 이제 상위 100대 기업은 전체 상장 기업 수익의 84퍼센트, 전체 현금보유액의 68퍼센트, 전체 자산의 66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다. 수익 기준 상위 200대 기업이 상장 기업 전체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렸다! 왜냐하면 상장 기업 중
이윤은 신고전학파나 케인스주의/칼레츠키주의 이론이 주장하듯 독점이나 지대 추구가 아니라 노동력 착취의 결과다. 마르크스의 이윤율 법칙이 여전히 자본주의 경제에서 핵심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세계경제를 강타하기 직전에 이미 주요 자본주의 경제는 2008~2009년 대침체 이후 처음으로 새로운 경기 후퇴로 치닫고 있었다. 자본의 수익성은 거의 사상 최저였다. 미국과 유럽 기업 중 최대 20퍼센트 정도는 새로운 투자를 위한 여력 없이 이자만 갚을 수 있을 정도로만 이윤을 내고 있었다. 실질 GDP 성장률은 2009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기업 투자는 정체되고 있었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는 이미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FAANG
그러나 주류 경제학
마르크스주의적 자본 분석 대신에 이런 류의 ‘시장 지배력’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시장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독점을 해체해서 ‘경쟁’을 복원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하며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끝장낼 필요는 없다고 여길 수 있다.
블레이클리는 《자코뱅》 기사에서 용의주도하게 이렇게 결론 짓는다. “이러한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하게 실질적인 방안은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민주화하는 것이며, 우리 경제의 주요 결정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좋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독일식 노동이사제? 종업원 지주제? 새로운 규제 도입? 과거에 이 모든 조처들은 “주요 결정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데 실패했다. 기사에서 블레이클리는 부유세를 지지한다. 하지만 부유세는 “생산수단의 소유권을 민주화”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 넷플릭스 같은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은 이 기업들을 공공 소유로 만들고 각 기업의 노동자뿐 아니라 소비자 단체, 노동조합, 정부 대표들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사회와 경영자들이 운영하는 것이다. 그제서야 공포의 4인방의 지배는 끝날 것이다. 그들은 주식 형태로 ‘소유’했던 수십억 달러를 하루아침에 잃을 것이다. 그때 이 기업들의 비도덕적 관행은 멈출 것이고 SNS 스캔들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이들 기업이 제공하는 핵심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