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명예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위원장이다.


오바마나 클린턴보다 바이든의 공약이 더 왼쪽에 있는 것은 그만큼 평범한 미국인들의 분노가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출처 Joe Biden(플리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이 슬로건은 빌 클린턴의 [대선 선거 운동] 보좌관 중 한 명이 만들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이 슬로건을 앞세워 재선을 노리고 있다.

“트럼프노믹스”는 두 축으로 이루어졌다. 첫째, 투자가 활성화되길 바라며 기업과 부유층의 세금을 대폭 감면하는 것이었다.

둘째, 보호무역주의 정책으로 주로 중국을 겨냥했고 정도는 덜하지만 유럽연합도 겨냥했다. 이는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를 줄이고 제조업 일자리를 중서부 ‘러스트 벨트’ 주(州)들로 되돌리려는(“리쇼어링”) 목적에서 고안됐다.

트럼프의 감세 정책을 두고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퇴행적 케인스주의”의 일종이라고 했다. 경제학자 메이너드 케인스는 국가가 세금을 삭감하고 지출을 늘려 소비와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완전 고용을 달성해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 트럼프가 실질 법인세를 거의 반토막냈는데도 — 투자는 크게 늘지 않았다. 기업들은 늘어난 현금을 주로 자기주식 취득에 사용해 주가를 올렸다.

중국과 벌인 무역 전쟁으로도 적자는 크게 줄지 않았고 “리쇼어링”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2019년 실업률이 1969년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고 주식 시장은 급등했다. 트럼프는 여기에 기대 재선하려 했다.

그때 코로나가 닥쳤고, 경기가 거의 100년 만에 최악으로 후퇴했다. 2020년 4월에 실업률은 10퍼센트포인트 치솟았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블로거인 마이클 로버츠는 이렇게 썼다. “트럼프노믹스의 진정한 성격은 케인스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결합이다.” 공화당은 애초에는 경제 붕괴를 막으려고 가구별 지원금 직접 지급을 지지했지만, 그럼에도 2020년을 주름잡은 것은 신자유주의였다.

트럼프는 공화당 의원들과 힘을 합쳐, 연방정부 지출로 일자리와 소득을 유지하자는 민주당의 요구에 반대했다. 그 대신 트럼프는, 대유행 초기에 내렸던 이동제한 조처를 하루빨리 끝내서 경제를 재가동하는 데 기대를 걸었다. 이는 트럼프에 심각한 역풍으로 작용했다.

10월 23일 미국의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는 8만 3010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공화당과 영국 보수당의 주장과 달리, 코로나19 방역을 완화한다고 경제가 살아난 것도 아니었다.

경기 수축

정부가 생명을 지키기 위해 단호하게 대응한 나라들은 경기 수축의 폭이 더 적었다. [세계적 회계법인] 딜로이트는 2020년 4사분기에 미국 경기가 정체하거나 수축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트럼프와 경합하는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은 코로나19에 진지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또한 그 역시 정부 지출을 늘릴 것이다.

바이든은 지출 규모가 10년간 약 7조 3000억 달러[한화로 약 8200조 원]에 이를 공약을 내걸고 있다. 바이든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같은 민주당 내 좌파들이 주장하는 ‘그린 뉴딜’은 거부하지만, 기후 변화 대응에 약 2조 달러[한화로 약 2300조 원] 가까이 쓰겠다고 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바이든노믹스는 자본주의에 대한 지지를 지킬 수 있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런 정책들 때문에 바이든이 클린턴·오바마보다 두드러지게 왼쪽에 자리매김한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역시 막대한 정부 지출을 약속했던 영국 노동당 전 대표] 제러미 코빈에 대해서는 잘못됐다고 악을 썼던 것과 달리, 바이든에 대해서는 좋은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통제되지 않는 자본주의는 유권자들의 심판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만연한데, 특히 청년층에서 그렇다. 이런 분노는 전면적 체제 변화에 대한 요구로 번질 위험을 여러 차례 보여 왔다.

“바이든노믹스가 시행된다면 기업과 고소득층의 삶은 더 부담스러워질 것이다. 그러나 이로써 미래에 더 큰 심판이 떨어지는 것은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는 주류 신자유주의 기득권층이 얼마나 겁에 질렸는지를 보여 주는 흥미로운 서술이다.

이들은 트럼프가 2007~2009년 전 세계적 금융 위기 때문에 자라난 분노에 올라타 집권했음을 깨닫고는, 〈파이낸셜 타임스〉가 “약간 사회민주주의적”이라고 부른 정책들로 이 불만을 흡수할 수 있으리라 여기는 것이다.

이는 헛된 희망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 마이클 로버츠가 보여 주듯 미국은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낮은 이윤율 때문에 계속 악전고투하고 있다. 투자가 정체하는 까닭이다. 정부 지출을 늘려도 잘해야 단기적 효과만 있을 것이다.

둘째, 미국 대중이 느끼는 쓰라림은 기득권층이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광범하다. 억눌렸던 그 분노는 트럼프 하에서 분출하기 시작했다. 설령 트럼프가 선거에서 지더라도 그 분출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