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이 미국의 “지도력”을 회복시킬 수 있을까? ⓒ출처 Joe Biden(플리커)

미국 대선 후 바이든의 새 정부가 어찌 구성될지에 관심이 쏠려 있다. 아직 많은 것이 미확정 상태지만, 지금까지 나온 무성한 하마평과 논란을 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오바마 정부 시절의 친기업·친제국주의 인사들이 요직에 복귀하리라는 전망이 두드러진다. 예컨대 시카고 전(前) 시장 람 이매뉴얼이 여러 장관직의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매뉴얼은 오바마 백악관의 첫 비서실장이었고 이후 시카고 시장으로서 교사 파업과 인종차별 반대 시위 진압에 앞장섰던 자다.

람의 형 이지키얼은 바이든의 코로나19 대응 TF팀에 속해 있는데, “노인들의 삶이 의미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라 있다.

이 TF팀은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세에 대응해 “4~6주 정도 경제활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압력에 밀려 “정식 제안은 아니었다”고 발뺌했다. 30년 가까이 바이든의 참모였고 이제 백악관의 초대 비서실장으로 거론되는 론 클라인은 “전국적 경제활동 중단은 절대 없다”고 못 박았다.

바이든의 코로나19 대응 우선순위가 대중의 생명과 안전이 아니라 기업의 경제활동(이윤)에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런 우선순위는 트럼프가 극렬 밀어붙였던 것이기도 하다.

기후 재앙 대응 문제는 어떨까? 바이든은 “기후 변화 운동가들과 기업들을 잘 연계하리라 기대”한다며 백악관 공보수석에 세드릭 리치몬드를 선임했다. 하지만 리치몬드는 하원의원 시절 석유·천연가스 기업들의 후원을 받았고, 공화당 의원들과 협력해 화석연료 증산과 천연가스 개발을 지원하는 법안들을 발의했다. 리치몬드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의 ‘그린 뉴딜’ 정책에 앞장서 반대하기도 했다. 바이든이 바라는 “연계”가 어떤 내용일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일각에는 바이든이 기후 재앙에는 잘 대응하리라는 기대가 있고, 바이든도 탄소세 제정이나 파리기후협약 복귀 등을 공약하며 그런 기대를 자극했다.(기후변화 부정론자로 악명 높은 트럼프에서 반사이익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공약에는 다른 꿍꿍이가 있다. 바이든은 탄소세 제정으로 “다른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미국을 발목 잡을 수 없게 하겠다”고 밝혔고, 환경 규제 강화로 중국이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으며 추진하는 일대일로 사업에 타격을 입히겠다고 공언했다. 기후 재앙 대응이 아니라 중국 압박에 초점이 있는 것이다.

외교·안보 라인도 일각에서는 “여풍(女風)” 운운하며 열광하지만, 제국주의적 갈등에 대한 바이든의 방향성을 보여 주고 있다. 

국방장관으로 거론되는 미셸 플러노이는 오바마의 국방부 차관이었는데, 냉전 전쟁광 로널드 레이건의 모토이자 트럼프도 인용했던 구호인 “힘을 통한 평화”를 신봉하는 자고, “그림자 정보 기관”이라는 별칭이 붙은 전략 자문 기업 ‘부즈 앨런 해밀턴’의 이사다.

플러노이는 유사시 미군이 “남중국해를 오가는 중국의 해군 함정, 잠수함, 상선 모두를 72시간 안에 격침할 수 있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역설했다. 바이든은 자신이 트럼프보다 중국을 더 잘 압박할 것이라 대선 전부터 밝혀 왔는데 그에 걸맞는 인사인 셈이다.

국무장관으로 거론되는 수전 라이스도 만만찮다. 라이스는 오바마 정부 시절에 미국이 리비아·시리아·아프가니스탄 등지를 피바다로 만드는 데 일조했고, 대(對)이란 제재 강화와 이스라엘과의 공조 강화를 적극 옹호했던 자다.

이 역시 바이든의 ‘코드’에 맞는 인사다. 바이든은 “중동 평화를 위해” 팔레스타인을 인정하겠다면서도 이스라엘과의 굳은 공조를 재확인했는데, 그런 맥락에서 바이든은 트럼프가 이스라엘로 이전한 미국 대사관을 다시 옮기지 않겠다고 했다. 반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핍박을 규제하겠다는 말은 일언반구 없었다.

바이든은 트럼프 정부 시절에 “훼손”됐고 “부족”했다 여겨지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도력을 “회복”하려 한다. 중국에 대한 압박을 유지하면서도 동맹들을 더 규합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4년을 거치며 세계 주요 지역 모두에서 첨예해진 갈등은 바이든 집권 후에도 계속 심화될 수 있다.

이렇듯 바이든은 미국 안팎에서 지도력을 “회복”하고자 한다. 바이든의 계급적 기반인 대자본가·권력층도 트럼프 이전의 기존 지배 체제로 부드럽게 “회복”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앞에는 만만찮은 암초들이 놓여 있다. 바로 트럼프와 극우 운동, 그리고 끔찍했던 트럼프 4년을 거친 후 진보적 변화를 갈망하는 대중이 그것이다.

트럼프 가도 극우는 남아

미국 대선이 끝나도 트럼프의 몽니는 끝날 줄을 모른다.

트럼프는 “진정한 미국인들은 내 편”이라며 소송을 걸고, 정권 인수 절차 돌입을 거부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는 국방장관 마크 에스퍼 등 내각 인사들을 전격 경질했다.

이 와중에 가뜩이나 허술한 코로나19 대응은 뒷전으로 밀렸다. 바이든 승리 선언 바로 다음 날인 8일부터 일일 확진자 수가 치솟아, 한때 19만 명을 넘기기까지 했다. 11월 17일 현재 미국의 코로나 누적 확진자 수는 1150만 명 이상으로, 서울시 인구 전체보다도 많다.

이런 몽니의 효과는 두 가지다. 첫째, 트럼프는 자기 지지 기반의 사기를 유지하고 이들에 대한 영향력을 보존했다. 둘째, 이 힘으로 트럼프는 공식 정치의 오른쪽에서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11월 14일 워싱턴 DC에서 잘 드러났다. 극우 무장 단체 ‘오스 키퍼스’, ‘프라우드 보이스’ 등이 주도해 수만 명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라(MAGA)’ 전국 집중 시위를 벌인 것이다.

트럼프 가도 극우는 남아 11월 14일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서 행진하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시위대. ‘프라우드 보이스’ 같은 극우 무장 단체들이 이날 시위를 주도했다 ⓒ출처 Victoria Pickering(플리커)

시위 참가자들은 “트럼프는 정치인들과 달리 자신이 한 말을 지키기” 때문에 트럼프 당선을 바란다고 했다. 트럼프가 극도로 반동적인 혐오와 차별, 갈등을 조장해 왔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이들의 근저에 깔린 정서를 흘낏 보여 준다. 바로 주류 기득권층이 자신들을 배신하고 사지로 내몰았다는 분노다. 이들에게 트럼프 낙선은 기득권 배신의 최신 사례다. 

이들의 구성도 의미심장하다. 시위 참가자 다수가 백인 자영농·소상점주·실업자 등이었지만 “이민자 몰아내고 일자리 지키자”고 주장하는 유색인종들도 일부 있었다. 자신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피해자라고 여기는 층이 트럼프의 ‘아웃사이더’ 행세에 호응해 자신의 분노를 쏟아낸 것이다.

트럼프는 자동차 행렬로 이 시위대를 지났고, 시위대는 “4년 더”를 외치며 환호했다. 자신이 결집시킨 반(反)기득권 성향 지지층이 건재함을 과시한 것이다.

이런 과시는 공식 정치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를 배경으로 전통적 자본가 계급 정당인 공화당은 엇박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공화당 지도부는 기존 지배 질서를 지키려면 선거 부정 운운하는 트럼프와 거리를 둬야 한다고 여기지만, 결선 투표를 앞둔 곳에서 승리해 상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려면 트럼프가 결집시킨 투표층을 거스르기도 난처한 듯하다. 그래서 이들은 트럼프의 “선거 부정” 운운과는 선을 그으면서도 “법원에서 판결하자”는 말에는 맞장구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줄타기가 그들 뜻대로 풀릴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다른 한편에서, 공화당 지도부와 기반이 다른 당내 정치인들은 트럼프 지지층에 올라타려 적극 움직이고 있다.

공화당 내 최대 강경 우익 집단 ‘티파티’는 트럼프의 몽니를 줄곧 지지해 왔는데, 그 지도적 인물인 하원의원 폴 고사와 마이크 켈리는 14일 MAGA 집회에 참가하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원의원 당선자 마저리 테일러 그린은 ‘큐어넌(QAnon)’ 음모론 지지자이자 “하이힐 신은 트럼프”라는 별칭으로 유명한데, 그도 집회에 참가해 연단에서 연설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선거 부정”, 개표 오류 등으로 계속 쟁점을 만들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분노를 자극해 정치적 영향력을 늘리려는 것이다.

이렇게 전통적 자본가 정당인 공화당 안팎에서 극우 포퓰리즘 정치가 지배 우파 일부와 연결되며 서로 상승 작용을 하고 있다. 이런 동학은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나도 계속돼, 장차 지금보다 더 강력한 극우·파시스트 운동을 성장시킬 토양을 제공할 수 있다.

기다리지 말고 대중 투쟁

하지만 반대편에 있는 진보적 변화를 염원하는 대중도 만만찮다. 이 또한 바이든을 압박하는 요소다. “바이든을 당선시킨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표 값을 받으러 나설 것”이라는 지적이 파다하다.

바이든은 인종차별 반대 시위와 거리를 두고 지배계급 주류를 대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득표할 수 있었다. 이는 거대한 반(反)트럼프 정서와 운동 때문이었다.(관련 기사 본지 343호 ‘대선 이후, 미국은 어디로?’)

진정한 변화의 힘은 대중 자신의 투쟁에 있다 11월 6일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트럼프의 낙선을 축하하는 시위대 ⓒ출처 Ted Eytan(플리커)

이런 변화 염원은 유색인종 부통령 해리스에 대한 기대로 표현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번짓수가 잘못됐다. 해리스는 정치 이력 내내 범죄자 엄단을 옹호해 왔고(관련 기사 본지 343호 ‘카멀라 해리스가 차별받는 사람들을 대변할까?’),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발발부터 지금까지 운동의 요구에 반대하고 있다.

한편, ‘민주적 사회주의’ 운동에 지도적 구실을 해 온 버니 샌더스는 노동부 장관으로 입각하려 애쓰고 있다. 현재로서 바이든 측에서는 샌더스를 받아들일 기색이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민주당 주류는 집권 전부터 ‘사회주의 때문에 총선에서 졌다’고 아우성친다. 이들이 집권 후라고 좌선회할까? 설령 샌더스가 장관직을 얻는다 해도, 진보적 노동 정책을 펼칠 여지를 확보하기는커녕 현 정부를 향할 대중의 분노를 단속하라는 압력이나 받기 십상일 것이다.

샌더스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이 이끄는 ‘민주적 사회주의’ 운동은 “우리는 적이 아니다”(오카시오-코르테스)며 민주당을 달래기보다는, 대중에게 이제 바이든 정부가 대변할 체제의 온갖 패악에 맞서 스스로 투쟁하라고 고무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진정한 변화의 힘은 대중 자신의 투쟁에 있기 때문이다. 

좋은 징후가 있다. 워싱턴 DC에서 극우가 행진을 벌인 그 날, 캘리포니아주(州)에서는 오바마가 수립하고 트럼프가 강화한 이주민 강제 수용 정책을 규탄하는 대중 집회가 벌어졌다.

이런 운동이 더 확산돼야 한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에 나선 수많은 사람들이 극우의 결집, 온갖 차별, 코로나19 위기의 피해를 노동계급에 전가하는 데에 맞서 지금부터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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