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군부와 싸우고 있는 미얀마 민중들 ⓒ출처 Myanmar Now

미얀마 군부의 반동적 쿠데타에 많은 사람들이 공분한다.

이 때문에 미얀마 안팎에서 적잖은 사람들이 미국 등 “국제 사회”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문재인 정부에 사실상 제재를 포함한 “책임 있는 조처”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 기대겠다는 생각은 미국 등 “국제 사회” 지배자들의 목표와 미얀마 대중의 목표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다.

종속변수

미국 바이든 정부는 “민주주의” 운운하며 쿠데타를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언제나 미국 대외 정책의 종속변수였다. 미국은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독재를 용인했다. 대량 학살을 저지른 경우에조차 말이다.

미국은 1962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승인했고, 폭력을 모두 묵과했다. 미국은 미얀마 군부가 중국과 가까워지려 들자 그제서야 군부를 비난했다.

2010년대 들어 미국이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해제한 것도 미얀마와 거리를 좁혀, 중국이 미얀마를 인도양 진출의 교두보로 삼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덕에 오늘날 미얀마는 냉전 때와 달리 훨씬 덜 고립돼 있다. 군부가 운영하는 대기업 미얀마경제공사(MEC)·미얀마경제지주회사(MEHL)는 싱가포르·타이·일본 등의 투자를 대거 유치할 수 있었다.

군부뿐 아니라 아웅산 수치와 민족민주동맹(NLD) 정부도 이런 투자 유치를 이용해 미얀마 자본주의를 성장시키려 했다. 미얀마 노동가능인구의 83퍼센트가 비공식·불안정 부문에 묶여 있는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노동조합 건설 같은 기본적 권리조차 제약했다. 수치와 민족민주동맹이 버마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로힝야족 탄압을 두둔한 것은 대중의 분노를 돌리려는 목적도 있었다.

미국과 그 동맹들은 군부가 로힝야족을 학살할 때나,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는 지금이나 실질적 압박에 나서지 않았다.

미국은 군 장성 몇몇의 미국 내 자산(군부의 전체 자산에 견주면 미미한 수준이다) 운용을 동결하면서도, 미얀마 경제의 핵심부는 전혀 건드리지 않고 있다. 자칫 미얀마 자본가들과 거리가 지나치게 멀어질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2월에 세 차례나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발표해 “국제사회와 함께 미얀마 상황을 주시”하겠다고 했지만, 미얀마 군부가 시위대를 살인 진압하는 것에 견주면 매우 신중한 표현이다.(정부보다 자유로운 국회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를 규탄했지만 말이다.)

이는 한국 지배자들도 민주주의보다 한국 기업의 이익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섣불리 군부를 자극해 한국 기업의 미얀마 진출에 적신호가 켜지기를 원치는 않는 것이다.

그런 만큼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지배자들은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위해 팔 걷고 나서지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서방이 대(對)미얀마 제재 강도를 높인다 해도 기껏해야 일시적일 것이고, 잇속에 따라 얼마든 뒤집힐 수 있다. “국제 사회” 지배자들의 개입에 기대를 거는 것이 무망한 까닭이다.

군부와 중국은 한통속?

한편, 미얀마 군부와 중국이 한통속인 것 아니냐는 인식도 적잖다. 미국이 말로라도 군부를 규탄하는 것과 달리 중국은 그조차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중국 관영 언론 〈신화통신〉은 이번 쿠데타를 “대규모 개각”이라고 보도했다!)

물론 중국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한참 먼 나라다. 당장 중국 자신이 홍콩, 티벳, 신장·위구르 등지에서 자행하는 가혹한 탄압만 봐도 알 수 있다. 중국은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족 학살도 사실상 두둔했다.

하지만 이것이 곧 중국이 미얀마 군부와 일심동체라는 증거는 아니다. 미얀마의 지리적 중요성 때문에, 중국은 미얀마 군부뿐 아니라 아웅산 수치나 민족민주동맹(NLD)과도 좋은 관계를 맺으려 애써 왔고, 미얀마 내 여러 소수민족들에게도 투자해 왔다.

그럼으로써 중국이 진정 바란 것은 인도양으로의 교두보, 국경 지역의 안전, 미얀마 영해에서 나오는 석유·천연가스 등이다. 이것만 보장된다면 중국은 누가 정권을 잡든 그쪽을 편들 수 있다.

자기 행동

이처럼 각국은 주판알 튕기기에나 열심이고, 유혈 진압에 나선 군부를 상대로 말잔치만 벌일 뿐이다. 이들에게 기대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얀마 군부에 맞설 진정한 힘은 미얀마 대중의 항쟁에 있다.

지난 3주 동안 노동자 파업과 대중 시위가 맞물리면서 군부를 위협했다. 파업 효과도 만만찮았던 듯하다. 외신에 따르면, 미얀마 전력 노동자 약 60퍼센트가 파업에 나섰고, 미얀마 대외 무역에서 중요한 사업인 섬유 부문을 비롯해 금융·석유·천연가스 부문 등에서도 파업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그 기세를 꺾으려고 군부는 피바다도 불사하겠다는 기세로 나서고 있다.

이에 굴하지 않고 항쟁이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군부의 폭력에 조직적으로 반격하는 것이 사활적이다.

부문을 넘어선 “파업위원회”가 전국과 지역에서 세워지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징후다. 이 위원회는 군부의 활동가 색출과 유혈 진압을 피해 계속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

이런 조직이 더 발전해 군부의 폭력에 맞선 대응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위원회에는 파업 노동자들뿐 아니라 끈질기게 “비폭력” 전술을 주장하는 정치·종교·사회 단체들도 참가하고 있다. 아웅산 수치와 민족민주동맹(NLD)도 거리 항의 운동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아웅산 수치 자신이 “비폭력” 운운하며 대중의 반격을 주저앉힌 것 때문에, 미얀마 군부는 지난 30여 년 동안 두 차례나 학살을 벌일 수 있었다.(관련 기사 본지 357호 ‘미얀마와 민주주의 투쟁’)

최초의 노동계급 투쟁이었던 1830년대 영국 차티스트 운동의 지도자 브론테어 오브라이언의 지적처럼, “냉혹하고 교정 불가능한 … 적에 맞서 도덕적[비폭력적] 힘을 얘기하는 것은 웃기는 짓이다. 오직 압도적 세력에 대한 압도적 두려움만이 그들을 인류에게 복종시킬 것이다.”

역사 속 위대한 대중 항쟁들은 모두 다른 제국주의의 손을 빌려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미얀마 노동자 대중에게도 그런 잠재력이 있다. 그 잠재력을 발휘할 정치적·조직적 운동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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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묶음]
미얀마 쿠데타와 저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