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출산을 한 사유리 씨가 KBS 육아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 ‘슈돌’)에 아들과 함께 출연하기로 하자, 일각에서 “비혼 출산을 부추긴다”며 청원(청와대 국민청원, KBS 시청자권익센터 청원)을 올리며 하차를 요구했다.

일부 보수 개신교·우파 단체들은 여의도 KBS 사옥 앞에서 사유리 모자의 출연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런 목소리가 큰 지지를 받고 있지는 않다. KBS 측은 사유리 모자의 출연을 취소하지 않기로 했다고 공식 답변했다.

비혼 가정의 모습이 (이들을 동정적으로 그리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한 것은 분명 변화된 가족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물론 사유리가 잘 알려진 연예인에 외국인이어서 사람들에게 더 관대하게 받아들여지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 많은 한부모·미혼모 가정은 여전히 커다란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한부모·미혼모 가정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강화한다 ⓒ출처 사유리 인스타그램

사유리 모자 출연을 반대한 이들은 비혼 출산이 “비정상적” 방식이며 남녀 간의 결혼과 그 사이에서의 출산만을 ‘정상’이라고 본다.

이렇게 편협하고 보수적인 가족관은 오늘날 변화하는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지난 20년 동안 이혼, 한부모·미혼모 가구, 동거, 사실혼 등이 상당히 늘었다. 한국에서 혼외 출산율은 여전히 매우 낮지만, 서구에서는 혼외 출산율이 40퍼센트에 이른다.(2018년 기준 OECD 평균 40.7퍼센트)

동시에 결혼과 출산에 대한 대중의 의식도 변화해 왔다. 가령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2012년 22.4퍼센트에서 2020년 30.7퍼센트로 늘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효과 중 하나는 한부모·미혼모 가구에 대한 낙인과 편견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정상적’이라고 여겨져 온 남녀 결혼에 기초한 핵가족 모델은 인류 역사에서 보편적이지 않았다. 일부일처 가족제도는 계급사회가 발전하며 함께 등장했다. 계급사회 이전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은 모두 폭넓은 성적 자유를 누렸고, 남녀 간의 관계만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지도 않았다.(관련 기사: 본지 352호, ‘비혼은 인공출산 안 된다: 비혼 출산은 왜 부당하게 차별받는가?’)

한편, 사유리 출연에 반대한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 같은 보수 기독교 단체는 비혼 출산만이 아니라 여성의 낙태권과 동성애, 동성 결혼 등에도 반대해 왔다. 결국 이들이 반대하는 것은 여성과 성소수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과 성을 선택할 권리인 것이다. 이들은 숨막히게 보수적이고 차별적인 성 도덕을 설파한다.

논란 속에서도 경기도지사 이재명이 사유리의 ‘슈돌’ 출연을 응원하는 입장을 SNS에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좋은 일이다.(주류 정치인 중에 사유리의 출연을 공개 지지한 사람은 현재까지 이재명이 유일하다.)

지난해 말 사유리의 출산이 논란되자 민주당은 비혼 출산 관련 법 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지금껏 아무것도 진척시킨 게 없다. 가령 비혼 여성의 인공출산은 여전히 법적인 뒷받침을 받지 못한다.

건강가정기본법

보수 개신교·우파 단체들은 건강가정기본법 개정도 결사 반대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건강가정기본법(건가법) 개정을 올해의 추진 과제로 밝힌 바 있고, 이와 관련해 민주당 남인순·정춘숙 의원이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해 둔 상태다.

이 개정안은 “혼인, 혈연, 입양”으로 구성된 가족만을 가족으로 보는 현행 건강가정기본법의 협소한 가족 개념을 삭제하고, ‘정상 가족’만을 건강한 가정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건강 가정’이라는 용어도 수정하기로 했다.

그간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비혼·동거 등의 커플이나 가구는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각종 사회복지나 주거 제도 등의 혜택에서 제외돼 왔다. 따라서 이런 방향의 법 개정은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총연합 등 보수 개신교·우파 단체들은 건가법 개정안이 “동성혼을 합법화하려는 의도”라며 길길이 날뛰고 있다. 개정안이 동성 결혼 지지를 명시하고 있지 않은데도 말이다. ‘가족’ 개념이 확장되는 흐름 자체를 막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법 개정에 반대하는 우파들이 있고, 공식 정치에서 우파의 영향력이 커지는 상황이기에 민주당이 이런 개정을 진지하게 추진하려 할지는 의문이다.

사실 건가법 개정안은 ‘누구든 가족 형태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게 한다면서도 동성 결혼을 명시하지 않았다. 이는 이 개정안이 매우 온건한 개선책임을 보여 준다. 남인순 의원은 논란이 되자 건가법 개정안이 ‘동성혼을 인정하려 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답변했는데, 우파들이 동성 결혼을 공격하는 상황에서 동성 결혼 지지에 선을 그은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동성 결혼도 합법화돼야 한다.

한편 가족 개념에 대한 법 규정 개선뿐 아니라, 한부모·미혼모 가정에 대한 실질적이고 대폭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미혼모·한부모의 빈곤과 불평등은 심각한 문제로 제기돼 왔다. 대부분의 미혼모·한부모는 홀로 생계를 책임지며 아이도 돌봐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이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대책은 필요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치거나 생색내기에 불과한 수준이었다.(관련 기사: 본지 345호, ‘미혼모·한부모 눈물 닦아주기에 턱없이 부족한 정부 대책’)

미혼모·한부모들의 조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려면 국가가 양육과 돌봄을 책임져야 한다. 또한 양질의 일자리를 대폭 확대하고, 주거의 질도 개선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

이런 조처가 시행될 수 있으려면 대중의 필요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그 수혜를 입는 권력자들에 대한 도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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