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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호 청년노동자 산재 사망에도:
문재인, 책임 회피하며 중대재해법 개정 거부

이선호 씨의 죽음은 문재인 정부가 청년에게 질좋은 일자리를 제공하지도, 작업장 안전을 개선하지도 못했음을 보여준다. 5월 13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 추모 문화제 ⓒ조승진

평택항에서 300킬로그램 컨테이너 상판에 깔린 청년 노동자 이선호 씨의 죽음은 낯익다. 2017년 현장 실습생 이민호 군이 프레스에 눌렸고, 2018년 석탄 발전소에서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했다.

문재인 정부하에서도 안타까운 청년들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여당은 이런 사고가 일어나 공분이 불거질 때마다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고 부산을 떨었다. 하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이선호 씨의 죽음은 문재인 정부가 청년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에도, 작업장 안전을 증진하는 데에도 실패했음을 보여 준다. 특히 정부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20대에게서 낮은 지지를 받는 상황이다. 이선호 씨의 죽음은 문재인 정부에게 곤혹스러운 일이다.

지난주 대통령 문재인이 직접 이선호 씨의 빈소를 방문해 유가족에게 사과한 건 이런 다급함을 보여 준다. 이후 해양수산부 장관과 고용노동부 장관도 빈소를 방문했다. 정부·여당은 현장 긴급조사를 실시하고 산업안전보건청 신설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 죽음에 자기 책임은 없다는 식으로 뻔뻔하게 나오고 있다. 정부는 잘했으나 현장이 문제라는 식이다. 5월 17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문재인은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전면 개정과 중대재해법 제정을 정부의 치적으로 내세우며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후진적인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어디서 많이 본 유체이탈 화법이다. 정부·여당은 그간 기업주의 이윤을 걱정해 알맹이가 빠진 산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처벌 수위와 범위 등을 후퇴시켜 산재 예방과 책임자 처벌 효과를 크게 줄였다. 법 이름 자체에서 ‘기업’도 빼버렸다.

문재인의 말은, 누더기 중대재해법을 개정하라는 요구에 대한 외면이기도 하다. 이선호 씨 사망 이후 꾸려진 정부·여당 태스크포스(TF) 단장 김영배도 법 개정 요구에 선을 그으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정부는] 시행령을 잘 준비하고 법 취지를 달성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중대재해법으로는 대다수 산업재해를 처벌할 수 없고, 원청과 기업주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도 숭숭 뚫려 있다.

기업주들은 이런 법조차 못마땅하다며 후퇴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아우성치는 재계의 눈치를 보며 시행령 제정에서 노사 의견을 모두 감안하겠다고 밝혔다. 추가 후퇴 우려가 있는 것이다.(물론 일부 조항에서는 노동계 의견도 수렴했다고 생색내겠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문재인이 이선호 씨 유가족에게 사과를 건네며 “안타깝다” 운운하는 것은 기만적인 립서비스일 뿐이다.

정부·여당이 중대재해법을 치적으로 내세우며 노동계에 보내는 메시지는 ‘당장 법 개정은 어림없으니 지금의 중대재해법에 만족하라’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노동계의 눈치도 보지만 더 주되게는 친기업 기조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이선호 씨 빈소에 방문한 날,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재벌 대기업을 모아 놓고 ‘K-반도체 전략 보고대회’에 참석했다. 삼성 반도체는 희귀 질환과 암 산재 피해자를 양산한 ‘살인 기업’인데 말이다. 거기서 문재인은 “불확실성에 맞서 선구적인 투자에 나서 준 기업인들의 도전과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지난 취임 4주년 기념 연설에서도 문재인은 “경제 성장률 4퍼센트 이상 달성”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산업재해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었다. 그래 놓고 질 좋은 공공 일자리 대신 민간 일자리 창출에 힘쓰겠다니, 이 말인즉슨 기업은 지원하고 청년들은 열악한 일자리로 몰아넣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민주당 이탄희의 중대재해법 개정안 매우 미흡하다

민주당 주류의 입장은 아니지만, 5월 13일 이탄희 의원이 중대재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법 제정 과정에서 빠진 벌금형 하한을 다시 도입하고, 판사가 양형을 선고할 때 산재 전문가나 피해 단체 등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는 양형특례조항을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벌금형 하한 도입과 양형특례조항 재도입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현재 중대재해법은 산재에 책임이 있는 법인 또는 책임자에게 50억 원 이하(사망) 또는 10억 원 이하(부상·질병)의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는데, 처벌에 하한선이 없으면 솜방망이 벌금형에 그치기 쉽다. 예컨대 하한제가 없는 현행 산안법은 최대 벌금을 1억 원까지 부과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평균 벌금이 450만 원밖에 안 된다.

그러나 이탄희 의원 개정안은 중대재해법의 더 큰 허점들은 전혀 건들지 않는다. 특히 처벌돼야 할 자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문제는 외면한다.

현재 중대재해법은 상당수 경영주나 사업주가 안전담당자를 앞세워 처벌을 면할 수 있고, 지방자치단체장, 중앙행정기관장 등 책임 공무원과 건설업의 원청인 임대인과 발주처도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대다수 산재가 벌어지는 50인 이하 사업장은 법 적용이 3년 유예됐고 5인 미만 사업장이 아예 적용 제외됐다.

처벌 수위를 높여도 처벌 대상 자체가 매우 축소된 상황이라면 한계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탄희 의원은 지난해 누더기 중대재해법이 통과될 때 유감을 표하며 표결에 불참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에도 이탄희 의원은 큰 틀에서 법 통과를 환영하며 앞서 언급한 두 조항(하한제와 양형특례조항)이 후퇴한 것만 주되게 비판했다.

현재 재계는 처벌 수위를 낮추자는 요구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중대재해의 기준을 더 까다롭게 바꾸고 범위도 대폭 축소해 처벌 대상 자체를 줄이려고 한다. 이런 점에 비춰 봐도 이탄희 개정안은 기업주들을 제대로 규제하기에 너무 미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