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강남 고급 클럽 ‘버닝썬’에서 VIP 손님들을 유치하기 위해 여성 약물 강간을 상품처럼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다. 특히 버닝썬과 유착한 경찰이 성범죄를 묵인·방조한 정황이 드러나 공분이 들끓었다.

《지금 이 목소리를 듣는 것이 우리의 정의다 - 버닝썬 226일 취재 기록》 이문현 지음, 포르체, 2021, 15800원

경찰에 대한 불신과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문재인이 직접 “철저한 진실 규명”과 “엄정한 사법처리”를 약속하며 진화에 나섰다. 경찰과 검찰은 조직의 “명운을 건” 수사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후 3년이 흘렀다. 그러나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따위는 없었다. 버닝썬의 ‘몸통’ 대다수는 법망을 빠져나가 처벌을 피했고, 버닝썬 게이트에 대한 검·경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오늘날 버닝썬 사건은 유명 연예인들의 개인적 범죄와 일탈로 둔갑됐다.

이런 상황에서 버닝썬 게이트의 본질이 무엇인지 곱씹어 보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 나왔다.

《지금 이 목소리를 듣는 것이 우리의 정의다 - 버닝썬 226일 취재 기록》(이문현 지음, 포르체, 이하 《기록》)은 버닝썬 게이트를 최초 보도한 MBC 이문현 기자의 취재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책이다.

《기록》은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을 낱낱이 폭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어, 버닝썬 게이트의 진정한 본질이 경찰 부패에 있음을 잘 보여 준다. 《기록》의 일독을 추천하는 이유이다.

불가침 영역

버닝썬은 온갖 범죄의 온상이었다. 성범죄, 마약 유통, 탈세, 불법 건축 등이 버젓이 행해져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이처럼 강남 고급 클럽이 “불가침 영역”이 된 것은 경찰의 비호와 부패한 권력의 뒷배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다.

특히, 《기록》에 묘사된 버닝썬의 여성 약물 강간 사건과, 이에 대한 경찰의 행태는 유흥업계와 권력자들, 이를 비호하는 경찰의 추악한 면모를 잘 보여 준다.

버닝썬은 하룻밤에 수천만 원씩 쓰는 VIP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여성 강간에 필요한 모든 것을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준비했다. VIP룸에서 강간당하는 여성들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와도 전담 가드들은 VIP가 방해받지 않도록 철저히 문을 지켰다.

법망을 피하기 위해 교활하고 역겨운 수법도 사용됐다. 여성이 의식을 잃기 전에 호텔로 ‘스스로’ 걸어가는 장면이 CCTV에 찍히게끔 하거나, 약물에 취한 여성이 의식을 차리면 성폭행범인 손님과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도록 협박했다.

버닝썬 게이트는 경찰 부패와 정치권력의 비호 속에서 성폭력 사건이 방조되고 덮어진 권력형 비리 의혹 사건이다

이런 성범죄에 대한 경찰의 미온적인 대처는 정말 피가 거꾸로 솟게 만든다.

피해 여성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경찰을 찾았다. 그러나 경찰은 ‘물뽕’으로 불리는 GHB의 특성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

피해 여성을 조사한 경찰들은 손님과 함께 찍힌 사진과 CCTV를 보며 “호감이 있었네”, “그러려고 클럽 갔잖아” 하면서 “피해자를 2번 무너뜨렸다.” 약물 강간 가해자로 지목된 해외 부호들이 유유히 본국으로 돌아가도 경찰은 어떤 제재도 하지 않았다.

결국, 성폭행을 모의하고 자행한 가해자 중 단 한 명도 죗값을 치르지 않았다. 또한 ‘약물 사용 성범죄’ 형법 개정안도 20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해 자동폐기 됐다.

이처럼 버닝썬의 여성 약물 강간 사태의 핵심에는 유흥업계 기업주와 부유층 손님의 성범죄를 눈감아 준 썩어 빠진 경찰에 있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검찰의 무능하고 안일한 대처도 문제다.

“남성 카르텔”?

이런 상황은 버닝썬 게이트의 본질이 여성운동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한국사회에 만연한 강간 문화”나 “남성 카르텔”에 있지 않음을 보여 준다. 당시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남성 일반을 싸잡아 잠재적 강간범으로 취급했다. 좌파 노동단체 일부도 이런 문제적 견해를 추수했다.

그러나 남성 일반을 성범죄자로 매도하는 관점은 버닝썬 게이트의 진정의 주범인 사회의 권력층과 부패한 국가기관의 책임을 흐리게 만든다. 약물 강간 같은 끔찍한 성범죄를 저지르는 남성들은 극소수다. 훨씬 많은 남성들은 성범죄에 비판적이며 제대로 수사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끔찍한 성범죄를 유흥으로 즐기는 부유한 남성들은 검·경의 비호 아래 유전무죄 특혜를 누리지만, 돈 없고 빽 없는 노동계급 남성들은 무전유죄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문재인 정부의 은폐 시도 의혹

아쉽게도, 이 책은 버닝썬 게이트와 현 정부와의 관련 의혹을 다루지 않는다.

버닝썬 핵심 관계자들 사이에서 “경찰 총장”으로 불렸던 윤규근 총경을 고리로 한 청와대 측의 버닝썬 게이트 은폐 의혹 문제를 회피한 것이다. 윤규근은 노무현 청와대와 문재인 청와대 모두에서 근무했던 이력의 소유자다.

특히 윤규근이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실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버닝썬 은폐 시도의 일차 배후이자 더 뒷선으로 이어지는 핵심 고리라는 의혹이 무성했다.

또한 정부가 갑작스레 윤중천의 별장 성접대 의혹(이른바 김학의 동영상) 사건 재수사를 지시한 게 버닝썬 게이트를 덮기 위한 술책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졌다.

때마침 버닝썬 게이트가 일파만파 퍼지던 2019년 3월 14일, 경찰청장 민갑룡이 국회에 나가서 “별장 동영상 속 남성은 김학의가 맞다”고 발언했다.

검찰은 동영상 속 남성을 특정할 수 없다고 했던 상황이었다. 상황이 돌변했고, 검찰은 버닝썬 사건을, 경찰은 김학의 사건을 수사하며 서로 대치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민갑룡 발언 직후 윤규근은 “이 정도면 [민갑룡 청장이] 발언을 잘 하지 않았느냐”고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이에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 이광철이 “더 세게 해야 했다”, “검찰과 경찰이 대립하는 구도를 진작에 만들었어야 했는데”라고 답문을 했다.

결국 경찰청장의 발언 나흘 후인 3월 18일, 문재인은 김학의 사건 재수사를 지시하며,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의 검·경 유착과 은폐 의혹”에 대해 “진실을 밝히고 스스로 치부를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정황은 문재인 정부가 버닝썬 게이트를 “고의로 부실 수사”하고 은폐하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결국 두 사건 모두 (검·경이 모두 연루됐을 것이므로) 흐지부지됐고, 김학의 출국금지 과정에서 일어난 절차상 위법에 연루된 부차적 건에서만 일부 기소가 이뤄졌다.

장자연 사건도 민주당 의원들이 내세운 윤지오 증언의 진실성이 의심돼 흐지부지됐다. 결국 거듭된 사기극 속에서 의혹의 대상이 된 권력자들은 어느 사건에서도 제대로 조사받거나 단죄받지 않았다.

이처럼 버닝썬 게이트는 경찰 부패와 정치권력의 비호 속에서 성폭력 사건이 방조되고 덮어진 권력형 비리 의혹 사건이다.

《기록》에 문재인 정부의 은폐 시도 의혹 문제가 비어 있는 것은 아쉽지만 버닝썬 게이트에 아로새겨진 부패한 경찰의 민낯을 폭로한 것은 매우 유의미하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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