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395호)에서 양효영 기자가 글로벌 디지털세 합의의 의미를 이모저모 분석했다. 나는 이에 덧붙여서 IT 거대 다국적기업과 국가들 간의 관계, 그리고 국가 간 경쟁과 갈등이라는 면에서 글로벌 디지털세 합의의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주로 조세 정의나 세수 확충 차원에서 글로벌 디지털세 합의를 조명하지만, 글로벌 디지털세 도입을 둘러싼 더 큰 맥락을 봐야 한다.

글로벌 디지털세 IT 거대 다국적기업과 국가들 간의 관계, 국가 간 경쟁과 갈등이라는 면에서 봐야

유럽연합이 디지털세 도입을 오랫동안 추진하고 심지어 일부 유럽 국가들이 OECD 합의안 도출이 실패하면 독자적 디지털 서비스세 추진을 강행하겠다고 했던 것은 단지 과세 수익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자기 나라 디지털 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려는 것이다. 유럽연합 국가들은 미국의 디지털 거대 기업들의 유럽연합 내 우위(시장 지배)를 인정하거나, 그 기업들에 매이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며, 자국의 디지털 산업을 키우려 한다.

유럽연합이 일반개인정보보호법(이하 GDPR) 등 데이터 보호나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률을 제정한 것도 이 점을 잘 보여 준다. 유럽 국가들이 구글 등 IT 거대 다국적기업들의 데이터 수집과 처리 등을 규제하고 나선 것인데, 미국은 이런 조처들이 미국의 IT 거대 기업들의 이익을 크게 잠식할 것으로 우려한다.

GDPR 등은 개인정보보호라는 명분으로 추진되지만 그 뒤에는 데이터 사용을 둘러싼 기업 간 이익 다툼과 국가 간 갈등이 있다.(이는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와 단절하지 않는 한 진정한 개인정보보호와 데이터의 공적 이용이 가능하지 않음을 뜻한다.)

미국은 데이터의 자유로운 국경 이전을 옹호하는 반면, 유럽연합은 적정성 평가 통과를 요구하며 데이터 이전을 제한하려 한다. 구글 같은 기업에게는 이미 널리 퍼져 있고 거대한 데이터 수집 수단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것이 신예 경쟁자를 따돌리는 무기인데도 말이다. 데이터 국경 이전 문제에는 국가안보 문제도 얽혀 있다. 중국은 이를 이유로 데이터 현지화를 시행하며, 이는 미국과의 중요한 갈등 사안이다.

글로벌 디지털세에 합의한 미국의 입장도 마찬가지 견지에서 살펴볼 수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세수를 충원하려고 또는 서방 동맹 복구를 위한 양보로 유럽연합의 디지털세 요구를 수용했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미국은 다자 합의를 이끌어 국제적 리더십을 보여 주는 동시에, OECD 합의안에 미국의 요구를 상당히 많이 반영시켰다.

미국은 자국의 IT 거대 다국적기업들의 이익 보호를 맹렬히 추진했다. 이들은 미국의 선도 기업일 뿐 아니라 국가 안보에도 중요한 부문이다. 이번 OECD 합의를 통해 유럽 각국의 디지털 서비스세는 폐지하기로 한 한편, 합의된 ‘디지털세’는 이름이 무색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있을 정도다. 또, 애초 주로 미국 IT 거대 기업이 적용 대상이었던 것에서 소비자 대상 사업(컴퓨터, 휴대폰, 자동차 등)까지 적용 범위를 넓힌 것도 경쟁자를 겨냥하는 미국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법인세 최저 세율 도입을 제안한 것도 세수를 늘리려는 목적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국 기업의 국외 이탈을 막고 핵심 부문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소수 IT 거대 기업이 기존 경제 질서나 국가에 얽매이지 않고 디지털 특성을 기반으로 세계시장을 지배한다는 생각이 완전한 착각임을 보여 준다. IT 거대 기업들은 현지 국가의 용인 없이는 시장 지배를 유지하기 어렵고, 국가 간 갈등과 무관하게 자유로운 인터넷 공간에서 지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국가 간 경쟁의 한가운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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