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인 1991년 12월 25일에 소련이 무너졌다. 모스크바 크렘린궁에 걸린 붉은 깃발이 내려지고 다시는 내걸리지 못했다.

좌파 대부분은 이를 사회주의의 패배로 여겼다.

반면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는 “모든 사회주의자들이 환호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소셜리스트 워커〉 1면은 이렇게 환호했다.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졌다 ─ 이제 진정한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하자.”

1991년 8월 19일, 소련 보수파들이 쿠데타에 동원한 탱크를 막으며 꽃을 들고 올라탄 시민들 ⓒ출처 Ivan Simochkin

소련은 사회주의 국가를 자처했다. 소련 헌법에는 “모든 권력은 노동계급에게 있다”고 적혀 있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권력을 장악한 노동자 평의회를 통해 노동계급이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소련과 소련의 동유럽 위성 국가들은 국가자본주의 사회였다. 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었다.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과 그 후계자들은 착취와 억압으로 점철된 잔혹한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결정권

이것이 러시아 혁명의 필연적 귀결은 아니었다. 러시아 혁명은 노동자들이 사용자, 은행가, 지주 없이도 사회를 얼마든지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노동계급은 농민과 동맹을 맺고 1917년 10월에 권력을 잡았다.

혁명 러시아는 자본주의에서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철저한 민주주의로 운영됐다. 그 민주주의의 기반은 노동자 평의회였다. “소비에트”는 “평의회”를 뜻하는 러시아어이다. 노동자들은 핵심 작업장을 통제했고, 지주의 대토지가 해체돼 농민들에게 분배됐다.

동성애가 비범죄화됐다.(대다수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그에 못 미치는 온건 개혁조차 수십 년 후에나 도입된다.) 여성에게는 이혼할 권리와 언제든 낙태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됐다.

혁명을 지도한 블라디미르 레닌과 볼셰비키당은, 혁명 러시아가 살아남으려면 혁명이 국제적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혁명은 반란 물결을 촉발했지만, 안타깝게도 세계 혁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영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 14개국이 러시아를 침공해, 옛 차르 지배 체제를 복원하려 했던 백군(白軍)의 편에서 싸웠다.

[볼셰비키 지도자] 레온 트로츠키가 이끈 적군(赤軍)은 1922년에 침략자들을 격퇴하고 백군을 분쇄했다.

하지만 내전으로 인한 손실은 엄청났다. 노동계급이 섬멸되다시피 했다.

볼셰비키당은 국가 관료 기구를 떠안은 처지가 됐다. 1920년대 동안 당의 규모와 권한이 확대됐다. 스탈린은 당시 당의 서기장을 지냈다. 스탈린은 볼셰비키의 기존 입장과 완전히 단절해 “일국사회주의” 사상을 정식화해, 세계 혁명 없이도 그의 지도 하에서 사회주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1920년대 말, 관료들은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제국주의의 위협과 국내의 위기가 낳은 압력 속에서 스탈린은 1928년에 제1차 5개년계획에 착수했다. 노동계급을 쥐어짜 급속한 산업화를 밀어붙이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스탈린은 본격적인 반혁명에 나서서 유혈낭자한 폭력으로 1917년 혁명의 성취들을 무로 되돌렸다. 5개년계획은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로의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국가자본주의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두 가지 분단선을 꼽았다.

첫째 분단선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분단선이다. 공장과 설비 같은 “생산수단”의 소유·결정권은 자본가들에게 있다.

자본가들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한다. 이는 단지 자본가들의 탐욕 때문이 아니다. 여기서 자본주의의 둘째 분단선, 즉 자본가들 사이의 분단선이 중요하다. 경쟁 때문에 기업들은 벌어들인 이윤을 다시 신기술에 투자하고 노동자들을 더 쥐어짜서 경쟁 상대보다 더 많은 이윤을 차지해야 한다.

그 결과, 마르크스의 표현처럼 “축적을 위한 축적, 생산을 위한 생산”에 기반한 체제가 생겨난다.

소련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의 첫째 분단선, 즉 노동자들과 생산수단 사이의 분단선이 뚜렷이 드러났다. 스탈린주의 노동법의 핵심은 노동계급을 예속시키는 것이었다.

1929년 9월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채택한 한 결정문은 관리자의 명령이 “휘하의 행정 직원과 모든 노동자들에게 무조건적 구속력”이 있다고 명시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둘째 분단선은 어떤가?

소련만 떼어 놓고 보면 둘째 분단선은 소련 사회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스탈린주의 경제 안에서는 시장 경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련을 제국주의, 즉 자본주의 국가 간 세계적 경쟁 체제라는 맥락에서 보면 다르다. 소련은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군사적·경제적 경쟁에 매여 있었다.

이 경쟁 때문에 관료 기구는 자본주의 기업과 똑같이 행동해야 했다. 관료의 목표는 노동자들을 쥐어짜 자본을 축적하는 것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동유럽에 국가자본주의 모델을 이식했다. 중국·쿠바처럼 사회주의를 표방한 다른 국가들도 국가자본주의의 형태를 취했다.

제국주의 경쟁은 냉전기에 격화했다.

스탈린이 사망한 1953년에 소련·동구권 통치자들은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소련 관료 집단은 1930년대에 중공업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관료 집단은 이를 위해 혹독한 탄압으로 “노동 생산성”을 늘렸다(노동자들을 더 쥐어짰다). 하지만 공포에 의존해 노동 생산성을 늘리는 것은 한계에 부딪혔다.

현대 자본주의가 산업 발전의 초기 국면을 넘어서려면 건강하고 교육받은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탈린 사후 이런 위기는 스탈린의 하수인들 사이에서 분열을 낳았다. 그러다가 니키타 흐루쇼프가 개혁을 약속하며 권좌에 올랐다.

흐루쇼프는 1956년 소련 공산당 20차 대회에서 스탈린을 향한 “개인 숭배”를 전면 비난했다.

흐루쇼프는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의 공포 정치라는 “채찍”뿐 아니라 임금 인상과 소비재 증산이라는 “당근”도 약속했다. 하지만 흐루쇼프 또한 관료들의 지배가 위협받으면 언제든 탄압을 동원할 태세가 돼 있었다.

계급 투쟁

소련과 동구권은 계급 사회였고 서방과 마찬가지로 계급 투쟁이 벌어졌다.

이미 1953년 체코슬로바키아와 동독에서는 노동자들이 생활 수준에 대한 공격에 맞서 저항에 나섰다.

게다가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 연설은 스탈린주의 국가들 내에서 이데올로기적 혼란을 낳았고, 평범한 사람들은 통치자들에게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1956년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는 노동자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개혁가” 흐루쇼프는 어떻게 대응했나? 탱크를 보내서 헝가리의 노동자 혁명을 분쇄했다.

소련은 1950~1960년대에 놀라운 경제 성장률을 보였다. 그러나 끊임없는 자본 축적 압력을 극복하기에는 경제 내부의 발전이 부족했다.

소련의 국민 경제는 번번이 자본 축적의 발목을 잡았다. 소련의 후진성 때문에, 냉전기 군비 경쟁은 소련 경제에 특히나 무거운 부담이 됐다.

흐루쇼프의 개혁은 소련 국가자본주의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지 못했다. 흐루쇼프는 1964년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에게 밀려났다. 하지만 브레즈네프도 근저에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1970년대에 소련은 심각한 침체에 시달렸다.

이는 “개혁파”와 “보수파”의 분열을 낳았다.

개혁파는 국가자본주의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몇몇 개혁을 추진하려 했다. “보수파”는 관료들의 지배가 위협받는다며 일체의 변화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결국 1984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통치자로 지명됐는데 이는 소련의 위기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고르바초프는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변신

하지만 개혁 시도는 너무 미미하고 뒤늦었다.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지배자들의 분열은 더 심해졌고, 피지배층 사이에서는 관료들의 통치에 공공연히 의문을 제기하는 세력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1989년에 혁명적 물결이 동유럽의 스탈린주의 독재 정권들을 휩쓸며 무너뜨렸다.

1991년에는 소련 자신이 무너졌다. 관료 집단 내 보수적인 일부가 고르바초프에 맞서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한 것이 그 계기가 됐다.

하지만 옛 소련의 지배계급은 자신의 계급 권력을 부지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정치 기구는 바뀌었지만 사용자 대 노동자의 사회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공산당 정치인들은 “민주주의” 정치인들로 변신했다.

국영 기업의 관리자들은 민영화된 기업의 관리자가 되거나, 때로는 소유주가 되기도 했다.

몇몇 스탈린주의 국가들에서는 반정부 운동 세력과 신흥 자본가들도 새로운 정치 체제의 일부가 됐다.

하지만 신생 국가 기구들을 지배한 세력이 “개량된” 스탈린주의자들이든, 자유 민주주의자들이든, 혹은 그 둘 모두든 간에, 그 정부들은 모두 세계 자본주의의 논리를 받아들였다. 이들은 냉혹한 자유 시장 정책들을 추진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자들이 소련 붕괴에 슬퍼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탈린주의가 파묻어 버린, 1917년 사회주의 혁명과 노동계급 자력 해방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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