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4월 20일 발행된 글의 수정판인데, 단지 마오쩌둥을 언급한 부분만 뺐다.


최근 사회진보연대는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제하 펴낸 소책자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는 글을 발표했다. 후자는 소책자에 실린 글을 조금 수정·보완한 글이다. 이 글들이 나오기 전까지 사회진보연대는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의 근본 원인이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와 팽창주의·간섭주의 때문이고, 나토의 동진도 “러시아에 대한 동유럽 국가의 불안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의 결론은 러시아 규탄과 러시아군 즉각 철수에만 맞춰져 있었고, 서방과 나토에 관련된 요구들(나토 확장 반대, 나토의 군사 지원 반대, 러시아 제재 반대 같은)은 빠져 있었다.

게다가 사회진보연대는 서유럽의 군비 증강이 “최선”의 평화 보장책이라고 주장한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의 인터뷰를 번역·게재하기도 했다.(이에 관한 비판 글은 본지 408호 ‘우크라이나 전쟁은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인가?’를 참조하시오.)

이번에 발표한 글들에서 사회진보연대는 냉전 이후에도 계속 존재하는 나토와 나토의 동진, 미국 제국주의의 문제들을 인정한다. 특히, 나토의 동진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위기의 한 축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사회진보연대는 러시아 규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강조점을 바꾸지는 않는다. 나토의 동진에도, 또 미국 제국주의에도 불구하고 (글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를 통해 사회진보연대는 서방과 친서방 나라의 좌파들이 나토를 반대하거나, “미제국주의의 본질을 폭로해야 한다거나 하는 주장”도 반박하려는 것이다. 현재 서방과 한국 같은 친서방 나라에서 활동하는 좌파의 상당수가 러시아 비판에만 초점을 맞춘 채 서방 지배계급의 전쟁 관여 문제를 회피하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회진보연대도 이런 좌파들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나토의 동진과 개입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계속해서 러시아 제국주의 비판에만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규칙 기반 질서?

사회진보연대는 미국이 만든 세계 질서를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또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질서는 “강대국들이 표면적으로나마 무력이 아니라 규칙을 사용하도록 했고, 전쟁이 끊이지 않던 유럽에서 독일을 안정적으로 유럽연합으로 끌어들이면서 평화를 가져왔다. 불완전하나마 핵무기의 확산을 막은 것도 이러한 국제질서의 힘”이라고 한다. 이 질서는 특히 “전후 형성된 민족자결이라는 원칙 아래” 형성됐다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라고 한다. 사회진보연대의 이 주장은 강대국들이 규칙을 사용하도록 했다는 그들의 주장과 짝을 이루는 것이다.

이 주장들에서 드러나듯이, 사회진보연대는 미국이 만든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제국주의가 아니라고 본다. 제국주의는 “강대국이 약소국에 무제한적으로 원하는 바를 강요”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제국주의 대 제국주의가 맞붙는” 게 제국주의 시대라는 것이다. “강대국들이 무력이 아니라 규칙을 사용하도록 했다,” “독일을 안정적으로 유럽연합으로 끌어들인 것”을 사례로 드는 것을 보면, 사회진보연대는 미국이 만들려 한 국제질서는 강대국들 사이의 군사적·지정학적 경쟁이 사라진(또는 사라져 가는) 질서라고 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사회진보연대는 이 질서가 “그 이상에 걸맞게 운영되지 않은 측면이 많다”고 한다. “역사적인 이중잣대,” “질서를 편의적으로 왜곡해 온 위선”에 기반을 둔 “미제국주의”가 이 질서를 스스로 약화시키는 주요 힘 중 하나였다. 대표적 사례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과정에서 온갖 불의가 누적”된 것이다.

그러나 이 설명이 뜻하는 것도 미국 자신이 만든 규칙을 지키지 않고 약소국인 이라크를 침략한 게 제국주의적이라는 것이지, 미국이 만든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자체는 제국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약소국인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만 제국주의이고, 미국에게서는 제국주의적인 면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보는 것과 연결된 주장이다.

그래서 사회진보연대는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미제국주의를 반대하고 본질을 폭로해야” 한다는 좌파 일각의 주장이 “너무나 도착적인 인식”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인식은 사회진보연대의 이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윤소영 교수에게서도 나타났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발발 직후 윤소영 교수는 아래와 같이 썼다.

“금융세계화를 위한 통치성은 … 미국과 유럽의 공동 지배, 나아가 미국과 일본의 공동 지배가 형성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공동 지배 때문에 중심부 국가와 중심부 국가 사이의 제국주의적인 전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캘리니코스는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미국과 유럽이나 소련이나 중국의 세계 전쟁을 예고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미국의 일방주의 때문에 유럽이나 소련이나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고 예상하지요. … 그러나 저는 고전적인 제국주의론을 논거로 하는 이런 주장이 별로 설득력이 없는 과도한 주장일 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고전적 제국주의론을 고스란히 자신의 논거로 삼는다는 윤 교수의 주장은 정확한 지적이 아니다.(이에 대해서는 ‘알렉스 캘리니코스 방한 강연: 제국주의와 국제 정치경제’를 보라.) 그럼에도 오늘날 미국이 주도한 국제질서도 본질적으로 고전적 제국주의처럼 다른 자본주의 강대국들과의 지정학적·경제적 경쟁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캘리니코스의 주장은 옳다.

오늘날 미국과 러시아·중국 사이의 전쟁 가능성이 심각한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회진보연대도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위에서 작동하였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글로벌 통합이 ‘부정적으로’ 쇠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사회진보연대는 미국이 주도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질서의 내적 모순이 무엇인지를 더 살펴봤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강대국들도 규칙을 준수하도록 만들려는 미국과 약소국을 침략하는 미국은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을까? 미국이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만들려 했는데도 나토를 동진시켜 러시아를 포위하려 한 까닭은 무엇인가? 등등.

사뭇 달라 보이는 이 정책들 속에도 미국의 이익과 패권을 지키려는 일관된 힘과 논리가 작동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진보연대는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 듯하다.

나토의 동진

사회진보연대가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 이유는 첫째, 그들이 미국과 옛 소련 사이의 경쟁을 제국주의적 경쟁으로 보지 않는 것과 관련 있다. 미국이 서유럽·일본과 함께 새 ‘질서’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은 냉전 시기부터였고, 이 질서는 미국이 소련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취한 전략으로 봐야 한다. 특히, 나토 동진의 성격을 알려면 이 점이 필수적이다.

분명 미국이 수립한 (냉전) 세계 질서는 그전의 제국주의적 경쟁과는 형태가 달랐다. 1930년대에 제국주의적 강대국들의 갈등은 세계 각지에 이미 제국(식민지들)을 가진 영국·프랑스가 새롭게 ‘영향권’(이하 세력권)을 확대하려는 독일·일본과 충돌하는 형태를 띠었다.

그러나 미국은 제2차세계대전에서 승리한 후 세계의 일부에 자신의 공식 제국(형식적 식민지들)을 만들려 하지 않았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생산적인 자국 산업이 자유무역을 통해 세계경제 전체로 침투하고 이를 통해 세계적인 패권 국가가 되길 바랐다. 패전국인 독일·일본은 물론이고, 전쟁으로 지쳐 버린 서유럽 강대국들도 이에 도전할 만한 처지가 못 됐다.

미국은 IMF와 세계은행 같은 국제 기구들을 만들어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창조했다. 미국 자본과 제품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서유럽 지배자들도 소련의 위협을 훨씬 더 위험하다고 봤기 때문에 미국에 협조하는 게 더 낫다고 봤다. 물론 이런 국제질서를 통해 미국만이 득을 본 것은 아니다. 냉전 시기 전반부의 장기 호황 덕분에 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도 자유무역 확대로 득을 보며 그 시기에 경제를 꾸준히 성장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승전국인 소련은 미국에 맞설 힘이 있었고, 특히 미국의 정책이 자신이 확보한 세력권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생각했다. 미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산업 생산성 수준으로는 자유무역을 통한 경제적 경쟁에서 배겨내기 힘들다고 본 것이다. 1947~1948년 소련 관료들은 자신들이 지배하는 세력권에 미국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음으로써 미국의 세계 제패 기도에 맞서기로 했다.

이에 맞서 미국은 서유럽과 일본 같은 자본주의 선진국들을 자국의 지정학적·이데올로기적 리더십 아래로 결집시켰다. 친미 정당들(당시에 사회민주주의 정당 포함)에 대한 재정 지원, 유럽 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마셜플랜, 나토 창설과 유럽에 미군 기지를 건설하는 것 등을 통해 서유럽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했다.

이처럼 나토는 처음부터 유럽에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창설된 것이다. 그래서 소련이 붕괴한 후에도 나토는 해체되지 않았다. 1990년대 빌 클린턴 미국 정부는 유럽 동쪽 깊숙이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해 러시아를 포위하는 데에 나토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미국 민주당의 주요 지정학 이론가이자 전략가로 나토 동진의 주요 설계자였던 브레진스키는 《거대한 체스판》(1997)에서 미국을 솔직하게 제국으로 묘사하면서, 나토와 유럽연합을 “미국의 패권을 위한 유라시아의 교두보”라고 했다.

그래서 사회진보연대도 “냉전 종식 이후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 나토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위기의 한 축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진보연대는 나토 동진의 성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규정하려 하지 않는다. 중동 지역 국가들을 공격한 나토의 “이중성”을 비판하지만 이는 나토 동진의 진정한 성격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더욱 성공적으로 추진돼 온 미국의 ‘유라시아주의’를 제국주의적이라고 인정하지 않으면서 사회진보연대는 불균형적으로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와 확장주의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강조하고, 비판의 초점도 여기에 둔다.

미소 양대 세력의 대결을 제국주의적 경쟁으로 보지 않는 좌파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대다수 좌파가 옛 소련을 사회주의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진보연대는 적어도 1940년대 이후의 소련은 국가자본주의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의 경쟁은 “제국주의 대 제국주의가 맞붙는” 것이라고 규정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비록 사회진보연대가 이런 결론을 내리는 것은 극구 피하지만 말이다.

둘째, 사회진보연대는 미국이 만든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주요 특징 하나를 “전후 형성된 민족자결이라는 원칙”으로 보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옛 식민지들이 독립한 상황을 설명하려는 듯하다.

레닌과 부하린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20세기 초반에 내놓은 고전적 제국주의론은 자기들끼리 세계를 분할하고 재분할하는 처지로 내몰린 서방 열강이 한편으로는 전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지 직접 통치로 나아간다는 주장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따라서 제2차세계대전 이후 옛 식민지들이 독립하고 옛 제국들이 사라진 현상은 많은 좌파들의 사고에 혼란을 주었다. 크리스 하먼은 이와 관련된 혼란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좌파들은 대부분 제국주의 개념을 서방 자본가 계급의 제3세계 착취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조용히 재(再)정의하고 레닌의 이론에서 그토록 중요했던 제국주의 열강 간의 전쟁몰이를 무시했으며 실천에서는 체제 전체를 카우츠키가 말한 초제국주의의 한 변형쯤으로 이해했다. 동시에 식민주의에 대한 얘기를 “신식민지”나 “반식민지”에 대한 얘기로 대체했을 뿐이다.”

사회진보연대의 주장도 좌파들의 이런 혼란과 관련 있다. 사회진보연대가 말하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는 카우츠키가 말한 초제국주의의 한 변형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봤듯이, 이 질서는 제국주의적 경쟁을 없앤 것이 전혀 아니었다. 미소 양대 초강대국의 제국주의적 경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은 식민주의 지배를 지속할 생각이 없었다. 미국은 자유무역 질서를 확립해 (상대적 경쟁력이 있는) 자신의 제품들과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질서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영국·프랑스 등의 구(舊) 제국이 해체되길 바랐다. 제2차세계대전 때 미국은 영국을 지원하면서, 그 대가로 영국의 식민 제국을 해체하고 미국이 중동산 석유에 접근할 기회를 확대하라고 끈질기게 요구했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영국·프랑스 등은 다시 제국을 부활시키려 했지만, 거세지는 민족 해방 운동 때문에 결국 식민지들을 포기해야 했다. 미국은 옛 식민지에서 탄생한 신생 국가들이 미국의 세력권에 포함되고 미국 제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한에서는 이런 국가들과 공존했다. 그러나 신생 국가들이 반대편으로 넘어가려 할 때는 세력권을 보호하기 위해 유혈 낭자한 전쟁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미국은 자신의 세력권을 지키기 위해 일부 지역에서 영국·프랑스로부터 옛 제국을 인수받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랑스 철수 후 남베트남을 차지해 처절하기 이를 데 없는 전쟁을 벌인 뒤 1970년대 중반에 쫓겨날 때까지 그곳을 지배한 것이다.

이런 사례들을 내가 더 자세히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리기를 우호적으로 품은 사회진보연대가 이런 사례들을 모를 리 없을 테니 말이다.

사회진보연대도 인정하듯이, “남아공과 인도를 포함한 아프리카 지역과 남아시아 지역 대부분의 나라는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이 국가들이 “미국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지정학적 이익을 좇을 뿐”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진보연대가 말하는 “규칙 기반 질서”가 제3세계 국가들에게 전혀 민주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사회진보연대는 이 질서에 모종의 진보성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말이다.

셋째, 사회진보연대는 나토 동진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무시하고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가 “우크라이나 민중의 자결권”이라며 옹호한다. 나토 문제를 회피하는 다른 좌파들(대개 온건파들)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를 오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갈등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됐듯이, 사회진보연대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민족자결의 원칙 아래” 형성됐다고 주장하는데,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를 민족자결이라는 명분으로 옹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토와 유럽연합의 동진은 우크라이나나 폴란드 같은 동유럽 국가들이 아니라 미국이 추진한 정책이다. 사회진보연대도 인정하듯이, 나토의 동진 금지는 미국이 약속한 것이었지만 “클린턴 정부는 이를 존중하지 않고 위 나라들[동유럽 국가들]의 나토 가입을 추진했다.” 서방이 나토 확장을 통해 이번 전쟁의 발발을 위한 조건을 조성하고 확전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사회진보연대는 ‘우크라이나 민중이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겠다는 결정을 했고 나토 가입을 신청했으니, 좌파는 우크라이나 민중을 지지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나토 가입 문제는 우크라이나가 소련에서 독립한 이래 우크라이나인들 사이에서 여론이 첨예하게 갈리는 쟁점이었다. 설사 우크라이나 민중 다수가 나토 가입을 지지했다손 쳐도 좌파는 이런 선택이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주장해야 한다. 친제국주의적 민족자결권은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게다가 한쪽 제국주의의 위협이 두려워 다른 제국주의 세력권에 가담하는 것은 결국 장기판의 말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든, 젤렌스키 정부가 나토의 군사적 지원에 힘입어 승리하든 그 결과는 파괴적일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오래지 않아 또다시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 더 큰 갈등의 불씨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이 점령한 지역에서 반대편 사람들을 축출하는 ‘인종 청소’가 자행될 공산도 크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승리한다고 해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을 항시 두려워하게 되고, 나토의 전초기지 구실을 하는 병영 사회가 돼 기본적인 민주적 권리들에 대한 침해도 더 심해질 것이다.(이미 젤렌스키 정부는 이런 조처를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속국 신세를 면하는 대신 경제적·군사적으로 서방에 의존하는 속국이 되는 것이다.

이런 최악의 상황이 아닌 바람직한 대안은 각 지역에서 자국의 제국주의적·친제국주의적 지배자들에 반대하는 운동이 벌어지는 것이다. 가장 좋기로는 이 운동들이 자국 정부를 타도하는 혁명으로 발전하고 이를 통해 국제 노동계급이 단결하는 것이지만, 설사 운동이 그 수준에 못 미치더라도 자국 지배자들에 맞서는 운동이 벌어져야 각 제국주의 세력권이 벌이는 참상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이와 관련해서는 본지에 실린 ‘나토의 우크라이나 개입 말고 무슨 대안이 있냐고?’를 참조하시오.)

역사적으로도 제국주의간 쟁투와 (약소국의) 국민 방위 전쟁은 종종 서로 얽혀 왔고, 그때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국민 방위 전쟁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 해 왔다. 예를 들어, 제1차세계대전 전에 발칸반도의 여러 국가들은 각자 독일 또는 러시아의 지지를 얻어 독립과 영토 분할 등에서 이득을 보려고 했다. 결국 제1차세계대전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황태자 암살의 책임을 물어 세르비아를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지지하며 참전했고, 갈수록 더 많은 국가들이 참전하면서 끔찍한 세계대전으로 발전했다.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발칸 반도의 여러 국가들은 자신이 속한 동맹에 따라 승전하기도 했고 패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뒤이어 각자 차지한 영토에서 끔찍한 인종 청소가 자행됐다. 심지어 이런 일은 거듭 반복돼 왔는데, 가장 최신 사례는 1990년대 옛 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내전이 벌어지고, 마침내 나토가 개입해 수만 명을 살상한 것이다.

그동안 사회진보연대는 한미일 군사동맹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갈등과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킨다고 옳게 비판해 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우크라이나 민중의 선택이라고 옹호한다면, 앞으로 사회진보연대는 한미(일) 군사 동맹에 반대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한국민의 다수가 미국과의 군사 동맹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대만을 둘러싼 양국간 전쟁 위험도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은 ‘대만인들이 미국과의 동맹을 원한다’며 개입을 정당화할 공산이 크다. 그때도 사회진보연대는 미국 측을 지지할 것인가?

넷째, 사회진보연대는 미국이 “규칙 기반 질서”를 만들려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미국이 이라크 등을 침공한 것은 이 질서를 깨뜨리는 일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런 침공이 “규칙 기반 질서”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기술(記述)하고 사례를 나열할 뿐이다.

그러나 미국이 냉전 이후 만들려 한 질서와 이라크 침공 모두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냉전에서 승리한 이후 미국은 한동안 세계 유일 초강대국처럼 군림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적 지위 하락은 계속됐다. 패전국이었지만 미국의 동맹국이 된 독일과 일본은 이미 1970년대에 미국의 경제적 우위를 위협할지도 모를 잠재적 도전자로 떠올랐다. 1990년대부터는 중국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2000년대에 중국이 미국의 세계 패권에 대한 잠재적 도전자로 떠올랐다.

그래서 지난 30년 동안 미국은 기를 쓰며 자신의 세계적 헤게모니를 지키려 해 왔다. 이를 위해 미국 지배자들은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앞세워 세계를 더욱 개방시키고 미국 자본과 상품이 유입되도록 만들려 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자신이 다른 강대국들에 견줘 결정적 우위를 지닌 부문인 군사력을 이용해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려 시도한 것이었다. 1990년대에 미국은 나토를 확장케 해 러시아를 포위했고, 이라크에 대한 경제 제재와 폭격으로 중동에서 미국의 지배권을 보여 주려고 했다. 그러다 2000년대 초에는 이라크를 완전히 장악하면 중동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을 굳힐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도박을 벌였다. 이 도박은 결국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미국 지배자들이 중동에 대한 지배력을 보여 주려고 한 까닭은 일단 석유에 대한 지배력 때문이었다. 정작 미국 자신은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 유럽·일본·중국·인도 등이 중동 석유에 훨씬 더 의존한다. 따라서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 핵심 목표는 다른 강대국들에 대해 석유 지배권을 가지려는 것이었다.

이처럼 냉전 이후 미국이 주도한 세계질서도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2010년 이후 미국의 주요 경쟁 상대는 중국으로 바뀌었지만, 서방 진영 내에서 경제력을 성장시킨 유럽과 일본 등도 통제하기 위해 미국은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 제국주의 역시 미국에 만만찮은 경쟁 상대라는 점을 보여 준다.

사회진보연대는 미국이 주도한 질서에 모종의 진보성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질서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고 자신의 최대 강점인 군사력을 십분 활용하는 정책이었을 뿐이다. 프랑스 트로츠키주의자 클로드 세르파티가 말한 “무장한 세계화” 개념을 승인하며 이런 세계화를 열심히 반대했던 사회진보연대에게 이런 점들을 다시 상기시켜야 한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게다가 미국 주도 세계질서는 그 내적 모순 때문에 약화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진보연대가 이를 아쉬워하고 마치 이 질서의 외부로부터 권위주의의 위협이 제기된 듯 묘사하며 이 질서를 옹호하는 것은 또 다른 모순일 뿐이다. 오바마의 ‘아시아로의 회귀’ 독트린에서 드러나듯이 미국은 계속 약화되고 있는 자신의 헤게모니를 강화하기 위해 전쟁 위험을 더욱 키우고 있다.

사회진보연대는 “자유주의 질서의 복귀를 바라는 것은 아마 확실히 무력할 것”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 대안으로 “더 민주적이고 공정한 새로운 규칙과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며 “민주화된 유엔” 같은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의견 조율을 위해 탄생한 유엔을 수십억 명의 평범한 대중을 위해 개혁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순전한 착각일 뿐이다. 서로 경쟁하는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협약으로 세계를 민주적이고 공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환상이다. 사회진보연대는 카우츠키가 말한 ‘초제국주의’를 실제로 상정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경쟁이 필연적으로 군사적·지정학적 경쟁을 동반하는 세계적 체제로서 제국주의 체제를 만들었다고 본다. 자본주의를 끝내지 않고서는 제국주의적 경쟁을 끝낼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제국주의 체제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고, 특히 좌파들이 자국 지배자들의 제국주의적·친제국주의적 방침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뜻이다. 사회진보연대처럼 러시아 비판에만 집중한다면 전쟁 위험을 고조시키고 있는 또 다른 제국주의 세력인 미국과 나토에 대한 환상만 키울 뿐이다. 한미동맹과 신자유주의를 더 강화하자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도 무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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