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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살만은 환대받아선 안 될 잔혹하고 호전적인 독재자

11월 16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총리이자 왕세자인 무함마드 빈살만이 방한했다.

윤석열 정부는 빈살만을 국빈으로 대접했고, 삼성 이재용과 현대차 정의선 등 재벌 총수들이 줄지어 빈살만이 머물고 있는 호텔을 찾았다.

빈살만은 한국과의 무기 협력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윤석열은 한국-사우디아라비아의 무기 공동 개발·생산을 제안했다.

빈살만이 한국 정부와 수십조 원 규모의 투자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언론들은 이를 반기며 ‘제2의 중동 붐’이 찾아올 것이라고 보도한다.

그러나 빈살만은 환대 받아서는 안 될 인물이다. 그는 잔혹한 독재자이며 중동에서 전쟁을 일삼는 전쟁광이다.

빈살만은 2015년에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이자 국방부 장관이 돼, 노쇠한 국왕 살만 빈 압둘아지즈를 대신하는 실질적 통치자로 등극했다.

그후 빈살만은 왕족 내 경쟁자들을 숙청하고 사우디 왕정에 비판적인 인물들을 탄압했다. 빈살만을 비판하다가 튀르키예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 내에서 살해당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대표적 사례다.(관련 기사 본지 264호 ‘사우디 언론인 카슈끄지 살해 사건: 이 세계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다’)

흔히 빈살만은 무자비한 독재자이지만 개혁도 추진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가 추진했다는 개혁의 사례로는 여성에게 운전을 허용한 것 등이 종종 언급된다. 여성 인권을 신장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인권 활동가이자 중동 전문 매체 〈미들이스트 솔리대리티〉 공동 편집자인 아민 네메르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빈살만이 선출된 자가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개혁자를 자처함으로써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해요. 빈살만이 2018년에 여성의 운전을 허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간 여성 운전을 쟁취하기 위해 캠페인을 벌여 온 활동가들을 투옥시켰다는 사실도 봐야 합니다.”

지난 8월 정부 비판적인 게시글을 트위터에 썼다는 이유만으로 34세 여성 누라 알까흐타니 씨에게 45년 형을 선고한 것도 수많은 탄압 사례의 하나일 뿐이다.

빈살만은 예멘에서 “세계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를 초래한 자이기도 하다.

빈살만이 예멘을 공격해 일으킨 7년간의 전쟁으로 예멘인 37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중 70퍼센트는 5세 미만 아동이었다. 국제 기구들은 예멘인 1900만 명이 식량 위기 상태에 놓여 있다고 추산한다.

빈살만이 주도한 전쟁으로 수많은 예멘인들이 난민이 됐다. 한국으로도 수백 명이 왔다(‘[독자편지] 예멘인 난민이 말한다: 빈 살만은 범죄자이고 학살자입니다’를 보시오).

“예멘의 도살자” 2018년 3월 빈살만 영국 방문 당시 시위 ⓒ출처 Alisdare Hickson(플리커)

배경

빈살만이 억압적이고 호전적인 정책을 펴는 배경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적·지정학적 위상 변화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페르시아만 연안의 강국들은 석유 수출 수익에 힘입어 지난 20여 년간 경제를 크게 성장시켜 왔다.(미국의 오랜 제재에 시달려 온 이란은 상대적으로 더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이 강국들은 2011년 아랍 혁명 동안에 일어난 격변들에 개입해 중동 내에서 지정학적 영향력을 뻗쳐 왔다.

아랍 혁명의 물결이 바레인에 이르렀을 때 사우디아라비아는 그곳으로 병력을 보내 시위를 진압했다. 그리고 이집트 혁명 과정에서 집권한 무르시 정부를 무너뜨린 2012년 군부 쿠데타를 적극 후원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또 다른 걸프 왕정 국가인 아랍에메리트)는 역내 경쟁 세력인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려고 예멘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리비아·시리아의 무장 단체들을 배후 지원해서 그곳에서 일어난 내전에 개입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런 행보는 미국의 중동 내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감소한 것을 배경으로 한다. 이라크 전쟁에서 패배한 미국은 중동 개입에서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려 해 왔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긴 힘의 공백을 사우디아라비아·터키·이란 등 역내 강대국들이 메우려 하면서 중동의 지정학적·군사적 경쟁이 심화되고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빈살만은 그런 불안정성을 키우는 가장 적극적인 행위자의 하나다.

한편, 빈살만이 야심찬 모험을 벌이는 동안 평범한 사우디아라비아인들의 삶은 악화되고 있다. 네메르는 이렇게 지적했다. “빈살만은 탈석유화를 선언하며 산업 다각화를 말하고 있어요. 하지만 세계경제가 악화하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미 펜데믹 이전부터 생계비 위기가 찾아오고 있었어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지배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산 무기 공급이 막히자 새로운 무기 공급로를 찾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그런 빈살만에게 무기를 공급해 득을 보려 한다. 한국의 기업주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따낼 사업들을 보며 군침을 삼키고 있다.

빈살만이 수많은 사람들을 가혹하게 억압하는 역겨운 자라는 점은 윤석열과 기업주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