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대남은 동네북이 되었나》 이선옥 지음, 담담, 2022년, 248쪽, 15,000원

지난 대선에서 뜨거운 화두였던 ‘이대남’과 페미니즘 문제를 다룬 책이 새로 나왔다. 페미니즘에 날 선 비판을 가해 온 이선옥 작가(이하 직함 생략)의 신간 《왜 이대남은 동네북이 되었나》(담담)이다.

저자는 청년 남성에 대한 편견에 도전하며 그들이 분노하는 이유를 밝히려 한다. 저자는 2015년 이후 페미니즘이 부흥하면서 공적 견해와 담론이 청년 여성 편으로 기울어 왔다며 “불공정하게 기울어진 담론의 장에 소외된 목소리”를 전하겠다고 한다.

이선옥은 청년 남성들을 차별주의자, 극우 등으로 낙인찍는 것에 반대한다. 20대 남성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고 페미니즘에 반감을 드러냈다고 해서 그들에게 그런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대남들이 다른 세대의 남성들에 견줘 성평등 의식이 가장 높다고 지적한다.

이런 지적들은 옳다. 페미니즘에 반감을 드러내는 청년 남성이 모두 성차별주의자나 보수주의자는 아니다. 20대 남성은 대부분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지지한다.

지난해 대선에서 윤석열에게 표를 던진 청년이 다 우파인 것도 아니다. 이 점은 윤석열 정부 출범 몇 달 만에 정부 지지를 철회한 청년 남성이 매우 많다는 사실로도 확인된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에 대한 환멸을 느낀 청년 남성 중 일부가 대선 때 윤석열에 기대를 걸었다가, 윤석열 정부 출범 뒤 얼마 안 가 실망하며 대거 지지를 철회한 것이다.

페미니즘 비판

이선옥 저자의 페미니즘 비판에는 옳은 면이 일부 있다. 박근혜 퇴진 운동 성공 이래로 여성단체와 활동가 사이에 널리 수용되는 종류의 페미니즘은 남성 일반을 잠재적 성범죄자나 권력자로 취급하는 남녀 대립적 페미니즘이다. 이런 페미니즘에는 성평등을 지지하는 청년 남성들도 반감을 보여 왔다.

저자는 페미니스트들의 이중잣대나 문화 영역에서 검열적 태도를 보이는 것을 비판한다. 그리고 ‘피해자 중심주의’와 ‘2가 가해’ 개념을 거부할 뿐 아니라, 페미니스트들이 이런 개념들을 선택적으로 적용한다고도 비판한다. 가령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회계 부실과 활동 방식의 문제를 들어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의원을 비판했을 때 여성단체들이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의원 편을 든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저자의 일리 있는 페미니즘 비판에도 불구하고, 차별에 관한 서술과 정치적 방향성은 매우 혼란스럽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대중의 환멸을 이용하려는 보수 우파의 성별 이간질을 비판하지 않고, 도리어 이준석, 윤석열을 이대남의 대변자처럼 그리며, 여가부 폐지에 찬성한다. (이선옥은 2021년 7월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국민의힘 의원 하태경과 함께 여성가족부 폐지를 옹호했고, 그 뒤에도 그와 공조해 왔다.)

‘젠더 갈등은 허구적인 담론일 뿐 페미니즘은 아무 문제 없다’는 페미니즘 측의 주장이 잘못된 것은 맞다. 지난 대선 때 본지의 여러 기사에서 밝혔듯이, 남성 일반을 성범죄자나 성차별 가해자로 간주하는 주장과 실천은 남성과 여성 개개인들 사이에 갈등을 낳고, 사회적으로 젠더 갈등이 부각되는 데 일조한다.

그럼에도 이선옥처럼 페미니즘을 젠더 갈등의 원인으로 볼 수는 없다. 페미니즘에 반발하는 상당수 청년 남성이 가진 불만의 근원은 심각한 사회 불평등에서 비롯한다. 청년층의 최대 불만 사항인 일자리와 주택난, 생계난 등은 이윤 체제에서 비롯하며, 이 체제의 최대 수혜자이자 수호자인 지배계급이야말로 젠더 갈등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청년층의 최대 불만 사항인 일자리와 주택난, 생계난 등은 이윤 체제에서 비롯한다 ⓒ조승진

게다가 보수 우파는 평범한 청년 대중의 고통을 해결하기는커녕 더 악화시키는 정책들을 추진하면서 대중의 불만이 자신을 향하지 않도록 성별 이간질의 일환으로 페미니즘을 공격해 왔다.

페미니즘이 불공정하다며 반발하는 청년 남성들의 반응에는 남녀 대립적 페미니즘이 남성 일반을 가해자, 일종의 특권층으로 간주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담겨 있다.

하지만 불평등의 원인이 부와 권력이 극소수에 집중돼 있는 사회 체제에 있다는 것을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도 담겨 있다.

페미니즘의 모순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대체로 그 사상이 일관성 없음을 비판하는 수준에 그칠 뿐 피상적이다.

페미니즘은 여성 차별에 반대하지만 그 이론과 전략은 여성 차별의 원인과 여성 해방의 진정한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 계급이 아니라 성별을 사회의 핵심 분단선으로 여기는 관점 때문에 여성 차별에 맞서 노동계급의 여성과 남성을 동참시키는 광범한 운동을 구축하지 못한다. 그래서 여성 차별을 유지하고 부추기는 체제에 효과적으로 도전하지 못한다.

게다가 사회적 기반의 협소함(중간계급, 특히 지식인)과 이론적·정치적 약점 때문에 페미니즘은 보수 우파의 공세에 쉽게 취약해진다.

개혁주의적인 페미니즘 지도자들은 개혁 입법을 통해 성평등을 추구하는데, 사회의 기본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일부 페미니스트 지도자가 정치권과 공직에 편입되면 페미니즘의 애초 목표와 실제 현실 간 간극이 커지게 된다. 페미니스트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종종 여성운동의 압력을 의식하긴 해도, 자본주의 체제의 제약을 구현하면서 갈수록 온건해지며 평범한 여성 대중의 열망과 멀어진다.

남성 차별?

저자는 여성할당제와 여가부가 불공정하다며 폐지를 주장한다. 심지어 이제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차별받는 시대가 됐다며 “국가기관의 신경계에 각인된 남성차별”을 말한다. 여성 할당제, 공공기관 승진 심사에 군 경력을 배제하는 지침(2021년 기획재정부 지침), 남성 징병제를 그 근거로 제시한다. 이런 주장은 매우 부적절하다.

우선,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와 권력은 극소수에 집중돼 있는데, 이런 계급 문제를 무시한 채 여성 할당제와 여가부를 중심에 놓고 불공정을 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게다가 사회의 핵심적인 불평등을 가리며 우파의 성별 이간질에 이용되기 쉽다. 여가부 폐지를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는 긴축 정책을 시행해 노동계급 등 서민층의 여성과 남성 모두의 처지를 악화시키고 있다.

물론 여성 할당제가 평범한 여성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제도는 아니다. 저자의 지적처럼 할당제의 수혜자는 특정 정체성을 가진 집단 모두가 아니라 그 내부의 소수이다. 여성 정치인 수가 곧 민주주의 확대라고 볼 수 없다는 지적도 맞다.

하지만 여성 할당제로 인해 남성이 차별받는다는 주장은 단순한 비약이다. 사회 상층부에는 여전히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다. 한국은 서구에 비해 그 격차가 훨씬 더 크기도 하다.

다음으로, 남성 징병제로 평범한 남성들의 고통이 큰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성 징병제가 여성을 우대하는 남성 차별적 제도인 것은 아니다. 한국의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고자 유지하는 계급적 차별이고 억압이다. 부유한 가정 배경을 가진 청년 남성보다 평범한 가정 배경을 가진 청년 남성이 훨씬 많이 징집된다.

공공기관 승진 심사 때 군 경력을 배제하는 지침이 군필 남성에게 박탈감을 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승진은 극소수 개인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지 군필자 모두에게 주는 보상이 아니다. (군필자 모두에게 혜택을 주면서도 여성이나 장애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는 더 합리적인 보상 방안이 있을 수 있다.)

2021년 초 기재부 지침으로 고위직 승진에서 남성이 불리해졌다는 주장도 별 근거가 없다. 2021년 공공기관의 여성 임원 비율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1]

저자가 정체성 정치와 정치적 올바름(PC)을 “반문명적” 퇴행으로 비판하는 것도 지나치고 심지어 위험하다. 저자는 이준석이 국민의힘 대표 시절에 장애인 단체의 시위를 비난하며 소수자 정치를 공격한 것을 “일리가 있다”며 두둔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차별받는 사람들의 운동에서 채택되는 정체성 정치는 긍정적 측면과 약점을 함께 봐야 한다. 정체성에 호소해 차별에 맞서 스스로 싸우는 것에는 진보적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정체성을 중심에 놓고 운동을 벌이는 방식은 차별에 맞서 광범한 대중 운동을 건설하는 데 방해가 되고, 운동의 파편화와 분열을 야기하기 쉽다.[2]

‘정치적 올바름’(PC) 문제도 균형 있게 봐야 한다. 이 용어는 차별적 언어 쓰지 않기, 언어 개혁, 소수자 우대 조치 등 여러 차별 개선 조처를 묶어서 일컫는 말이다. 정치적 올바름으로 불리는 여러 조치에는 차별 개선에 도움이 되는 게 많다.

그러나 정치적 올바름의 일부 측면은 과도하고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언어와 문화 면에서 과도한 면이 있다. 이런 문제는 좌파적 견지에서 비판해야 한다(자세한 설명은 본지 380호 ‘차별, 혐오, 정치적 올바름’을 보시오).

이 책의 페미니즘 비판은 일부 합리적 측면이 있지만, 지나침과 혼란이 많다. 차별을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관계들과 이를 지탱하는 핵심 제도들에서 떼어놓고, 경쟁 시스템 내에서 개인의 피해 문제를 중심으로 차별 여부를 판단하다 보니 페미니즘의 반편향으로 나아간다. 이런 주장은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워 보수 우파에 이용되기도 쉽다.


[1] 2021년 규모 1000명 이상인 공공기관 및 지방공사·지방공단의 여성 임원 비율은 2020년보다 각각 2.5퍼센트포인트, 0.9퍼센트포인트 하락해 4.4퍼센트, 3.7퍼센트를 기록했다. 규모 1000명 미만의 공공기관에서도 여성 임원 비율은 3퍼센트포인트 하락해 7.1퍼센트를 기록했다(여가부).

[2] 자세한 설명은 필자의 책 《정체성 정치와 남녀 대립적 페미니즘 ─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책갈피)을 참고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