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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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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최근 음악(비평) 논쟁에 대하여

김세원
레프트21 7호 | 기사입력 2009-06-04 19: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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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지 음악 ‘애호가’이며 비평가의 비평 내용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논쟁을 보면서 생각한 바를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싸구려 커피〉에 대한 두 필자 모두의 견해에 약간의 이견이 있으며, 음악에서 가사의 비중, ‘인디음악’의 전망, ‘복고음악’의 유행 등 구체적인 논쟁점들이 있으나 충분한 지식이 부족하고 논의의 효율성을 위해 다루지 않았다.

이 논쟁은 ‘듣기 싫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논쟁의 구도가 비틀려 있기 때문이다. 음악에서 중요한 것이 ‘가사인가 아니면 다른 요소들인가’ 또는 ‘내용인가 형식인가’를 둘러싼 논쟁에서 사회주의자의 예술탐구는 어떠해야 하는가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틀림은 음악을 사회적 맥락에서 비평해야 한다는 ‘음악비평의 요건’에 대한 주장이 ‘좋은(참된) 음악’은 사회적 정서를 잘 반영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데서 생긴 혼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넓게 보면 ‘음악 비평의 요건’에 대해서는 두 필자 모두 동일한 관점을 공유할 것이고 생각된다. 그러나 앞선 혼란 때문에 김준효는 ‘참된 음악’은 ‘모든 요소의 종합’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언급하면서도 결국 ‘형식에 천착하느라 아무런 내용(사회적 정서)도 담지 못하는 예술보다 내용을 담은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는 모순된 주장을 낳았다. 또한 글에서 제시되는 ‘내용’의 예가 사회적 정서(사회적 분노/희망 등)로 한정돼 있다는 점 때문에 ‘오해’가 증폭됐다.

되돌아 보기

지루할지 모르지만, 꼬여버린 논쟁 구도에서 진정한 논점을 가려내기 위해 비판과 반비판의 핵심을 되짚어 봐야겠다. 김준효는 사회적 맥락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를 분석했고, 〈장기하와 얼굴들〉을 크라잉 넛과 유비해 제시하면서 인디음악계의 가능성에 대한 분석으로 연결했다. 그리고 시대의 역동성이 대중음악의 새로운 발전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김준효는 ‘상품논리가 아니라 평범한 노동자, 서민의 분노와 박탈감을 표현’한 펑크밴드(크라잉 넛)라든가, 경제위기와 정치영역에서 새로운 역동성이 대중음악의 새로운 발전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대중가수들의 ‘사회운동 참여’, 음악의 메시지가 중요한 일부가 되고 있다는 점(과 그 근거로 제시된 가사내용), 특정장르의 음악(포크/락)이 부상하고 있다는 점 등을 그 예로 제시한 것은 음악을 사회운동을 위한 도구로만 분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을 만하다.

뿐만 아니라 ‘형식적 완성미를 추구하느라 내용을 담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는 주장을 통해 음악에서 내용을 참된 예술의 1차 요소로 제시하고 있다. (축적된 음악 역량이나 장르간 크로스오버 등 단어가 비평에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요소로 언급되지 않는다)

이와 더불어 김준효가 ‘새로운 실험’이라고 평가하는 근거는 사회적 정서를 반영했다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모호하고 억지스러운’ 사회적 분석이 감행되고 있다. 이것은 ‘음악에서 정치관념이나 논쟁을 발생시키는 이론이나 사상, 서사 등이 1차적 요소가 되지 않는다’거나 ‘음악을 쉽사리 사회와 결부해서 결론내려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충분한 요건이 된다. (김영진이 제기한 음악에서 가사의 비중은 별도의 논점이다)

‘형식보다 내용’?

그러나 김영진이 음악의 독특한 요소를 지적함과 더불어 비평의 전문성 부족이라는 점을 제시해서인지, 김준효는 반비판에서 ‘형식주의’ 비판이라는 폭격을 한다. 형식주의는 형식이 곧 내용이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와 완전히 분리시켜 예술의 형식 그 자체만을 비평의 요소로 다뤄야 한다는 주의인데, 내가 보기에 〈레프트21〉에 개재된 김영진의 글이 형식주의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얼마든지 메시지(기호나 문자로 제시된 정보내용으로 보자)를 담고 있는 문자 외의 기호에 대한 분석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이 곧 형식주의는 아니다. 심지어 형식주의를 비판한 트로츠키는 형식주의를 비판하기에 앞서 형식주의자들의 연구 작업이 상당히 유익하다는 것을 밝히고 있기도 하다. “적법한 한계 내로 제한된 형식주의의 방법들은 형식의 예술적이고 심리적인 특색을 분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리뷰〉가 감상문이 아니고 비평의 의미라면 좌파 신문의 비평이라고 하더라도 음악의 여러 요소들을 기반으로 한 엄밀한 분석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김준효는 사회주의자의 예술탐구라는 주제로 형식주의를 비판함으로써 논점 바꿔치기나 논점 흐리기를 하는 듯이 보인다. (이와 더불어 김준효는 자신의 글이 ‘오독과 오해’를 받고 있다고 말하는데 ‘오독과 오해’가 있었다면 이 글의 서두에 밝힌 필자의 혼동에서 비롯된 것이지 비판자의 독해력이나 이해력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악의적) 논점 바꾸기나 논점 흐리기만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김준효가 형식주의를 비판하면서 음악을 모든 요소의 총체로 보지 않고, 결국 ‘형식보다 내용’을 참된 예술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김준효의 마지막 답변에서 ‘완성도’ ‘영향력’ ‘성취’ ‘혁신적’ ‘창조적’이라는 동일한 범위로 묶일 수 없는 단어들이 ‘좋은(참된) 음악’이라는 단어로 모인다. 그리고 ‘좋은 음악’의 기준을 ‘사회적’ 정서의 반영 여부로 제시하고 있다. 즉, 김준효는 음악이 사회적 맥락에서 분석되고 탐구될 수 있다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 정서의 반영 여부가 좋은 예술의 기준이라고 주장하면서 결국 형식과 내용을 대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맥락과 연관된 예술 비평과 ‘참된 예술’의 기준을 구분해야

트로츠키는 《문학과 혁명》에서 형식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트로츠키가 이에 대해 지면을 할애한 구체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10월혁명 이후 1924년이라는 첨예한 계급투쟁의 시기에 미래주의와 연관된 프롤레타리아쿨트 운동의 이론적 기반이 형식주의였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이 이전의 부르주아 문화의 유산들과 단절한 채 고유한 예술형식을 창조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으로, 형식은 초사회적, 초역사적이지 않으며 예술은 (새로운) 형식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한 것이다. 더구나 엄밀히 말해 이 비판은 정치를 거부했던 ‘형식주의 비평’에 대한 비판이지 ‘참된 예술’은 사회적 정서를 반영한다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트로츠키는 ‘경향예술과 순수예술의 논쟁은 맑스주의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변증법적 유물론은 그것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이 형식주의와 ‘내용주의’ 사이의 논쟁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을 평가하는 데 이 둘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며 참된 예술의 기준에 대한 정답이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4호에서 시네드 케네디가 말한 것처럼 예술과 이데올로기(사회, 정치적 맥락 포함)의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좋은(참된)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밝히는 일도 그러하다. 예술적 창조는 “예술의 특수한 법칙에 따라 사실을 변형, 굴절하는 것”하는 것인데, 참된 예술이 이에 담겨 있는 내용만으로 판단될 수는 없다.

트로츠키는 “예술은 우선 그 자체의 규칙, 즉 예술의 규칙을 통해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예술적 경향이 어떤 역사적 시기에 어떠한 방식으로 생겨났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주의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참된 음악은 음악을 둘러싼 모든 요소의 ‘규칙’에 의해 구체적으로 말해질 수 있으며, 음악이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맥락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자리매김할 경우 음악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해 왔던 것보다 더욱 흥미롭게 진행될 것이라는 점”(에드워드 사이드, 〈음악은 사회적이다〉)이고 그것이 사회를 총체적으로 고찰하는 맑스주의에 기댔을 때 더욱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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