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 · 정의연 사건은 마녀사냥으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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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정의기억연대
그러나 마녀사냥에서는 힘 없는 이견자나 기성 체제 반대자들이 책임 전가를 위한 사냥감이 된다. 가령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같은 친북 좌파,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으로 몰린 ‘이단’ 종파 신천지,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이라는 가히 전 국민적 대의를 표방하며 가히 전 국민적 지지를 받아 온 개인과 단체다. 특히, 윤미향 의원은 집권당 국회의원이고, 정의연은
혹자는 위안부 운동이 한미일 삼각 동맹의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우파의 마녀사냥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윤 의원을 영입한 문재인 정부도 한미일 삼각 동맹의 일부로서 그 동맹을 확고히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윤미향 의원은 그 당의 위선적인 ‘위안부’ 정책을 전혀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그 당의 의원이 됐는데도 왜 그와 정의연이 한미일 동맹의 ‘걸림돌’이라는 말인가.
말이 안 되는데도 ‘마녀사냥’ 프레임을 내세우면 민주당에 유용한 점이 있다. 부정 의혹의 진실 규명 문제를 경쟁 정치세력 간 갈등 문제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그래서 편가르기와 줄세우기에 순응하지 않은 집단은 있으나마나 한 비존재 또는 무존재로 취급된다.
범민주당계만 그런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민중당도 윤미향·정의연 부정 의혹 사건의 본질을 “마녀사냥”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진보진영은 우선적으로 윤미향에 대한 마녀사냥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자들은 윤미향·정의연을 변호하는 김에 진보진영의 과거 부정 문제까지 끄집어내 정치적 복권을 꾀한다. 통합진보당 당내 경선 부정, 노회찬 전 의원의 금품 수수, 윤미향 의원 부정 의혹을 모두 우파 또는 국가의 모함과 탄압에서 비롯한 억울한 마녀사냥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비도덕적인 부정·비리 행위가 없었을 때나 부당함, 억울함, 마녀사냥 당하고 있음을 주장할 수 있다. 적어도 노회찬 전 의원은
세 가지 사건
사실, 진보진영 일각의 부정·비리 문제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0년만 봐도 부정부패를 권력자들의 전유물로 이해해 온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들이 몇 건 있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노 전 의원, 윤미향 의원 관련 사건들을 모두 한 묶음으로 묶어서 똑같이 ‘억울한’ 사건으로 취급하는 것은 서로 구별되는 문제들을 극도로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그리 되면 진보계의 전진을 위한 아무런 정치적 교훈도 이끌어 내지 못할 것이다.
둘째, 윤미향 의원이 위안부 운동을 정치적으로 모호한 민주당의 의원이 되는 사다리로 이용하려다 운동 내부의 비판에 직면했다. 그동안 정의기억연대의 전신
여/야 진영논리의 문제점
이 사건들에서는 공교롭게도 모두 안타까운 망자들이 생겨났다. 이재용처럼 그보다 더한 부정부패를 저지르고도 떵떵거리며 권세를 누리는 자들도 허다한 세상에서 이들의 죽음에 연민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망자의 존재가 운동이 추구해야 할 진실을 대변하느냐는 다른 문제이다.
무엇보다, 서로 다른 세 사건을 성격이 동일한 ‘마녀사냥’ 사건으로 만드는 것은 잘못됐다. 각각의 사건들이 발생한 계급적 토대가 다르다. 앞의 두 사건은 노동자 정당에서 벌어진 것이고, 나머지 한 사건은 부르주아 여당 의원과 관련돼 있다. 구별해야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분리시키고 적대하게 만들어야 할, 계급 기반이 다른 정치세력들의 사건들을 한 묶음으로 묶어 취급하는 것은 잘못된 진영논리로 귀결된다. 즉, 계급을 초월한 ‘민주 대 반민주’ 그리고 ‘애국 대 매국’ 식 포퓰리즘 진영논리이다.
물론 어떤 목적을 쟁취하기 위해 집단적 투쟁을 벌일 때 진영을 형성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진영’은 “정치적·사회적·경제적으로 구분된 서로 대립되는 세력의 어느 한쪽”을 뜻한다.특별히 윤미향·정의연 사건의 경우 반제국주의 진영을 강화하려고 분투해야 한다.
그러나 윤미향·정의연 사건의 경우 현재 지배적인 진영논리는 반제국주의 세력이기는커녕 친제국주의 세력의 일부인 민주당과 한국 정부를 아방
반면, 일본의 좌파/노동운동 세력을 국제연대로 동원하는 것은 이상주의나 망상처럼 치부됐다. 한국 노동계급
제국주의 진영 대 반제국주의 진영의 진영논리가 작용됐었어야 했다. 그러나 윤미향·정의연은 민족, 여성,
이런 류의 진영논리가 특히 열성적인 문재인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물신숭배의 대상이 된 듯하다. 문제는 진보진영의 대표 주자들
이런 식으로 진보진영이 자체 내의 부정 의혹 앞에서 우물쭈물하거나 ‘제 식구 감싸기’를 하면 진보 염원 대중의 신뢰를 잃게 된다. 시민운동 전체가 도매금으로 불신받을 수 있다.
더구나 이번에는
개혁주의
위에서 언급한 사건들에는 서로 구별되는 특징들뿐 아니라 그 모두를 공통으로 관통하는 근본적인 정치적 문제가 있다. 개혁주의 문제가 그것이다.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 사건은 자민통 계열이 원내 진출을 위해 선거중심주의로 조급하게 이동하던 과정에서 벌어졌다.
노회찬 전 의원의 사건은 사회민주주의 정치인이 총선을 앞두고 선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친민주당계 정치 브로커의 돈을 받았다가 검찰의 표적이 된 사건이다.
개혁주의가 시스템의 점진적 개혁을 지향하면서 기존 질서를 인정하고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체제의 부패에도 부지불식간에 둔감해지는 과정이 부정부패 문제를 예방하지 못하고 점점 자신을 불미스러운 일부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이런 사례를 남아공 ANC 정부와 브라질 룰라 정부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사회를 정의롭고 평등하게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사건들을 올바로 평가하고 제대로 된 정치적 교훈을 끌어내야 한다. 개혁주의 정치는 개혁을 위해 투쟁하지만, 체제 내에서 개혁을 지향하는 자체의 전략 때문에 때때로 체제의 부패가 그들을 덮친다. 따라서 개혁주의를 대체할 대안과 이를 노동계급 속에서 구현할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조직이 성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