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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되고 있는 이집트 정부의 성소수자 탄압:
이집트 정권은 성소수자 속죄양 삼기 중단하라

이집트 엘시시 정권이 성소수자 마녀사냥을 확대하고 있다. 이집트의 인권단체 ‘인권을 위한 이집트 이니셔티브’(EIPR)는 9월 22일 ‘무지개 깃발 사건’ 이후 현재까지 보안당국의 단속으로 57명이 체포됐다고 발표했다.

이집트 정부의 성소수자 탄압 규모는 2001년 이래 최대다. 9월 22일 콘서트장에서 무지개 깃발을 흔드는 참가자

지난 9월 22일 이집트 정권은 카이로에서 열린 레바논 출신 유명 밴드의 콘서트에서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흔든 참가자 7명을 체포했다. 이 밴드의 리드 보컬은 커밍아웃을 한 성소수자이고,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 왔다.(자세한 내용은 본지 223호에 실린 ‘이집트 혁명적사회주의자단체(RS) 성명 ― 진정한 범죄자는 무지개 깃발을 흔든 이들이 아니라 그들을 구속한 자들이다!’를 참고하시오.)

이처럼 정부의 탄압에 항의하며 성소수자를 방어하는 목소리가 이집트 내에서 나오고 있는데, 이는 아랍인들이 죄다 동성애 혐오적이라는 주장이 편견임을 보여 준다.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중동에 대한 제국주의적 개입과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 인종적 편견을 퍼뜨리는 데 앞장서 왔다.

이집트 당국이 연행된 성소수자들에게 씌운 혐의는 이들이 “문란”하고 “성적 일탈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동성애 자체는 범죄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사실상 범죄시되고 있다. 연행된 성소수자들은 속전속결로 기소되고 재판에 넘겨져 불과 며칠 만에 10명이 1년에서 최대 6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연행자 중 5명은 강제로 항문 검사까지 받았다. 변호사에 따르면, 보안당국은 다른 수감자들을 부추겨 연행된 여성 성소수자를 구타하고 추행하도록 했다.

그뿐 아니라, 이집트 당국은 SNS, 채팅 어플 등 온라인 공간에서도 광범한 성소수자 색출에 나서고 있다. 10월 8일에는 페이스북에서 성소수자 인권 관련 페이지를 운영하던 활동가가 체포됐다.

최근 성소수자 탄압의 규모는 2001년에 독재자 무바라크 정권이 나일강에서 선상 파티를 열던 남성 52명을 연행했던 사건 이래로 역대 최대다. 2013년 쿠데타로 집권한 엘시시 군부 정권이 성소수자 관련 혐의로 체포한 사람의 수는 2017년 3월까지 (EIPR의 통계에 따르면) 무려 232명이다.

엘시시 정권은 성소수자 마녀사냥을 통해 정권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고 사람들의 시선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려고 한다. 이는 엘시시 정권이 위기에 봉착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엘시시 정권이 처한 경제 상황은 심각하다. 세계경제 침체와 더불어,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주요 수입원이던 관광업과 수에즈운하의 수입이 하락하면서 이집트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엘시시 정권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걸프 국가의 지원에 더욱 의존하면서, 동시에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도 향후 3년에 걸쳐 차관 13조 4000억 원을 도입하려 한다. 현재 이집트의 국가부채는 353조 원에 이르는데, 이는 이집트의 국내총생산(GDP)에 육박하는 것이다.

엘시시는 IMF 차관을 받는 대가로 초긴축 정책에 서명했다. 과거 이집트 군부 정권들이 대중의 불만을 무마하고자 제공해 온 연료·전기·식료품 보조금 등을 최대 절반까지 줄이기로 한 것이다. 이 때문에 휘발유와 등유 값, 지하철 요금 등이 두 배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이 와중에 엘시시는 리비아와 시나이반도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며 역내 영향력 확보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이집트는 중동의 대표적인 친미 국가로, 미국의 해외 군사 원조를 이스라엘 다음으로 많이 받는다.

이런 조처들은 이집트 민중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엘시시 정권이 재정 지원을 받을 요량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홍해의 요충지 섬 두 개를 양도하자, 수년 만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터져 나왔다. 8월에는 마할라 지역 섬유 노동자 1만 6000명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2주간 파업을 벌여 엘시시 정권의 위기감을 더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엘시시 정권은 탄압을 부쩍 강화해 왔다. 6월경엔 반정부 활동가들이 잇따라 연행되고 궐석 재판으로 10년 형을 받는 일도 벌어졌다.(자세한 내용은 본지 214호에 실린 ‘이집트 ― 최근 부쩍 강화된 정치 탄압은 지배자들의 위기감을 보여 준다’를 참고하시오.)

엘시시 정권은 동시에 보수적인 일부 종교 세력을 이용해 지지 세력을 결집하려고 한다. 일부 무슬림 사원은 반동성애 집회를 조직하고, 이집트 내의 소수 종교인 콥트정교회는 동성애를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에 관한 학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지금 이집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소수자 마녀사냥은 위기에 직면한 이집트 정권이 성소수자를 속죄양 삼아 자신들의 취약함을 감추고 정권을 공고화하려는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중동의 대표적 친미 국가인 이집트가 자국 내 성소수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이 미국을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지원을 받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 준다.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일부 성소수자 단체 지원은 그들의 제국주의적 악행을 가리고 세탁하기 위한 용도일 뿐이다(“핑크 워싱”).

이집트 엘시시 정권은 성소수자 마녀사냥을 즉각 중단하고 체포된 이들을 당장 석방해야 한다. 이집트 민중이 정권의 분열 시도에 맞서 단결하고 탄압을 이겨 내 억압과 차별, 착취가 없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길 바라며 연대와 지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