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오라클노조가 파업 이틀째인 17일 저녁, 3일간의 파업 계획을 변경해 무기한 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노조는 울분을 토했다. “우리를 저성과자로, 징계행위자로, 해고자로 만들면서 너희의 인생은 얼마나 나아졌느냐! 그렇게 사니까 좋은가? 우리의 피땀을 이렇게 빨아대고 너희의 뱃속을 채우니 행복한가? 우리는 더 이상 참지 않겠다!” 그리고 한국오라클 전 직원에게 호소했다. “단결합시다. 함께 갑시다. 우리가 승리합니다!”

5월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아셈타워 앞에서 열린 ‘한국오라클 노동조합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고용안정, 복지증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진

첨단 산업이란 미명

90년대 말, 닷컴 버블과 함께 떠오른 IT 산업은 “지식 산업”의 핵심이라 불리며 각광받았다.

그러나 이면에는 열악한 노동 조건에 시달리는 IT 노동자들이 있었다. 주 90시간, 일주일에 두 번 출퇴근 하며 일하던 대형 게임 개발사 넷마블 노동자 사망·자살, 과로에 시달리던 인터넷 교육 기업 에스티유니타스 노동자 자살 사건은 IT 노동자들의 처지를 보여 줬다.

한국오라클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에 나선 것은, 글로벌 대기업의 IT 노동자들도 처지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밝히 드러냈다.

IT 노동자들은 “개인주의 성향”, “권리의식 부족”, “기술과 성공신화에 대한 막연한 환상” 때문에 조직화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한국오라클,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네이버 같은 대형 IT 기업의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해 낸 것은 이 노동자들에게 단결하고 투쟁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박근혜 퇴진 항쟁의 여파 속에 노동자들이 새로운 힘을 얻어 곳곳에서 싸우고 성과를 거두기도 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박근혜 때부터 싸워 드디어 직고용 약속을 받아 냈다. 수제화 제조업체 ‘탠디’ 노동자들은 16일 간의 점거 투쟁 끝에 값진 승리를 얻어 냈다. 기간제 교사, 간호 노동자, 신세계-이마트 노동자들도 투쟁에 나서고 있다. 오라클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런 흐름의 일부다.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하는 회사가 어떻게 가능한지 묻고 싶다”

노조가 무기한 파업을 결정한 날 오전, 노동자들은 용산 철도회관에 모여 결의대회를 가졌다. 이날 조합원 약 400명이 참가했다.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서 듣는 사람들도 있었다.

파업 이틀째, 철도회관 대강당을 가득 메운 한국오라클 노동자들 ⓒ제공 한국오라클노동조합

김철수 오라클노조 위원장은 “여러분은 더이상 개인이 아니다. 단체다. 우리는 현재 파업중이다. 윗사람의 업무를 거부할 수 있다” 하고 말하며 조합원들의 결의를 북돋웠다.

자유발언에 나선 노동자들은 억눌려 온 불만을 성토했다.

2000년 즈음 입사했다는 기술직 노동자(엔지니어)가 말했다.

“일하다 보니 슬픈 소식들이 들려왔다. 100여 명이 퇴사했다. 내가 아는 후배와 동료들이 많았다. 두 달 동안 매주 한 번씩 환송회를 해야 했다.

“지난 해엔 한 명 한 명을 보내며 많이 울었다. 심지어 가고 싶지 않은데 가라고 해서 간다고 펑펑 우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하는 회사가 어떻게 가능한지 묻고 싶다.”

일주일에 무려 110시간까지 일한다는 부서의 기술 지원 노동자가 말했다.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일하고, 일 끝나고 택시타고 집에 가서 30분 씻고 밥먹고 다시 다른 고객사로 지원가는 경우도 있다.

“월요일에 출근해서 3일 동안 밤을 새면서 일한 적도 있다. 월요일에 출근하고 토요일에 퇴근한 적도 있다. 커피를 20잔씩 먹고 버틴다. 며칠 밤새고 아침에 운전하고 가는데 외곽순환도로를 타다가 트럭을 봤다. 내가 저걸 박으면 오후 일정을 빼고 잘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실제로 했다.”

“오라클은 원래 그렇다”?

영업직 노동자는 제자리 연봉에 물음을 제기했다.

“근무 환경도 좋았고 팀원도 좋았다. 한 가지, 연봉이 불만이었다. 소폭 오른 한 해를 제외하면 연봉이 인상되지 않았다. 몇 년 지나니 다른 회사에 취업한 친구들과 1천만 원 차이가 나기도 했다. ‘왜 연봉이 오르지 않을까?’ 하고 동료들끼리 이야기하면 물음표만 남을 뿐이었다. 오래 다닌 사람들은 ‘오라클은 원래 그렇다’고 했다.

“어느날 매니저가 우리 조직이 정리됐다고 했다. 권고사직을 수락하거나 다른 팀에 지원해 보라고 했다. 내근 영업직으로 옮긴 첫 해에 200퍼센트 성과를 달성했다. 그러자 다음 해엔 영업 목표치가 3배로 조정됐다.”

“집회장이 꽉 차 있었다”

노동자들은 생애 첫 파업에 기대를 드러내며 “희망이 보이고 설레서 좋다”, “노조가 생겨 뭔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조그만 기대를 갖고 참여하게 됐다” 하고 말했다. 어떤 노동자는 “[파업하면서] 다른 팀의 사정을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또 어떤 노동자는 단호하게 싸워서 이겨 보자고 결의를 다졌다.

“노조라는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이 우리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 것인지 정말 뼈져리게 느꼈다. 노조가 결성된 것이 너무 반가워 바로 가입했다. 목소리를 모아야 힘이 된다. 내가 집행부로 적극적으로 할 수는 없지만, 잘못된 제도를 바꾸고 싶다.

“파업 첫날 비가 오는데 내가 도착했을 때 50명 정도가 앉아 있었다. 연봉이 작은 사람들은 연차가 오래된 사람들뿐일 텐데, 내가 맨 마지막으로 집회 장소에 도착한 거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뒤를 돌아 보니 집회장이 꽉 차 있었다. 이 정도 결합력이면 뭔가 해 볼 만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회를 하며 20년 만에 아셈 타워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당부하고 싶은 건 시작한 만큼 끝을 못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비굴하게 걸어나가진 않겠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관철시킬 수 있도록 끝까지 한 번 뭉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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