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7년 12월 7일자 본지 기사 ‘낙태권 운동 —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의 것이다’를 재게재한 것이다. 지금 시점에 맞도록 일부 내용을 편집했다. 올해 4월 초로 예상되는 낙태죄 헌재 심판 관련 새 기사는 본지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 낙태 금지는 여성의 건강과 삶을 해칠 뿐. 이게 무슨 “생명 존중”인가? ⓒ이미진

낙태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첨예하다.

낙태죄 폐지 여론이 높아지고 낙태죄 폐지 운동도 성장해 왔다.

반면, 낙태 반대 세력의 반격도 있다. 지난해 천주교의 전국 16개 교구가 낙태죄 폐지 반대 100만 서명운동을 했다. 염수정 추기경은 명동성당에서 ‘생명 수호’ 미사를 주례한 뒤, 첫번째로 서명했다.

염수정 추기경은 미사에서 “잉태된 순간부터 태아는 여성 몸의 일부가 아닌 독립적인 한 인간”이고 “인간[태아] 생명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보다 우선”한다고 주장했다. “낙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에 대한 끔찍한 폭력이자 일종의 살인행위”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여성차별의 발로일 뿐이다. 염 추기경 주장과 정반대로, 태아는 모체에 모든 것을 의존해야만 하는 여성 신체의 일부이지 독립적 인격체가 아니다. 따라서 “태아의 권리”라는 말도 성립할 수 없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가 이미 자신의 삶을 사는 인간인 여성의 자기 결정권보다 우선한다는 것은 결국 여성을 태아의 인큐베이터로나 보는 견해일 뿐이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삶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여성에게 낙태 결정권 없이도 여성이 자기 삶을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은 공문구일 뿐이다. 여성해방 운동의 오랜 구호처럼,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의 것”이다.

역사적으로 여성들은 낙태가 불법인 상황에서도 자신이나 가족의 삶을 지키기 위해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하는 데 필사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여성들이 비위생적이고 안전하지 못한 낙태로 치명적 상처를 입거나 뒷골목에서 죽어 가야 했다. 이게 무슨 “생명 존중”인가?

낙태는 살인? 

낙태 반대론자들은 여성들이 피임도 안 하고 무책임하게 낙태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여성들은 피임이 낙태보다 더 간단하며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도 더 낫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완전한 피임법은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피임을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어떤 경우든 여성의 낙태 선택권은 보장돼야 한다.

한국에서 병원 낙태 시술은 광범하게 이뤄져 왔다. 처벌된 비율도 매우 낮다. 하지만 불법이기에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고, 단속이 강화되면 그 비용이 폭등한다. 이는 여성에게는 낙태 접근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이 된다.

뿐만 아니라, 불법 낙인이 두려워 낙태 사실을 쉬쉬해야 하고 낙태 후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일해야 한다.

이처럼 낙태죄가 여성의 건강과 삶에 얼마나 큰 해악인지를 직시한다면, “태아 생명권” 운운하며 여성의 낙태권을 부정해선 안 된다.

낙태 금지가 미치는 영향은 계급에 따라 상이하다. 낙태죄 수호 운동은 결국 우리 사회에서 힘 없고 가난한 여성들을 내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부유한 여성들은 낙태가 불법이어도 자신의 부를 이용해 안전한 시술을 받고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계급과 가난한 여성들, 여성 청소년들의 현실은 다르다. 서구에서 낙태가 불법인 시절 가난한 여성들은 위험천만한 뒷골목 낙태로 내몰렸다. 한국에서도 낙태 단속·처벌이 예고될 때면 노동계급 여성들은 치솟은 낙태 비용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여성 노동자들은 낙태 시술을 받아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아픈 몸을 끌고 출근해야 한다.

더럽고 차디찬 화장실에서 원치 않는 출산을 해야 하는 청소년들도 있다.  

결국 문제는 위험하고 값비싼 낙태로 여성들을 내몰 것인가 아니면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로 여성의 삶과 건강을 보호할 것인가이다.

낙태 반대 세력은 최근 ‘왜 여성에게만 낙태 책임을 묻느냐’는 여성운동 측의 항변(그리고 청와대 조국 수석의 답변)을 의식했는지, ‘남성 책임도 강화하자’는 얘기를 들고 나왔다. 염 추기경도 이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낙태죄 폐지 문제를 남성 개개인의 책임 문제로 비틀어, 낙태죄 폐지 요구를 무마하고 국가 책임을 흐리는 본질 회피에 불과하다.

설사 모든 남성이 무책임하다손 치더라도, 국가가 여성의 낙태 권리를 보장해야만 여성의 안전과 삶을 지킬 수 있다. 국가가 낙태죄를 폐지하고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세계 낙태권 운동의 역사는 이를 쟁취하는 데서 여성과 남성이 단결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낙태 합법화

한편,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낙태 합법화의 수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가령, 낙태 사유와 기간을 어느 정도 제한하자는 의견이 많다. 이것은 대부분의 낙태가 금지된 현행법보다는 낫다. 그럼에도 기간과 사유의 제한을 둠으로써, 그 조건의 충족 여부를 결국 국가나 의사 같은 제3자가 판단하도록 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는 여성에게 낙태 결정권을 온전히 주는 게 아니다.

상담 절차 의무화도 지지하기 어렵다. 서구의 경험을 보면, 낙태 반대론자들은 낙태 선택을 어렵게 하는 수단으로서 상담 의무를 이용해 왔다. 청소년의 경우 부모 동의를 의무화하는 것도 반대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청소년에게 낙태를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 없다. 

여성의 건강 부담을 이유로 임신 24주 이후의 후기 낙태를 반대하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 낙태를 선택한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것이고, 이를 금지하면 오히려 위험한 자가 낙태로 내몰릴 수 있다. 따라서 후기 낙태도 처벌해선 안 된다.  

여성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임신의 유지 여부는 오롯이 여성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낙태죄를 폐지하고, 기간과 사유의 제한 없이 낙태를 합법화해야 한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안전하지 못한 낙태에 내몰리는 일이 없도록 낙태에 의료보험을 적용해 무상으로 제공해야 한다. 미프진 등 낙태약도 합법화해야 한다.


19차 임신중단 전면 합법화 시위

일시 : 2019년 3월 9일(토) 오후 2시 - 6시

장소 : 종각역 4번 출구 보신각 앞

주최: BWAVE(비웨이브)


추천 소책자

[2018 개정증보판] 낙태, 여성이 선택할 권리

정진희·최미진 지음, 노동자연대, 52쪽,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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