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송환법 반대 운동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규모 시위와 점거에 이어, 8월 5일 총파업이 벌어졌다. 중국과 홍콩 당국도 중국군(인민해방군) 투입을 협박하며 결코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홍콩 사회주의자이자 ‘레프트21’ 회원인 람치렁이 최근 홍콩 상황에 관해 본지에 글을 보내 줬다. 그가 보낸 중국어 원문도 함께 소개한다.


거의 두 달 동안 벌인 항쟁 끝에 송환법(범죄인 인도 조례) 개정에 반대하는 홍콩 대중 운동이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렀다.

한편으로 정부와 지배계급 내부에 균열이 생겼다.

7월 말 고위 정무주임을 포함해 여러 부처 100명이 넘는 정무관들이 6월 이후 벌어진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을 조사하기 위해 행정장관 캐리 람에게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라고 요구하는 연서문을 발표했다.

8월 2일 비교적 하위직 공무원들도 캐리 람의 사태 처리 방식에 반발해 4만 명이 참가한 집회를 열었다. 자본가 정당인 자유당도 독립적인 조사위원회 구성에 찬성하면서 캐리 람이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콩총상회[홍콩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 - 번역자]와 국제상회 홍콩구회[무역을 촉진하는 국제 기업가 단체의 홍콩 지회로 1998년에 설립됐다 – 번역자]도 캐리 람에게 독립적인 조사위원회 구성을 요청했다. 그러나 캐리 람은 여전히 양보를 거부했다.

정부와 지배계급 내부의 시각차가 뚜렷하게 드러났지만 공개적으로 분열할 정도는 아니다.

 격렬해지는 대중 투쟁

다른 한편 송환법 반대 운동이 홍콩 전 지역으로 확산됐다. 7월 이후로 침사추이, 상수이, 툰먼, 사톈, 위안랑, 정관오, 셩완 등지에서 집회, 행진 그리고 도로 봉쇄 등이 있었다. 참가 인원도 수만 명에서 많게는 20만 명에 이르렀다.

시위대는 다섯 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송환법 개정 철회, 6월 12일 시위대의 입법회[의회] 공격이 “폭동”이라는 규정의 철회, 체포된 시위자들 무조건 석방, 경찰 폭력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위원회 설립, 진정한 보통선거 실시.

시위자들은 중국 정부의 홍콩 내 공식 기구인 연락판공실[정식 명칭은 중앙인민정부 주홍콩연락판공실이고 약칭은 중련판이다. 중국 정부가 홍콩에 세운 기관 중에서 제일 높은 기관이다 — 번역자]로 다시 행진해 갔다. 시위대는 연락판공실 문앞에 걸린 중화인민공화국 국기에 계란과 페인트를 던졌다. 경찰은 49명을 체포했고, 그중 44명을 폭동죄로 기소했다.

정부가 7월 1일 시위대가 입법회 건물을 공격하도록 유인한 것처럼, 경찰의 방어를 의도적으로 축소해 시위대들이 연락판공실을 공격하도록 한 증거가 있다[관련 기사 “시위대가 입법회 점거로 정부에 굴욕을 안기다” 참고]. 정부는 함정을 파놓고 시위자들이 공격을 하도록 한 뒤 이들을 폭도라고 매도해서 정부에 불리한 여론을 돌리려는 구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청년 시위자들이 도로를 봉쇄하고 정부 건물을 공격한 행위로 인해 여론이 역전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경찰이 흑사회[홍콩의 암흑가] 배경의 폭력배를 움직여 시위대에 대처하도록 한 것 때문에 대중의 분노만 크게 불러일으켰다.

7월 21일 저녁 홍콩 서부의 신지구(新界) 중심인 위안랑에서는 흰 와이셔츠를 입은 흑사회 출신의 폭력배 약 300명이 전철역과 플랫폼까지 들어와 귀가하던 청년 시위대와 심지어 일반 시민들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했고, 경찰은 의도적으로 개입하지 않아 많은 시민들이 부상을 입게 했다.

같은 날 저녁 신지구 향신세력의 대표적인 인물이자 친중파 입법회 의원 허쥔야오가 거리에서 흰 와이셔츠 폭력배들과 악수를 하면서 그들에게 “너희들은 영웅”이라며 칭찬하자 폭력배들은 “허쥔야오 의원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답변했다.

신지구 향신세력들은 영국 식민지 통치기간에 성장한 기득권 집단으로, 1997년에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뒤에는 중국 정부의 비호를 받았다. 중국 정부는 이들을 “애국적이고 홍콩을 사랑하는” 핵심 세력이라고 말했다.

위안랑에서 테러가 있은 지 6일 뒤 20만여 명의 시위대는 경찰의 금지도 무시하고 위안랑 내 주요 도로를 행진하며 경찰과 흑사회가 결탁했다고 비난했다.

진보와 한계

두 달 간 송환법 반대 투쟁을 거치면서 일부 시위대들은 전략적으로 중국 대륙의 민중과 연대할 필요를 깨닫고는 관광구와 공항에서 중국 대륙으로 가는 여행객들에게 리플릿을 배포하고 송환법 반대 운동의 목적과 의미를 설명했다.

동시에 시위대는 위안랑 습격 이후 자위대를 결성해 시위대들이 두 번 다시 폭력배의 습격을 받지 않도록 보호했다.

하지만 대중 운동은 약점도 갖고 있다. 시위대는 연락판공실 같은 민감한 곳을 공격하도록 유인돼 더 큰 탄압을 초래할 수 있다.

개별 시위대는 연락판공실 앞에다 스프레이로 ‘지나인’ – 홍콩의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중국인들을 비하하는 용어 – 이라고 적었다.

7월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시대혁명, 홍콩광복’이라는 구호는 2016년 홍콩의 극우파인 ‘본토민주전선’의 선거구호에서 유래했다. 이들이 말하는 ‘홍콩광복’은 중국 대륙의 민중과 중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에 대한 “인종차별”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현재 청년 시위대의 대다수가 이 구호를 외치긴 하지만 그 의미를 알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구호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도 다르고 매번 시위대들이 구호의 원래 의미를 공감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7월 30일 국무원은 기자회견을 개최해 캐리 람 지지를 거듭 표명했으며 홍콩 경찰에게 특별히 감사를 나타냈다.

중국 정부의 대응 전략은 홍콩 정부를 통해 일부 집회와 시위 신청을 금지하도록 하고 또 홍콩 경찰을 통해 가장 선두에 있는 시위대 진압을 강화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홍콩 경찰이 국면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홍콩에 주둔한 인민해방군을 쉽게 출동시킬 수 없을 것이다.

6월 9일 송환법 반대 운동이 시작된 이래로 192명이 체포됐고, 231명이 기소됐다.

 파업 호소

송환법 반대 운동은 전력을 기울여 8월 5일에 파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했다. 현재 파업 의사를 밝힌 쪽은 홍콩항공, 캐세이퍼시픽항공, 사회복지사, 대학 교수, 홍콩공영라디오·텔레비전 노동자들이다. 8월 5일 아침 홍콩항공과 캐세이퍼시픽항공 등 5개 항공사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으며, 80편이 넘는 출발편과 70편의 도착편이 취소됐다[관련 기사 “홍콩 노동자들이 총파업으로 도시를 멈추다” 참고].

파업을 원하는 노동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번 정치 파업의 의미는 상당히 크다. 1922년 선원 노동자들의 파업과 1925~1926년 홍콩 대파업이 영국 제국주의에게 큰 타격을 줬지만 그 뒤로는 여러 해 동안 쇠락하는 과정을 겪었다. 1967년에 영국 식민 정부에 반대하는 파업이 있은 뒤로 정치적 성격의 파업은 한 번도 없었다.

홍콩 사회주의 좌파들은 정치 파업을 적극 지지하며, 노동자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사회경제적 요구도 파업 요구에 포함시켜 더 많은 노동자들이 참여하도록 고무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또한 이번 파업은 첫 시도이고 이후에는 대규모 파업을 해야 한다. 파업은 단 하루만 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파업하는 노동조합이 시위대, 학생회, 사회운동 등과 결합해 연합행동위원회를 결성해 투쟁을 지도해야 한다. 행동위원회를 통해 파업 노동자들의 역량과 송환법 반대 시위대의 역량이 결합해 지배계급 권력에 반대하는 민중 자신의 조직을 건설할 수 있다.

2019년 8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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