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중학교 배이상헌 교사는 도덕교과 수업 시간에 성인지 교육용 영화를 보여 줬다가 황당하게 ‘성 비위’로 직위해제되고 경찰 수사를 받았다. 그가 결국 기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광주 남부경찰서는 배이상헌 교사를 기소의견으로 이번 주에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30년 넘게 성평등과 학생 인권 교육에 헌신해 온 배이상헌 교사가 졸지에 '성 비위' 혐의로 직위해제되고 경찰 수사를 받았다 ⓒ정진희

수업에 사용된 영화 〈억압받는 다수〉와 교사의 일부 발언에 일부 학생들이 불쾌감을 나타냈다는 게 핵심 사유다. 그러나 이 영화는 프랑스의 여성 감독 푸리아가 만든 영화로, 전교조 여성위를 포함해 많은 여성단체들이 성평등 교육 자료로 추천한 영화다. 이를 본 일부 학생들이 불쾌했다고 해서 수업이 곧 성희롱일 수는 없다. 수업의 일부인 교사의 발언을 맥락과 떼어 놓고 성범죄 취급하는 것도 큰 문제다. 

기자가 광주에서 만난 배이상헌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수업자료로 선택한 영상과 화면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혐의 사실이 실재하지 않으며 뭔가 석연치 않게 학생이 오해하고 혹은 수업의 일부를 왜곡하여 신고한 내용입니다.” 그는 해당 수업이 모두 성비위 행위로 다뤄질 수 있다는 것에 매우 난감해했다.

교사의 수업 내용, 그것도 성평등 교육의 내용을 문제 삼아 교사가 기소될 상황에 처한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다. 학교에서 성 문제를 다루는 것이 금기시돼 온 상황에서 가뜩이나 위축된 성(평등) 교육이 더욱 위축될 수 있다. 객관적 실재와 맥락과 무관하게 학생의 ‘불쾌감’만으로 성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직위해제되고 기소될 수 있다면, 어떤 교사들이 성 같은 민감한 문제를 학교에서 다루려 하겠는가.

배이상헌 교사는 이번 사건에 대한 교사들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업 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를 형사사건으로 수사의뢰하고 그 결과를 통해 판단하려는 광주시교육청의 해결 방식에 저를 포함해 전국의 도덕교사들이 놀라움과 공포를 갖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공교육에서 성 관련 수업을 진행하는 모든 교과 교사들이 성에 대한 어떤 언급도 불편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불길한 공포를 느끼면서 지금 저의 사건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30년 넘게 성평등과 학생 인권 교육에 헌신해 온 교사가 졸지에 성범죄 혐의로 수사받는 기막힌 상황은 개인의 고초로 끝나지 않는다. 진보적인 교육 자체를 위축시키는 일이다. 또,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해롭다. 

면피에 급급한 광주시교육청

수업 내용에 대한 일부 학생들의 불만을 경찰 수사로 넘긴 광주시교육청은 여전히 자기 정당화에 급급하다. 전교조 광주지부장 출신인 장휘국 교육감이 이토록 비민주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장휘국 교육감과 교육청 성인식개선팀은 배이상헌 교사에게 어떤 소명 기회도 주지 않고 심지어 혐의 내용도 알려주지 않고 직위 해제하고 수사의뢰했다. 

광주시교육청은 자신들이 교육부의 학교 성폭력·성희롱 매뉴얼대로 했을 뿐이라고 관료적으로 발뺌한다. 

실제로 교육부의 매뉴얼은 사안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교사를 수사의뢰하고 직위해제할 수 있게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럼에도 배이상헌 교사의 수업을 경찰 손에 넘긴 주체는 엄연히 광주시교육청이다. 〈전남일보〉 보도를 보면, 교사에게 ‘성비위’ 혐의가 제기됐을 때 사안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직위해제하고 경찰에 수사의뢰를 하는 곳은 전국 8개 광역시교육청 중 광주와 대구 두 곳이라고 한다. 

또 다른 진보 교육감인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배이상헌 교사의 직위해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교육부 매뉴얼 탓만 하며 수사결과를 지켜보자는 얘기는 면피에 불과하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이런 식으로 경찰로 죄다 넘길 것이면 교육청은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광주의 많은 교사들은 그간 광주시교육청의 스쿨미투 대응 과정에서 비슷한 문제가 많았다고 말한다. 심지어 경찰이 무혐의 판정을 내려도 광주시교육청은 징계를 해 왔다. 배이상헌 교사와 그 지지자들의 항의를 계기로 과거에 관료적으로 처리한 사건들이 재검토되는 것을 광주시교육청이 두려워한다는 지적이 많다. 

피해자의 관점?

배이상헌 교사와 광주 안팎의 많은 교사들과 많은 진보계 활동가들이 광주시교육청의 부당한 조처에 항의해 왔다. 그는 7월 22일 광주시교육청에 첫 항의 방문을 한 이래 매일 교육청 앞 시위를 벌여 왔다. 추석 연휴 뒤에도 이 시위는 어김없이 이어졌다.

광주시교육청에 항의하는 배이상헌 교사와 지지자들 9월 17일 시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 ⓒ최은순

광주시교육청은 이 시위를 ‘2차가해’라고 비난해 왔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학생의 목소리를 지우지 말라고 주장했다. 일부 여성단체들도 이에 가세했다. 전교조 여성위 간부 일부도 이런 논리로 배이상헌 교사 방어 운동을 비판하거나,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배이상헌 교사 방어 활동은 스쿨미투에 대한 보수적 반격이 아니라 부당한 국가 탄압에 항의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학생의 진술을 진중하게 여긴다는 것과 이를 곧 사안 판정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성평등 수업이 성범죄로 취급받으며 수사받는 상황에서 해당 교사가 왜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진보 교육감과 교육청 여성 관료들의 행정은 비판받으면 안 되는 성역인가. 젠더 권력, 교사-학생 권력 관계라는 모호한 얘기로, 사용자인 교육청의 명백한 교사 노동자 억압 문제를 흐려선 안 된다.

성범죄자로 지목된 교사가 무조건 침묵하며 자기 반성이나 하라는 것은 귄위주의적인 대응이다. 학생들의 자주적 역량을 키우는 것도 아니다. 관료적 행정으로 스쿨미투의 취지를 왜곡하는 광주시교육청의 책임을 벗겨 줄 뿐이다.

강간 같은 심각한 범죄 피해는 무고가 드물다(이하 부분 최미진, ‘대법원, 안희정 성폭력 유죄 확정: 권력형 성폭력 피해가 제대로 인정받는 계기 되길’ 참고). 미국의 경우, 강간에 대한 허위신고율이 2~8퍼센트라는 신뢰할 만한 성범죄 전문가의 분석이 있다. 92퍼센트 이상의 강간 고소 여성은 진실을 말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보면 극소수의 여성은 강간신고의 경우에조차 거짓을 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경미한 접촉이나 언어 성희롱 혐의라면 그 비율은 더 늘어날 것이다. 특히 말은 모욕이나 비하의 함의가 없더라도 상대방이 얼마든지 오해할 수 있다. 다른 동기에 의해 왜곡되기도 쉽다.  

반성폭력운동에서 널리 사용되는 ‘피해자 중심주의’는 성폭력 사건에서 면밀한 진상조사를 방해하기 쉽다. 이 개념의 주관주의 때문에 이번 사안처럼 성폭력이 아닌 사건에서도 애먼 사람을 단죄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이렇게 주관주의적인 용법으로 교사의 ‘언어 성희롱’ 여부를 규정하게 되면, 국가보안법처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기 십상이다.

2000년대 들어 주관주의적 성폭력 개념이 좌파를 포함해 진보 진영에서 널리 수용되면서 많은 혼란이 일어났다. 정치적 토론과 논쟁을 가로막으며 경쟁자들을 고립시키고 조리돌림하는 데 이 노선이 이용돼 온 사례들이 적잖다. 

장휘국 교육감은 전교조 광주지부장 출신으로 학교 현장에 진보 교육의 기운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었다. 그러나 그는 당선한 지 오래지 않아 지지자들을 실망시키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2011년부터 학교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고, 여러 관료적 행정으로 비판받았다. 그래서 장휘국은 현역 교육감이면서도 겨우 2퍼센트 차이로 간신히 3선에 성공했다. 

배이상헌 교사는 장휘국 교육감의 보수적 행정과 학교 비정규직 해고 등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왔다. 이런 그가 성비위 교사로 직위해제되고 수사받는 것을 정치적 보복으로 보는 관측도 있다. 또는 개량주의자였다가 자본주의 국가로 편입되면서 보수 수구 인자가 된 자가 자기 실체를 은폐하려는 술책을 쓰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전교조는 조합원 방어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이 사건은 국가기구의 명백한 교사 탄압이다. 사용자의 노동자 억압으로 볼 수도 있다. 검찰 기소 가능성이 높아진 지금, 전교조 지도부는 배이상헌 교사 방어를 더는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이미 전교조 대의원의 압도다수가 배이상헌 교사 탄압에 반대하는 서명에 동참했다. 전교조는 성평등 교육이 성범죄로 둔갑한 이번 사태에 경악하는 조합원들의 정서를 직시하고 교사 노동조합으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전교조 지도부는 배이상헌 교사 방어에 나설 경우 장휘국 교육감이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을 우려하는 듯하다. 전교조 광주지부 일각에서도 광주시교육청과 정면 충돌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전교조 간부 출신이라고 해도 장휘국 교육감은 엄연히 사용자이고, 국가관료이며, 지금 부당한 탄압을 하고 있다. 교사 노조로서 전교조가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 탄압에 제대로 맞서지 못한다면, 교사들은 위축감을 느끼기 쉽다. 

물론 교육청의 성비위 처리 절차는 개선돼야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당면 투쟁을 회피한 채 성비위 심의기구 개선이나 매뉴얼 개선만 얘기해선 안 된다.   

부당한 교사 탄압에 맞서지 않으면 이런 일은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 국가기관의 교육 내용 통제에 맞서는 아래로부터 투쟁 없이 진보 교육 활성화도 가능하지 않다. 성평등과 진보적 교육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두 배이상헌 교사를 방어하며 연대를 확대해야 한다. 

성평등 교육과 배이상헌 선생님을 지키는 시민서명

‘성평등교육과 배이상헌을 지키는 시민모임’이 배이상헌 교사의 검찰 송치를 앞두고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광주시교육청의 직위해제와 수사의뢰를 규탄하고, 수사기관의 수사중단을 요구하는 서명이다. 많은 동참 바란다. 

http://j.mp/배이상헌

광주시교육청 앞 시위 9월 19일, 배이상헌 교사와 광주의 진보적 활동가들이 노동자연대 교사모임이 전달한 배너를 들고 광주시교육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