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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 분담금 인상, 지소미아 종료 논란 :
신경질 이면에 미국 제국주의의 딜레마가 있다

11월 18일 열린 3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주한미군 지원금) 협상이 결렬됐다. 미국 측은 협상 80분만에 협상장을 박차고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미국은 한국 정부에 주한미군 지원금을 6조 원으로 대폭 인상(5배)하라고 요구해 왔다. 여기에는 주한미군 순환배치 비용, 전략자산 전개 비용, 연합훈련 비용뿐 아니라 심지어 호르무즈해협을 비롯한 한반도 바깥의 미군 활동 지원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미국이 원하는 수준의 인상에 동의하지 않자 상당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방위비 협상이 중간에 이렇게 결렬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 문제가 트럼프 정부의 지대한 관심사임을 보여 준다.

미국은 여전히 한동안 세계 최강국일 것이다. 그러나 최전성기와 비교해 경제력 우위의 상대적 쇠퇴가 시작된 지 수십 년이고, 압도적 군사력 우위도 점차 경쟁자들의 부상에 직면하고 있다.(특히 중국) 그래서 미국에게 유럽, 아시아, 중동, 라틴아메리카 등 전 세계에서 동시에 자국의 패권을 유지·관리하는 일은 갈수록 힘에 부치는 일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예전부터 미국 정부는 동맹국들이 경제적으로 더 많이 기여하기를 바라 왔다. 중국 포위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을 비롯한 일본·호주·인도를 편입시키면서 이들이 군사적 역할뿐 아니라 비용도 더 분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모두 이 맥락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한일 군사협력 강화도 마찬가지다.

특히 트럼프는 “부자 나라”인 동맹국들이 지역 안보를 위해 “매우 적은 돈”을 내고 있고 “미국은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불평해 왔다.

문제는 미국이 동맹에 대한 요구에 걸맞는 대가를 제공할 능력이 현저하게 저하했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지원금 인상과 지소미아 연장 요구가 미국의 “강요”보다는 요청이고 빌어먹기(‘남에게 구걸하여 거저 얻어먹다’는 뜻)에 가깝게 보이는 이유다. 미국의 무리한 주한미군 지원금 인상 요구는 미군이 세계의 ‘경찰’에서 세계의 ‘용병’으로 바뀐 것처럼 인상을 준다.

미국의 행태가 강력함보다는 상대적 약화를 반영하는 듯 보이는 이유다. 미국의 동맹 간에 지소미아 갈등이 벌어졌는데도 여태 조정을 못하는 것도 달라진 역관계의 반영일 것이다. 미국은 내년에 일본·독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등과의 방위비 협상을 앞두고 있는데, 한국과의 협상 결과가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번 협상은 미국에게 사소한 일이 아니다.

평택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자국의 패권 유지 비용을 한국에 떠넘기려는 미국의 요구에 타협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무리한 인상을 반대할 뿐 인상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주한미군 지원금 인상에 반대한 대학생들을 네 명이나 구속 수감한 것도 정부의 타협 태세를 보여 준 것이다.

그런데 주한미군 지원금 인상 반대 또는 삭감을 주장하는 운동 내에서는 미국의 요구가 “강요”임을 강조하며 문재인 정부에 떳떳하고 당당한 대처를 주문하는 견해가 흔하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한미동맹에 적극 협조해 온 한국 정부의 문제를 가려 한국 정부도 반제국주의 운동이 맞서야 할 핵심 대상임을 놓치게 만든다. 또한 이런 논리는 강대국의 부당한 압박에 맞서 국민적 단결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귀결되기 쉽다. 가령 정의당은 미국에 맞선 “초당적 대응”을 강조한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요청에 ‘압박’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약소국이 강대국에게 끌려다녀서가 아니라 자체적 이해관계 때문이다. 한국 지배계급은 한미동맹의 우산 속에서 자체의 이해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미국 중심의 질서 속에서 한국 국가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서 한국 기업이 자원과 시장을 확보하기 더 수월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 전쟁에 적극 뛰어들었던 것이고 평택 미군기지,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에 나선 것이다. 2017년 11월 평택 미군기지를 방문한 트럼프를 맞이하며 문재인은 한국이 기지 전체 부지 비용과 건설비 100억 달러(약 12조 원) 중 92퍼센트를 지원했다는 점을 자랑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도 미군기지 건설·유지 지원, 사드 도입과 첨단 무기 도입 등 미국의 전략에 적극 협조해 왔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도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한미동맹은 "위대한 동맹"이라는 문재인 2017년 11월 문재인은 트럼프와 함께 평택 미군기지를 방문해 한국의 기여를 과시했다 ⓒ출처 청와대

무엇보다 미국의 일방적 강요에 맞선 국민적 단결과 자주국방을 추구하자는 식의 포퓰리즘적 전망은 최근 우파의 주장에도 날카롭게 맞서기가 어렵다.

일부 우파는 최근 미국의 주한미군 지원금 과다 인상 요구가 너무 심하다고 본다. 한미동맹을 신봉하는 이들이 미국의 인상 요구를 비판하면서 내놓는 대안은 한국의 자체 핵무장이다. 최근 〈조선일보〉는 미국의 요구를 “[한국에] 미국이 설정한 ‘안보 족쇄’를 푸는 호기(好機)로 삼아” 핵잠수함 도입을 얻어내자고 주장했다. 동아시아 지역의 핵무기 개발 경쟁을 부추길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자주국방론으로는 이런 우파의 공세를 반박하기 어렵다.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

주한미군 지원금 문제는 인상 폭만이 문제가 아니다. 주한미군은 평범한 한국인들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 패권을 위해 주둔한다.

그래서 주한미군 자체가 한반도와 그 주변에 긴장을 부르는 요인의 하나다. 나아가 트럼프 정부는 호르무즈해협을 포함한 한반도 바깥에서 미국이 벌이는 깡패짓을 위해서도 비용을 대라고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정의당 지도부가 방위비 분담금을 “물가인상률 수준”으로 인상하자고 주장한 것은 본질을 회피하는 문제 제기일 뿐이다.

정부와는 독립적으로 방위비 분담금 인상 반대, 지소미아 파기를 요구하며 미국 제국주의를 폭로하고 또 이에 협조하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해야 한다.

한일 지소미아가 종료돼도 한일 군사협력은 계속될 것이다

미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한일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우려를 나타냈다. 지소미아는 한미일 동맹의 중요한 요소다. 특히 미국이 동북아에 배치된 무기들을 서로 연결해 미사일방어체계(MD)를 구축하는 데 필요하다.

방한한 트럼프 정부 관료들은 지소미아 종료로 득을 보는 건 중국과 북한이라며, 지소미아가 대중국 견제용임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이 이명박 정권 때부터 공들여 결국 박근혜 정권 때 체결한 지소미아가 자칫 종료될 상황이다.

미국 외교 전문 잡지 ⟪포린 어페어스⟫는 트럼프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일본과 한국 간의 유대가 망가진다면 중국 정부가 역내 힘의 균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려고 더 대담하게 나설 수 있다.”

11월 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문재인 정부는 일본 제국주의와의 타협을 모색했다. 지소미아 종료 선언은 포퓰리즘적 대처의 일환이었고,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거듭 일본에 타협의 신호를 보냈다. 일왕 즉위식에 총리 이낙연을 보낸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일본이 매우 강경하게 나오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의 운신의 폭이 줄어든 듯하다. 일본 정부가 종료 결정을 번복할 어떠한 명분도 한국에 주지 않는 상황에서 종료 결정 번복은 문재인 정부에 정치적 타격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차선책을 추구할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 경험이 있는 한국에서 한미동맹보다 한일동맹은 더 민감한 문제다. 이명박이 지소미아를 추진하다가 들통나 폐기한 전력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정부는 그 파장을 최소화하려고 “지소미아는 한일 간의 문제로 한미동맹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타협의 여지도 적극 열어 두고 있다. 최근 정부 핵심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소미아 종료일까지 “끝까지 문을 열어 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한미일 동맹을 유지할 꼼수들도 나올 수 있다. 지소미아를 연장하되 일본이 수출규제를 철회할 때까지 정보 교환을 제한하는 안이나 한미일정보공유약정(TISA)을 강화하는 안도 검토되고 있다고 알려졌다.

설령 이번에 지소미아가 종료된다 해도, 문재인 정부도 한미일 동맹을 중시해 왔다는 점에서 한일 군사협력은 계속될 것이다. 인도양 아덴만에 파견된 청해부대는 올 가을에도 일본 해군과 해상 선박 검색 훈련을 합동으로 했다. 11월 19일 대통령 문재인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지소미아가 종료되더라도 한일 간 안보 협력은 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