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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노위 양극화해소위 출범:
정규직 임금 양보 강요 위한 ‘사회적 대화’ 시즌 2

11월 11일 2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가 산하에 ‘양극화 해소와 고용플러스위원회’(양극화해소위)를 발족했다. 위원장에는 어수봉 전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임명됐다.

양극화해소위는 애초 올해 초에 출범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경사노위가 내세운 ‘사회적 대화’가 노동개악을 정당화하기 위한 포장이었음이 드러나고 경사노위의 위상이 낮아져, 차일피일 뒤로 미뤄졌다.

경사노위에서 일부 노동계 위원들이 탄력근로제 개악 합의 등을 거부하자 문재인 정부는 이들을 해임하고 위원회 구성을 바꿔 버렸다. 이렇게 물갈이 된 2기 경사노위는 출범하자마자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의결했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이 노동계의 거부권을 차단하도록 아예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겠다고도 했지만, 이 말은 실현되지 않았다. 정부로서는 여전히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경사노위로 묶어 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거창한 명분, 애먼 곳에 책임 전가 양극화해소위는 양극화 학대 낳을 노동자 양보 방향으로 나아갈 공산이 크다 ⓒ출처 경사노위

경사노위의 명분 중 하나였던 사회안전망 개선, 국민연금 개혁 등 노동자·서민의 소득을 늘리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사회적 합의 1호’라며 떠들썩하게 홍보한 ‘한국형 실업부조’(국민취업지원제도)는 결국 기존 제도를 통합해 이름만 바꾸는 것으로 결론 났다. 정부 핵심 인사를 배출하고,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주장해 온 참여연대마저 “제도의 전면적 재설계”를 요구했을 정도다. 게다가 기존 예산에서 추가되는 규모는 고작 1500억 원 정도인데 한국당은 이 예산마저 모두 삭감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경사노위 산하 국민연금 특별위원회가 내놓은 국민연금 ‘개혁’안들은 정부 안과 별 차이 없는 것들로, 사실상 ‘개혁’이라 부를 만한 안이 없다. 보험료를 더 내지 않으면 연금 삭감을 받아들이라는 안들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출범한 양극화해소위도 ‘양극화 해소’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면서, ‘기업 규모 간 임금 격차’를 양극화의 주범으로 지적할 듯하다. 경사노위는 양극화해소위 출범의 사전 작업으로 2018년에 ‘양극화 해소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연구회’(이하 연구회)를 운영한 바 있는데, 연구회는 첫 회의에서 “양극화의 주요 원인 및 핵심고리로 기업 규모 간 임금 격차로 보고 … 집중하기”로 했다.(연구회가 활동을 마치며 발표한 ‘기업 규모 간 임금 격차’ 완화 구체 방안들은 후속 기사에서 다룰 예정이다.)

또,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이 “1987년 이른바 노동자 대투쟁 이후 … 노조로서는 투쟁의 대가를 얻은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말한 것은 양극화해소위가 무엇을 목표로 삼는지 충분히 짐작케 한다.

불평등 심화의 핵심이 기업주와 노동자 사이가 아니라 노동자들 사이에서 벌어진다는 얘기이니, 그 결론은 어떤 식으로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를 촉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양극화의 원인

그러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상대적 고임금은 양극화의 원인이 아니다. 근본에서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생겨나는 생산성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다.

노동자 한 명당 설비 규모의 차이 등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대기업일수록 노동자 1인당 생산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며, 노동소득분배율(전체 부가가치 중 노동자들의 임금으로 지급된 몫)은 오히려 낮다.

이처럼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기업주가 중소기업 노동자들을 ‘초과’ 착취한 것을 나눠먹기는커녕 중소기업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착취당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착취하는 자들에 맞서야 할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일각의 주장과 달리, 노조로 조직된 대기업 노동자들이 양보하더라도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 리 없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양보한 만큼을 정부나 기업들이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유지하고 직무급제를 시행해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억제하려고 하는 한편, 최저임금 개악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자회사 채용 등으로 비정규직의 임금도 억제하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조건을 개선하면 중소기업·하청 노동자들과의 격차를 벌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조건도 동반 상승한다.

현대차나 주요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은 여전히 일종의 기준 설정자 구실을 한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매년 현대차의 임금 인상률이 결정되고 난 다음에 그것을 가이드라인 삼아 나머지 부품사·하청업체의 임금 수준도 결정된다. 문재인 정부도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를 거부하면서 공무원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률만큼만 올려 줄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시너지 효과

대기업 노동자들이 양보해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릴 수 있다는 주장은 노동자들이 소속 기업과 이해관계를 공유한다는 이데올로기도 강화한다. 이는 한편에서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 일부의 보수적 의식을 강화해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에 관심을 갖고 연대하기 어렵게 한다.

무엇보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자기 고용주에 맞서 싸우기 어렵게 한다. 이는 양극화 해소는커녕 양극화를 키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반면,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싸워서 성과를 내면, 그것은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싸울 자신감을 준다. 한 부문의 임금 인상 투쟁이 나머지 노동자들의 임금을 먹어 들어가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 투쟁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양극화는 심화됐다. 그리고 이 양극화는 노동계급 내에서가 아니라 계급 사이에서 커져 왔다. 부동산 등 자산 양극화는 물론이고 소득 수준의 격차도 날이 갈수록 커져 왔다.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ID)를 보면, 1995~2016년 사이에 한국 상위 1퍼센트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23퍼센트에서 12.16퍼센트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에 상위 10퍼센트의 소득도 늘었지만 최상위 1퍼센트를 제외하고 나면 그 증가 속도는 절반도 안 됐다.

1퍼센트의 재산이 나라 전체 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2퍼센트에서 25퍼센트로 늘어났다. 상위 1퍼센트를 제외하면 나머지 상위 10퍼센트의 재산은 오히려 감소했다.

양극화는 계급 내 불평등이 아니라 계급 간 불평등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려면 기업주·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둬 그렇게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사회적 대화’가 아니라 여전히 투쟁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