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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적” 파병도 파병이다 — 반전 운동을 지금부터 건설해 나가야 한다

그동안 본지는 문재인 정부가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이미 내부적으로 결정해 놓고 총선 등을 고려해 공식 발표만 남겨 놓고 있는 듯하며, 과거 노무현 정부가 파병 발표를 앞두고 거짓말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문재인의 말에 속아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우리의 경고가 갈수록 현실이 되고 있다.

19일 〈한겨레〉는 “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문재인 정부가 호르무즈해협에 ‘독자 파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보도했다. 〈한겨레〉가 친여권 성향 신문이고, 불과 며칠 전까지도 정부가 파병을 공식화하지 않았음을 부각해 온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파병 공식 발표가 성큼 가까워졌음을 예상할 수 있다.

정부 인사들은 “독자적 파병”이 미국 주도 호위연합체에 참여하지는 않는 “절충안”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지극히 얄팍한 속임수다.

16일 JTBC는 정부가 파병을 “투 트랙”으로 추진한다며, 청해부대를 호르무즈해협으로 보내는 동시에 장교 한 명을 미국 주도 호위연합체에 보내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호위연합체에 참여하는 것이다.

게다가 호르무즈해협에 파견된 청해부대가 독자적으로 활동하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한국군은 호르무즈해협에 자체적인 항구가 없는 만큼 파견된 군함에 필수적인 병참을 위해서는 미국과 그 동맹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미국과 정보를 공유하는 등의 공조 없이 군사 활동을 벌이는 것 또한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그곳에 파병된 한국군이 벌이는 군사 활동은 결국 이란을 겨냥한 작전과 연동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작전 수역을 변경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독자적 파병”이 한미동맹과 이란과의 관계를 모두 고려한 절충안이라는 주장은 거짓말이다. 주한 이란 대사는 “(호르무즈해협에) 타국이 군사 활동을 하게 된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경고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 안전” 운운한다. 그러나 애초 호르무즈해협에서 “안전 문제”가 제기된 것은 미국이 이란 핵협정을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이란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16일 청와대 NSC 회의 자료에 등장한 “선박의 안전한 자유 항행”이라는 표현은 정확히 미국이 호르무즈해협에 다국적 해군 함대를 소집하면서 제시한 명분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호르무즈해협 “독자” 파병은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미국이 내세운 명분을 지지하며, 미군이 활동하는 지역에, 미군의 병참과 정보에 의존해서 작전을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파병은 미국이 중동 불안정을 키우는 것을 돕는 것이다.

더욱이 파병은 파병 군인과 세계 각지의 한국인들에 대한 피격 위협을 높여 평범한 한국인들을 더 위험하게 만들 뿐이다. 실제로 과거 노무현 정부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파병으로 김선일 씨(2004년 이라크), 윤장호 하사(2007년 아프가니스탄)샘물교회 교인 2명(2007년 아프가니스탄)이 잇따라 그 지역들의 정치적 무장세력에 의해 살해된 바 있다. 특히 고 김선일 씨는 참수 당하기 전에 “노무현 대통령에게”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나는 살고 싶다”, “제발 이라크에 한국 군인들을 보내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지만 노무현은 김선일 씨의 절망적인 요청을 냉혹하게 거절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故 김선일 유언 영상의 한 장면 이라크 내 미군 군납업체에서 일하던 김선일 씨는 한국군 파병을 이유로 2004년 납치됐고 한국 정부가 파병을 강행한 탓에 살해됐다.

지금 중동은 그때보다 더 불안정하고 위험하다. 게다가 미국이 중동에서 어려움에 처한 상황을 중국과 러시아가 이용하면서, 중동의 긴장은 세계적 강대국들 간 갈등과도 얽히고 있다. 불과 한 달 전 이란은 러시아와 중국과 함께 사실상 미국을 의식한 합동 해군 훈련을 호르무즈해협 인근 해상에서 실시했다. 호르무즈해협 파병은 한국이 더 큰 갈등에 휘말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이처럼 평범한 한국인들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파병을 추진하는 것은 단지 미국의 압박 때문만이 아니다. 국제 무대에서 위신을 높이려는 한국 지배자들 자신의 이해관계도 중요한 이유다. 한국 지배자들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이용해 미국 주도의 제국주의 질서 내에서 더 높은 지위를 추구해 왔다.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은 18일 주한 미대사관 앞에서 미국의 이란 전쟁과 한국군 파병에 반대하는 집회를 했다. 정부의 파병 방침이 이미 충분히 구체적이고 빠르게 가시화하고 있는 만큼 이런 운동이 더욱 커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