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실세들이 대선후보 예비경선에서 버니 샌더스를 저지하려 뭉쳤다.

민주당 예비경선 주자 피트 부티지지가 3월 1일 사퇴한 데 이어, 언론 재벌 마이클 블룸버그도 4일 사퇴했다. 이들은 모두 민주당 지도부의 최선호 후보 조셉 바이든에 힘을 실어 줬다. 블룸버그는 사퇴 후 사비를 들여 이를 위한 외곽 조직까지 만들었다.

‘진보적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엘리자베스 워런도 민주당 실세와 샌더스 지지자들 양측의 압박을 받으며 5일 사퇴했다. 워런 지지자들은 샌더스 지지와 바이든 지지로 갈렸다. 그 밖에 카밀라 해리스, 코리 부커 등 군소 후보들도 잇달아 바이든을 지지하며 사퇴했다.

권력층 최선호 후보 조 바이든(오른쪽)과 “월가 후보” 피트 부티지지가 손을 맞잡고 있다 ⓒ출처 Joe Biden(페이스북)

이 때문에 바이든은 3월 3일 16개 지역 동시선거(‘수퍼 화요일’)에서 선두를 탈환한 데 이어, 10일 6개 지역 동시선거(‘미니 수퍼 화요일’)에서 우세를 굳힐 수 있었다. 11일 오후 6시(한국 시각) 현재 샌더스는 10일 선거에서 두드러진 열세를 보이고 있다.

샌더스는 2016년 예비경선 당시 승리를 거뒀던 미시간주(州) 등에서도 적잖은 표차로 바이든에 패할 듯하다. 제시 잭슨 목사 같은 온건 진보 인사들과 오랫동안 천대받아 온 아랍계 미국인 단체들이 속속 샌더스 지지를 선언했지만 판세를 바꾸진 못했다.

대변

민주당 권력층이 샌더스 밀어내기에 열을 올린 것은 샌더스가 정치·경제 권력자들이 아니라 대중의 뿌리깊은 분노와 변화 염원을 대변하려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번지기 시작한 최근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3월 10일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발병자는 1000명에 다가서고 있으며,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 이는 미국 보건의료 환경이 ‘신자유주의의 천국’이고(심지어 유증상자도 음성 판정을 받으면 보험에 따라 검사비를 물어야 한다!), 억만장자도 많지만 훨씬 많은 노숙인이 즐비한 미국 사회의 끔찍한 양극화·빈곤과 크게 연관 있다.

샌더스는 전국민 단일건강보험(‘메디케어 포 올’)으로 검사·치료비 보장, 중환자실 증설과 의료인력 대폭 확충, 입원료 인하, 백신 개발 시 무상 공급 등을 대책으로 내놓았다. 모두 서민에게 꼭 필요한 조처다.

미국 자본가들과 권력층은 격분했다. 대표적 우파 언론 〈폭스 뉴스〉는 “제약회사들의 백신 개발 의욕을 꺾는 … 정말 나쁜 주장”이라고 비난했고, 경제지 〈비지니스 인사이더〉는 “코로나19보다 샌더스가 미국 증시에 더 위협적”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권력층도 마찬가지다. 지난번 민주당 예비경선 후보자 토론에서는 샌더스 복지 정책을 공격하며 재원 마련 방안(주로 부유세)에 관한 비판이 21번이나 나왔다. 반면 막대한 국방비를 어떻게 충당할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물론 샌더스의 주장에 약점은 있다. 그러나 이는 자본가들이 떠들어 댄 것처럼 부유세가 비현실적(지나치게 급진적)이기 때문은 아니다. 개혁 과제를 관철할 동력에 관한 것이다. 샌더스의 ‘정치 혁명’에는 (그가 개혁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미국 국가와 인적·제도적으로 긴밀히 연결돼 있고 그로써 국가를 통제하는 자본가·권력층에게 개혁을 강제할 대중 운동이 빠져 있다. 이는 샌더스가 국가를 개혁의 수단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히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시기에) 자본가·권력층을 평화적으로 설득해 실질적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발상은 토끼가 사자를 평화적으로 설득해 육식을 끊게 한다는 발상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아직 예비경선이 여러 달 남았지만, 이변이 벌어지지 않는 한 샌더스는 2016년 예비경선 당시와 같은 상황에 설 공산이 크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서민 후원과 지지를 받고도 선거에서 탈락하는 상황 말이다.

그럴 때 샌더스가 2016년처럼 “당의 단합” 운운하며 주류 후보(당시는 클린턴, 이번에는 바이든) 지지를 호소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미 샌더스 지지자 47퍼센트가 샌더스가 아닌 후보는 지지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럴 때 샌더스가 같은 잘못을 범한다면 이는 진보 염원 대중의 사기를 또 한 번 꺾는 일이 될 것이다. 이는 트럼프를 저지하려면 친자본·친제국주의 전사 바이든이라는 ‘썩은 똥자루’를 들어야만 한다는 좌절감만 줄 것이다. 대중의 정치의식 함양에 해가 될 뿐이고, 그렇게 해서는 2016년에 목도했듯이 트럼프 집권을 저지할 수도 없을 것이다.

노엄 촘스키가 3월 10일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지적했듯이, “샌더스가 대중 운동에 영감을 줬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촘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1920년대에 미국 노동운동은 궤멸적 탄압을 받았습니다. 불평등은 극심해졌고, 자본가 천국이 펼쳐졌습니다. 대중운동의 씨가 말랐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가 되자 급진적 도전[노동계급 투쟁]이 부상했습니다. 그런 일이 이번에도 재현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혁명적 좌파를 포함한) 미국 좌파들은 민주당 바깥에서 대중 운동을 건설하는 데에 전력 투구해야 할 것이다. 

이 기사를 읽은 후에 “미국 민주당은 어떻게 진보 염원을 좌절시켜 왔는가”를 읽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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