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명예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장이다. [ ] 안의 말은 번역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첨가한 말이다.


미국 자본주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사회적 양극화를 완화하려는 바이든의 야심은 모순에 부딪힐 것이다 ⓒ출처 백악관

바이든 재임 6개월 동안 바이든에 대한 태도는 세 단계를 거쳐 왔다고 할 만하다. 안도, 놀라움, 갈수록 커지는 실망.

안도는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바이든은 도널드 트럼프가 아니었고, 1월 20일 미국 대통령에 무사히 취임했다. 후자는 예정된 일이 아니었다.

트럼프는 선거에서 바이든과 접전을 벌였고, 그후 트럼프를 지지하는 파시스트들이 1월 6일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선거 결과를 뒤집으라고 의회를 압박했다. 그 시도는 형편없이 실패했지만, 그날 미국 지배계급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사회적·인종적 양극화의 심연을 들여다봤다.

놀라움은, 바이든이 그 양극화에 대응하려 나선 것 때문이었다. 취임 첫 주 바이든은 일련의 국가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이는 인프라와 사회 복지를 개선하고 극빈층의 경제적 기회를 늘리기 위한 것들이었다. 이로써 늘어난 국가 재정 지출은 차입과 부자 증세를 결합해서 충당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의 야심은 사회 분열을 치유하는 동시에 미국 자본주의의 경쟁력, 특히 대(對)중국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IT 대기업들의 시장 지배도 비난하고 있다. 바이든은 이렇게 말했다. “경쟁 없는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착취다.”

바이든은 자신이 평생을 섬겨 온 자본주의 체제를 이해하지 못한다. 경쟁 압력 때문에 기업들은 노동자 착취 수준을 높이고 자연을 파괴하는 기술에 투자해서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

바이든이 경쟁국들에 대항해 미국 자본주의의 효율을 높이고자 한다면 노동자들을 더 쥐어짜야 할 것이고, 그러면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저해될 것이다.

제재

아니나 다를까, 그래서 이제 실망의 단계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바이든이 트럼프의 대외정책을 계승한 탓도 있다.

바이든은 대중 강경 노선만이 아니라, 트럼프가 강화한 쿠바 봉쇄도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바이든은 지난주에 제재를 몇 개 추가했다.

이는 지난 민주당 소속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추진한 미국-쿠바 관계 개선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오바마의 부통령까지 지냈던 바이든이 이러는 까닭에 대한 한 가지 설명은 바이든이 플로리다주의 강력한 쿠바계 우파의 비위를 맞추려 한다는 것이다. 바이든은 이 중요한 주에서 민주당 지지를 늘리고, 공화당의 상·하원 의원들에게서 자기 정책에 대한 찬성표를 이끌어내려 한다.

이것은 실망의 가장 중요한 이유와 연결돼 있다. 바이든은 “초당적 협력,” 즉 공화당과의 타협을 이끌어내는 솜씨를 한껏 발휘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바이든은 민주당이 근소한 의석 차로 장악한 의회에서 자신의 정책을 통과시키려 한다.

문제는 공화당이 초당적 협력에 관심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공화당 지지층에서 여전히 인기가 엄청나다. 그리고 공화당은 연방의회와 주의회에서 바이든의 계획을 방해하고 가난한 유색인종들이 투표하지 못하게 하려 애쓰고 있다.

이로써 공화당은 1994년 빌 클린턴에게, 2010년 오바마에게 한 짓을 되풀이하려 한다. 즉, 2022년 중간선거에서 충분한 의석을 확보해 민주당에게서 의회 장악력을 뺏는 것이다.

미국 정계는 교착 상태로 되돌아가겠지만, 이번에는 공화당이 오른쪽으로 급진화하는 상태에서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두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미국 헌법은 이미 여러 방법으로 교착 상태로 가는 길을 마련해 뒀다. 미국 헌법은 50개 주 대표들이 입법을 쉽게 가로막을 수 있도록 돼 있다.

현재 공화당은 23개 주에서 주지사와 주의회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공화당은 이른바 필리버스터를 이용해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바이든은 이에 맞서기를 거부해 왔다.

바이든은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을 본보기로 삼는다. 미국 정치학자 아이라 카츠넬슨은 중요한 역사 연구서인 《두려움 그 자체》에서, 루스벨트가 남부의 인종차별적 상·하원의원들과의 타협을 통해서만 의회에서 경제·사회 개혁을 통과시킬 수 있었음을 보여 준다.

루스벨트는 남부 주들의 짐 크로우 인종 분리 체제를 건드리지 않고 놔뒀다. 변화는 25년 후에야 평등권 운동과 함께 찾아 왔다.

그렇다면 바이든에 대한 실망 다음에는 무엇이 올까? 아마 분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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