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5일 한국노총을 방문한 윤석열. 그러나 다음날은 SK 최태원을 만나 친기업 기조를 공언했다 ⓒ출처 국민의힘

윤석열이 15일 한국노총과의 간담회에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와 교사·공무원노조 타임오프제 도입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를 기업 이사회에 파견하는 제도이고, 타임오프제는 노조 전임자들의 노조 활동 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인정해 사용자가 노조 전임자의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둘 모두 양대 노총의 요구사항이다.

지극히 온건한 요구들이지만, 그럼에도 최근까지의 강경 우파적 발언과 비교하면 좀 이례적이다.

윤석열은 14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속내를 슬쩍 드러냈다. “나는 사용자 편이 아니다. 표가 노동자 쪽에 더 많다.”

이날 윤석열은 그간 논란이 됐던 반노동 발언들(최저임금제 폐지 시사 등)을 수습하려는 듯, ‘이미 도입된 노동 법제를 되돌리자고 주장한 적은 없다’고 변명했다.

많은 언론들이 이를 두고 윤석열이 “좌클릭”, “친노동 행보” 운운했다.

그러나 윤석열은 노동이사제가 “정부나 노동의 힘에 의해 일방적으로 견인”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결국 사용자 입장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동안 사용자 단체들과 국민의힘은 노동이사제에 강하게 반대해 왔다.

윤석열은 같은 이유로 교사·공무원노조 타임오프제에 대해서도 적용 범위(전임자 수), 적용 시점에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결국 윤석열의 말은 진지한 개혁 약속으로 보기 힘들고, 선거판에 흔한 립서비스에 가깝다. 그간 얼마나 우파 찬양 일색이었으면 이 정도를 가지고 “좌클릭” 운운하는 말들이 나올까?     

노동이사제

우파 경제지와 재계는 윤석열의 노동이사제 찬성 발언이 “노조 구애에 골몰”하는 행태라며 신경질 냈다. 국민의힘 나경원은 “노조 기득권 포퓰리즘”이라고, 홍준표는 “경영권 침해”라고 윤석열의 발언을 비난했다.

물론 사용자들은 특별한 압력에 떠밀리지 않는 이상 노동자가 감히 경영에 관여할 수 있다는 발상을 질색한다. 그러나 노동이사제 자체는 사실 사용자들에게 별 위협이 안 되는 제도다.

제도상 노동이사는 절대 소수이고 대주주나 재벌들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이사제는 이미 전국 10개 시도·기초지방자치단체 산하 82개 공공기관에서 시행 중인데, 이곳 기관장(사용자)들은 노동이사가 이사회의 의사 결정을 지연시키거나 경영 효율성을 저하시킨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보고한다.(2020년 3월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 오히려 사측 관점에서 “순기능”을 지적하기도 한다.

노동이사제를 적극 주장해 온 〈한겨레〉나 민주당 박주민 의원(노동이사제 법안 발의)은 이런 연구들을 찬성 근거로 활용한다. ‘노동이사제는 노동 측이 경영 현안에 공동 책임을 지기 때문에 노사 갈등을 줄이고 기업 효율성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노동이사는 사용자를 제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경영 협력에 이용되기 쉬운 것이다.

윤석열도 “원자력공사에 노동이사가 있었다면 [노동계가] 탈원전에 찬성했겠느냐”고 했다.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이용해서 노동자들을 사측 이해관계에 더 종속시키기를 바라는 것이다.

강한 반노동 기조

무엇보다 윤석열은 기업주들에게 비용 부담이 큰 주요 쟁점들에서 여전히 단호한 반노동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14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윤석열은 이렇게 말했다.

“최저임금이 180만 원, 200만 원이라고 하면 ‘나는 150만 원으로도 충분히 일할 용의가 있다’고 하는 [노동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윤석열은 주 52시간제에 대해서도 “일주일에 120시간 바짝 일하고 싶은 사람은 어떡하냐”고 했었다.

그런 열악한 조건에서라도 일하겠다는 것이야말로 곤경에 몰린 노동자들의 처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경제 위기와 구직난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경쟁시켜 이런 상황을 보편화하고 싶어 한다.

윤석열은 철저히 사용자 관점으로만 이런 문제에 접근한다.

윤석열은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자는 요구도 거절했다.

“사업자의 투자 의욕이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결국 근로자가 [피해를 입는다.]”

연금 개악 의사도 분명히 밝혔다. “결국 많이 걷고 적게 줘야 된다는 것[이다.]”

윤석열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자 SK 회장인) 최태원을 만난 자리에서 대대적인 기업 규제 완화도 공언했다.

윤석열 NO!

요컨대 윤석열은 경제 위기 하에서 기업주와 지배계급의 이익을 지키고 계급 투쟁을 억누를 적임자임을 흔들림 없이 자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은 민주당과 문재인에 대한 배신감이 큰 사람들을 모두 끌어들이고 싶어한다(‘반문재인 최대 연합’). 전 민주당 대표인 김한길을 끌어들이고, 김한길이 페미니스트 신지예 씨를 캠프로 영입한 게 그 사례다.

그러나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자리는 우파들이 꿰차고 있는 것이 보여 주듯이, 윤석열의 우파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외연 확대는 그저 확실히 이기려는 수작일 뿐이다.

이재명이 지금 주류의 눈치를 보며 좌우로 오락가락 행보를 하지만, 이재명의 지지 기반은 민주당 주류와도 다소 다르고, 윤석열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재명은 기반이나 지지층이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도 겹친다. 지배계급이 이재명에게 거리낌 없이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유다.

그러므로 윤석열 당선과 우파 세력의 부활이 대중에게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윤석열이나 이재명이나 다를 바 없다’며 단순히 치부할 일이 아닌 것이다.

대선 국면이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윤석열을 찍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