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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베르 아슈카르를 반박함:
우크라이나 전쟁과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을 둘러싼 논쟁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명예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장이다.

주류 미디어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우크라이나와 그 서방 후원국들이 대표 행세를 하는 ‘민주주의’ 대(對)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 같은 ‘권위주의’ 간의 쟁투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단순화다.

예컨대, 우크라이나를 십중팔구 가장 열렬히 지원하는 것은 폴란드의 극우 정부다. 폴란드 정부는 권위주의 경향 때문에 유럽연합의 조사를 받고 있다. 푸틴은 인도의 지지를 받고 있는데, 인도 정부 자체는 야만적인 파시스트 정부이지만 인도는 여전히 다당제 민주주의 국가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룰 때 주류 미디어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들이 결집한 서방 블록이 “국제 사회”인 양 말한다. 이런 말은 또, 서방에 대항하는 세력이 ‘권위주의’이므로 정당성이 없다고 전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권위주의’ 문제는 예컨대 사우디아라비아의 살인마 전제 왕가를 다룰 때는 편리하게도 잊혀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서방과 러시아 간 제국주의 전쟁이다 3월 26일 폴란드에 방문한 바이든 ⓒ출처 폴란드 대통령궁

그러면 이 전쟁을 이해할 더 나은 이론적 분석틀이 있을까? 그중 하나는 제국주의론이다. 푸틴이,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으로 무너진 차르 제국을 부활시키려는 듯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국주의가 무엇인지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국주의가 역사의 시대 구분을 뛰어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그저 강대국이 이웃 사회를 지배·정복·착취하는 방식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일은 분명 수천 년 동안 계급 사회의 특징이었고, 고대 페르시아·중국·로마 제국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 러시아는 분명 제국주의 강대국으로 행동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두들겨 굴복시키고 우크라이나 영토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분할하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전쟁을 이렇게만 이해해도 될까?

레바논 마르크스주의자 질베르 아슈카르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슈카르는 스스로 “급진적 반제국주의 입장”이라고 부르는 주장을 내놓았는데, 오직 러시아 대 우크라이나 사이의 쟁투에만 초점을 맞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정복에 성공하면, 세계가 식민지로 새로이 나뉘고 지구적 갈등이 격화하는 양상이 심해지는 가운데 미국이 다시금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게끔 부추길 것이다. 반면 러시아가 실패하면 ─ 미국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실패한 것에 더해 ─ 미국 지배자들이 ‘베트남 전쟁 신드롬’이라 부르는 것을 강화할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가 승리하면, 나토 회원국들에서 전쟁광들이 상당히 세를 얻고 군비 지출을 늘리도록 압박할 것임은 내가 보기에 꽤나 명백하고, 벌써부터 두드러지고 있다. 반면 러시아의 패배는 우리가 일반적 군축과 나토 해체를 요구하며 투쟁할 여건을 더 유리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만에 하나 우크라이나인들이 정말로 러시아 침략군을 몰아낼 수 있다면 실제로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로 미국과 나토가 약해질 것이라는 아슈카르의 주장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인들을 적극 지원하고, 무기 지원을 쏟아붓고, 자신들의 군비를 한껏 늘리고 있다.

만약 이런 지원과 우크라이나 전사들의 용기 덕에 러시아가 패배한다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군비를 축소하고 나토를 해체하는 것으로 반응할까? 그럴 리 없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이 결과를 자신들의 승리로 찬양할 것이고, 나토를 더 강화할 것이다. 미국은 자국의 주도권에 대한 진정한 도전자인 중국을 상대로 한 세계사적 경쟁에서 더 큰 활력과 원기를 얻을 것이다.

아슈카르의 관점이나, 나토 문제를 회피하는 폴 메이슨 같은 다른 좌파 인사들의 관점에서 빠져있는 것은 제국주의론을 이해할 때 역사적 특수성에 더 주목하는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1860년대에 쓴 《자본론》에서 이 이론이 처음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이론은 제1차세계대전 시기인 20세기 초에 더 체계적으로 발전했다.

푸틴을 패배시켜야 하지만, 그것이 서방 제국주의의 힘을 빌리는 방식이어선 안 된다 ⓒ출처 kremlin.ru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오늘날 우리와 비슷한 현실에 직면했다. 급진 자유주의 경제학자 J A 홉슨은 이렇게 썼다. “최근 제국주의의 새 특징은 … 무엇보다 여러 국가가 제국주의를 택했다는 것이다. 경쟁하는 여러 제국들이라는 개념이야말로 본질적으로 현대적이다.”

당시의 지정학적 경쟁은 영토를 둘러싼 각종 충돌(대국들이 식민지와 반(半)식민지의 지배권을 다투는 것)과 군비 경쟁 가속화로 나타났다. 이런 충돌과 경쟁이 1914~1918년과 1939~1945년 양차 세계대전을 촉발해 세계를 피로 물들였고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론은 바로 그런 충돌과 경쟁을 설명하기 위해 발전했다.

마르크스 제국주의론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러시아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고 불렀다. 레닌의 동지인 폴란드계 독일인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렇게 썼다. “제국주의의 정수는 자본이 기존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새로운 지역으로 확장하고, 그 새 영역을 두고 서로 경제적·정치적 쟁투를 벌이며 경쟁한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특징은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서로 맞물리는 것이다. 경제적 경쟁은 자본주의의 원동력인데, 기업들은 시장점유율을 높이려 기술 혁신과 생산 확대에 투자하며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19세기 말에는 국가간 지정학적 경쟁이 자본주의의 경쟁적 축적 논리 안으로 통합됐다.

이는 전쟁과 자본주의 모두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었다. 대군 운용에 필요한 무기, 보급품, 수송 수단의 대량 생산이 군사력을 좌우하면서 전쟁이 산업화했다. 따라서 국가들은 산업 자본주의를 촉진시켜야 했다.

한편, 자본주의 기업들은 규모가 커지면서 세계적으로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다른 기업들과 경쟁할 때 국가에 의존했다. 19세기 말 불황기 동안 자국의 해외 식민지 획득이 기업 이윤의 상대적 감소를 벌충해줬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는 그저 대국이 상대적 약소국을 괴롭히고 정복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일이 숱하게 수반되지만 말이다.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는 자본들과 그 국가들이 서로 경쟁하는 세계 체제다. 제1차세계대전 직전과 꼭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제국주의도 세계적 경제 통합을 배경으로 지정학적 경쟁이 벌어지는 것을 동반한다.

서로 적대하는 강대국들의 권력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지위에 달려 있다. 미국은 금융과 첨단기술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고, 중국은 방대한 제조업을 보유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에 기댄다. 오늘날 선두에 있는 제국주의 강대국들로 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독일, 여섯 국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적대는 미·중 갈등이다. 중국 지도자들은 일차적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자신의 주도권으로 대체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러시아 제국주의가 자기 세력을 재건하려 책략을 구사하면서 충돌이 세 갈래로 빚어지고 있다.

서유럽 강대국들은 상이한 방향으로 당기는 힘을 받고 있다. 그들은 러시아산 에너지에 의존하고 중국의 방대한 시장에 매력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결국 미국과 한편에 선다. 자본주의적 제국주의가 이처럼 국가간 경쟁 체제를 포함한다는 인식이 아슈카르의 분석에서는 완전히 누락돼 있다.

아슈카르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 충돌이 관련돼 있다는 점을 부정한다.

“경쟁하는 제국주의가 전쟁하는 당사자를 각각 지원한다고 해서 그 전쟁을 제국주의간 전쟁이라 부른다면, 이 시대의 모든 전쟁이 제국주의간 전쟁일 것이다. 왜냐하면 경쟁하는 제국주의 중 한 쪽이 전쟁의 한 편을 지원하면 상대편 제국주의가 다른 편을 지원하리라는 것은 너무 자명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간 전쟁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두 강대국들이 대리전이 아니라 직접 전쟁을 벌이면서 상대의 영토와 (신)식민지를 침탈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지나치게 협소하다. 1979년 말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려 하자 미국은 소련을 상대로 한 대리전에 나섰다. 미국은 영국·사우디아라비아·파키스탄 등 동맹국들과 함께 소련 점령에 맞서는 이슬람 전사들에게 무기를 제공하고 그들을 훈련시켰다. 이 전쟁은 냉전의 마지막 10년 동안 소련의 [인적·물적 — 역자] 자원을 소모하고 소련군의 사기를 꺾는 데에 일조했다.

물론, 이슬람 전사들에게는 나름의 고유한 정치적 어젠다가 있었다. 그 어젠다는 1989년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후 분명해졌다. 특히, 탈레반이 알카에다를 지원하고 뉴욕과 워싱턴 DC에 대한 [2001년] 9·11 공격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저항한 것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냉전의 종막이자 중요했던 국면에서 분명 미국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러시아 제국주의에 맞선 우크라이나 국민 방위 전쟁을 서방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려 한다는 것이다.

제국주의간 쟁투와 국민 방위 전쟁은 종종 서로 얽힌다. 제1차세계대전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암살의 책임을 물어 세르비아를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지지했고, 이는 갈수록 더 많은 국가들이 군사력을 동원케 하면서, 끔찍한 전면전으로 확전되는 결과를 빚었다.

독일 마르크스주의자 카를 카우츠키는 세르비아의 민족 자결권 투쟁이라는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그 충돌을 제국주의 전쟁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이렇게 응수했다. “지금 참전자의 1퍼센트밖에 안 되는 세르비아에게 이 전쟁은 부르주아적 해방 운동의 ‘정치의 연속’일 것이다.

“나머지 99퍼센트에게 이 전쟁은 제국주의 정치의 연속이다.”

물론 현재의 사례는 당시와 세력 균형이 다르다. 직접적 교전국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토 열강이 교전에서 빠져 있으려 애쓴다 해서 ─ 무엇보다 러시아와의 핵전쟁을 피하려고 ─ 그들이 핵전쟁만을 제외한 갖은 수를 동원해 러시아를 패배시키려 한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도 바로 “제국주의 정치의 연속”이다.

마르크스주의적 제국주의론은 정치적으로 중요하다. 제국주의론이 없으면, 국민국가들 사이의 쟁투만이 우리 눈에 보일 것이다. 하지만 제국주의의 역할을 이해하면 전쟁을 둘러싸고 작용하는 계급 적대를 포착할 수 있다. 계급적 이해관계는 푸틴의 전쟁에서 죽어가는 러시아 징집병들과 후방에 있는 그 가족들(서방 제재로 경제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받는)만을 이어 주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 노동계급 사람들도 같은 계급적 이해관계로 이어져 있다. 전쟁 탓에 폭등한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으로 고통 받고 핵무기 재앙 위협에 시달리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 모두는 서로 경쟁하는 지배계급들이 이 끔찍한 전쟁을 부추기는 것에 맞서 단결하는 것에 계급적 이해관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