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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난민 4명이 직접 전하는 처절한 삶

최근 한 달간 본지는 국내 이집트 난민 네 명을 만났다.(그들의 처지를 고려해 영어 알파벳으로 호칭한다.) 저마다 처지는 다르지만 다들 한국 정부의 지원이 거의 없고 힘겹게 살고 있다.

A는 이집트에서 독립언론인으로 활동하며 감옥에서 자행되는 고문과 그로 인한 사망을 폭로하는 기사를 쓰고 해외 인권단체에 알렸다. 그 이유로 그는 고문을 받아 아직도 고문 후유증을 겪는다.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아내와 함께 한국을 찾았지만 한국 정부는 그를 난민으로 인정하길 거부했다.

A의 고난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는 한국에서 일하던 중 다리가 부러졌다. 하지만 사장은 산재를 인정하기는커녕 ‘원래부터 아픈 사람이었다’며 치료비도 지급하지 않았다. 결국 A 스스로 가까스로 치료비를 마련했다. 만약 그가 체류 자격이 안정적이고 제대로 된 지원을 받았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는 임신 중이고 출산이 점점 다가오고 있지만 생계비 마련조차 막막한 상황이다.

“난민을 환영한다” 6월 30일 광화문 난민 환영 집회 ⓒ이미진

B는 이집트 독재자 엘시시가 2013년 백주대낮에 시위대 수백 명을 살해할 때 그 현장에 있었다. 그 학살은 국제적으로도 충격적 사건이었고 한국에서도 규탄 시위가 벌어졌다. B는 당일 학살은 가까스로 면했지만, 계속 위협을 느껴 이집트를 떠나 한국으로 왔다. 그는 학살 당일의 충격으로 불면증에 시달려 약을 복용하고 있다.

하지만 B는 한국에 온 지 2년이 되도록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다. 현재 법무부 산하 출입국지원센터에 머물고 있는데, 관리자들이 정신과 의사의 방문 검진도 막아 유엔에 진정을 넣고 유엔 관계자가 시설을 방문해 항의하고서야 의사 검진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 정부는 난민 신청자들이 출입국지원센터를 이용할 수 있는 기간을 최대 6개월로 제한한다. 난민 신청자에 대한 지원이 실로 알량한 것이다. B는 곧 센터를 나와야 하는데,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난민 신청자는 취직에 제약도 많고 대체로 3~6개월짜리 체류 자격만을 받기 때문에 안정적 직장에 취직하기 어렵다.) B는 어떻게든 센터에 남을 방도를 찾고 있다.

C는 구체제 인물의 복귀를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한 것 때문에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C의 재판은 이집트 언론에 크게 보도됐고, 그는 관련 자료도 구비하고 나와서 한국이 난민 인정을 거부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더욱이 한국 정부는 C가 제출한 증거 자료를 돌려주지 않고 있으며, 인터뷰 과정에서는 사생활에 대한 모욕적 질문도 서슴지 않았다. C는 한국의 난민 심사 과정은 난민을 체계적으로 모욕하는 구조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모욕

최근 C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자신이 갈 수도 없고(한국 정부는 난민 신청자가 심사 중 어떤 식으로든 본국을 방문하면 난민 신청을 취소한다), 어머니를 한국으로 모시고 올 수도 없다며 “이대로 어머니를 더는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하다”고 절규했다.

D는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것 때문에 체포돼서 고문당하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다행히도 D는 영국 등 해외 변호사들의 조력도 받아 한국에서 정식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조차 1년 6개월이나 걸렸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돈을 써야 했다.

D는 정식 난민으로 인정받더라도 한국에서의 삶이 무척 고되다고 말한다. 사실상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3D 일자리에서만 일할 수 있는데, 그조차도 ‘일자리 도둑’이라는 따가운 시선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주노동자 단속을 부쩍 강화하며 ‘내국인 일자리 보호’를 운운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난민을 배척하는 우익들의 난민 강제송환 주장을 D는 이렇게 반박한다. “지금 그곳[이집트]은 1980년 한국의 광주 학살 직후 상황과 비슷합니다. 돌아가면 처벌받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다른 이집트 난민들과 함께 한국에서 이집트 민주화를 위한 단체를 결성해 활동하려 하지만, 동료들의 불안정한 처지와 일자리 문제에서의 어려움 때문에 쉽지 않다고도 말한다.

난민 인정을 거부당한 이란 청소년의 난민 인정을 요구하며 시워를 벌인 같은 학교 중학생들 ⓒ임준형

카타르인 파라스 가니는 난민 문제 취재를 위해 한국을 찾은 기자이다. 그는 우익들이 8월 11일 서울역에서 개최한 난민 배척 집회를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이 사람들은 예멘인이나 난민을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들이 분명하다”고 확신에 차서 말했다. 난민은 테러리스트라거나 무슬림은 ‘히잡을 안 쓴 여성은 모두 헤픈 여성으로 본다’는 따위의 난민과 이슬람에 대한 역겨운 편견은 난민을 한 번만 만나 보면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는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인들을 돕는 한국인을 많이 봤다며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제주도에는 예멘인을 돕는 많은 한국 교회 목사님들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난민 배척 집회]에 보수 교회 지지자들이 있다고 해서 한국 교회가 모두 난민을 배척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인들도 소수 무슬림들의 잘못을 놓고서 전체 무슬림과 난민을 비난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난민을 수용하라

정부는 난민 반대 청원에 대해 답변(8월 1일)하며 난민에 대한 억압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난민법을 존치하는 대신 개악하겠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집트·소말리아·파키스탄·미얀마 등 정치적 박해 때문에 난민이 많은 나라들을 대거 무사증 입국 국가에서 제외했다. 예멘 난민 500여 명에 대한 심사를 9월 말까지 모두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강제 추방시킬 경우 국제적 비난의 소지가 큰 일부 난민에 대해서는 ‘인도적 체류자 지위’를 부여하는 꼼수를 부려 왔다. 시리아인들처럼 전쟁 난민인 것이 명백한 경우에조차 정식 난민 인정은 거부하고 인도적 체류자 지위만을 부여했다.

정식 난민은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는 반면, 인도적 체류자는 불가능하다. 인도적 체류자 지위를 받아도 해마다 체류 자격을 갱신해야 하고 복지와 취업에서도 정식 난민보다 제약이 많다. 명칭과 달리 전혀 인도적이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인도적 체류자 지위마저도 전체 난민 신청자 10명 중 9명은 받지 못한다. 정부는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난민 보호의 책무” 운운하지만 실제 현실은 말과는 너무나 다르다.

정부가 우익의 압력에 타협하는 형국이라서, 다수 예멘인들이 정식 난민 인정은 고사하고 ‘인도적 체류자 지위’도 받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면 그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곤경에 빠질 것이다. ‘가짜 난민’이라는 둥 우익의 주장에도 힘이 실릴 것이다.

유엔은 “예멘의 인도주의적 위기는 세계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하고 있다. 8월 9일에도 사우디아라비아의 폭격으로 통학버스를 타고 있던 아동 29명을 포함해 총 43명이 사망했고 63명이 부상당했다. 예멘에서 살육이 일상적이고 도저히 인간답게 살 수 없다는 예멘 난민들의 주장은 이미 수년 전에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았다.

“엄격한 심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은 여권이나 출입국 절차를 제대로 밟기 힘든 난민들의 처지를 악용해 한국 정부가 난민 인정을 거부할 여지를 키울 뿐이다. 한국 정부는 예멘인들을 수용하고 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들 자신의 바람대로 제주도를 벗어나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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