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국주의와 우파의 전방위적 베네수엘라 옥죄기가 4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2월 25일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가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협박한 후, 미국 재무부가 베네수엘라 전현직 군 인사 여섯 명을 추가 제재해 마두로 정부에 대한 압박을 더했다.

우파의 정권 탈취를 뒷받침하려 미국이 가하는 경제 압박이 베네수엘라를 짓누르고 있다.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기업 PDVSA의 발표에 따르면, 1월 말 이래 추가된 경제 제재 때문에 베네수엘라 석유 수출량이 40퍼센트 감소했다. 무역 수익의 90퍼센트 이상을 석유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 경제에 치명적이다. 수익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이 금을 판매한 탓에, 베네수엘라 금 보유량이 75년 새 최저치라는 보도도 나온다. 

베네수엘라 서민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제재로 외화가 묶여 식량·생필품 수입이 어려워진 탓이다.

안 그래도 베네수엘라 서민들은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세계보건기구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한 해에만 베네수엘라인 평균 체중이 11킬로그램 줄었고 전체 인구의 약 80퍼센트가 생필품이 부족한 상태다. 이 때문에 인구의 약 10퍼센트가 ‘경제 난민’이 됐고, 떠나지 못한 사람들도 보름에 한 번씩 받는 배급으로 연명하고 있다.(그조차도 여당인 베네수엘라통합사회주의당 PSUV 당원이 아니면 받기 어렵다.)

한편에서 제재로 봉쇄하고 다른 한편에서 ‘인도적’ 물품을 지원한다는 것은 위선이다. 미국이 물품을 보내는 것은 베네수엘라 우파에 힘을 실으려는 목적이다. 미국은 또 마두로 정부가 물품을 거부하면 그것을 또 다른 개입 명분으로 삼으려 한다. 심각한 어려움에도 물품을 받는 것이 위험한 까닭이다.

설상가상으로, 미국과 서방은 마두로 정권이 퇴진하면 경제 원조와 구제금융을 지급하겠다고까지 했다. 베네수엘라 서민들을 볼모 삼는 냉혈한 같은 작태이다.

미국의 압박은 경제적인 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은 2월 27일(현지 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 회의에서 마두로 퇴진 후 재선거 실시를 요구하는 안보리 결의안을 발의했다.(러시아와 중국의 거부로 부결됐다.)

버니 샌더스

이틀 후인 3월 1일(현지 시각)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부통령 마이크 펜스는 미국 우파의 연례행사인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서 ‘사회주의’ 베네수엘라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사회주의가 좋으면 베네수엘라[가 망해 가는] 꼴을 보라.”

이는 미국에서 ‘민주사회주의’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를 겨냥한 것이기도 했다. “버니 샌더스가 사회주의라는 실패한 정치를 다시 들고 나타났다.”(펜스) 샌더스는 옳게도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간섭·개입을 줄곧 반대하고 있다.(그러나 샌더스가 마두로 정부에게 서방의 지원 물품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한 것은 현명치 못하다.)

미국 제국주의 지배자들은 2000년대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부 집권 물결(“핑크 물결”)의 상징인 베네수엘라에서 마두로 정부를 제거하고 신자유주의 우파의 지배를 공고히 해, 우고 차베스 이래 지난 20년간 일어난 친서민적 변화를 잔재까지 다 파괴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그간 실추됐던 역내 제국주의적 영향력을 회복하고,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핑크 물결”의 상징적 이념에 결정적 타격을 입히려는 것이다. 

미국이 후원하는 베네수엘라 우파의 선두에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는 강경 친미 우파 후안 과이도가 있다. 과이도와 우파는 차베스 정부 이래 잃었던 국가의 주도권을 되찾고, 석유 수출 수익을 복지에 쓰는 것이 아니라 (20세기 후반 내내 그랬듯) 그들만의 것으로 삼고자 좌파 정부에 대한 도전을 강화해 왔다. 

이들은 그간 국내에서 테러·폭동을 벌이고, 매점매석과 투기로 서민 경제 파탄을 부추겨 왔다. 2월 23일 국경 충돌 당시에도 우파들은 콜롬비아계 무장 세력과 함께 화염병을 던지고 차량에 불을 지르며 사상자 발생을 부추겼다. 

자결권

이날 콜롬비아로 넘어가 리마그룹 회의*에 참석한 과이도는, 이후 1주일 동안 브라질·파라과이·아르헨티나·에콰도르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순방’하며 베네수엘라에 대한 개입을 촉구했다. 이들 나라에서 과이도는, 베네수엘라 국경수비대 600명이 탈영했다며 사실상 군사 개입을 포함한 “모든 선택 사항을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고 되풀이했다.

나란히 선 친미 우파들 브라질의 극우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왼쪽)와 후안 과이도(오른쪽) ⓒ출처 Juan Guido(트위터)

‘순방’을 끝내고 3월 4일 귀국한 과이도는 반정부 시위를 이어 가려 한다. 브라질·아르헨티나·캐나다·유럽연합 등의 대사들이 귀국하는 과이도를 공항에서 ‘호위’했고, 펜스도 트위터에 “[과이도에 대한] 위협·폭력·협박이 벌어지면 [미국이] 즉각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글을 써 압박을 보탰다.

이들 모두는 제국주의적 간섭으로 파탄 날 베네수엘라 민중의 안위에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다. 친미 우파가 정권 탈취에 성공하면, 평범한 사람들이 다시는 도전할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끔찍한 보복을 자행할 것이다. 1973년 칠레에서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가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무너지고 수만 명이 학살당했던 것처럼 말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반도 운명의 주인은 우리”라고 말하던 문재인 정부가, 베네수엘라 민중의 자결권을 무시하고 두 차례나 베네수엘라 우파 지지 입장을 낸 것은 지독한 위선이다.


한국 진보·좌파들의 태도

좌파는, 베네수엘라에서 개혁의 성과를 파괴하려 드는 우파와 이를 후원하는 제국주의 모두에 분명하게 반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중당이 2월 26일 신창현 대변인 논평을 내서, “베네수엘라를 정치, 경제적으로 복속시키려는 제국주의적 침략 만행”을 지지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과이도 지지 철회와 사죄를 촉구한 것은 옳은 일이었다.

반면 민중당과 함께 원내 진보 정당인 정의당이 중앙당 차원의 입장 표명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물론 정의당 서울시당의 세계진보정치포럼이 자신들의 창립식에 주한 베네수엘라 대사를 초대해 간담회를 열고(추혜선 의원은 이 창립식에서 베네수엘라 자결권을 옹호했다), 정의당 당원들의 자체 모임인 ‘국제연대당원모임’이 문재인 정부의 베네수엘라 우파 지지를 거듭 비판했지만 말이다.(관련 ‘추천 외부 글’ 보기)

이와 동시에, 진정한 변화를 바라는 좌파는, 베네수엘라가 왜 이렇게 됐고 어떻게 하면 달라질 수 있을지도 철저히 규명하려 해야 한다.

지난 20년 동안 끊임없이 반발했던 베네수엘라 자본가·우파들에 차베스와 마두로가 제대로 도전하지 않았던 것이 오늘날의 위기를 예비했다. 차베스 자신이 죽기 전에 시인했듯,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자본가 계급의 경제 권력에 제대로 도전하지 않았다. 또, 자본주의 국가를 이용해 위로부터 (비록 급진적이었지만) 개혁을 단행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대중 운동과 유리된 채 베네수엘라 자본주의와 유착하는 새로운 엘리트층이 탄생했다. 이들은 ‘볼리바르식 혁명’으로 탄생한 자본가들이라는 뜻에서 “볼리부르헤스”라고 불린다.

차베스의 뒤를 이은 마두로 정부는 군부와의 유착, 우파와의 타협에 기대를 더 걸었다. 때마침 찾아온 국제유가 하락과 경제 위기에 대응해 마두로 정부는 위기의 고통을 서민들에게 전가하려고도 했다.

자본주의 국가

이에 우파는 기세가 올라 거듭 소요를 일으켰다. 마침내 이웃한 대국 브라질에서 노동자당(PT) 정부가 몰락하고 강경 우파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집권하자, 우파가 서방 제국주의의 지원 하에 정권 탈취 시도를 감행한 것이다.

트럼프의 말과는 반대로, 베네수엘라에서 사회주의가 과했던 것이 아니라 부족했던 (또는 없었던) 것이 오늘날 위기의 배경이다. 

그러므로 사회진보연대처럼 우파의 쿠데타 시도와 제국주의 간섭을 비판하지 않거나, 〈참세상〉처럼 미국과 우파를 비판하지만 마두로 정부를 아무런 비판 없이 지지해서는 균형 잡힌 분석과 올바른 대안 제시가 어려울 것이다.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국가들에 투자하고 차관을 제공해 영향력을 늘리려 하는 중국·러시아가 미국을 계속 견제해 줄 것이라 안심해서는 안 된다.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러시아는 미국이 제출한 결의안을 거부했지만, 2주 전만 해도 러시아 국영기업 산하 은행 가즈프롬방크는 PDVSA 제재에 동참했다. 중국도 과이도와의 막후 협상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저울에 올려진 추는 자국 자본주의의 이해관계이지, 베네수엘라 노동자 민중의 생존과 자결권이 아니다.

진정으로 우파를 패퇴시키고 제국주의 간섭을 물리칠 유일한 힘은 노동자 대중의 독립적 행동에 있다. 10여 년 전 베네수엘라 민중은 독립적으로 항쟁을 벌여 미국의 후원을 받은 베네수엘라 우파의 반동을 패퇴시켰고, 베네수엘라 정치 지형(과 차베스 자신)을 왼쪽으로 이끌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한 발 더 나아간, 노동자 계급의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 투쟁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