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초판에서 몇몇 사례를 추가하고, 일부 문장을 다듬었다.(1월 24일)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하 모든 존칭 생략)에 대한 미투와 그 관련 쟁점들에 대한 수사 결과가 5개월여 만에 발표되자 논란이 재점화됐다.

박원순의 성추행 혐의는 피고소인의 사망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으로, 서울시 관계자들의 성추행 방조 혐의는 ‘증거불충분에 의한 무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온라인 악성 댓글 작성자, 다른 사람의 사진을 고소인의 것이라며 유포한 자들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피소사실 유출 경위에 대한 검찰 조사 결과도 나왔다.(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루겠다.)

먼저, 고故 박원순의 삶을 생의 마지막에 벌어진 성추행 논란 하나로만 축소해서 평가하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한국 엔지오 운동의 대부에서 서울시장까지 지낸 그의 정치적 삶과 그 공과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그것이 진보 운동에 주는 진정한 교훈이 논의돼야 할 것이다.

이 글이 그의 정치적 궤적을 본격적으로 평가하는 글은 아니다. 다만, 그가 진보운동에 남긴 기여와 약점과 한계를 균형감 있게 보려 해야 하면서도, 특히 서울시장이 된 후에는 그의 개혁주의가 자본주의 국가 체계와 이윤 논리의 한계에 갇혀 개혁성이 퇴색하고 때때로 노동계급과 서민들을 배반했음을 간과할 수 없다는 점 정도만 밝혀 둔다.

이제 그의 성추행 혐의 문제로 곧장 들어가자면, 그가 망인이 됐으므로 성추행 혐의의 진상에 대해 섣불리 단정하기 어려움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게 불가피하다. 박원순은 사망 전날 젠더특보에게 “주고받은 문자가 있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했다지만, 해당 문자의 존재 여부와 그 내용은 확인된 바가 없다.

따라서 행위의 구체적 내용과 수위, 맥락, (성희롱과 성추행이 있었다면) 그 시점과 지속 기간, 위력의 작용 등 사건의 실체 파악과 경중 판단에 필요한 정보들은 여전히 불충분하다.

그런데도 제3자가 진상을 다 아는 양 단정하는 것은 성급하고 위험한 태도일 것이다. 사실 시민운동의 상징적 지도자이자 여권의 유력 대선 후보로 꼽혔던 인물의 미투 사건인 만큼, 무조건 어느 한 편을 들어야 한다는 압박 또는 강박과 정치적 계산이 팽배하다.

그러나 성범죄 문제는 매우 까다롭고 미묘하고 복잡한 문제인 만큼, 일도양단 식으로 단순하게 접근하기보다 신중하게 요모조모 살펴보며 실체적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의 경우, 피고소인의 사망으로 수사권을 가진 경찰조차 증거 확보에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우파들의 위선적인 ‘2차가해’ 공세

안타깝게도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대한 신중한 접근은 그간 찾아보기 어려웠다. 여야 간 진영논리에 급진 페미니즘의 특수 개념들과 실천들까지 중첩되어, 차분한 실체 규명보다는 저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건을 끌고가기 바빴다.

그러나 우파의 위선이 각별히 메스꺼웠다. 실체적 진실이나 여성운동의 대의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국민의힘과 우파 언론들은 이 사건을 이용해 정적 공격에 열을 올렸다. 특히, 그들이 급진 페미니즘의 무기고에서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가해” 개념을 꺼내 와 정적 공격에 마구 사용하는 모습은 위선의 극치였다. 성평등에는 관심도 없고 오히려 여성에 대한 체계적인 차별을 지지하고 부추겨 온 그들은 그럴 자격이 없다.

기억을 환기시키자면, 국민의힘은 불과 얼마 전까지 ‘성누리당’으로 불렸고, 강간미수 공범 행위(‘돼지발정제 사건’)를 젊은 날의 낭만쯤으로 미화한 홍준표를 몇 년 전 대선 후보로 내세웠던 당이다. 그런 보수반동 정당이 마치 페미니즘의 전사라도 된 양, 입만 열면 ‘2차가해’ 공세를 퍼붓는 모습을 보면 토할 것만 같다.

피해호소인의 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는 우파 진영에 공격거리를 제공하는 스피커 구실을 해 왔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김재련은 박근혜 정부에서 여성가족부 인권증진국장과 화해치유재단 이사를 지낸 바 있다. 화해치유재단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결과물로, 일본 국가의 전쟁 범죄를 덮고 책임을 면제해 주는 대가로 피해자들에게 위로금 10억 엔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위안부 피해자들은 화해치유재단의 해산과 제대로 된 배상·사죄를 요구해 왔다.

우파 정부에 기용됐던 사람이 갑자기 박원순 미투 여성의 대리인으로 나타나,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증거 제시를 통한 원사건의 실체 규명보다는, 요란한 “2차가해” 공세로 언론 플레이와 여론 몰이에 주력하는 듯한 모습에 분별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동기에 의구심을 갖게 됐다.

물론 성폭력 피해자가 불이익 없이 안전하게 피해를 호소할 수 있도록 피해호소인에 대한 ‘신상털이’와 음해, 가짜뉴스 유포 등의 행태는 제재돼야 한다.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은 “고소녀” 얼굴이라며 A씨의 사진을 퍼뜨리거나, A씨를 “정치 꽃뱀”, “꼬리 아홉달린 여자”, “관노” 등으로 지칭·비유하며 모욕하는 행태를 보였다. 이는 피해호소 여성이 실제로 피해를 입었다면 그의 상처에 소금 뿌리는 짓으로, 절대 해선 안 될 일이다. 이런 볼썽사나운 행태는 실체적 진실을 중시하는 신중한 태도와는 반대되는 것으로, 무조건 성추행이 없었다(또는 없어야만 한다)고 믿으면서 그에 부합해 보이는 사례들만 모으는 또 다른 확증편향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러나 김재련과 우파들은 마땅히 반대해야 할 문제적 행동들을 반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서울시 장례, 고인에 대한 추모와 애도, 상대측 소명, 합리적 의문 제기, 심지어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 사용조차 ‘2차가해’라고 비난했다. 그 과도함이 지적되자 김재련은 “2차가해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침묵하는지도 2차가해”라며 자신의 주장을 성역화했다. 이런 대리인의 독단적 태도를 보안법에 빗대어 불평한 한 언론인(곽병찬 당시 서울신문 논설고문)의 칼럼조차 ‘2차가해’로 낙인 찍혀, 신문 데스크가 그 글을 온라인에서 삭제하는 일까지 있었다.

하지만 성적 괴롭힘 혐의의 진상이 아직 다 밝혀지지도 않은 데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박원순의 삶이 그 문제로만 축소될 순 없을진대, 갑작스런 죽음 앞에 황망한 사람들의 복잡한 감정과 애도마저 간단히 ‘성추행을 감싸는 2차가해’로 모는 것은 지나친 처사였다.

‘피해호소인’ 용어 비난도 터무니없다. 이 용어는 피해호소 여성의 진술을 중요한 증거의 하나로 존중하면서도, 공정한 진상조사를 통해 피해 사실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피해자’나 ‘가해자’라는 확정적인 단어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은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의 말만으로 성폭력 여부를 판단하는 ‘피해자 중심주의’의 여러 부작용을 체험하면서, 여성운동 일각에서 사용되던 용어다. 필자는 물론이고 지난해 7월 변혁당 서울시당이나 진보당 대변인실, 여성단체 출신의 페미니스트 의원들(남인순, 김상희, 진선미 등)도 박원순 건에 대한 성명에서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물론 이 용어에 대해 비판적인 페미니스트들도 당연히 있다. 그러나 용어의 적절성과 효과성은 토론하고 논쟁할 문제이지, “2차가해”로 낙인 찍으며 상대편 입에 재갈을 물릴 일이 아니다. 종종 이런 방식 자체가 동기의 불순함을 반영한다.

김재련 측의 행보에 제기되는 또 다른 의문도 있다. 형사절차상 피고소인이 사망하면 처벌이 불가능해 ‘공소권 없음’ 결정이 날 수밖에 없다. 이런 조건 하에서는 수사가 커다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번 사건처럼 양측의 주장이 서로 엇갈리고 논란을 종결시킬 만한 명백한 증거의 존재도 불확실하다면, 일방이 제출한 진술과 증거만으로 수사 결과를 공표하는 것은 불공정하기까지 할 것이다.

그래서 여러 법조인들은 만약 진실 규명과 피해자의 억울함을 푸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라면, 다른 방식의 대응(가령 공소권을 발동할 수 없는 형사소송 대신 박원순의 유족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걸어 그 과정에서 증거를 제시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런 점들을 잘 알고 있을 김재련 변호사는 아직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형사소송을 먼저 거는 것이 언론 플레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형사소송에서는 고소인 측이 입증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도 언론을 통해 논란을 부추길 수 있고, 나중에 원하는 수사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수사기관을 규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김재련 측이 이 사건을 공론장에 올려놓은 만큼, 그는 자신에게 제기되는 의문들에 책임 있게 답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 자신에게 불리한 문제제기와 증거 제시를 모두 ‘2차가해’로 몰기만 하면 그의 방식에 대한 의구심과 회의만 커질 수밖에 없다.

 발본적 성찰이 필요한 ‘피해자 중심주의-2차가해’ 교리

이번 사건은 ‘피해자 중심주의-2차가해’라는 한 쌍의 교리가 내포한 난점과 모순 때문에 우파도 얼마든지 그것을 자신들의 무기로 이용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보여 줬다. 김재련과 주요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이번 사건을 놓고 공동대처하기도 했다. 

그간 급진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피해 호소 여성의 감정과 진술만으로 성폭력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피해자 중심주의”와 그 방호벽 구실을 해 온 “2차가해” 교리가 통용돼 왔다. 원래 ‘피해자 중심주의’는 여성의 피해 호소가 부당하게 무시되는 관행을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이해할 만한 애초 취지에도 불구하고 여러 혼란과 폐해를 낳았다.

특히, 피해호소인 진술에 대한 사실 확인과 피해 여부의 조사, 가해지목 당사자의 해명 행위까지 가해로 규정하면서 모든 판단의 기초가 돼야 할 사실 확인 절차를 저해했다. 이는 합리적 질문 제기에 재갈을 물려, 꼭 필요한 토론마저 위축시키거나 봉쇄하기도 했다. 정치적 경쟁 상대나 이견자를 제거하는 수단으로도 악용됐다. 박원순 사건에서도 이런 부작용이 드러났다.

부작용의 또 다른 최신 사례로는 광주의 도덕교사 배이상헌 징계 사건이 있다. 배이상헌 교사는 성평등 수업시간에 여성단체들도 추천한 성인지교육용 영화를 상영한 것이 일부 학생에게 불편함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수사기관에 넘겨졌다. 1년 넘는 직위해제 끝에 검찰에서 무혐의 결정을 받았음에도 광주교육청이 (마치 무언가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 듯) 끝내 중징계를 강행해 고초를 겪고 있다.

성평등교육은 기존의 보수적 성관념에 도전하므로, 일부 학생들은 불편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광주교육청은 소위 ‘피해자 중심주의’에 따라 이런 불편함을 곧 성비위의 증거로 취급해 버리고, 당사자의 소명기회조차 보장하지 않은 채 직위해제했다. 공식 소명기회가 박탈된 상태에서 해당 교사가 SNS에서 한 해명과 광주교육청의 횡포에 대한 그의 비판마저 ‘2차가해’로 낙인 찍혀 징계 사유에 추가됐다.

결국 이 한 쌍의 교리는 여성 차별과 성폭력에 대한 사람들의 감수성과 인식이 성장하길 바랐던 애초의 취지와는 달리, 정반대의 역효과를 낳고 있다. 그래서 때때로 억울한 속죄양을 만들어 내거나, 진실과 상관없이 ‘닥치고 사과’하는 것만이 상책이라는 기회주의적 처신만 팽배하게 만든다. 이런 개념과 실천 속에서는 위선적인 도덕주의와 회피, 기회주의만이 자랄 뿐, 성평등 관념이 제대로 자라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행히도 이런 폐단 때문에 그 부작용을 체험하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대부분 대놓고 말하지 못할 뿐). 진보 법학자철학자, 여성학자들의 주목할 만한 합리적 반론도 제시되고 있다.

가령 박원순 성추행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저명한 여성학자 정희진이 쓴 〈경향신문〉 칼럼이 시사적이다. 정희진은 2005년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자신이 ‘피해자 중심주의’에 비판적이었음을 상기시키며, “피해자 중심주의는 여성에게 불리할 뿐 아니라 실현 불가능한 개념”이라고 지적한다. 피해는 상황이지 정체성이 아님에도, 피해자 중심주의는 여성을 피해자 정체성에 집착하게 만들어 오히려 여성에게 불리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사실 2017년 한 여성단체가 이 한 쌍의 교리를 자성적으로 평가하는 토론회를 연 적이 있다. 여성학자 권김현영 등이 관련 글을 쓰고 발제에 나섰다. 하지만 지난 3년 반의 실천은 그의 ‘자성적 평가’가 일관되지도 발본적이지도 않았음을 보여 준다. 특히, 권김현영의 대안(‘피해자 중심주의’를 ‘피해자 관점’으로, ‘2차가해’를 ‘2차피해’로 바꾸자는)은 원래 개념들이 내포한 근본적인 난점(주관주의)을 해결할 수 없어, 실제 적용에서는 별 차이가 없거나 이전의 방식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에 대해서는 박경신 교수의 논문 ‘미투 운동이 극복해야 할 피해자 중심주의’ 참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말만 “2차피해”, “피해자 관점”으로 살짝 바꾼 채 실제로는 이전과 같은 행태를 반복한다. 무엇보다 권김현영은 자신이 속한 급진 페미니즘 진영이 여전히 예전의 교리와 실천을 고수하며 혼란과 갈등을 빚고 있는 현실에 대해 침묵·방관하거나 심지어 일부 동조해 왔다.

  피소사실 유출이 보여 주는 것

수사 결과 발표 후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킨 피소사실 유출 건에서도 여성단체들이 뼈저리게 돌아봐야 할 점들이 있다. 검찰조사 결과, 피소 가능성에 대한 정보가 흘러간 경로는 김재련 → 이미경(한국성폭력상담소장) → 김영순(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상임대표) → 남인순(여연 대표 출신이자 민주당 의원) → 임순영(서울시 젠더특보)으로 드러났다.(경찰, 검찰, 청와대를 통한 추가 유출 의혹도 있다.)

피소사실 유출은 결코 해선 안 될 일이다. 여성운동가라면 더더욱 그 점에 관해 철저해야 했다. 피해자가 도움을 청한 여성단체 간부가 오히려 가해혐의자 측에 사전 정보를 흘린다면 과연 그 단체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특히, 서울시장이자 차기 대권후보와 같은 막강한 권력자에게 피소 사실 또는 그 개연성 정보가 유출된다면, 수사기관에 압력을 가하거나 증거를 인멸·조작할 가능성마저 있다.

‘피소사실 유출은 안 했고 그냥 물어 본 것’이라는 남인순 의원의 답변은 군색하다. 남 의원이 고소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는 언질을 사전에 피고소인 측에 주어, 고소여성에게 불리하고 피고소인에게 유리한 행동을 했다는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마땅하다. 단체 밖으로 정보를 유출한 여연 상임대표도 마찬가지다.

한편, 피해호소인을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와 대표적 여성단체들이 유출 경로를 알고서도 침묵한 정황도 드러났다. 그간 이들은 외부를 향해 피소사실 유출 경로를 밝히라고 요구해 왔다. 하지만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이 12월 30일 발표한 입장을 보면, 이들은 여연 대표를 통해 정보가 새 나간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연을 공동대응에서 배제하고 여연 측에 이 일에 대한 소명, 평가, 징계 등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5개월 넘게 이 사실을 숨긴 채 ‘대체 어디서 유출됐냐’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되자 뒤늦게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비록 이것이 피소사실 유출만큼의 잘못은 아닐지라도, 그리고 이 문제로 자신들의 활동 전체가 부당하게 폄훼될 수 있다는 그들의 우려를 이해한다손 쳐도, 이토록 중요한 문제를 그토록 오랫동안 숨기다가 수사기관의 발표 뒤에야 마지못해 인정한 것은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공동행동은 ‘여연의 잘못일 뿐 우리는 피소사실 유출에는 가담하지 않았으니 문제 없다’는 투로 입장을 냈다. 그러나 이는 그 내부의 일부 주도적 단체들이 성폭력 관련 견해를 달리하는 다른 단체를 향해 ‘2차가해’를 했다며 배척 운동까지 한 것과는 사뭇 대조된다.

 근본 문제들과 과제

물론 여연은 상임대표의 직무배제 조처에 이어 불신임 결정을 내렸고, 김영순 상임대표는 정부 주요 위원회와 공공기관 위촉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더 근본적인 문제들도 돌아봐야 한다. 대부분 정치적 개혁주의자이자 이론상 급진 페미니스트인 여성단체 지도자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정부와 국회 등 제도권에 진출해 정책 수립에 영향을 미치는 ‘성주류화 전략’을 실행해 왔다. 여연 상임대표를 지내면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말도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집권했던 시기와 문재인 정부 하에서 이 전략은 더욱 날개를 달았다.

이런 식으로 여성 엔지오의 핵심 지도자들은 노골적인 친자본주의 개혁 정당인 민주당과 긴밀히 연계돼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자본주의 국가로 포섭돼 왔다.(‘여성운동 지도자들과 자본주의 국가의 밀접한 관계’, 〈노동자 연대〉 258호)

이는 여성운동의 관료화, 주류화, 보수화 등 모순을 낳았다. 여성차별에서 구체적인 득을 보는 기업주들의 국가는 기껏해야 매우 불충분하고 미온적인 개혁만을 제공하고, 특히 경제 침체 시기에는 여성 노동자들의 조건을 공격한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국가기구에 진입한 여성운동가들은 국가기구를 책임 있게 운영해야 한다는 논리의 포로가 되곤 했다. 이처럼, (자본주의) 국가를 성평등화의 지렛대로 삼는 전략은 국가가 여성들의 조건을 공격할 때 이에 대한 저항운동을 효과적으로 건설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여성운동이 배출한 고위 관료들과 정치인들은 노동계급과 서민층 여성들의 요구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때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페미니즘의 도전》 15주년 기념판 머리말에서, 기층 여성들의 삶은 더 악화된 반면 “여성운동 경력을 발판 삼아 국회에 진출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여성 국회의원들”은 차별금지법에 소극적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여연 대표와 남인순 의원의 정보 유출 건은 여성단체 간부들이 자본가 계급의 정치권에 진출하고 사회 상층부와 점점 더 일체감을 느끼면서, 자신들이 몸담았던 여성운동의 기본 원칙과 대의에 얼마나 둔감해졌는가를 보여 준 일이다.

주요 여성단체 간부들이 이론상 남 대 여의 이분법적 페미니즘을 여전히 견지하는 것도 그들의 사회 상층부 진출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별 대립 구도를 내세움으로써 그들은 ‘남성 권력’에 맞서 여성 전체를 대변한다는 명분 하에 자신들의 정치적 지분을 확보해 왔다. 그들이 성폭력 문제에만 거의 전념하다시피 하면서 여성들을 잠재적 피해자로 제시하는 반면 남성들은 잠재적 가해자로 싸잡아 매도하는 것도 이와 관련 있다.

하지만 역사적 경험은 여성단체 지도자들이 고위직에 오른다 해서 노동계급과 서민층 여성들의 조건이 그 덕분에 향상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 준다. 사실 남녀 노동자들은 급진 페미니즘의 남 대 여 프레임에서 얻을 게 없다. 오히려 서로 단결해야 모두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별 대립 구도는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해 오히려 남녀 노동계급에 피해를 끼친다.

특히, 급진 페미니즘식 성폭력 교리들(‘피해자 중심주의-2차가해’)은 그 개념이 극도로 모호하고 부풀려진 데다 필요한 토론을 억눌러 소통과 토론을 가로막거나 왜곡시켰고, 소모적인 갈등과 분열을 일으켰다.

여성운동은 성폭력 문제에만 치중하다시피 하며 운동을 파편화시키는 기존의 방식을 고수할 게 아니라, 노동계급과 서민층 여성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운동들을 건설하며 투쟁해야 한다. 남성 노동자들과도 연대해 운동을 더 크고 효과적으로 건설해야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국가를 성평등화의 지렛대로 삼는 개혁주의 전략에 기대어서는 가능치 않은 일이다. 오직 아래로부터의 단결된 투쟁만이 나아갈 길이다.


필자 최미진은 《성폭력 2차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논쟁》(책갈피, 2017)의 지은이로, 2004년 고려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노동자 연대〉 신문의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