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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배상 판결 확정:
문재인 정부는 일본 정부 자산 압류하라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한국 법원의 판결이 1월 23일 확정됐다. 피고인 일본 정부가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판결에 승복해서가 아니라 재판의 성립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적반하장으로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검토하겠다며 반발했다. 이번 판결이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국제법(주권면제) 위반이라는 것이다.

피고가 법원의 배상 명령에 불복하면 법원은 피고의 자산(이번 판결의 경우, 국내에 있는 일본 정부의 자산)을 압류하고 강제로 현금화해 배상을 집행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이것도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2년 전 강제동원 배상 판결이 일본 전범 기업들의 국내 자산 압류 절차(아직 매각이 집행되진 않았다)로 이어진 것과 달리, 이번 위안부 피해 배상은 강제 집행이 어려울 것이라고들 전망하는 듯하다.

일본 정부 자산 압류, “전례가 없어서 어렵다”? 2014년 이탈리아에서 독일 정부를 상대로 전시 강제동원 피해 배상을 강제 집행한 사례가 있다 ⓒ이미진

국제법 위반?

그러나 국제법을 지키는 일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일본 정부야말로 범법자이다. 배상을 거부하는 것뿐 아니라, 애초에 식민지를 침략하고 그곳의 여성들을 위안부로 끌고 가는 만행을 저지른 것부터가 국제법을 위반한 전쟁범죄였다.

1996년 유엔 인권위원회는 위안소를 설치해서 운영한 것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같은 해 ILO(국제노동기구)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이 ILO 29호 조약(강제노동 금지규약)을 위반했으므로 적절한 피해 배상을 하라고 권고했다. 1994년 국제법률가협회(ICJ) 보고서,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 등 일본에 책임을 묻는 국제법적 해석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들 때문에,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 배상 판결을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면 오히려 한국에 유리할 수도 있다며 역으로 국제법을 이용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법을 집행하는 국제사법재판소와 그것을 관장하는 유엔은 약소국이나 평범한 피해 대중의 인권을 위해 움직이는 정의의 사도가 결코 아니다. 이런 국제 기구들은 자본주의 강대국들의 힘의 논리, 즉 제국주의 질서 앞에서 완전히 무력하다.

예컨대 국제사법재판소는 미국 군대가 다른 나라 영토에서 저지른 불법 행위에 대해 종종 합법적인 면제권을 부여했다. 그렇지 않으면 흔히 무력하다. 2018년에는 미국 트럼프 정부를 향해 미국-이란 친선 조약을 위반한 대이란 제재는 철회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보란 듯이 조약을 공식 파기하고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도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국제사법재판소를 관장하는 유엔 자체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강대국(여기에는 미국의 주요 동맹인 일본도 포함된다)들의 영향력이 지배하는 기구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 해결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주무르는 국제 질서 자체를 반대해 싸우는 속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들 위로하는 척 내민 손으로 뒤통수 친 문재인 정부 ⓒ출처 청와대

문재인 정부는 압류 시도조차 안 한다

문재인 정부는 일본 정부에 맞서 싸워야 하는 고령의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변해 행동에 나서도 모자랄 판에 법원의 배상 강제 집행을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강제징용 문제처럼 배상을 강제 집행하는 것은 한일 관계에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 ...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토대 위에서 ... [배상이 강제 집행]되기 전에 외교적인 해법을 찾는 것이 더 우선이다.”(1월 18일 문재인 신년 기자회견)

뒤이어 23일 외교부는 입장을 발표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 강제 집행을 가로막지도 않겠지만 일본에 대해서도 “어떤 추가적인 청구도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마치 중립에 서겠다는 것처럼 보이지만(그렇다 해도 문제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본이 국제 분쟁을 예고하면서 강력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지지 없이 법원이일본 정부 자산을 찾아 압류하고 배상금으로 전환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위안부 배상 판결 이후 부임한 강창일 신임 주일대사는 27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외교적 해법을 찾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의 자산을 압류하는 것은] 최악의 경우 그럴 수도 있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

특히, 현안인 강제동원 배상을 우회할 외교적 방안을 12개나 갖고 있다며 문희상 안(한·일 기업들의 자발적 성금으로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법안)을 비롯한 기금 마련책들을 열거했다. 강 대사는 위안부 문제에서도 같은 방향의 대안을 찾겠다고 했다.

그러나 법적 배상 요구의 핵심은 일본 측이 지금껏 한 번도 인정한 적 없는 진실, 즉 일본 국가가 추악한 전쟁 범죄의 주체였음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우회하면서 일본 정부와 타협하는 것이 목표인 문재인 정부가 내놓을 “해법”은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기는커녕 또 다른 배신이 될 것이다.

위안부 운동의 대표 몫으로 민주당 국회의원이 된 윤미향 의원도 일본 정부만 비판할 뿐 문재인 정부의 문제적 행보에는 기회주의적으로 침묵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바란다면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문재인 정부에 맞서는 항의 운동을 건설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시도조차 안 하는 것들 — 일본 정부 자산 압류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 — 을 요구하며 행동해야 한다. 상징적인 직접행동이 필요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