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일 쿠바에서 벌어진 시위는 1959년 새 쿠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였다.

쿠바 정부는 초장부터 강경 대응했다. 시위를 폭력 진압하고, 이후 1주일 넘게 가가호호 수색으로 시위 참가자를 색출·연행했다. 쿠바 경찰뿐 아니라 정규군(FAR)과 예비군, 사관학교 생도들도 색출에 투입됐다. 정부가 연행자 수치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쿠바인들의 인터넷 접속을 통제해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구금되거나 사라진 사람이 수천 명에 이른다는 아바나 현지 보도도 있다.

대규모 관제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대통령 미겔 디아스카넬 자신이 시위 참가를 독려했고, 올해 4월 쿠바공산당 서기장 직에서 사임한 라울 카스트로가 직접 시위를 주도했다.

반정부 시위는 철저하게 탄압하면서 친정부 시위만 허용하는 사회는 “인민이 지배하는 민주적 사회”가 전혀 아니다. 폴란드계 독일 마르크스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의 지적처럼, “정부 지지자나 특정 정당의 당원들이 얼마나 많든 간에 그들에게만 허용되는 자유는 전혀 자유가 아니다.”

쿠바 정부는 이런 탄압이 “순수한 인민 사이에 섞인 반혁명 분자와 범죄자들”을 솎아내는 조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돈을 대는 반혁명 조직이 시위의 배후에 있다고 주장했다.

잇속

미국은 분명 이번 시위를 이용해 이득을 얻고 싶어 할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국무부 차관이 쿠바 반정부 시위 발발 직후 시위 지지를 표명한 데 이어, 15일에는 바이든 자신이 쿠바를 “실패한 국가”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미국은 쿠바 대중의 생계와 민주적 권리에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다. 그런 관심이 있었다면, 쿠바를 수십 년 동안 옥죄어 온 수많은 제재를 즉각 해제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는 여전히 제재 해제에 부정적이고, 임기 중 처음으로 열린 지난달 유엔 총회에서 쿠바 봉쇄 해제 촉구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미국과 이스라엘만이 반대표를 던졌다.)

미국의 진정한 관심사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무시 못 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를 흔드는 것이다.

미국은 라틴아메리카를 제 뒷마당처럼 여기며 오랫동안 간섭을 자행해 온 역사가 있다. 미국의 턱밑에서 반세기 넘게 미국의 간섭과 압박에 맞서 온 쿠바 국가에 적잖은 좌파가 공감을 보내는 까닭이다. 실로 쿠바에 대한 그런 간섭과 제재는 일절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쿠바 정부에 대한 대중의 항의가 미국 제국주의의 책동 때문인 것도 아니고, 이를 빌미로 쿠바 정부가 대중을 탄압해도 괜찮은 것도 아니다. 그런 견해는 이번 시위가 드러낸 쿠바 사회의 위기를 간과하는 것이다.

누가 왜 시위에 나섰나 ─ “색깔 혁명”이 아니다

7월 11일 시위는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산안토니오 데로스바노스에서 수백 명 규모로 시작됐다. 불과 몇 시간 후 아바나에서도 약 5000명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아바나의 시위대는 도시 외곽의 노동계급 거주지에서 출발해 쿠바 의회 건물, 공산당 중앙당사, 내무부, 국방부, 국영 신문사 건물이 있는 아바나 중심부로 행진했다.

쿠바 국내 좌파 매체 ‘코무니스타스 쿠바’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날 시위는 사회 문제가 가장 심각한 노동계급 거주지에서 시작됐다. 쿠바는 사회적 불평등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저소득·변두리 지역에서는 빈곤, 사회적 방치, 불안정한 공공·복지 정책, 국가의 식량·생필품 공급 부족, 열악한 문화 정책 등이 두드러진다.

“이날 시위를 촉발한 직접적 계기는 심각한 물자 부족에 대한 불만이었다. 경제 위기, 미국 정부가 부과한 경제 제재, 국가 관료들의 문제적이고 비효율적인 조처가 그런 물자 부족을 야기했다.”

물자 부족

미국의 제재가 쿠바의 만성적 물자 부족에 책임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쿠바는 식량·의약품·생필품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데, 쿠바뿐 아니라 쿠바의 무역 상대까지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은 그런 무역을 상당히 어렵게 해 왔다.

하지만 지금 쿠바인들이 겪는 고통이 오직 미국의 제재 탓인 것만은 아니다. 쿠바 사회 자체의 성격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혁명 이후 형성된 쿠바 사회는 냉전 경쟁 속에서 대중의 필요보다 축적을 중시하는 사회였다.(관련 기사: “쿠바가 사회주의라는 신화와 현실”, 본지 188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냉전 종식 후 지난 30년에 걸친 변화는 쿠바 대중의 고통을 가중시켜 왔다.

냉전기 동안 소련·동구권 경제에 편입돼 있었던 쿠바는 소련 몰락 후 자국 경제를 세계 자본주의에 개방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쿠바 정부는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특별한 시기”에 해외 민간자본을 유치하려 애쓰고, 민관 합작투자를 조직해 국영 기업 일부를 민영화했다.

그 결과, 쿠바 경제는 세계 자본주의와 더 긴밀해졌다. 쿠바는 미국의 제재가 심각한 와중에도 매년 약 19억 달러의 해외 투자(2019년 기준)를 유치하게 됐다. 하지만 이런 연계 때문에 쿠바 경제는 세계 자본주의의 리듬에 더 얽매이게 됐다.

한편, 쿠바 정부는 외화벌이 수단으로 관광업을 적극 조성했다. 이 때문에 혁명 이전처럼 관광업에 대한 의존이 다시 강화됐다.

이런 변화는 쿠바 대중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 세기 가까이 사탕수수에 치중하고 식량·생필품 생산은 부차적이었던 경제가 대중의 필요에 맞게 다각화되지도 않았다. 일각에서 찬양하는 쿠바의 이른바 ‘생태 농업’은, 비료·농기계·농업기술 부족과 정부의 ‘경쟁력 있는 산업’ 우대 기조 속에서 등장한 것이었다. 쿠바의 식량 생산은 만성적 투자 부족으로 여전히 낙후한 수준이고, 쿠바인 1인당 칼로리 소비량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필수 기준치에 한참 못 미친다.

한편, 이런 전환 과정에서 평범한 쿠바인들을 위한 복지가 삭감되고, 실업이 증대했다. 특히, 육체 노동자들과 흑인들이 그 피해를 크게 봤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런 문제들을 더 첨예하게 만들었다. 전 세계에서 생산과 교역이 감소하자 쿠바의 생필품 공급도 큰 차질을 빚게 됐다. 식량과 의약품 부족이 심각해졌다. 정전과 단수도 잦아졌다. 정부는 서민층 지원금을 삭감하고 공공요금을 올렸다. 예컨대 아바나의 대중교통 요금은 다섯 배로 뛰었다.

주요 외화벌이 수단의 하나인 관광업도 크게 축소돼, 2020년 쿠바를 찾은 관광객은 전망치의 3분의 1인 150만 명 수준으로 줄었다. 2021년 상반기 관광객 수는 13만 명을 약간 넘는 수준으로 폭락했다.

의료도 커다란 차질을 빚었다. 쿠바 의료는 외국인 대상 고급 의료(“달러 의료”)와 서민 대상 기초 의료(“페소 의료”)로 양분돼 있는데, 오랫동안 기초 의료용품과 의약품 부족에 허덕이던 “페소 의료” 자원은 더 부족해졌다. 그나마 남은 의약품과 자원은 외화벌이를 이유로 “달러 의료”로 쏠렸다.

여기서 모두가 똑같이 어려움을 겪은 것은 아니다. “페소 의료”에 의존하는 서민들은 의약품이 모자라 약초 등을 이용한 이른바 ‘대체 의학’에 매달려야 했지만, 국가 관료들은 부담 없이 “달러 의료”를 이용할 수 있었다.(쿠바의 의료에 관해서는 본지 195호 ‘쿠바 무상 의료의 이상과 현실’을 보시오.)

이런 상황에 ‘델타 변이’까지 상륙하자, 하루 확진자가 6000명대까지 치솟는 등 피해가 더 커졌다.

물가 상승에 대응해 쿠바 정부가 최근 단행한 화폐개혁도 커다란 역풍을 맞았다. 쿠바 정부는 1994년부터 국내 유통 화폐와 태환화폐를 구분하는 이중화폐제를 시행했는데, 2020년 말 이 구분을 폐지하며 환율을 달러당 24페소로 고정했다. 이는 화폐 가치를 고정해 통화 가치 안정과 물가 안정을 도모하려는 시도였는데, 실제로는 화폐 가치가 폭락하는 효과를 낳았다. 이것이 물자 부족과 겹쳐 쿠바 경제는 물가 앙등에 빠졌다.

쿠바 대중은 이런 상황에서 생활고에 못 이겨 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는 몇 개월 전 친미 우익 정부에 맞서 시위를 벌인 콜롬비아 대중의 동기와 본질적으로 같다.

간극

시위대 안에 온갖 모순된 정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당연히 친미 우익도 포함돼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코무니스타스 쿠바’는 시위 참가자 대다수는 그런 단체들과 연관이 없고, 그런 단체들이 이날 시위를 이끈 것도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코무니스타스 쿠바’는 이날 시위 대열에 청년들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쿠바 역사가이자 마르크스주의자인 알리나 바르바라 로페스 에르난데스에 따르면, 청년들은 “[정부의] 약속이 실현되지 않고, 개혁은 미뤄지거나 좌초되는 상황에 지쳤다.”

11일 시위에는 성소수자 천대에 항의하는 운동, 흑인계 쿠바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운동, 최근 몇 년 새 다시 활동하기 시작한 쿠바 좌파들도 참가했는데, 쿠바 청년들은 바로 이런 운동들의 참가자이자 주요 청중이기도 했다.

이런 사실들을 애써 보지 않고 시위 일체를 미국 중앙정보국(CIA) 혹은 쿠바 혁명을 증오하는 쿠바계 미국인 우익의 사주에 놀아난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설령 쿠바 정부 말처럼 미국이 후원하는 우익이 시위대에 섞여 있었다 해도 그들이 쿠바 대중 저항의 충실한 일부인 것도, 대중 저항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코뮤니스타스 쿠바’ 편집자 프랑크 가르시아 에르난데스는 미국의 간섭이 쿠바에서 새로운 형태로 계급 투쟁이 등장하는 과정을 오히려 늦추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은 해방을 추구하는 노동계급 대중의 운동을 결코 충심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이 그런 운동을 자기 이해관계에 맞게 왜곡시키려 한 사례가 역사 속에 수없이 많다.

게다가 미국의 간섭은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쿠바 정부가 ‘반(反)제국주의’를 명분으로 대중에 고통을 강제하는 것을 정당화할 근거가 된다.

그러나 쿠바 사회는 진짜로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다. 오늘날 쿠바 정부를 탄생시킨 1959년 쿠바 혁명은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투쟁이었지만, 노동계급에 의한 행동이 아니었기에 그 이후 건설된 사회는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계 없는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였다.(관련 기사 묶음)

이번 쿠바 시위는 전염병·불황 등으로 첨예해지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쿠바 사회도 구조화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2018년 말부터 세계 곳곳을 휩쓸었던 대중 항쟁의 물결이 드러냈듯이, 권위주의적 조처를 동원한 국가 탄압은 대중의 반감을 잠시 숨죽이게 할 수는 있어도, 아예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반감의 근원인 위기가 온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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