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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박원익(필명 박가분) 진보너머 운영위원의 현대화폐론에 대한 비판:
국가 발권력을 사회 변화에 활용할 수 있을까?

최근 현대화폐론과 그 관련 정책인 ‘국가 일자리 보장제’를 열정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박원익 진보너머 운영위원(필명인 박가분으로 더 유명. 이하 직함 생략)의 박사학위 논문이 발표됐다.

〈내생화폐이론과 재정정책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학위논문의 목적은 현대화폐론의 정교함을 더욱 높이고, 현대화폐론이 제안하는 국가 일자리 보장제 같은 정책들이 한국에 실제로 적용될 수 있음을 계량적으로 입증하려는 것이다.

제1장 ‘국정화폐론의 비교사 및 비교이론적 고찰’은 현대화폐론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내생화폐이론과 국정화폐론을 경제사의 관점에서 박원익 나름으로 통합하려고 한다.

제2장 ‘Two Theories of Endogenous Money: An Empirical Study of Korea’는 포스트케인스학파 내생화폐이론과 현대화폐론이 한국 경제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계량적으로 실증한다.

제3장 ‘한국의 일자리보장제 경제효과 모의실험: Fair 거시경제모형의 응용을 중심으로’는 일자리 보장제의 경제적 효과를 실험한다.

이 중 2장과 3장은 계량방법론을 적용한 분석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충분한 토론을 하는 것은 필자의 이 평론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다.

필자는 박원익 논문 1장을 중심으로 논의하면서 3장의 국가 일자리 보장제 효과에 대해서도 살펴보려고 한다. 박원익 논문이 현대화폐론에 천착한 글인데다 앞으로 책으로 출판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물론 책으로 출판되면 내용이 일부 수정될 수 있지만, 논문의 핵심 주장은 바뀌지 않을 공산이 크다.)

ⓒ출처 Pictures of Money(플리커)

현대화폐론의 모순

박원익의 논의를 살펴보기 전에 우선 현대화폐론을 먼저 살펴보자.(더 선행하는 논의는 본지의 ‘돈만 찍어 내면 만사형통일까?’‘현대화폐론 비판’ 등을 참고하시오.) 이정구는 현대화폐론의 핵심 내용을 이렇게 요약했다:

“현대화폐론에 따라 다양한 주장들이 펼쳐지고 있지만 핵심 내용은 세 가지이다. 첫째, 정부가 조세를 특정한 증표로 납부하도록 함으로써 그 증표가 화폐가 된다. 둘째, 정부가 재정지출을 통해 화폐를 창출하고 조세 징수를 통해 창출된 화폐를 거둬들인다. 셋째, 정부는 화폐 발행을 통해 정부 채무를 모두 상환할 수 있다.”(이정구, ‘현대화폐이론 비판: 정부는 정말 화수분인가?’, 《마르크스21》 30호(2019년 5~6월호))

그러므로 현대화폐론자들은 국가가 세금을 걷거나 돈을 빌릴 뿐 아니라 돈을 새로 찍어 내는 것을 통해서도 국가 경제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얼마든지 스스로 조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매년 수조 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됐던 미국의 그린뉴딜을 위한 재원이나 실업 문제를 해결하고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재원 등을 국가의 ‘무한한 화폐 창출 능력’으로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적 함의를 위한 자신의 이론적 근거를 현대화폐론은 국정화폐론과 내생화폐이론으로 제시한다.

국정화폐론은 독일 경제학자 크나프(1842~1926년)가 그의 저서 《국정화폐론》에서 처음 고안한 용어이다. 국정화폐론에 따르면, 국가가 납세 의무를 결정하는 계산 단위를 지명했고, 또 조세로 납부해야 할 결제수단도 국가가 지정했는데, 이게 바로 화폐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국정화폐론 가정의 핵심 특징은, 국가가 무엇을 세금으로 납부하도록 하고 또 부채의 지불수단으로 사용하도록 하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는 점이다. 그래서, 국가가 지정한 증표(화폐)는 가치 있는 무엇으로 만들어졌거나 시장에서 그만한 가치로 인정받기 때문에 지정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가 법률로 강제하기 때문에 화폐는 가치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를 방증하고자 크나프는 증표를 의미하는 라틴어 ‘카르타(charta)’를 끌어와 화폐를 ‘증표적인(chartal) 지불수단’으로 규정했다.

국정화폐론은 화폐의 본질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화폐의 기원에 관한 역사적 설명으로 강화하려 한다. 즉, “화폐를 통용시키기 위해 필요한 ‘강제력’은 시장경제 이전부터 존재했다. 따라서 화폐 또한 시장경제에 역사적으로 선행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생적으로 시장에서 선택된 상품화폐가 국가에 의해 화폐로 지정됐다는 주장을 거부하는 것으로, 오히려 국가가 납세 의무를 특정 증표로 부과하자 그 증표가 화폐가 돼, 화폐를 중심으로 거래되는 시장경제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설명도 국가가 결정한 증표의 명목가치와 그 증표를 가치척도·지불수단으로서 강제할 수 있는 국가의 힘이 화폐의 본질적 특성이라는 주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와 같은 국정화폐론은 ‘신증표주의’라는 이름으로 랜덜 레이 같은 대표적인 현대화폐론자들에 의해 수용되고 있다. 페브레로는 신증표주의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째, 정부는 자신이 발행하는 화폐로만 지불할 수 있는 조세의무를 부과한다. 둘째, 세금 납부자는 세금으로 납부해야 할 정부 발행 화폐를 얻기 위해 자신의 재화와 용역을 판매한다. 셋째, 정부는 이러한 재화와 용역을 구입하기 위해 자신의 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 넷째, 화폐는 조세의무를 부과한 국가에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가치를 갖는다. 다섯째, 국가는 민간에서 생산된 상품의 얼마만큼을 구입할지 결정하는 동시에 화폐의 가치를 결정한다. 여섯째, 민간은행의 신용화폐는 국가 발행 화폐를 기초로 삼는 레버리지 자산이다.”

이 요약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대화폐론은 화폐의 가치가 국가가 부과한 조세의무에서 비롯하며, 따라서 국가가 화폐의 가치를 결정해 사회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고 본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현대화폐론은 자신의 다른 주요 근거를 포스트케인스주의의 내생화폐이론에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내생화폐이론은 기업과 가계 같은 경제 주체들의 화폐 수요에 의해 화폐 공급이 창출된다고 본다. 기업이 투자를 위해, 그리고 가계가 소비를 위해 은행에 대출을 요청하면 은행이 대출을 제공해서 화폐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폐가 ‘외생적으로’ 국가(중앙은행)에 의해 경제에 공급된다고 가정하고 화폐량과 물가의 관계를 논하는 화폐수량설을 거부한다.

고전학파 경제학의 화폐수량설은 통화 당국이 시중에 돈을 풀면 그에 따라 인플레가 발생한다고 본다. 반면, 내생화폐이론은 돈이 풀리더라도 은행 대출을 통한 화폐 창출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인플레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 불황 때는 기업들이 투자를 많이 하지 않고 은행이 돈을 많이 대출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수요가 줄어들어 오히려 상품의 가격은 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시중에 돈을 풀지 않아도 경기가 활발해지면 은행 대출이 늘고, 화폐를 대체하는 다양한 금융 상품들이 판매됨으로써 화폐 수요를 충족시킬 것이다.

화폐수량설은 화폐를 재화 사이의 교환을 매개하는 교환수단으로 협소하게 이해하는 경향이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재화 사이의 교환이라고 주장한다. 화폐 공급의 변동은 재화들의 명목 가격에 영향을 미칠 테지만, 궁극적으로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재화 사이의 교환 비율을 변경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화폐는 실물경제가 아니라 물가 수준에만 영향을 미친다고 보게 된다. 물론 화폐 공급의 과다와 과소는 인플레이션 또는 디플레이션을 유발해 실물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 하지만 화폐수량설에 따르면 이런 경제 불안정은 순전히 화폐 공급이 적정하게 이뤄지지 않은 ‘화폐적 현상’이다. 결국 화폐 공급만 적정하게 바로잡아 주면 경제 불안정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고전파 경제학이 자신의 이론 속에 화폐를 포함시키는 데에는 여러 난점이 있다. 이에 관해서는 박원익 논문 1장 2절 ‘주류화폐이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에서 살펴볼 수 있다.)

내생화폐이론은 자본주의 경제가 철저한 화폐경제라고 본다는 점에서 화폐수량설과 다르다. 우리가 위에서 봤듯이, 실물경제의 수요 변화는 화폐 수요의 변화를 낳고 이는 또한 은행의 화폐 창출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실물경제 활동과 화폐량의 변화는 불가분의 관계이며, 따라서 순전히 화폐적 현상처럼 보이는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도 근저에는 실물경제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 점에서 내생화폐이론은 마르크스주의와 유사점이 있다(마르크스주의와 내생화폐이론의 중요한 차이은 후술하기로 한다). 마르크스는 잉여가치(이는 투자한 화폐보다 많은 화폐량으로 나타난다)를 얻기 위한 자본가들의 투자가 화폐 수요를 창출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화폐의 수요보다 많은 화폐 공급은 물가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본 순환에서 빠져나와 축장된다고 보았다.

실제의 역사적 사례들도 마르크스주의와 내생화폐이론을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1980년대에 서방 주요국 정부들은 화폐수량설에 따라 통화량을 조절하는 것으로 경기순환을 완화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최근에도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경기침체를 막으려고 양적 완화로 막대한 양의 화폐를 공급했지만, 은행의 통화창출은 현저하게 떨어졌고, 경기를 회복하는 데에 실패해 왔다.

내생화폐이론의 이와 같은 특징을 박원익은 이렇게 요약한다: “화폐유통은 민간에서 만든 신용에서 유래한다는 생각 그리고 신용에 대한 수요가 화폐의 공급을 탄력적으로 결정짓는다는 사고.”

그러나 이 지점에서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현대화폐론이 근거하고 있다는 국정화폐론과 내생화폐이론이 서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먼저, 현대화폐론은 국정화폐론에 따라 정부의 통화 공급 독점과 화폐 가치 결정 능력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기업과 가계의 실물경제 활동이 화폐공급을 창출하고 최종적으로 화폐의 가치까지 결정한다는 내생화폐이론의 전제가 파괴된다.

반대로, 현대화폐론은 또한 내생화폐이론에 따라 은행을 통한 신용창출을 핵심으로 본다. 그렇다면, 국가의 신용창출도 결국 민간의 신용창출과 마찬가지로 은행 신용창출의 일부로 포함될 뿐이고, 이렇게 되면 정부가 제한 없이 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는 주장은 부정된다. 그리고 정부의 재정지출도 민간지출과 마찬가지로 조세수입이나 국채 판매 수입 같은 재정 조달에 종속되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한 현대화폐론 논자들의 대답은 대체로 모호하고, 실용주의적으로 오락가락한다. 그들은 국가의 제한 없는 화폐 창출 능력을 강조하고 ‘돈은 무에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할 때는 국정화폐론을 내세우지만, 국가의 막대한 화폐 공급이 인플레이션으로 직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때는 내생화폐이론을 내세우는 식이다.

랜덜 레이나 파블리나 체르네바 같은 열정적인 현대화폐론자들은 국가의 제한 없는 화폐 공급 능력을 강조하기 때문에 결국 국정화폐론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국정화폐론에 근거하게 되면, 국가가 화폐를 고정된 가격으로 ‘외생적으로’ 발행해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결국 화폐량의 외생적 증가가 경제 활동을 촉진한다는 화폐수량설과 별 차이가 없게 된다.

우리가 앞서 살펴봤듯이, 국가가 화폐 발행을 통제해 경기 변동을 조절한다는, 화폐수량설에 근거한 시도는 거듭 실패했다. 정부의 외생적인 화폐 공급이 경기를 활성화시키지 못하는 까닭은 화폐 공급만으로 민간 실물경제를 활성화시키지(그리고 이에 따른 화폐 수요 창출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원익 논문의 목적 중 하나는 바로 현대화폐론 내의 국정화폐론과 내생화폐이론이 충돌하는 문제에 대해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그 문제를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서로 다른 강조점이 병존한다. 첫 번째는 민간신용을 우위에 두는 관점이다. 이는 은행에 의한 신용창출 과정을 중시하는 순환학파 이론과 포스트케인즈학파 내생화폐이론으로 대변된다. 두 번째는 공동체적 의미의 이행 여부를 측정하는 가치 척도의 도입에서 화폐의 기원을 설명하는 국정화폐론이 있다.” 그러나 내 평론의 뒷부분에서 드러나듯이, 박원익의 해법도 (다른 현대화폐론 논자들과 마찬가지로) 국정화폐론과 내생화폐이론의 절충을 시도하면서도 결국 국정화폐론으로 기우는 듯하다.

이런 약점을 극복하려면 마르크스주의 화폐론을 이해하는 게 도움이 된다.

마르크스의 화폐론

우선 알아야 할 것은, 마르크스주의 화폐이론은 자본주의의 화폐에만 해당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고전 경제학이 화폐를 초역사적인 것으로 다루면서 자본주의 경제에서 화폐의 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의 반정립이다. 고전 경제학은 화폐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사용됐다거나 거기서 이자가 있었다는 것 등을 근거로 화폐를 초역사적인 것으로 다룬다. 이와 비슷하게, 현대화폐론이 근거하고 있는 국정화폐론도 국가의 가치척도 지정을 화폐의 기원으로 보면서, 화폐의 본질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소아시아 문명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았다고 본다는 점에서 초역사적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 화폐의 역할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폐의 역할은 크게 다르다고 보았다. 자본주의 사회는 일반적인 상품 생산 사회이기 때문에 한 가지 화폐가 일반적 등가물이 되며, 또한 이 화폐가 단일한 가치척도와 교환수단으로 기능한다. 반면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는 상품 교환과 화폐 사용이 국지적이고 간헐적인 현상이었다. 지역별로 분산된 개별 시장들은 다른 시장들과 느슨하게 연계될 수밖에 없었고, 거래되는 화폐와 가치척도가 지역·계층·상품별로 다를 수 있었다.

비록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화폐가 상품화폐에서 비롯했다고 보지만, 이런 견해가 시장에서 물물교환의 편의를 위해 교환 수단으로서 화폐가 도입됐다는 주류 경제학의 설명과 같은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가 강조한 점은, 금과 은 같은 상품화폐도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 거기에 들어갔기 때문에 가치를 지니고 있고, 이 때문에 다른 상품들의 가치를 표현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상품 화폐인 금이나 은은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고, 지폐 자체는 필요 노동시간으로 그 가치가 계산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치를 표현한다. 이렇게 보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에서 화폐는 가치론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 가치론은 자본주의 생산과 관련되고, 이것은 다시 잉여가치 개념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내생화폐이론과도 다르다. 자본주의 은행 시스템 하에서 화폐 수요가 화폐 공급을 창출한다고 보는 점은 후자와 동일하지만, 마르크스주의는 화폐 수요를 창출하는 데에서 핵심을 자본가들의 투자로 보며, 이 투자는 실물경제의 이윤율에 종속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는 정부의 재정·통화 정책이 일시적으로 유효수요를 창출하고 또한 화폐 수요를 늘린다고 하더라도, 자본가들의 이윤율을 높이는 데 실패한다면 이런 정책들은 곧 한계에 부딪힌다고 본다. 그리고 국가가 재정 정책으로 국가 일자리 보장제을 시행해 일자리를 늘리려 해도, 이 일자리가 국제적으로 통용될 만한 교환가치(단지 유용한 사용가치가 아니라)를 생산하지 못한다면 결국 국가의 화폐 발행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본다.

마르크스주의 화폐론은 화폐수량설의 난점뿐 아니라 케인스주의의 한계도 설명해 준다. 1930년대 대불황 때 뉴딜 정책은 일시적으로 효과를 냈지만, 경기를 부양하고 실업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는 실패했다. 1930년대 말에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조건 하에서 막대한 무기 생산이 이뤄지고 나서야 비로소 경제 회복의 효과를 냈다. 1970년대 전반부에도 서방 주요국의 정부는 케인스주의 정책에 따라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돈을 퍼부었지만, 자본가들은 생산을 증대시키지 않았고, 노동자들을 더 많이 고용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소수 대기업들이 물가를 인상해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부진과 물가 인상이 동반하는 현상)을 일으켰을 뿐이다.

결국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화폐·금융·재정 등을 볼 때도 실물경제에서의 이윤율에 따라 움직이는 소비·투자·분배 등과 연결시켜서 본다. 이렇게 총체적인 경제 관계 속에서 화폐·금융·재정 등을 봐야만 이런 부문들의 개별적 변화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 발권력의 한계

다시 박원익의 논의로 돌아오자. 박원익은 국정화폐론과 내생화폐이론의 충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가?

박원익은 제프리 잉햄(《돈의 본성》(삼천리)의 저자)을 따라 “오늘날의 자본주의 신용화폐를 신용화폐와 국가화폐가 결합되어 나타난 역사적 혼종(hybrid)”이라고 규정함으로써 해법을 마련하려고 한다. 잉햄은 화폐가 시장경제에 선행하며 화폐가 도입된 배경에는 국가 권력이 있다는 관점을 공유하는 등 전반적으로 국정화폐론의 관점을 따른다. 그러면서도, 13세기 유럽에서 발전한 환어음 등 민간 신용수단의 역사적 발전에도 주목한다. 결국 잉햄은 영국에서 명예혁명 뒤인 1694년 중앙은행으로 영란은행이 설립된 것이 국가화폐와 민간 신용화폐의 결합을 촉진하는 자본주의 화폐시스템의 출발점이라고 규정한다.

박원익도 잉햄을 따라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화폐에 국정화폐적 요소가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중세 유럽의 여러 봉건적 정치체들이 제 각각의 주화를 주조했지만 샤를마뉴 때 제정된 화폐의 계산단위인 “12펜스=1실링이라는 추상적 환산 비율이 유지됐다”는 사실을 국정화폐론의 근거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박원익은 바로 그 뒤 문장들에서 국정화폐론을 반박하는 사실들을 받아들인다. 킨들버거를 인용하면서, 중세 유럽에서 “주화의 소재가치와 액면가가 지나치게 괴리될 경우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지적한다.(왜 샤를마뉴가 12펜스=1실링이라는 환산 비율을 제정했느냐 하는 물음을 던질 수도 있는데, 만약 당시 시장의 교환 비율을 수용한 것이라면 국정화폐론의 근거는 취약해진다.)

또, 박원익은 피에르 빌라르를 인용하면서 “고대 소아시아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금이 세계화폐로 통용되었지만 어디까지나 대외지불이라는 제한적 용도로 사용됐다”는 사실도 받아들인다. 이것도 ‘화폐가 시장경제에 역사적으로 선행한다’는 국정화폐론의 핵심 근거를 무너뜨리는 사실이다. 대외무역의 지불수단인 세계화폐를 특정 국가가 지정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대 사회에서도 대외무역에서 흔히 사용된 상품이 상품화폐 중 하나가 됐고, 국가가 그 상품을 화폐로 지정했다고 보는 게 건전하다.

한편, 박원익은 구로다 아키노부의 연구(《화폐시스템의 세계사》, 논형, 2005년)를 근거로 20세기 초 중국 양자강 유역에서 화폐의 계산단위가 다르게 이해되는 상황을 보여 준다. 즉, 환전상들 사이에서는 1원 은화가 동화 1300문으로 교환됐지만, 같은 지역의 농민들 사이에서는 은화가 동화 1000문보다 더 낮게 평가됐다는 것이다. 결국 “중국에서는 국가가 화폐 도량형을 통일하려 시도했지만 앞서 보았듯이 여러 화폐 간의 가치평가가 지역·계층마다 달라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결론짓는다. 구로다 아키노부의 연구는 ‘국가가 지정한 증표(화폐)는 국가가 법률로 강제하기 때문에 가치를 표현한다’는 국정화폐론의 핵심 주장을 무너뜨린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는 시장이 지역별·계층별로 분할되고 파편화돼 있어서, 화폐도 지역별·계층별로 다르고, 국가가 규정한 단일한 가치척도가 작동하고 있지 않음을 그의 연구가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들을 토대로 박원익은 화폐의 역사가 “국정화폐론의 시각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정리한다(이 점은 박원익이 이정구를 반박한 ‘MMT가 마르크스주의를 만났을 때’에서 “‘국정화폐론’과 ‘MMT’를 간단히 등치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 근거인 듯하다). 이것이 그에게 뜻하는 바는 “국정화폐론이 중시하는 국가 지정 계산화폐가 제 화폐를 단일한 가치척도로 통합한 것은 어디까지나 근대 이후”라는 것이고, 또한 세계사의 오랜 기간 동안 화폐가 ‘다양한 화폐’로서 존재해 왔다면 오늘날에도 “국가와 사회의 분배시스템을 보조하는 사회적 권리 및 의무의 징표로서” 작동하는 화폐를 국가의 발권력을 이용해 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박원익은 한 사회에 여러 화폐가 공존할 수 있음을 입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그는 국정화폐론을 반박하는데, 국정화폐론은 국가의 발권력을 과대평가해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 하나의 화폐만이 존재했다고 보는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박원익은 국정화폐론을 수용하는데, 화폐가 하나로 통합된 것처럼 보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국가 발권력을 이용해 시장경제와 구분되는 ‘비자본주의적 경제’를 구축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원익의 약점을 더 살펴보기 전에 그가 마르크스주의 화폐론을 반박하는 부분을 살펴보는 게 유용하다.

박원익은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 여러 지역·계층별로 이질적인 화폐가 사용되고 이들의 교환비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화폐를 ‘일반적 등가물’이라고 규정한 마르크스주의가 반박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봤듯이, 마르크스의 화폐론은 자본주의에 한정된 것이지, 역사 전체를 포괄하는 화폐 일반론이 아니다. 자본주의 이전 경제에서의 화폐를 다루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확립되기 전에 한 나라 안에서 이질적인 화폐와 가치척도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국정화폐론에 대한 반박은 될지언정 마르크스에 대한 반박은 되지 못한다.

또, 박원익은 이런 주장도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기원을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와 임노동의 일반화에서 찾는다. 그리고 이러한 생산관계 및 기술의 변화에서 화폐 및 신용제도의 발전을 도출해낸다. 반면, 잉햄은 자본주의의 발전에 선행하는 상업 및 금융발전 없이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전개를 설명할 수 없다는 관점을 취한다.” 이 인용의 앞부분을 보면, 박원익은 마르크스의 화폐론이 자본주의에 한정된 것이며 생산관계와 화폐를 연관해 살펴봐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다만, 그 의미를 심사숙고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인용의 뒷부분은 마르크스에 대한 완전한 왜곡이다. 마치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일반화된 상품생산 사회)의 형성 전에 상업·화폐 자본이 발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본론》 3권에서 상업자본을 다루면서, 상업자본이 “자본주의 생산양식보다 더 오래된 것이며,”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자본의 자유로운 존재양식”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도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 상업·화폐 자본의 발전은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데에 중요한 필요조건을 형성한다 점을 분명히 인정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로의 결정적 전환점은 바로 임금노동의 일반화라고 봤다. 만약 임금노동의 일반화로 생산 자체가 자본주의적으로 조직되지 않는다면, 파편화된 시장이 하나로 통합될 수 없고, 상품 교환과 화폐 사용은 여전히 대다수 생산 대중에게 국지적이고 간헐적인 현상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자본론》 3권에 가서야 상업·화폐 자본을 다루는 것도 이 자본들이 자본주의보다 선행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확립되자 상업·화폐 자본의 구실이 자본주의 이전 사회와는 달라졌다고 봤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 상업·화폐 자본은 지역간 가격 차이에서 오는 거래 이익이나 화폐간 교환 비율을 이용한 환차익, 지역의 귀족과 농민을 대상으로 한 부등가 교환과 고리대금업 등의 방식으로 이득을 챙겼다. 그런가 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산업자본이 임금노동을 고용해 생산을 자본주의적으로 조직함에 따라 상업·화폐 자본의 기능은 산업자본의 상품 판매를 돕고, 또 산업자본이 생산을 개시하고 지속하는 데 필요한 화폐를 공급하는 게 주요 특징이 됐다. 이런 변화에 따라 자본주의 사회의 화폐는 자본주의 이전 사회와는 그 특성이 달라진 것이 물론이다.

뒤에서 더 살펴보겠지만, 박원익은 자본주의 사회로의 변화에 따라 시장·상업·화폐(금융)·국가도 변화해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지탱하는 구실을 한다는 점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내생화폐이론도 화폐와 실물경제의 연관성을 면밀하게 천착하지 않는다는 문제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엄격한 국정화폐론으로 보자면 실물경제의 변화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국가의 명령에 의해 화폐와 화폐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 기구와 화폐 시스템이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박원익은 옛 공상적 사회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유통 속임수”를 통해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아간다.

자본주의 국가의 역할

박원익 주장의 약점들은 자본주의 경제가 가하는 제약이 국가 능력의 한계를 설정한다는 점을 보지 못하는 것과도 관련 있다.

첫째, 앞서 봤듯이 박원익은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는 “국정화폐론의 시각에 들어맞지 않”고, “국정화폐론이 중시하는 국가 지정 계산화폐가 제 화폐를 단일한 가치척도로 통합한 것은 어디까지나 근대 이후”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근대 이후”에 국가가 화폐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었던 힘은 사회가 자본주의로 변화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박원익 자신도 “전근대 왕조와 제국이 국가발행 주화를 광범위하게 유통시키는 데 성공적이지 못했던 이유”는 “계산화폐의 가치척도 기능을 안정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무르익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박원익은 자본주의 화폐시스템의 확립은 “국가 입장에서 볼 때 통화공급 과정에서 민간의 신용창조에 자신의 재량권을 상당부분 넘겨주는” 과정이라고 해, 자본주의 국가의 화폐 통제 능력이 더 약화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미 자본주의 이전 시기에 여러 군주들이 끊임없이 화폐의 위변조(국가 명령에 의한 화폐 가치 결정)를 시도했으나 결국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치로 귀결됐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시장의 힘이 화폐에 미치는 영향력은 전근대 사회보다 자본주의에서 훨씬 강력할 것이다.

결국 역사 전체를 통틀어 국가가 화폐를 창출하고 화폐의 가치를 결정하는 데는 사회경제적 조건의 한계가 크게 작용한다. 박원익은 자본주의 이전 시대를 설명할 때는 국가화폐의 능력이 사회경제적 조건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자본주의 화폐 시스템을 설명할 때는 국가화폐의 능력이 사회경제적 조건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그래야 자본주의 시장경제와는 구분되는 국가화폐의 영역을 넓혀간다는 그의 전망이 실현 가능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에 국가가 단일한 가치척도를 확립할 수 있었던 근본적 힘이 자본주의로의 사회 변동에 있다면, 박원익이 자본주의 화폐를 “신용화폐와 국가화폐가 결합되어 나타난 역사적 혼종(hybrid)”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국가가 단일한 화폐를 확립할 수 있었던 것도 신용화폐가 발전해 온 자본주의 발전의 결과물이고, 국가가 재정 시스템을 자본주의적으로 혁신하면서 민간의 신용화폐를 수용했다고 보는 게 맞기 때문이다.

둘째, 그럼에도 박원익은 영국에서 국가가 영란은행 설립과 단일한 가치척도 확립을 주도했다는 것을 근거로 들어 자본주의적 화폐에 국정화폐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가가 특정 화폐를 단일한 가치척도로 지정했다는 것만으로는 시장에서 통용되는 화폐와는 구분되는 ‘국가화폐’ 요소가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앞서 봤듯이, 국정화폐론의 핵심은 국가가 화폐 가치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인데, 국가화폐가 시장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면 국가의 능력이 심각하게 제약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살펴봐야 할 점이 있다. 박원익은 17~18세기 영국에서 자본주의적 화폐 시스템이 확립됐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도, 그 조건, 곧 17~18세기 영국에서 그런 체계가 확립될 수 있었는지를 묻지는 않는다. 물론 영란은행의 등장이 명예혁명 이후라고 언급한 것, 이런 변화에 “정치·사회적 갈등”이 있었다는 점 등을 언급하는 것 등은 이 시기에 뭔가 사회 변화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박원익은 그 동학과 의미를 깊이 살펴보지는 않는다.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보면, 영국에서 최초로 자본주의적 화폐 시스템이 확립된 것은 영국 국가가 17세기에 봉건적 국가에서 자본주의적 국가로 변모된 것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런 국가 성격의 변혁에서 결정적이었던 것은 1640년대 영국 혁명으로 자본가 계급이 봉건적 귀족에 승리해 국가 기구를 장악한 것이다. 물론 혁명 후로도 한동안 국가 기구를 운영한 주요 인물들은 귀족들이었다. 하지만 영국 국가의 정책들은 기본적으로 자본가들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변화됐다.(1688년 명예혁명은 이에 대한 반동을 시도한 왕을 쿠데타로 쫓아내고 영국 혁명의 성과를 지킨 것이다.) 국가 재정 시스템이 자본주의 경제의 신용 시스템 안에 통합된 것도 자본주의 경제에 안정성을 제공해 줬다. 그럼에도 이는 국가 부채가 확정적으로 지급될 것이라는 확실한 전망에 기반을 둔 것이다. 결국 국가가 자본가 계급의 이해관계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립됐음을 뜻하기도 하다.

자본주의 국가 기구가 자본주의 시스템을 확립하기 위해 한 일은 재정·화폐 시스템을 자본주의적으로 통합·변형한 것만이 아니다. 국내 시장을 통합하고(예컨대 국내 관세와 봉건 길드 철폐),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해 임금노동의 사용을 확대하고(혁명 전에는 영국에서도 인클로저 운동을 되돌리려는 시도가 종종 있었다), 자국 자본가들의 원재료 수입과 상품 수출을 돕는 등 자본 축적을 촉진하려고 했다.

이처럼, 영국 국가가 자본주의 체제를 확립·강화하는 데 나선 것은 사회 곳곳이 자본주의적으로 변모되는 것을 촉진했다. 예를 들어, 국가가 단일한 가치척도를 확립한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화폐를 얻기 위해 시장과 연계된 삶을 살게 만들었고, 이는 다시 임금노동의 사용이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 지급이 보증된 국채를 대량으로 발행한 것은 금융 시스템 전반의 안정성을 높였고, 이는 산업·상업 자본이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사업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줬다.

그럼에도 국가가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적 국가로 변혁되기 전에 사회에서 자본주의적 변화가 진행됐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면, 자본주의 화폐 제도의 확립이 설사 국가를 통해 촉진됐더라도 자본주의 사회로의 변화를 그 근본 동인으로 봐야 할 것이다.

셋째, 박원익은 자본주의적 화폐 시스템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데에 국가간 패권경쟁과 식민지 확대 정책이 작동했다는 점도 자본주의 화폐의 ‘국가화폐’적 성격으로 보는 듯하다.

물론 17세기 이후 영국 국가가 선도한 해외 패권 경쟁은 다른 나라 지배자들이 자국 경제와 화폐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개선하도록 만드는 압력이 됐다. 이런 변화를 제대로 쫓아가지 못하면 그들의 힘은 약화될 뿐 아니라 심지어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자본주의로의 사회 변화가 패권 경쟁에 끼친 영향을 봐야 한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도 국가간 패권 경쟁은 있었고, 경쟁에서 패배한 나라가 수탈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 나라(지역)의 경제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패권 경쟁은 기본적으로 잉여생산물을 약탈하기 위한 경쟁이었다. 반면, 자본주의 사회의 패권 경쟁은 세계시장을 통합해 지배하고 자본주의적 생산과 착취를 확대하기 위한 것으로 성격이 변했다. 이런 변화가 세계적인 화폐 시스템 확립의 근본 원인이었던 것이다.

한편 박원익은 국가간 패권 경쟁에 따른 자본주의 화폐 시스템의 확장은 결국 각 국가들이 “국제수지에 대한 통화정책 및 재정정책의 종속성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박원익은 영국 국가가 이런 종속성에서 자유로웠던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영국도 금본위제 하에서 지급 불능 위기를 겪은 것을 보면 세계 화폐 시스템에 ‘종속적’이었다.) 사실 이 점은 현대화폐론이 주장하는 국가의 무한한 화폐 창조 능력과 대립된다. 물론 현대화폐론자들은 변동환율제를 채택하면 세계 화폐 시스템에 종속되는 문제가 해결되며, 국가의 뜻대로 국가화폐를 발행해 국내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원하는 대로 이용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빈국이나 신흥국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선진국들도 외국의 재화와 서비스를 수입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변동환율제를 채택한다고 하더라도 환율 급등에 따른 물가 인상이나 자본의 유출에 따른 실물경제의 침체 등은 계속 나타날 수밖에 없다.(많은 신흥국들이 거듭 외환 위기를 겪은 점이 이를 방증한다.) 이는 여전히 화폐를 통제하는 국가의 능력을 제약하는 중요한 문제다.

결국 자본주의 하에서 최초로, 통합된 세계시장이 확립됐다. 그리고 이에 따라 세계 화폐 시스템이 발전했다. 이 사실들은 국가가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율성이 크게 제약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도 국정화폐론이 말하는 ‘국가화폐’적 요소가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위에서 살펴본 박원익의 약점들은 자본주의 화폐 시스템의 확립에서 국가가 한 구실을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확장과 떼어놓고 보려는 데서 비롯한다. 박원익은 자본주의 이전 국가의 한계를 설명할 때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가하는 한계에 주목하지만, 자본주의 국가의 역할을 설명할 때는 사회경제적 조건에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그래서 박원익이 자본주의 화폐 시스템의 특징을 ‘국가화폐와 신용화폐의 혼종’이라고 규정할 때, 국가화폐의 능력은 마치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처럼 설명된다.

이로부터 박원익은 “국가화폐와 민간신용의 결합 관계를 해체하거나 민간자본의 요구에 종속된 화폐 발권력에 대한 사회적·민주적 통제의 강화”를 지향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박원익은 화폐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을 실제로 받아들인다. 공상적 사회주의들이 주장한 노동증서 도입이나 공공은행 설립, 각 지역별로 만들어진 지역 화폐, 그리고 현대 국가가 발권력을 활용해 ‘공익적 목적’에 화폐를 사용하는 것 등이 모두 사회 변화를 위한 긍정적 사례로 언급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가 자본주의 화폐 시스템의 확립에서 한 역할은 기본적으로 국내 시장을 하나로 통합하고, 임금노동을 일반화하고, 전 세계를 무대로 자본 축적을 하기 위해 세계시장을 확립하는 데 일조한 것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그렇다면, 국가 발권력을 민간자본의 요구에 종속시키지 않는다거나 국가화폐를 민간신용과 분리시킨다는 생각은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달리 말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척도가 단일한 화폐로 통합된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결과물이라면 자본주의 사회를 철폐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적 화폐 시스템도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프루동을 비롯한 여러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화폐를 조작함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을 때, 그들에게 반박한 까닭이기도 하다.

‘일자리 보장제’의 소심함

이처럼, 박원익을 포함한 현대화폐론자들은 현대화폐론 내에 존재하는 국정화폐론과 내생화폐이론의 충돌을 절충하려고만 한다. 박원익도 이를 ‘신용화폐와 국가화폐의 혼종’이라는 공식으로 절충하려고 한다.

현대화폐론자들에게는 국정화폐론과 내생화폐이론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인데, 국정화폐론에 근거해 국가의 무한한 발권력을 얘기할 때는 정치인들이 생각만 고쳐먹으면 정부의 발권력을 최대한 활용해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뜻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린뉴딜을 통한 경제 전반의 재편이든, 공공의 목적을 위한 일자리 대규모 창출과 완전고용의 달성이든 모든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제시하는 정책 대안이 막상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에 타격을 주지 않는 이유를 논증하는 데 열중하기도 한다. 이런 때는 내생화폐이론이 유용한데, 정부의 ‘외생적인’ 화폐 주입이 자본주의 경제에 타격을 주지 않는다고 논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은 현대화폐론자들이 제안하는 국가 일자리 보장제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낳는 대량실업 문제를 소리 높여 규탄하지만, 그들이 제안하는 국가 일자리 보장제는 매우 조촐해서, 시장을 통제하거나 민간기업들을 완전히 대체하자는 주장은 결코 하지 않는다. 일자리 보장제를 시행하는 정부는 어디까지나 “최후의 고용주” 구실을 하는데, 이는 민간부문에서 벌어지는 실업에 대해서는 맞서 싸울 수 없다는 비관적 생각이 깔려 있다. 게다가 그들은 민간부문의 일자리들에서 임금 상승 효과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 일자리 보장제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에서 결정돼야 한다고도 주장하는데, 이는 실업을 줄인다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도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국가 일자리 보장제의 낮은 임금은 잠재적 실업자(공식 실업자 외의 구직 단념자들이 포함됨)들이 일자리를 찾는 유인을 떨어뜨려, 실제로 실업을 없애지 못할 뿐 아니라, 민간부문의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구실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박원익 논문 3장은 국가 일자리 보장제를 한국에서 실시했을 때의 효과를 검증하고 있는데, GDP 대비 1퍼센트 안팎의 재정 지출로 일자리를 약 80만 개 창출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른 현대화폐론자들도 국가 일자리 보장제가 최대 GDP의 2퍼센트 정도를 쓸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한국은 그보다도 더 적은 예산만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박원익은 국가 일자리 보장제가 시행돼도 전반적인 고용 증가 효과가 미미하다는 점을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민간·공공 부문의 일자리 창출 효과(40만 명 미만)도 별로 크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사실 이 정도 정책은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예산으로 수십조 원을 책정하고, 공공 일자리(노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를 만들었던 것보다 획기적으로 낫다고 할 수준도 못 된다.

박원익을 비롯한 현대화폐론자들은 국가 일자리 보장제가 ‘거시 경제 안정화 효과’가 뛰어나다는 점을 부각한다. 위기 때는 일자리 보장제가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해 경기의 급격한 추락을 막고, 경기가 회복되면 다시 민간 일자리로 사람들이 옮겨가 그 부문의 경제를 안정화시킨다는 것이다. 핵심적인 현대화폐론자인 랜들 레이는 이것이 경제적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 재고(在庫) 정책을 펴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박원익 논문도 일자리 보장제의 경제 완충 효과가 나타났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결국 일자리 보장제가 민간 부문의 임금 구조나 끊임없이 실업을 창출하는 자본의 힘을 위협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지탱하고 보조하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결국 마르크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가 지적하듯이 “정부가 자본주의에게 제공하는 안전장치” 구실을 하는 것이다.

이런 점들은 국가 일자리 보장제가 국가 발권력을 사회적·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고, 이를 ‘공익적’ 목적이나 ‘공동체의 의미’를 되살리는 데 사용하는 것이라는 박원익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다. 국가 발권력을 공익적 목적으로 사용할수록 자본의 힘을 위협하고 자본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을 잠식해 들어가야 마땅한데, 국가 일자리 보장제는 오히려 실업을 끊임없이 창출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안정성을 강화한다니 말이다. 사실 이런 정도의 재정 지출(GDP 1~2퍼센트)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의 무한한 화폐 창출 능력’을 주장하는 현대화폐론 같은 이론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실제 현대화폐론을 비판하는 포스트 케인스주의자들은 다른 복지 지출과 마찬가지로 국가 일자리 보장제를 위한 재정 지출도 다시 조세수입 확대로 보충할 수 있어서 이를 실행하는 게 좋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결국 박원익이 제시하는 국가 일자리 보장제가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지간한 복지 정책이 하나 추가되는 정도의 효과밖에 내지 못할 것이다. 복지 제도의 추가가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힘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과장일 것이다.

이런 약점은 다른 현대화폐론자들처럼 박원익도 화폐 이론과 재정정책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국가 발권력에만 집중할 뿐, 자본주의 경제의 가장 중요한 착취적인 이윤 창출 시스템에 주목하지 않는 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래서 국가 발권력의 효과를 과장하기 위해 국정화폐론을 포기하지 못하지만, 막상 구체적 정책에서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도전하지 않고 그것을 우회하는 길을 택하려고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가 강조하듯이, 자본주의의 화폐 제도는 결코 자본주의 체제와 떼어 놓을 수 없다. 따라서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사회적 생산을 둘러싼 투쟁에 주목하고 그 투쟁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현대화폐론이 아무리 선한 동기에서 실업 문제를 최소화시키려 하더라도 사회 변화 전략을 화폐와 재정 정책으로 협소화하려고 하는 한 사회 변화의 진정한 동력을 놓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