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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뒤흔든 인종차별 반대 운동 앞에 놓인 것

2020년 6월 6일 센추리 시티에서 열린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 ⓒ출처 Brett Morrison(플리커)

트럼프가 지지율이 폭락하면서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 단체 공공종교연구회(PRRI)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율은 5~6월 새 자그마치 16퍼센트포인트가 폭락했다. 흥미롭게도 핵심 지지층에서 하락폭이 더 컸다(백인-개신교-저학력자, 20퍼센트포인트).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가 모든 성별·연령대·인종에서 지지가 폭락해 민주당 후보 조 바이든에 두 자리 수 이상 뒤처졌다고 보도했다.

한 달 넘게 미국을 휩쓴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지지율 하락의 주요인이었다. 특히 트럼프 선거 유세 초반에 시위가 연일 벌어진 것도 주효했다.

이에 더해 트럼프가 코로나19 방역은 뒷전으로 하면서 경제 활동 재개를 압박해 온 것도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줬다. 트럼프는 자신의 “경이적인” 코로나19 대응 덕에 대유행 물결이 “잡히고 있다”며 노동자들을 일터로 내몰고 “검사도 이제 줄이라”고 했지만, 그 말을 한 지 고작 며칠 만에 미국의 코로나 확진자·사망자 수가 폭증했다.

트럼프 정부는 코로나19 전염이 인종차별 반대 시위 탓이라고 비난했지만, 대규모 시위와 코로나19 전염의 상관관계를 추적한 존스홉킨스대학의 연구를 보면 둘 사이의 연관성은 낮았다. 반면 트럼프의 경제 활동 재개 압박과는 상관관계가 두드러졌다.

6월 30일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는 4만 명이 넘고, 누적 사망자가 13만 명 가까이에 이른다. 이를 배경으로 코로나19 고위험군인 저소득층·노년층에서 트럼프 지지율이 폭락했다.

트럼프는 재선 가능성에 암운이 꼈다며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는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차기 임기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내가 아니라] 바이든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캠프 본부장 브래드 파스칼 경질설이 선거운동본부 안팎에 나돌았다.

트럼프 지지율만 변한 것은 아니다.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한 미니애폴리스 경찰 네 명은 모두 해고돼 재판에 부쳐졌다(2014년에 마이클 브라운을 살해한 경찰 대런 윌슨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해 보라). 플로이드 이전에 벌어졌던 경찰의 흑인 살해 사건 여럿이 재수사에 들어가기도 했다. 여러 대도시에서 경찰 재정이 삭감됐고, 오리건주(州) 포틀랜드 등지에서는 경찰이 학교에서 쫓겨났다.

지배층은 흑인뿐 아니라 다른 천대받는 사람들의 권리에 관해서도 잇달아 양보했다. 대법원은 6월 15일에 성소수자에 대한 고용 차별을, 18일에는 트럼프 정부의 ‘이주 아동 추방 유예 행정명령(DACA)’ 폐지 시도를, 29일에는 낙태 시술소와 시술의를 규제해 낙태권을 제약한 루이지애나주(州) 주법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미국 반자본주의 단체 ‘마르크스21’ 활동가 레베카 길슨은 이렇게 지적했다. “[대중 행동 덕에] 오랫동안 설왕설래만 거듭하다 미뤄졌거나 ‘현실성 없다’며 단칼에 무시됐던 요구들이 달성되고 있다.

“선거 투표나 선출 정치인 덕에, 혹은 요구를 ‘받아들여질 만한’ 수준으로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 수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줄이은 투쟁과 소요 —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외면당한 사람들의 언어’라고 했던 — 에 힘을 보탰기 때문이었다.”

전진

시위대에 강경 대응 운운했던 우파 정치인들은 지리멸렬하게 분열했고, 이제껏 시위대의 ‘폭력’, ‘약탈’ 운운하며 운동 지지를 꺼렸던 ‘개혁’ 성향 정치인들도 주로 지방정부 단위에서 조금씩 개혁 약속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에 친화적인 시민단체들도 (민주당 전국 지도부를 포함한) 정치권을 비판하며,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에게 “운동이 만족할 만한” 공약을 제시하라고 촉구한다. 시위 참가자 다수가 경찰 재정 삭감을 요구하는데 바이든이 경찰 재정 3억 달러 증대 같은 공약을 내면 득표에 지장이 생긴다는 것이다.

아마존 등 대기업들도 노동자들의 항의에 직면해 이전의 인종차별적 해고 몇몇을 되돌리고 직원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이것들은 모두 운동이 이제껏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다. 그러나 이런 개혁 약속들이 대중의 분노에 비춰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 저항으로 저들이 반 발짝 물러섰다, 이제 그 다음은?’

일부는 경찰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개혁하는 것, 선거 투표로 사악한 개인(대표적으로 트럼프)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런 생각에 기대 이제껏 운동과 거리를 뒀던 온건 인사들은 이 운동을 민주당 투표로 수렴시키려 한다. “#2020년에_중요한_것[=대선](#whatmatters2020)” 해시태그를 유행시키는 배경이다.

반 세기 전 흑인 평등권 운동이 미국을 휩쓸었을 때도 미국 민주당과 온건 시민단체들은 이 운동을 자기 투표 부대로 단속하고 길들이고자 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와 미국 민주사회당(DSA) 같은 진보파도 민주당 선거 성적에 연연하는 것은 새삼 유감스러운 대목이다.(관련 기사 본지 318호 ‘민주당과 힘 합쳐서는 진정한 변화 이룰 수 없다’)

그러나 체계적 인종차별에 맞서는 것은 경찰 폭력 규탄이나 이런저런 개혁에 국한되지 않는 문제다. 이번 항쟁이 코로나19 위기와 경제 위기가 함께 곪은 고통과 분노가 분출한 것임도 기억해야 한다.(관련 기사 본지 325호 ‘조지 플로이드 사망 규탄 시위: 배경과 전망’)

그 때문에 이 운동은 노동계급 대중이 겪는 고통과 천대에 대한 일반적 항의로도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거기서는 정치가 중요하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그러면 그 목숨을 누가 왜 위협하는가? ‘체계적(systemic)’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체제(system)’는 무엇인가? 거기에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가? 이런 질문에 답하면서 운동 안팎에서 부상하는 개별 쟁점들을 자본주의의 문제와 연결시킬 수 있는 혁명적 좌파의 구실이 중요할 것이다.

6월 마지막 주에는 미국에서 전국적 시위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7월 첫 주말에는 다시 전국 시위가 예정돼 있다고 한다. 이날 행동이 운동을 다시 전진시킬 추진력을 낳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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