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9일 보우소나루를 규탄하는 수만 명이 상파울루 거리를 가득 메웠다 ⓒ출처 PT당

5월 29일 브라질 약 200곳에서 강경 우익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팬데믹 이후 최초의 전국적 시위였다.

수십만 명이 거리로 나왔다. 브라질 주요 대도시 상파울루·리우데자네이루·포르투알레그레·벨루오리존치에서 각각 수만 명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노동조합, 사회운동·좌파 단체들이 이날 시위를 조직했다.

시위의 직접적 배경은 3월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팬데믹 ‘2차’ 물결이다. 확진자가 매일 수천 명씩 발생하고, 사망자 수는 46만 명을 넘겼다(5월 31일 현재, 세계 2위). 인구가 여섯 곱절이 많은 인도보다 십수만 명이 더 죽은 것이다.

보우소나루의 재앙적 대응이 아니었다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지 않을 수도 있었다.

보우소나루는 사회적 거리두기, 검사, 확진자 격리, 록다운, 마스크 착용 등 코로나19 대응 조처 일체를 비난했고, 이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의료 경력이 전혀 없는 군 출신 ‘예스맨’들을 앉혔다. 현 브라질 보건부는 장관 포함 최고위 직책 20명이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보우소나루는 백신 생산·접종도 방해했다. 보우소나루는 말라리아 치료제와 구충약을 먹으면 코로나19를 예방할 수 있다고 줄곧 떠들었고, 지난해 11월에는 중국과 합작해 브라질 내에서 백신을 생산하려는 시도를 비난했다!

“보우소나루, 학살을 멈춰라!” 보우소나루의 재앙적 코로나19 대응을 규탄하는 시위 참가자 ⓒ출처 PT당

뿐만 아니라, 보우소나루는 지방정부의 방역 조처에 반대하는 극우 시위를 직접 이끌었다. 보우소나루가 세계 주요국 정상 중 가장 먼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것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보우소나루는 브라질 경제를 평소처럼 운영하는 것이 팬데믹 저지보다 중요하다고 봐서 코로나 대응을 경시했다. 자기 지지층인 강경 우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도 있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브라질의 경제·사회 위기는 오히려 더한층 심해졌고, 정치 상황도 심각하게 불안정해졌다.(관련 기사 본지 324호 ‘브라질: 코로나바이러스와 부패 스캔들이 보우소나루를 덮치다’)

보우소나루 2년, 어떻게 위기를 심화시켰나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육군 대위 출신의 별 볼 일 없는 극우 정치인이었지만, 브라질의 심각한 정치 위기 덕에 2018년 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브라질 대자본들은 보우소나루 집권을 반겼다. 보우소나루가 노동자들과 평범한 사람들을 공격해 기업의 수익성을 회복시키리라 기대해서였다.

보우소나루는 전임 우파 정부의 긴축·민영화를 더 밀어붙이고 규제를 대거 완화했으며, 이에 방해가 될 세력 모두를 가차없이 공격했다. 또한 브라질 최대 수출 산업인 원자재 채굴 부문을 키워, 경제 지표를 단기간에 개선하려고 했다.(보우소나루의 핵심 지지층인 군 장성들이 원자재 채굴 자본들과 연계가 깊기도 하다.) 보우소나루가 집권 첫해에 아마존 우림 개발 규제를 대거 완화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

규제 완화와 환경 파괴에 조금치라도 반대하는 운동은 모두 공격 대상이 됐다. 보우소나루가 브라질의 “사회운동을 모조리 박살내겠다”고 을러댄 까닭이다.(보우소나루 자신이 지독한 인종차별·성차별주의자이고 좌파 일체를 증오해서 그랬기도 하다.)

이를 위해 “법질서 수호” 기치가 동원됐다. 후보 시절 보우소나루는 반(反)부패·비주류 이미지를 내세우며 법질서를 들먹였는데, 집권 후에는 경찰력을 대폭 강화하고 군부를 정치적으로 복권시켜 주는 데 이 수사를 동원했다.

재앙으로 가는 길

국제적으로, 보우소나루는 자신의 우상인 트럼프의 미국에 기대 브라질 경제를 성장시키려 했다. 당시 트럼프 정부는 막대한 감세와 경기 부양 정책을 추진하며 성장률을 3퍼센트대로 끌어올렸고(2018년), 미국 제조업을 회복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보우소나루는 자신의 아들 중 한 명을 주미 대사로 임명해, 아마존 채굴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투자와 대미 수출을 모두 늘리려 했다.

하지만 보우소나루 집권 1년도 안 된 2019년 하반기부터 미국 등 세계 제조업 생산이 격감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최악의 세계적 경기 둔화로 이어졌다.

브라질 자본주의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보우소나루가 원자재 수출에 대한 의존을 더 키우려 한 까닭에 경기 변동에 더한층 취약해졌다.

이 때문에 브라질 안에서도 긴장이 심해졌다. 특히 브라질의 주요 산업 중 하나인 농축산업계가 보우소나루를 비난했는데, 보우소나루의 원자재 채굴 우대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여겨서였다.

보우소나루의 긴축 정책과 노동자당(PT)·좌파 공격에 흡족해 하던 기성 우파 정당들도 빠르게 보우소나루에게 등을 돌렸다. 노동자당 공격의 주요 무기였던 “반(反)부패”가 보우소나루와 기성 우파 사이의 정쟁 도구가 됐다. 정치 불안정이 심화하면서, 보우소나루의 핵심 지지 기반 중 하나인 군부의 일부도 불만을 표하기 시작했다.

보우소나루는 친위 세력을 결집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군 출신 인사 6000여 명이 정부 요직에 임명됐는데, 이는 군부독재 시절보다 더 많은 숫자다.

또, 보우소나루는 트럼프와 비슷하게 코로나19 책임론을 들먹이며 아시아계 인종차별을 부추겼고, 전염병 위기 한복판에서 인종차별적 극우 운동을 고무했다. 미국에서 그랬듯 브라질에서도 복음주의 기독교 우파들, 극우 운동이 크게 성장했다.

트럼프의 대선 패배로 보우소나루는 정치적 타격을 입었지만, 패악질은 더 심해졌다. 이제 보우소나루는 백신 공급까지 방해하기 시작했다. 화이자 대변인은 보우소나루가 백신 판매 제안을 몇 달 동안 거절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자 브라질 자본주의의 ‘정상화’를 바라는 지배계급 일부도 이를 보아 넘기기 어려운 미친 짓이라고 여겼다. 상원은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보우소나루의 책임을 묻는 국정조사에 돌입했고, 브라질 정계에서는 보우소나루 탄핵이 거론되고 있다.

보우소나루는 진즉에 쫓겨나야 했던 자다. 브라질의 끔찍한 팬데믹 피해만 생각해도 그렇다. 보우소나루의 재앙적 대응의 대가는, 세계적으로 손꼽히게 거대한 대도시에 집중된 유색인종과 가난한 사람들이 주되게 치러야 했다.

진즉에 쫓겨나야 했던 자 보우소나루 사진에 침을 뱉는 브라질 여성 ⓒCreative Commons

룰라가 브라질 노동자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보우소나루의 위기가 심각해 지면서 최근 정계에 복귀한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늘고 있다.(관련 기사 본지 360호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브라질 위기 심화 속 룰라의 정계 복귀’) 브라질 현지 여론조사들은 하나같이 룰라가 다음 대선에서 보우소나루를 큰 표차로 꺾으리라 점치고 있다. 이는 보우소나루에 대한 거대한 증오의 표현이다.

정계 복귀 후 룰라는 2022년 대선을 겨냥한 반(反)보우소나루 연합 결성에 앞장서 왔다. 룰라는, 좌파 개혁주의 정당인 사회주의와해방당(PSoL)만이 아니라 브라질사회민주당(PSBD) 등 신자유주의 우파 정당들도 연합에 끌어들이고 있다. 룰라는 모두 합심해 보우소나루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그렇게 한다.

사실 룰라가 속한 브라질 노동자당은 1980년대 초 브라질의 위대한 대중파업 물결 속에서 탄생했지만, 2002년 첫 집권 훨씬 전부터 온건해졌다. 룰라는 대중투쟁보다 의회 내 셈법에 몰두해 자본가·우파와도 거리낌없이 손잡았다.

집권 후 룰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고, 이에 항의하는 노동계급의 투쟁을 억눌렀다.

룰라 정부는 원자재 수출 수익의 작은 일부를 활용해 몇몇 사회보장 제도를 신설했지만, 연금을 개악하고 복지 재정 상승을 억제했다. 룰라 집권기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건의료 예산은 거듭 줄어(명목 액수는 늘었지만), 임기 마지막해인 2012년에 최저점(7.7퍼센트)을 기록했다. 노동자당 이후 집권한 우파 정부(9.5퍼센트, 2018년) 때보다 낮은 수치였다.

2000년대 초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며 원자재 경기가 호황일 때는 이런 제한적 조처로도 심각한 불평등을 약간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 세계경제 위기의 영향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룰라의 후임 지우마 호세프는 노동계급이 아니라 브라질 자본주의를 구제하기로 선택했다. 대규모 긴축 정책이 이어졌다.

브라질 노동자들은 크게 실망했고, 수많은 노동자당 지지자들이 당을 떠났다. 지지 기반을 제 손으로 파괴하다시피 한 노동자당은, 부패 스캔들을 이용한 우파의 정치 공세에 속절없이 당해야 했다.(관련 기사 본지 181호 ‘브라질 노동자당 소속 대통령의 탄핵: 노동계급의 이익을 못 지켜 우파의 정치 공세도 못 막다’)

노동자당의 대규모 부패 추문은 우파 야당들과 정략적 타협을 거듭한 결과이자 노동자당이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하면서 타락한 결과였다. 이 때문에 ‘노동자당=좌파=부패’라는 우파의 이데올로기 공격이 기세등등해졌다.

하지만 브라질 노동운동·사회운동은 이런 공격에, 그리고 우파의 공세에서 힘을 받은 극우의 부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마침내 이는 보우소나루 집권으로까지 이어졌다.(관련 기사 본지 273호 ‘브라질 노동자당이 극우 부상에 책임을 져야 한다’)

보우소나루 집권 후에 저항이 없지는 않았다. 학생운동 등 몇몇 사회운동 부문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팬데믹 후에도 배달 앱 노동자들, 보건 노동자들, 대중교통 노동자들이 파업과 거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투쟁들은 대개 지역 수준에서 그치거나 일회성 행동에 머물렀다. 상파울루대학교 역사학 교수 션 퍼디는 그 주된 이유가 “사회민주주의 정당 노동자당이 자유시장 정책으로 선회하며 사기가 추락했고, [노동자당 왼쪽의] 좌파들은 사분오열해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좌파 활동가 수천 명이 코로나19로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사회 상층부의 정치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평범한 사람들이 저항에 나설 기회를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룰라의 사면 복권도 대중이 저항에 나서는 데에 도움이 됐다. “정치적 소양과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룰라가 감옥에서 썩고 있는 것 자체가 국가와 지배계급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것으로 여겨졌다.”(브라질 마르크스주의자 발레리우 아르카리) 하지만 대규모 사면 운동 끝에 룰라가 감옥을 나온 것은 그런 건재함이 끝날 징후로 여겨졌다.

2022년까지 기다리자?

추악한 보우소나루가 물러나면 수많은 브라질 대중은 안도할 것이다. 그러나 룰라가 브라질 노동자들에 대한 그간의 대규모 공격을 되돌리고, 가뜩이나 심각했고 보우소나루를 거치며 더 심각해진 불평등에 맞설 수 있을까?

오랫동안 자본가·우파와 타협했고 지금도 그런 자들과 동맹을 도모하는 룰라의 행보는, 걸출한 노동운동 지도자에서 개혁주의 정치인이 돼 자본주의 국가의 운영자로 변모한 것의 반영이다.

이제 룰라는 집권 당시 그나마 취했던 약간의 빈민 지원도 질색했던 우파들과 손 잡고 차기 대선에 임하려 한다. 그런 맥락에서 룰라는 자신의 전임 대통령이자 브라질에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우파 정치인 엔히키 카르도주와 만나 차기 정부가 취해야 할 방향에 관해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

보우소나루 규탄 시위 직후 룰라는 “2022년에 선거로 보우소나루를 심판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의 행보를 봤을 때, 룰라가 다시 집권해도 노동계급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구제하려다 몰락한 지난 집권기와 크게 다르게 행동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전염병·경제 위기의 피해를 혹심하게 입는 평범한 브라질인들에게 이는 진정한 해법이 될 수 없다.

보우소나루와 그가 대표하는 끔찍한 정치를 박살낼 진정한 힘은 브라질 대중 자신의 투쟁에 있다. 현재 콜롬비아 대중이 우파 정부에 맞서 강력한 항쟁을 벌이는 등, 라틴아메리카 다른 곳에서도 저항이 있다. 브라질 대중운동도 그 일부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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