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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이용, 취업 … 무엇 하나 쉽지 않다:
트랜스젠더가 마주하는 차별의 현실

2018년 11월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집회 ⓒ조승진

최근 성전환 수술을 한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트랜스 여성의 숙명여대 입학 포기가 논란이 되며 트랜스젠더 쟁점이 떠올랐다. 이번 논란은 그동안 투명 인간처럼 존재했던 트랜스젠더가 우리 일상에 학우, 동료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보여 줬다. 한편, 트랜스젠더에 대한 무지와 편견도 만만찮게 뿌리내리고 있음이 뚜렷이 드러났다.

트랜스젠더는 태어날 때 부여된 성별과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이 다른 사람들을 말한다. 최근에는 성별 표현, 성별 정체성 등이 사회의 성별 규범과 어긋나는 사람을 지칭하는 폭넓은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한국 사회에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널리 알려진 것은 2001년 하리수 씨가 TV에 등장하면서다. 이후 트랜스젠더는 분명 더 많이 드러났지만 대다수는 차별과 혐오 때문에 숨죽여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트랜스젠더의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된 적이 없다. 미국 트랜스젠더 인구는 전체 0.3퍼센트로 추정된다. 이를 참고하면, 한국 트랜스젠더 수는 5만~25만 명으로 추산된다(‘한국 트랜스젠더 의료접근성에 대한 시론’, 《보건사회연구》).

트랜스젠더는 이 사회에서 여러 차별과 혐오를 경험하며 고통받는다. 가족, 학교, 직장, 군대, 투표장, 화장실 등 이 사회 곳곳에 성별 이분법이 뿌리내려 있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차별 현실을 생생히 다룬 《오롯한 당신: 트랜스젠더, 차별과 건강》(김승섭 외, 숨쉬는책공간, 2018)에서 한 20대 트랜스 남성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서 가장 힘든 건 화장실 사용이죠. 일단 여자 화장실을 가려고 하면 ‘어어, 어어’ 이러고, 남자 화장실을 가려고 하면 뭔가 제가 좀 불안하고요. 그냥 눈 딱 감고 가면 상관이 없는데, 안에 있다가 밖에 사람 소리가 나면 문을 열고 다시 나갈 용기가 안 나요.”

누군가는 쉽게 하는 일

매순간 트랜스젠더들은 성별 이분법 장벽에 부딪혀 크게 좌절하곤 한다. 한국에서 모든 사람은 출생 신고와 동시에 성별 정보가 담긴 주민번호를 부여받는다. 많은 트랜스젠더가 공공 기관에서 서류를 떼거나 휴대폰을 계약하고 은행 업무를 볼 때 신분증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모욕적 경험을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쉽게 하는 일들(투표, 공중 화장실 사용, 목욕탕 가기 등)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것은 직장을 구하는 데서도 큰 장벽이다. 주민번호 성별 정보와 외양이 일치하지 않아서 면접에서 거부당하기 일쑤다. 그래서 훨씬 열악한 직장(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등)을 전전하기도 한다. 실제로 트랜스젠더는 소득수준이 더 낮고 고용상태가 불안정하다(〈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2014).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운 좋게 취직이 돼도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기 어렵다.

끔찍한 현실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율도 매우 높다. 한국과 서구 모두에서 그렇다. “한국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에 참여한 트랜스젠더 중 40퍼센트가 넘는 이들이 ‘자살을 시도한 적 있다’고 답했다.”(《오롯한 당신》)

이 때문에 많은 트랜스젠더가 법적 성별 변경을 원한다. 한국은 2006년부터 법원에서 법적 성별 변경을 인정하고 있지만, 그 기준은 여전히 매우 까다롭다.

특히 성별 정정 요건을 명시한 대법원 예규는 성전환 수술을 조건으로 걸고 있다. 이는 트랜스젠더에게 큰 부담을 준다. 트랜스젠더가 모두 성전환 수술을 원하는 것이 아니거니와, 원한다고 하더라도 높은 비용에 가로막히기 때문이다. 호르몬 투여, 성전환 수술 등 성별 전환을 위한 의료적 조처들 모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온전히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성기 성형 수술은 평균 1514만 원(트랜스 여성), 2057만 원(트랜스 남성)이 들 정도로 과중한데 말이다.(‘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 절차개선을 위한 성별정정 경험조사’)

다행히 최근 일부 법원에서 성기 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정정을 인정한 판례들이 나왔다(2013년 여성→남성 인정, 2017년 남성→여성 인정). 그러나 판사에 따라 판결이 제각각이고 이 과정에서 당사자들은 보수적 편견을 마주하기도 한다.

우파들(특히 일부 보수 개신교계)은 편견을 부추기며 트랜스젠더 처지를 더 악화시키려 한다. 지난해 11월 자유한국당 의원 안상수는 국가인권위법을 개정해 성별을 “개인이 자유로이 선택할 수 없고 변경하기 어려운 생래적, 신체적 특징으로서 남성 또는 여성 중의 하나”로 규정하는 조항을 삽입하려 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제3의 성’을 인정하겠다고 한 것에 대한 반동적 대응이자, 총선을 코앞에 두고 지역구의 보수 개신교계의 환심을 사려는 짓이었다. 애초 개정안 발의에는 일부 민주당 의원도 합세했다(후에 반발이 일자 철회했다).

여성성과 남성성

우파들은 트랜스젠더를 정신질환자나 성 범죄자처럼 묘사하며 트랜스젠더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안타깝게도 일부 급진 페미니스트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하곤 한다.

하지만 타고난 성과 자신이 인식하는 성이 다른 존재들은 소수이지만 인류 역사 어느 때나 존재해 왔다. 예컨대 아메리카에 살던 수렵·채집 집단에서는 생물학적 성별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성별로 살아가는 ‘두 영혼의 사람들’이 존재했고, 이들은 사회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며 존중받았다.

엄격한 성별 규범은 계급 사회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 계급 등장과 함께 남성 우위의 가족 제도가 발전하며 여성에 대한 체계적인 차별이 발전했고, 엄격한 성 역할과 성별 규범도 강화됐다.

트랜스젠더들이 여전히 차별과 혐오에 시달리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여전히 개인적 관계에서부터 직장 유니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남자 또는 여자라는 범주로 욱여넣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지배자들은 노동력 재생산 부담을 개별 가족에 떠넘기면서,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인양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부추겨 왔다.

여성·성소수자 등 갖가지 형태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트랜스젠더 권리(자신이 바라는 성별로 온전히 인정받고 살아갈 권리)를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 더 나아가 성별 규범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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