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10월 8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문재인 정부의 낙태죄 개정입법예고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조승진

문재인 정부는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면서, 기간과 사유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10월 7일 입법예고했다. 정부는 다음 달 16일 이후 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정부안은 기간·사유 제한에다 상담 의무화, 숙려기간 제도, 의사의 낙태 시술 거부권도 포함하고 있다. 헌재 판결 때문에 처벌을 완화하면서도 낙태 제한을 촘촘히 둔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자의적인 기준을 설정해 낙태를 제한하고 처벌하는 것은 완전히 부당하다. 문재인 정부는 개정안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조화’시켰다고 하지만, 둘의 ‘조화’는 불가능하다.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의 ‘권리’를 운운하며 실제로는 여성의 몸과 삶에 대한 결정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의사의 낙태 거부권 조항이 포함된 것도 문제다. 물론 낙태에 적대적 태도를 갖고 있는 의사에게 진료받고 싶은 여성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설사 의사가 자신의 신념 때문에 낙태를 거부하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여성이 다른 병원을 이용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정부 법안은 의사가 낙태를 거부하면 다른 임신·출산 상담기관을 소개시켜 준다는 내용만 들어 있다. 낙태 억제가 목적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의사의 거부로 여성은 상담기관을 전전하다가 낙태가 지연되기 십상이고 기간 제한에 걸려 처벌받을 위험이 커진다.

정부안이 통과되면, 낙태반대론자들이 의사 거부권 조항을 적극 이용해 합법 낙태를 더 축소시키려고 공격할 것이 분명하다. 낙태가 합법화된 나라들에서 의사의 거부권이 포함된 곳들이 많은데, 낙태 반대론자들은 이 조항을 이용해 낙태권을 공격해 왔다.

청와대 앞 기자회견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요구하는 여성들 ⓒ조승진

국회 차원의 조정 가능성?

정부가 낙태죄 유지 방침을 드러내자 본지를 비롯한 많은 진보·좌파 언론이 정부 개정안을 “기만적인 법안”이라고 비판하며 낙태죄 완전 폐지를 요구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정부안에 반대해 10월 12일,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고 기간과 사유 제한 없이 ‘임산부의 판단과 결정’으로 낙태할 수 있게 하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민주당 의원 5인과 정의당 의원 4인(심상정, 류호정, 이은주, 장혜영), 기본소득당 의원 1인(용혜인) 등 10명이 공동발의자로 동참했다. 이 법안과 별개로, 정의당 이은주 의원도 비슷한 법안을 곧 발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주에 〈한겨레〉는 민주당 권인숙과 박주민 의원의 낙태죄 폐지 입장을 보도하며 이렇게 밝혔다. “여당 내부와 의원들의 반대가 속출하면서 국회 차원의 조정 가능성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내 반대 의견 그룹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출신의 남인순 의원조차 권인숙 의원의 법안 발의에 동참하지 않았다. 특히, 청와대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입법안을 마련했다”며 입법예고안을 수정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권인숙 법안은 국회에서 통과할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다.

〈한겨레〉의 보도는 문재인 정부의 낙태죄 유지에 배신감을 느낀 개혁주의 시민단체들에게 또다시 민주당의 개혁파 의원들에게 헛된 기대를 걸도록 부추길 수 있다.

애초에 문재인 정부가 낙태죄를 없애리라는 기대 자체가 무망한 것이었다(2017년 11월 15일치 본지 229호에 실린 기사, ‘낙태죄 없애고 낙태 권리 보장하라’를 보시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부터 낙태죄 폐지 염원에 미온적 태도를 취했다. 2017년 11월, 23만 명이 참가한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도입’ 국민청원에 정부는 알맹이 없는 모호한 답변만 내놓았다. 그리고 2018년 3월에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낙태죄 폐지 권고안을 거부했다. 청와대는 낙태죄 폐지 여부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을 회피하며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공을 떠넘겼다.

그러다 몇 달 뒤부터는 낙태죄 유지 속셈을 드러냈다. 2018년 5월 낙태죄 위헌 심판 공개변론 때 법무부는 낙태죄 합헌 의견서를 냈다. 그리고 낙태하려는 여성은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은 원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같은 해 8월에는 보건복지부가 불법 낙태 수술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법 행정처분규칙을 개정하려 했다. 법원 판결 없이도 불법 낙태를 도운 의사에게 자격정지 조처를 내릴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많은 여성들이 반발하고 특히 많은 의사들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이 계획은 좌절됐다.

2018년 8월 25일 비웨이브 주최 ‘임신 중단 전면합법화 시위’ ⓒ조승진

보수파가 가하는 더한층의 후퇴 압력

한편, 정부안을 더 후퇴시키려는 시도들도 있다. 낙태반대론자들은 정부안이 낙태 전면 합법화 방안이라고 터무니없게 과장하면서 개정안에 반발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 단체들(대한산부인과의사회,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은 “제한 없는 낙태 허용 시기는 임신 10주 미만으로 해야 한다”며 정부안의 후퇴를 요구하고 있다. 이 의사들은 “여성의 안전과 무분별한 낙태 예방을 위해” 제한 없는 낙태 허용은 임신 10주 미만, 임신 10주 이후에는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낙태 허용을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낙태의 위험성을 과장하며, 임신한 여성이 아니라 의사들이 낙태에 대한 결정권을 쥐게끔 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임신을 중단할 권리는 국가나 의사가 아니라 임신한 여성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 출산에 따른 여성의 부담과 삶의 변화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의사가 “무분별한 낙태”를 가려내겠다는 발상은 독단적이기 짝이 없고 여성차별적이다.

헌재 결정의 한계

많은 진보적 여성단체들과 노동단체들이 낙태죄를 유지하는 정부의 개정안을 비판하며 낙태죄 폐지와 여성의 자기결정권 인정을 옳게 요구했다.

그런데 정부안이 “헌재 결정 위배”라거나 헌재 결정보다 큰 후퇴라고 비판하는 견해가 많다. 이런 입장은 헌재 결정의 진보적 측면만 보는 반면 헌재 결정의 한계를 간과한다.

낙태죄 조항들에 대한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현행법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음을 일반적 수준에서 인정했다. 물론 이것은 10년 사이에 낙태죄 폐지 여론이 성장해 온 것과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며 싸운 여성운동의 성과였다.

그러나 〈노동자 연대〉 신문이 헌재 판결 직후 밝혔듯이(283호의 기사, ‘낙태 권리 전면 보장돼야 한다’), 헌재 결정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헌재 결정이 낙태죄 전면 폐지를 뜻하는 것이라는 해석은 부정확했(하)다. 헌재 결정문은 낙태에 대한 형사 처벌의 정당성을 명시했다.

이 점은 헌재가 단순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이유를 설명한 부분에서도 다시 확인된다. “[낙태죄 조항에 대해] 단순위헌 결정을 할 경우 …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됨으로써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기게 된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현행법이 몇몇 예외적 사유를 제외하고 모든 낙태를 금지하기에 과도하다는 것이었다. 헌재 결정문은 ‘태아 생명권 보장’(낙태 금지론자들의 핵심 이데올로기)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조화’를 주장하며 기간이나 사유에 따른 낙태 제한 방안을 지지했다. 

따라서 헌재 결정의 진보성을 너무 크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파 정당 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조차 당시에 헌재 결정을 “시대변화와 사회 각계의 제 요구들을 검토하여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며 수용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헌재 결정의 명백한 한계를 보아넘기는 것은 보수적 국가기관인 헌재에 대한 착각을 심어 주며 대중에게 수동성을 부추길 수 있다. 이것은 낙태권 운동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낙태권 성취의 진정한 동력

문재인 정부의 배신이 보여 주듯, 낙태죄 폐지와 여성의 낙태권 보장은 지배계급의 자유주의 정치인들을 통해 이뤄질 수 없다. 이들도 ‘저출산 문제’로 노동인력과 병사의 부족을 크게 우려하며 결국 여성의 몸을 통제하기를 원한다. 특히, 경제 침체로 노동계급의 일자리와 조건 공격을 지지하면서 보수적 가족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여성 차별을 부추기고 노동계급을 이간질하는 것에 동참한다.

낙태죄 폐지와 낙태권 보장을 위해서는 자유주의 국회의원들의 활동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대중 투쟁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대중 투쟁을 통해 지배계급을 크게 압박해야 실질적 개혁을 성취할 수 있다.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에서 2018년 국민투표로 낙태가 합법화된 것은 사회주의자들이 이끈 대중적인 낙태권 투쟁이 몇 년에 걸쳐 일어난 덕분이었다.

그와 동시에, 자본주의 하에서는 투쟁을 통해 얻은 성과가 언제든 우파나 지배계급 전체에 의해 공격받을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낙태 합법화가 이뤄진 나라들에서도 낙태권 공격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미국은 트럼프 정부 하에서 낙태권 공격이 매우 거세져서 1973년 연방대법원의 낙태 합법화 판결이 뒤집힐 위험이 있다(‘미국 연방대법관 긴즈버그 사망: 여성 권리 공격에 맞선 대중 자신의 저항이 중요하다’, 〈노동자 연대〉 337호 참조). 

대중 투쟁은 지배계급을 압박해 양보를 얻어 낼 가장 확실한 동력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계급의 자신감과 의식도 성장한다. 이것은 개혁을 후퇴시키려는 우파들의 공격에 맞설 때도 중요한 힘이 된다. 

문재인 정부의 배신과 우파의 더한층의 후퇴 압력 모두에 맞서며 여성의 낙태권을 일관되게 옹호해 나아가자.